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69화 (269/366)

269화 국보 (2)

최신식 설비로 가득한 왕가의 대장간.

붉은 화염이 휘몰아치는 이곳에서는, 오직 한 명의 장인만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화아아아아악.

뼈까지 타 버릴 것 같은 열기를 견디며 오리칼큠 주괴를 녹인 뒤, 미리 만들어 놓은 거푸집에 부어 서로 길이가 다른 금속 막대를 두 개 만들었다.

텅 빈 어깨에 부착한 전용 집게가 없어진 오른팔을 대신한다.

막대 하나를 잡아 전력을 다해 외팔을 휘둘렀다.

최상위 금속 중 하나인, 데인스 강으로 표면 처리가 된 망치가 쩌엉! 대장간을 울렸다.

땅땅, 땅땅땅땅!

수백 번을 두들겨야 막대가 변형되기 시작했다.

점차 몸에 누적되는 충격은 가히 참기가 어려울 정도.

이를 악물며 버티던 라이너스가 비명에 가까운 함성을 몇 번이고 지르고 나서야 첫 번째 망치질이 끝났다.

직후 반지의 원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길이를 늘리는 데 집중했다.

합금도 아니고 오리칼큠 원본이라 욕지거리가 터져 나올 만큼 단단했다. 그렇게 기계를 세 개쯤 부수고 나서야 기초가 완성되었다.

“느아아아아아아아!”

열을 가하고 막대를 고정하고, 한쪽을 힘껏 당겼다.

근육과 핏줄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부풀어 올랐다. 드워프 장인의 제자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손을 놓아도 이상할 것 없는 고단한 일이었다.

‘이래서 공동 작업을 해야 하는 건데……!’

중얼거린 라이너스의 손이 움직였다.

한쪽에 펼쳐 둔 왕가의 설계도를 따라 액세서리가 형태를 갖추어 나간다.

수면을 거의 취하지 않은 덕분에 13일가량이 흘렀을 때쯤, 반지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설계도에 있던 마법적 처리를 추가하는 것까지.

“…….”

눈이 퀭하다.

수면으로는 지울 수 없는 피로다.

하지만 아직 쓰러져서는 안 된다.

짝! 양 빰을 강하게 두들긴 라이너스가, 육각형으로 된 다힐르 산 루비를 준비했다.

그리고 루비 안에 이식할 그것 또한.

꿀꺽. 라이너스가 침을 삼켰다

“……내 생전에 이런 걸 보게 될 줄이야.”

투명한 크리스탈 안에 봉인된 표식.

날카로운 방패를 본뜬 것으로, 에스티리아 왕국의 상징이었다.

마법적이면서도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룬 문자하고는 완전히 다른 종류다. 저건 인위적으로 형성된 힘이 아니다.

명백히 오브 이상의 물건. 여태까지 수많은 소재를 접해 왔지만, 이보다 대단한 건 감히 본 적이 없었다.

확실히 순도 100%의 최상위 금속 수준이 아니면 버틸 수가 없으리라.

“후우───”

라이너스가 심호흡을 했다.

크리스탈을 고정 장치에 넣고는 작은 시험관을 꺼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에스티리아 왕가의 혈액이었다.

마개를 열고 손을 기울였다. 붉은 피가 크리스탈에 새겨진 홈에 스며들자, 봉인 장치가 연쇄적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무려 100여 년 만에 표식이 바깥 공기를 쐬는 순간.

조심스레 집게로 집어 루비 앞으로 옮겼다.

다음 작업은 익숙하다. 종류는 다르나, 룬 문자처럼 보석에 표식을 이식만 하면 끝이다.

다행히 실패해서 붕괴되는 경우는 없다.

시간과 체력만 있다면 시도 가능한 횟수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루비와 표식을 서로 맞물리게 하는 건, 일반적인 룬 문자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려웠다.

실수하면 그대로 튕겨져 나가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니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투둑. 투둑.

뜨거운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눈이 따가울 테지만 라이너스는 꿈쩍하지 않았다. 극한까지 다다른 집중력은 고통을 한없이 무디게 만든다.

무수히 쪼개진 시간 속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몇 번의 실패를 겪었어도 마찬가지. 그 장인 정신은 일종의 정신병에 가까웠다.

그와 더불어 지금은 라이너스에게도 중요한 순간이었다.

설계도를 따라 옛것을 재현하는 게 전부라고 해도, 오리엔트에 비해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해도…… 장인으로 살아온 인생 중 가장 대단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자명하니.

