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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65화 (265/366)

265화 유품

무리하게 아티팩트를 사용한 반동으로 실리스는 깊은 잠에 들었다.

좋지 않은 꿈이라도 꾸는 건지,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또 흘러내렸다.

이따금씩 일그러지는 표정에는 괴로움이 선명히 드러났다.

플로나가 마른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 냈다.

미약한 냉기를 품고 있는 매직 아이템을 이용해 달아오른 체온을 식혔다.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모습을, 아델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플로나, 전하는…… 어떠시지?”

“육체적인 상태는 호전되고 계셔. 하지만 내면이 문제야.”

실리스의 몸은 날이 갈수록 회복되고 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미 이지를 상실했을 가시왕관의 부작용을, 마녀의 혈통과 기억으로 완전히 상쇄했다.

하지만 반대로 괴로워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당장 의식을 차려도 이상하지 않은데도…… 마치 현실을 거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델과 플로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글러트니라는 집단에 의해 가족을 전부 잃고, 본인들도 죽었지만 실리스 덕분에 다시금 생명을 찾을 수 있었던 생존자.

그런 그들이 그녀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오래도록 꿈꿔 왔지만 직접 해내지 못한 복수.

결국엔 무력했던 결과를 차마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전하를 도울 방법은?”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문제야. 실리스 전하께서 해결하실 문제지.”

플로나가 실리스의 손등을 조심스레 덮었다.

“기다리면 이겨 내실 거야. 전하는 강하신 분이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곁을 지키자, 언제나 그랬듯이.”

아델, 플로나, 로리안.

세 사람은 실리스를 위해 살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복수를 향하는 길이든, 복수라는 꿈을 넘어 가는 미지의 길이든 함께할 것이다. 설령 그것이 죽음이라고 해도.

마지막까지 걱정 어린 눈길을 보내던 아델과 플로나가 방을 나섰다.

그렇게 복도를 거닐던 중 예상외의 인물과 마주쳤다. 계획에 있어 가장 큰 변수이자, 끝끝내 레오닐을 처단했던 강대한 존재.

“아델 그리고 플로나라고 했었나?”

베르덴이 물었다.

아델과 플로나의 몸이 긴장되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애셔 님께서 이곳엔 어쩐 일이십니까.”

“실리스 전하를 뵈러 오셨다면 부디 다음을 기약해 주세요. 아직 상태가 회복되지 않으셔서 안정이 필요합니다.”

“걱정 마라. 함부로 들어갈 생각은 없으니까. 그보다 로리안은 어디에 있지?”

로리안?

“로리안은 암상인 클란드, 아니 세바스 씨와 함께 있습니다. 남은 일을 마치고 왕성으로 돌아올 예정인데…… 로리안에게 어떤 용건이 있으신 겁니까?”

이유가 짐작되지 않는다.

설마 로아프라에서 봉인당했던 일을 보복하려는 걸까.

숨죽이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베르덴이 말했다.

“만나게 되면 전해라. 단둘이 할 이야기가 있다고.”

* * *

평화롭게 끝을 맞이한 대관식.

그날 소리 소문도 없이 실종된 사람들이 있다.

“……으음.”

용병단장 게울이 천천히 눈을 떴다.

끔뻑거리는 시야에는 음산함이 가득했다. 천장에 매달린, 마석등이 내뿜는 미미한 빛은 뭔지 모를 황량한 공간만을 비췄다.

어둡고, 먼지가 가득하다.

퀴퀴한 냄새와 함께 희미한 탄내도 나는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

덜컥.

일어나려 했지만 무언가 붙잡았다.

자연히 시선을 내리자, 팔과 다리 그리고 허리가 금속 의자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그의 힘으로는 도저히 끊어 내질 못할 것 같은, 두껍고 단단한 밧줄이 작은 틈조차 없이 육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X발, 이게 뭐야.’

당황하던 게울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오른쪽 옆에 눈에 익은 사람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광인 톨라브.

거상 다리오.

설계자 넬리타.

죄다 게울처럼 묶여 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톨라브! 다리오! 넬리타! 당장 눈 떠라! 일어나라고!”

게울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렇게 몇 번이나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내, 내가 왜 묶여 있어?!”

“윽! 갑자기 이게 무슨!”

“킥, 안 풀리는데?”

혼란이 가중된다.

구속을 풀려 했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도중 게울에게 상황을 물었지만 당연히 알 턱이 없었다. 그는 그저 일찍 일어났을 뿐이었으니까.

그나마 알고 있는 건 하나뿐이다.

위 네 사람은 1왕자의 비밀 사교회의 구성원들. 누군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납치했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어둠 속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바닥을 디디는 발자국 소리, 그것과 겹쳐서 나는 둔탁한 소리. 지팡이를 든 사람의 움직임인 것 같았다.

