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64화 (264/366)

264화 귀빈 (2)

대관식 이후, 베르덴은 최고 귀빈으로서 예우를 받으며 왕성에서 지냈다.

큰 부상은 없었지만 한바탕 격전을 치렀으니 얼마간의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정신을 장악당한 왕성의 주축들이 베르덴의 존재에 큰 의문을 가지지 않기도 했고, 에스퍼렌사 후작의 입김도 있었기에 절차상 전혀 문제는 없었다.

‘곧 카란스가 왕성으로 온다고도 하니.’

가디언 엘프, 카란스의 거취는 신경 써야 할 문제다.

레오닐마저 죽은 마당에, 이대로 왕국에서 살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잘못하면 종족 간의 문제로 번질 수도 있고.

어쨌든 카란스와 함께 칼리아와 페르네도 동행할 예정이라고 들었으니, 굳이 왕성이 아닌 다른 곳에서 쉴 필요는 없었다.

베르덴은 호화로운 시설 속에서 대거 소모된 마력을 회복했다.

피부에 난 상처와 약간 손상되어 있던 아인베르는 이미 수복을 마친 상태.

정신계에 있는 왕성 전체를 초토화시킬 정도의, 마법전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몸 상태가 말끔했다.

그렇게 피로를 푼 베르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성에 머무는 동안, 처리할 일이 몇 가지 있었다.

* * *

실리스의 영향력은 특히나 왕성 에스노렌에 깊게 스며들어 있었다.

에스티리아 왕, 1왕자 발르그나, 재상 팔로란드부터 시작해 집사, 시중을 드는 하인들까지. 모든 구성원의 정신을 세밀하게 건드렸다.

정신계에서 죽임을 당한 궁정 마법사단과 근위 기사단.

본래라면 의식이 그대로 붕괴되었어야 했지만, 실리스가 피해를 일부 완화시켜 살려 놓는 대신, 직접 정신을 조작했다.

의식이 깊은 곳을 건드릴수록 저항이 강하긴 하지만, 이미 정신력이 한없이 약해져 있었기에 누구도 대항하지 못했다.

레오닐과 상위 궁정 마법사단은 실체를 가진 상태에서 사망했다.

그래서 정신체처럼 회복시키거나 하는 건 불가능했기에 부재를 피할 수 없었지만, 행동으로 움직일 정도로 의심하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어딘가로 파견되었거나 혹은 단순히 마주치지 않았다고 믿게 하면 될 일이니까.

마녀 실리스에게 그들의 죽음을 숨기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변화된 풍경에 조금의 위화감조차 느끼지 않도록, 거짓된 꿈을 뇌리에 각인시켜 현실과 혼동되게 만든다라.’

그것도 한두 명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을.

아무리 아티팩트의 힘을 빌렸다고는 하지만 광범위하고 위력적인 정신계 마법이다.

세계를 통틀어 봐도 이런 수준의 힘을 가진 자는 극소수일 터.

마녀라.

누가 그렇게 명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럴 만한 이름이었다.

“도착했습니다.”

마차가 멈춰 섰다.

마부가 직접 연 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섰다.

왕국 마법성.

궁정 마법사들이 거주하는 거대한 건물이 눈앞에 드리웠다.

마중을 나온 궁정 마법사 두 명이 굽신거렸다.

“하핫, 왕국 마법성에 어서 오십시오. 말씀은 들었───”

“레오닐의 집무실은 어디에 있지?”

급작스러운 질문.

흠칫 떤 궁정 마법사가 서둘러 답했다.

“아, 그, 레오닐 각하께서는 꼭대기 층 전체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찾기는 쉽지만 내부가 넓고 복잡한 편이고, 일부 공간에는 침입자를 차단하기 위한 마법진이 숨겨져 있기도 합니다. 몹시 위험하니 저희가 직접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다. 혼자 갈 테니 누구도 방해하지 말도록.”

베르덴이 두 사람을 지나쳐 마법성에 입성했다.

거침없는 행동과 위압적인 분위기에 압도당한 궁정 마법사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만 봤다.

“대체 저 사람은 누구지? 최고 귀빈이라고는 듣긴 했지만…… 나이를 보니 타국의 고위 귀족은 아닌 것 같은데.”

“분명 마탑에서 나온 거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마법성에 찾아올 리가 있겠어? 게다가 레오닐 각하를 거림낌 없이 하대하는 걸 보면 어지간한 신분은 아닐 거야. 왕가에서 요구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라고 직접 명령이 떨어지기도 했고.”

“음…… 매직 아이템으로 외모와 나이를 속이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마법진에 대한 경고도 했고, 방해하지 말라니 이 이상 간섭하지 말자고. 괜히 불티 날라.”

두 궁정 마법사는 저 스스로 납득하며 물러났다.

석차에 오르지 못한 그들은 인체 실험과 관련이 없는 마법사이자, 마법성에 종사하며 봉급을 받는 공무원.

위험이 될 수 있는 호기심은 억누를 줄 아는 족속들이었다.

* * *

베르덴이 레오닐의 집무실을 찾은 이유는 하나였다.

인체 실험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 소거하는 것. 이미 에스퍼렌사 후작에게 직접 허가를 받아 일임받은 뒤처리였다.