당장의 역경과 고난은 끝내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

마침내 표식 이식에 성공했다.

눈을 번뜩인 라이너스가 곧장 반지를 가져와 고정했다.

반지의 센터(Center)를 향해 루비를 천천히 갖다 대었다. 눈대중으로 봐도 규격은 더없이 정확하다.

탁.

이윽고 둘이 결합했다.

그와 동시에 미증유의 기류가 술렁였다.

폭발이나 폭풍 같은 작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루비에 이식된 왕가의 표식이 ‘보랏빛’으로 명멸했다.

굳이 확인을 받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바로 여기서, 에스티리아의 국보가 부활했다.

“됐다……!”

라이너스가 환희에 찬 미소를 지었다.

이내 눈이 풀리며 삽시간에 의식을 잃었다.

왕가의 대장간에 온 지 약 20일.

아홉 번째로 청한 잠은 4일 밤을 꼴딱 새우고 나서였다.

* * *

저녁 식사 시간.

호화로운 요리가 차례대로 준비되는 테이블에, 난데없이 낯설지 않은 외팔이 사내가 나타났다. 피곤한 기색으로 여러 음식을 닥치는 대로 씹어 넘기는 모습.

카란스도 지지 않겠다는 듯 맞은편에서 포크를 이리저리 놀렸다. 말끔히 비워진 빈 그릇이 한쪽에 쌓여 갔다.

뭐, 그건 그렇고.

“라이너스, 네가 왜 여기에 있지?”

“음?”

라이너스가 베르덴을 바라봤다.

우물우물. 씹던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목 뒤로 넘기곤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시원하게 음료를 들이켠 그가 벅찬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번에 새로운 제작 의뢰를 받았거든.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는. 그리고 얼마 전에 막 완성한 참이지.”

“무슨 의뢰?”

“그게…….”

라이너스가 흘긋 눈동자를 굴렸다.

그 끝에는, 귀족다운 모습으로 묵묵히 고기를 썰고 있는 칼리아가 있었다.

“발설 금지라 나는 말 못 해.”

“…….”

“아, 왕성 요리사가 만들어서 그런지 음식들이 진짜로 맛이 좋네!”

시선을 회피한 라이너스가 음식을 흡입했다.

눈가를 찌푸린 베르덴이 생각에 잠겼다.

마법 물품 장인인 라이너스가 의뢰를 받았다는 건, 당연히 무언가를 제작하기 위해서일 터. 그리고 왕성에 왔다는 건 의뢰인은 왕가의 관계자.

마지막으로 라이너스는 칼리아, 즉 에스퍼렌사 후작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그때, 페르네가 옆에서 속삭였다.

“각하, 저 사람이 그 외수, 라이너스 볼티모그죠? 올해 초부터 정보로만 추적하다가 이렇게 직접 보니 뭔가 감회가 새롭네요.”

베르덴이 페르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그 호칭은 뭐지?”

“이번에 명예 백작 작위를 받으셨다고 들어서요. 이제 엄연한 귀족이시니 각하라고 불러 드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해서…… 그냥 원래대로 바꿀까요?”

“그러는 게 좋겠군.”

“네, 애셔 님!”

베른덴은 호칭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래도 갑자기 아는 사람에게 각하라고 불리는 건 왠지 모르게 거슬렸다.

페르네도 익숙하지 않았는지 지금이 더 편한 듯했다.

“그나저나 내가 말했던 정보는 어떻게 됐지?”

“여기 오기 전에, 전부 정리해서 애셔 님의 책상 위에 놔뒀어요. 왕가에서 비행정을 빌려준 터라 아주 수월했죠.”

페르네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유도 묻지 않고 원하는 정보를 구해 주는 태도. 그녀는 여전히 베르덴만을 위한 정보상이었다.

이내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페르네가 모은 정보도 그렇고, 마침 로아프라에 있는 자금을 옮길 방법을 몇 개 떠올린 참이었다.

이제 수많은 경우의수를 떠올리고, 머리를 굴려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면밀히 계산해 볼 생각이었다.

“저기, 애셔.”

그러던 중, 칼리아가 다가왔다.

여느 때와는 다른, 긴장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데, 혹시 밤에 테라스로 나와 줄 수 있겠나?”

뭔가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 건가.

정황을 파악했을 때, 뭔지는 짐작이 간다.