또한 그보다 조금 더 무거운 발소리와 휠체어가 끌리는 소리까지.

이윽고 그 정체가 드러났다.

“……암상인?”

암상인 클란드.

중절모를 눌러쓴 그가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고개를 들었다. 턱에 나 있는, 특유의 화상 자국이 선명했다.

옆에는 휠체어에 몸을 누인 사람이 있었다. 화상 흉터로 가득한 몸뚱이를 가진, 가면을 쓴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간.

뒤에 있는 금발 녹안의 사내는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은 채 시선만을 움직였다.

클란드가 앞으로 나섰다.

“모두들, 오랜만이로군.”

“……암상인,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오.”

“보고도 모르겠나. 나는 너희들을 잡아 왔고, 너희들은 나하테 잡혀 온 상황이 아니겠나.”

“지금 말장난하는 거야?”

넬리타가 쏘아붙였다.

클란드가 피식 웃어넘겼다.

“말장난이라. 그건 그대가 가장 잘하는 짓이지 않나, 넬리타. 아쉽게도 나는 사람들을 선동하는 재능은 없지.”

태연한 반응이다.

게울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뭐가 목적인지는 몰라도 장난은 여기까지 해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감당하기 싫다면.”

“킥킥킥! 난데없이 납치라니. 이거, 나보다 미친놈이 있었네?”

적의로 물든, 당당한 으름장이다.

감정을 가라앉힌 클란드가 중절모를 벗어 뒤로 던졌다. 본 적 없는 그의 태도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라. 그건 이미 너희들이 저지르지 않았나?”

“뭐?”

“여러모로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 너희들은 그저 일방적으로 듣고 당하면 된다. 내가, 그리고 우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곤혹스러운 기류가 술렁였다.

대체 저게 무슨 말이지? 광인 톨라브조차 영문을 모르겠다며 표정을 찌푸렸다.

“과거에 억울한 누명으로 인해 멸문당한 가문이 있었다.”

저벅, 저벅.

클란드가 움직였다.

가장 먼저 게울의 앞에 다가섰다. 들고 있던 지팡이로, 게울의 양손을 툭툭 쳤다.

“게울 용병단의 단장, 게울. 너는 왕가에게 고용되어, 도적으로 위장해 루비넬리안 공작의 영지를 휩쓸었다. 가련한 영지민들을 죽이고, 빼앗고, 범했다. 아주 조직적으로. 덕분에 영지는 흉흉해졌고, 가문의 병력들은 너희들을 토벌하기 위해 나뉘었다. 그 결과, 왕가와 다른 공작가가 영지를 침범하는 데 일조했지.”

다음은 넬리타.

지팡이로 턱을 가볍게 짓눌렀다.

“윽……!”

“설계자 넬리타. 너는 각 도시에 있는 신문사와 정보상들을 이용해, 루비넬리안 공작가에 대한 거짓된 소문을 퍼뜨렸다. 범죄, 반란, 온갖 모욕적이 잔혹한 소문으로 여론을 어지럽혔지. 그를 접한 무지한 시민들은 당연하다는 듯 루비넬리안 공작가를 폄하하고 증오했다. 너는 가문의 위상을 한없이 더렵혔다.”

그리고 톨라브.

지팡이로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광인 톨라브. 마약상인 너는 가늠하기 어려운 양의 마약을 루비넬리안 영지 내에 풀었다. 그리고 강요해 거리를 중독시켰지. 또한 가문 내부에 마약과 관련된 정보를 깊이 심어 두어, 다른 공작가가 참견할 빌미를 주었지.”

마지막으로 다리오.

지팡이로 지방이 겹겹이 쌓인 배를 찔렀다.

“동부의 거상 다리오. 너는 에스티리아 왕가에게 대가를 받고, 막대한 자금을 끌어들여 저 세 명을 뒤에서 도왔다. 네가 그토록 자랑하는 피 묻은 재산으로.”

침묵은 동요가 되어 술렁였다.

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눈빛이었다. 그와 더해서 벌써 수십 년이 지난 일들을 꺼내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불안감이 커져만 간다.

침을 삼킨 다리오가 눈가를 떨었다.

“암상인 클란드. 너는 대체…… 누구지?”

클란드가 두 발자국 물러섰다.

지팡이를 바닥에 던진 그가 오른손을 자신의 가슴에 얹었다. 귀족 가문에서 볼 법한 특유의 예법.

“나는 루비넬리안 공작가의 집사, 세바스. 불타는 저택과 영지에서 살아남은 두 명의 생존자 중 하나다.”

“세바스라고……?”