“그러지.”

“음, 그래. 고맙군.”

칼리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자신의 방으로 직행했다. 두 사람을 응시하던 카란스가 베르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형제여, 나도…….”

“카란스, 할 말이 있어도 눈치껏 다음으로 미루세요.”

페르네가 카란스의 팔목을 붙잡았다.

수려한 엘프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뭐라고 지껄였지? 눈치?”

“시간 있으면 저번에 못 한 정령 얘기나 마저 해 줘요. 블루, 도와줄래?”

페르네가 카란스를 복도 너머로 데려갔다. 블루가 반짝이며 옆에서 거들었다.

정령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과 가디언 엘프 사이에 친분이라도 생긴 걸까.

험한 비난을 내뱉으면서도 카란스는 거세게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끌려갔다.

‘묘한 광경이군.’

베르덴이 등을 돌렸다.

식당을 뒤로하고 복도를 거닐었다.

곧 밤이 찾아왔다.

* * *

왕성 에스노렌의 테라스.

난간에 팔꿈치를 올린 베르덴이 고개를 들었다.

광활한 어둠의 중심에서 만월의 빛이 환히 그를 비추었고, 무수한 별빛이 그 주위를 장식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겨울 초입의 하늘이다.

기척을 느낀 베르덴이 시선을 옮겼다.

막 테라스로 들어온 칼리아가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어두운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경장 차림.

“벌써 와 있었던 건가. 본의 아니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지루했을 텐데.”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지루하지도 않았고.”

“그런가? 하긴…… 오늘따라 밤하늘이 유독 아름답긴 하군.”

칼리아가 다가와 베르덴의 옆에 자리했다.

자연스레 대화가 멈추자 정적이 감돌았다.

고요하지만 전혀 쓸쓸하지 않았다.

칼리아는 풍경을 바라보는 척 옆을 흘긋거리며 머뭇거렸고, 베르덴은 말없이 기다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칼리아가 목소리를 내었다.

“애셔, 내가 왜 널 불렀는지 알고 있나?”

“아무래도 보수 때문이겠지.”

실리스가 줄 세 번째 보수.

그러자 칼리아가 피식 웃었다.

“역시 넌 눈치가 빠르군.”

칼리아가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백색 바탕에 순금으로 조화롭게 장식된 보석함이었다.

“네 말대로 나는 너에게 보수를 전달하러 왔다. 다시 말해 세 번째 보수의 운반을 맡은 셈이지.”

천천히 보석함을 열었다.

육각형의 붉은 루비가 박혀 있는 은색 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석의 중심에서 에스티리아 왕국의 상징이 보랏빛으로 미약하게 물결치고 있었다.

“이건…….”

“아버지께서 말하길, 이건 초대 에스티리아 왕국의 국왕께서 왕국을 건국할 당시, 동대륙의 중심을 점거하고 있던 특수 개체를 토벌하고 손에 넣었던 물건이라고 하시더군.”

칼리아가 전설을 이야기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이 훌쩍 지난 시대.

군대와 특수 개체가 충돌했고 전쟁이 벌어졌다.

압도적인 힘에 의해 수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어 갔다. 시체가 산을 만들었고, 피는 강이 되어 흘렀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군사를 이끌던 고위 귀족이 다 부서진 방패로 마침내 놈의 목숨을 끊었으니. 귀족은 괴물의 시체를 짓밟고 승리를 선언했다.

그 순간, 특수 개체에게서 흘러나온 안개가 귀족을 감쌌다.

설마 마지막 발악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미증유의 기운은 귀족이 착용하고 있던, 가문의 표식이 새겨진 반지에 깃들었다. 그러자 귀족은 괴물이 사용하던 능력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아티팩트의 탄생이었다.

“그렇게 넓은 땅을 손에 넣은 귀족은 에스티리아라는 왕국을 세웠고, 반지에 새겨져 있던 표식은 왕가의 상징이 되었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기에 과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것만큼은 진짜다.”

칼리아가 보석함을 내밀었다.

“일명 레인디아(Raindia). 무한한 공간을 품은 왕국의 국보다.”

“공간……?”

“직접 확인해 보겠나?”

칼리아가 권유했다.

마력회로를 활성화한 베르덴의 벽안이 빛났다.

<감정>

★ 레인디아.

⦁ 영혼 각인

⦁ 아공간

소유자에게 귀속되는 각인 아티팩트.