알고 있는 이름이다.

과거의 기억이 저절로 되살아난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던 자들 중의 하나.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발견되지 않았고, 설령 살아 있다고 해도 별 위협이 되지 않았기에 죽었다고 판단한 루비넬리안 가문의 일원.

순간 흠칫한 넬리타가 빽 소리를 질렀다.

“거짓말! 세바스는 그런 얼굴이───”

“세상에는 특이한 매직 아이템이 많지. 나는 고귀하신 분의 도움을 받았고, 영구적으로 이전의 얼굴을 버려 신분을 숨겼다. 그저 오늘만을 위해.”

클란드라는 가명을 버린 세바스.

그가 휠체어에 다가가, 얼굴을 가린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으…… 어…….”

“과거의 나를 가리키는 건, 그날 입었던 이 화상 자국뿐이지. 여기 있는 내 제자, 케미언도 마찬가지다. 이제 너희들이 잡혀 온 이유를 알겠나?”

세바스가 웃었다.

섬뜩한 미소에 모두가 흠칫 떨었다.

“네놈……! 발르그나 전하께서 이 사실을 알면 좌시하지 않으실 것이다!”

“발르그나는 이미 끝났다. 증오스러운 에스티리아 왕도 그렇지. 그리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다. 발르그나가 너희를 돕는 것보다 내 손이 더 빠를 테니까.”

세바스가 고문 도구를 늘어놓았다.

가방에는 시퍼런 금속이 가득했다. 그중에서 무게가 끝에 치중된 금속 망치를 손에 들었다.

“…….”

로리안은 케미언 뒤에 서서 조용히 지켜봤다.

그때, 누군가 정신에 간섭했다. 정신 감응이 연결되어 있는 아델 혹은 플로나에게서 연락이 온 것일 터.

얘기를 전해 듣던 로리안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런, 세바스 씨. 저는 먼저 왕성으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절 찾는 분이 있다고 하시는군요.”

“여기는 걱정 말게. 나도 이곳의 일을 마치고 가도록 할 테니. 물론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느긋하게 즐기고 오시지요.”

두 사람에게 인사를 전한 로리안이 바깥으로 나갔다.

잠시 가벼워졌던 공기가 다시금 무거워졌다. 케미언이 바라보는 시야 속에서 세바스가 움직였다.

망치로 톨라브의 입을 틀어막았다

넬리타는 세 치 혀를 뽑고.

다리오는 돈으로 채운 배를 터뜨리고.

톨라브는 광기에 물든 머리를 부수고.

게울은 수많은 살인으로 저지른 손을 자를 것이다.

복수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너무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너희들의 부하들과 세력 전부도 파악이 끝난 상태고, 곧 전부 왕국에서 지워 버릴 테니.”

“안 돼! 그만해라, 암상인!”

“내, 내가 잘못했소! 용서! 용서를 돈으로 사겠소! 그게 얼마든 간에!”

“꺄아아악! 살려 줘!”

“으으으으으읍?!”

모두가 발광한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

불타는 영지에서 죽어 나간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미 말했다. 너희는 일방적으로 듣고 당하면 된다고.”

세바스가 팔을 당겼다.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파육음.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잔혹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누구도 듣는 이는 없었다.

과거에 전소된 루비넬리안 공작가의 저택. 그 밑에 감춰져 있던 지하실은 오롯이 세바스와 케미언의 고향이었다.

* * *

베르덴은 눈을 감은 채 작년의 기억을 되돌아봤다.

공국의 도시, 마르테스에서 모험가 길드에게 의뢰를 받아, 이리스 파티 등과 함께 비르온 영지로 향했다.

거기서 갈리아크와 처음 만났고 언데드가 출몰한 갱도로 진입했다.

그리고 백골 무더기 위에 앉아 있던 언데드, 통곡의 기사를 마주했다.

당시에는 상당한 강적이었다.

어둠을 두른 채 저항하는 기이한 힘에는 성직자들의 기적 또한 통하지 않았다.

<지형조작>을 쓰느라 지친 베르덴에겐 분명 버거웠었고, 끝끝내 갈리아크와 힘을 합쳐서 겨우 토벌했던 존재.

그 통곡의 기사는 소멸하기 전 베르덴에게 ‘목걸이’와 기억을 남겼다.

가족을 위해 싸운 군인.

자국의 군인을 학살하고 생매장한 에스티리아 왕국.

그렇게 파묻힌 군인은 증오와 분노로 되살아나 통곡의 기사가 되었다.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그때는 학살당한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알 수 있다.

왕국의 2대 금지, 빛이 들지 않는 동굴에서 만난 엘더 리치.

그처럼 왕국이 벌인 대규모 인체 실험에 대해 우연히 눈치챈 걸 테지. 그 결과 잔혹하게 입막음당한 것이고.

‘설마 그때의 일이 여기까지 이어질 줄이야.’

베르덴으로서도 놀라울 뿐이다.

물론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 따위는 믿지 않는다.

우연조차 베르덴이 걸어온 발자취였고, 그로 인해 탄생한 상황일 뿐이었다. 지금의 선택 또한.

똑똑.

문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던 손님이 온 것이다. 마력을 일으켜 문고리를 당겼다.

로리안이 안으로 들어와 예를 갖추었다.

“절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일단 앉아라.”

로리안은 순순히 말을 따랐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생각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둘이 보자고 했는지. 로아프라 봉인에 대한 보복 같은 게 아니라면, 전혀 짐작 가는 게 없었다.

“흐음.”

베르덴이 잠시 고민했다.

생각 속에 담아 둔 심증은 확신에 가깝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가는 건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뭐라고 자연스레 말을 꺼낼까.

“로리안, 너는 플로나와 아델처럼 글러트니에게 실험을 당했다고 했었지.”

로리안이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작스러운 얘기에,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때, 나이는 몇 살이었지?”

“여섯이었습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군인인 아버지가 전쟁터로 가고, 어머니와 마을에서 살아가는 나날. 그러던 어느 날, 피난 행렬에 끼었다가 그대로 어머니와 함께 실험체가 되었던 순간까지.

나머지는 세월에 의해 풍화되었지만, 그때 느꼈던 고통과 어머니가 눈앞에서 죽은 모습만큼은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

“아버지는 군인이었나?”

“네, 그렇───”

“직위는 백인장일 테고.”

로리안이 눈을 크게 떴다.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기록에도 남지 않았을 텐데. 그걸 아는 건 아델과 플로나 그리고 실리스 왕녀가 전부였다.

‘역시나 맞았군.’

로리안의 반응이 증명하고 있다.

통곡의 기사가 찾고 있던 그 ‘로리안’이 맞다고.

베르덴이 공간가방을 개방했다.

그 안에서 녹슬고 그을린 낡은 목걸이를 꺼냈다. 염동력으로 힘을 실어 로리안에게 쥐여 주었다.

“이 목걸이는 무슨…….”

우뚝.

로리안의 시선이 멈췄다.

녹색의 눈동자가 목걸이를 멍하니 바라봤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그와 동시에 깊은 어둠 속에 잠겨 있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 자신과 어머니에게 손을 흔드는 한 사내의 모습을.

“……어?”

로리안의 손이 덜덜 떨렸다.

처음은 무의식적이었지만 서서히 바뀌었다. 그는 이 목걸이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 어떤 누구보다도.

동요를 감추지 못한 그가 베르덴과 목걸이를 번갈아 봤다.

눈시울이 붉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시작은 단순한 우연이었다.”

베르덴은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통곡의 기사라는 한 언데드가 남긴 사념에 대해.

멍하니 듣고만 있던 로리안이 어릴 적 습관처럼 목걸이를 열었다.

그 안에는 초상화가 있었다.

화목하게 앉아 있는 한 가족이 있었다.

긴 세월을 버티지 못하여 부모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앉아 있는 금색 머리칼과 녹색 눈을 가진 남자아이만은 깨끗했다.

그건 분명 로리안이었다.

혹여 찢어질까, 천천히 그림을 어루만졌다.

익숙하고도 생소한 질감이 느껴진다. 울컥. 애써 잊어 왔던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아버지는 죽었다. 어머니도 죽었다.

벌써 수십 년이 훌쩍 지난 일이었는데…… 가슴속 깊이 묻어 둔 가족의 흔적, 그 유품을 이렇게 접하게 될 줄은 몰랐다.

뭐라고 할 수 없는 표정이 된 로리안이 목걸이를 꽉 쥐었다.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 강하게.

베르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자리를 비켜 주는 게 좋을 테니까. 멀어져 가는 베르덴을 향해 로리안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애셔 님, 제 아버지의 마지막은…… 편안하셨습니까?”

목걸이를 준 통곡의 기사는 가루가 되었다.

완전한 소멸. 그는 직전에 공허한 시선을 지었으나, 증오에서 해방되었으니 더 이상 고통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쯤 안식을 취하고 있겠지.

“그래.”

답을 남긴 베르덴이 방을 나섰다.

홀로 남은 로리안이 손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길가에서 넘어져 어머니와 아버지의 품에 안겨 울었던 것처럼.

로리안이 나지막이 말했다.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허공을 맴돈다.

하나 말하지 않아도 전해졌다.

부모의 유품은 자식에게로.

이로써 베르덴이 할 일 중 하나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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