마도왕의 아인베르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같은 반열에 위치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소유자가 자유로이 다룰 수 있는 공간을 부여한다니…….’

다른 아티팩트에서 볼 수 있는 공간 수납과 흡사하다.

하지만 그 성능 자체가 소유자에게 이식된다는 건 달리 접해 본 적이 없었다.

베르덴은 경악을 숨기기 어려웠다.

“아무리 보수라고는 하지만…….”

“아버지께서 네가 그런 식으로 말할 거라고 하시더군. 그때는 이렇게 설득하라고 하셨다. 국보 레인디아는 왕가의 시초이자 피의 역사이기도 하다고.”

레인디아는 역대 에스티리아 왕에게 전해져 내려왔다.

하지만 약 100여 년 전, 왕위 계승이 완전히 이루어지기 전에 왕이 급사했다.

그 결과 왕가의 자손들이 국보를 두고 전쟁을 벌였다. 레인디아를 가진 자가 진정한 왕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에스티리아 왕국에는 짙은 피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결말은 예상과 달랐다.

적극적으로 전쟁에 나선 탓에 왕가의 혈통들이 죽거나 세력이 한없이 약해진 탓에, 후보로 취급되지 않았던 막내 왕자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새로운 왕의 심정은 너무도 참담했다.

한때는 사이가 좋았던 형제들이 서로를 죽이는 비극적인 현실에…….

그래서 레인디아를 분해하여 영영 봉인하기로 결정했다.

국보가 일국의 왕좌를 대신하는 일이 없도록, 이 같은 참사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하지만 결국 그보다 심각한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과거의 피를 계승하지 않고, 현시대를 기점으로 에스티리아 왕국을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것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국보를 이대로 방치해 봤자 아깝기만 할 터.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가져가라…… 라고 너에게 전해 달라고 하셨다.”

“…….”

베르덴이 레인디아를 응시했다.

‘이게 에스페런사 후작과 실리스가 생각해 낸 결론이라는 건가.’

그가 왕국에서 이룬 업적을 치하함과 더불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왕국을 만들고자 하는 다짐.

아무리 마음을 먹었다고 해도 일국의 국보에 대한 소유권을 이양하는 데는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베르덴은 그 선택을 존중할 생각이었다.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그러자 칼리아가 살며시 손을 뒤로 뺐다.

“네가 직접 착용하는 건 여러모로 멋이 없겠지. 그러니 가만히 있어라.”

보석함을 난간 위에 두었다.

레인디아를 집은 칼리아가 작게 심호흡을 했다.

아버지가 준 기회를 국보만 전달하고 끝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너는 곧 여기를 떠난다고 했었지. 아마도 네가 간직한 목표, 꿈을 위해서.”

칼리아가 베르덴의 오른손을 잡았다.

마법사임에도 단련으로 만들어진 굳은살이 느껴진다. 거의 평생 검을 잡아 온 칼리아와 비슷한 손이었다.

서서히 가까워진 레인디아가 베르덴의 검지손가락을 장식했다. 맞지 않는 크기는 마법적 처리에 의해 자동으로 조절되었다.

“여기에 반지를 착용하면 꿈이 이루어진다더군.”

잘 어울린다.

칼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검붉은 눈동자가 상대의 벽안을 직시했다.

“애셔, 언젠가 에스티리아 왕국에 돌아올 건가?”

“……모르겠군.”

말 그대로였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베르덴이 가고자 하는 길은 그런 길이었기에 함부로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칼리아는 작게 미소를 띠었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아니면 그가 오기 전에 칼리아가 먼저 찾아가면 되겠지.

지금은, 나중에 볼 수 있다는 여지만으로 충분했다.

그래도 이것만큼은 확답을 받고 싶었다.

“만약 다음에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칼리아가 힘을 실었다.

손끝으로, 베르덴의 오른손을 지그시 눌렀다.

“네 진짜 이름을 말해 줄 수 있나?”

애셔라는 이름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지금, 베르덴은 가명을 쓰고 있다는 내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속이지 못한 건, 초월자들 외에는 없었다.

그러나 칼리아는 확신하고 있었다.

아마도 단순한 직감이겠지. 사람의 감이라는 건, 가끔씩 이치에 상관없이 본질을 꿰뚫어 보기도 하니.

베르덴은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에게 하나의 약속을 남겼다.

“그러지.”

밤이 깊어진다.

고고한 달빛이 두 사람을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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