쩌저적.

감춰져 있던 마법진이 몇 분도 되지 않나 박살 났다.

집무실을 통째로 날려 버릴 만한 고위 마법진이 있긴 했으나 별 방해는 되지 않았다.

그렇게 위협을 가볍게 차단한 베르덴이 마력을 퍼뜨렸다.

마력의 빛이 집무실 전체에 감돈다.

직후 <마력감지>로 파악하고 찾아낸 것들을 <염동력>으로 지체 없이 한곳에 모았다. 간단하고도 어려운 마법적 기술.

머릿속으로 무수한 정보량이 밀려들었지만 역량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러던 중 감춰진 금고를 발견했다.

자물쇠 역할을 하고 있는 마법진을 통째로 파훼해 버리곤 내용물을 끄집어냈다.

약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집무실 내에 있는 모든 서류들을 공간가방에 챙겼다. 주인을 잃어버린 집무실이 텅 비었다.

‘여기는 끝났군.’

볼일을 마친 베르덴이 마법성을 나섰다.

그러고는 사전에 파악한, 레오닐과 관련된 장소를 뒤집어엎어 무수한 자료들을 수집했다. 그렇게 모은 정보들을 왕성 내에 가져와 확인하고 종류에 따라 구분했다.

전부 태워 버리면 간단하긴 하지만 인체 실험과 무관한, 중요한 연구 자료가 있을지도 모르니. 이런 작업은 마탑에서 질리도록 해 왔기에 아주 능숙했다.

베르덴이 자처한 분류 작업.

그것이 거의 끝날 무렵, 손님이 찾아왔다.

“허허허, 현 왕국 최강의 마도사가 서류 작업이라니. 우리가 할 일을 자네가 대신해 준다고는 하지만…… 여러모로 면목이 없구먼그래.”

마주 앉은 에드몬이 볼을 긁적였다.

겉모습은 아주 멀쩡했지만, 그의 옆에는 목발이 세워져 있었다.

레오닐에 의해 정신체를 구성하던 다리가 잘리고 불태워진 탓에, 현실의 다리까지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모양이었다.

정상적으로 회복하려면 약 2~3주간의 재활이 필요할 것 같다고.

‘실제로 피해가 없었는데도 육체는 그렇게 느낀다라.’

환상통의 일종이라 보면 되는 걸까.

애초에 정신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걸 본 건 처음이었기에 여러모로 신기할 따름이었다.

“좀 더 누워 있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다리 하나 잘린 정도로, 삼 일 정도 누워 있었으면 됐네. 멜자르드는 아주 호되게 당해서 아직도 골골대고 있지만. 둘 다 후작 각하에 비해서는 정신력이 부족한 탓이지.”

에드몬이 자신의 허벅지를 주물렀다.

반복적으로 촉각을 자극했더니 감각이 조금씩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린 그가 보기 좋게 정리된 실험 자료들을 바라봤다. 내용을 일부 눈에 담은 에드몬이 미간을 좁혔다.

“……인간의 심장을 통한 위계 증폭이라니. 광기 어린 발상이야.”

레오닐이 비밀리에 진행한 끔찍한 실험.

엘프의 특별한 마력회로를 통한 심장의 가공과 특이 형질 보유자의 마력회로로 그 심장을 자신에게 연결하는 핵심 이론까지 확보했다.

이러한 발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발상 이후에는 수십 명의 엘프와 열 명이 넘는 특이 형질 보유자가 사망했다.

레오닐 본인이 기록한 연구 일지에는 자세한 숫자가 기록되어 있었다.

“저런 것이 수십 년에 걸쳐 외부에 발각되지 않은 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니…… 참담하기 그지없군.”

에드몬이 한탄하며 씁쓸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런 의미에서 애셔, 자네는 참으로 대단해. 못 본 사이에 마도사가 되어 나타나지 않나, 6위계에 올라 있지 않나. 정신계에서 자네를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심장의 소유권을 망설임 없이 포기한 것도 그렇고.”

“에드몬 님이라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만.”

“그렇다 해도 오래 고민했겠지. 5위계 마도사인 내가 6위계 마도사가 되는 거니까. 아무리 윤리와 선을 지키려 해도, 손에 쥘 수 없는 경지를 쉽사리 포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네.”

마법사만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욕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런 욕망을 억누르고 제어하는 건 평생의 숙제였다.

그런 의미에서 베르덴은, 에드몬의 경의를 받아 마땅했다.

“아, 그런데 작업은 얼마나 남았나? 보아하니 거의 끝난 것 같은데.”

베르덴이 손을 튕겼다.

한쪽에 쌓여 있던, 레오닐이 평생을 공들여 만든 역작이 순식간에 불에 타 사라졌다.

“방금 끝났습니다.”

“……자네도 참 거침이 없군. 크흠, 그럼 괜찮다면 내 작은 부탁을 해도 되겠나? 물론 시간이 없다면 거절해도 상관없네. 이건 내 개인적인 바람에 불과하니까.”

개인적인 거라.

“말씀하시죠.”

“자네하고 마법을 논하고 싶네.”

마법사들 간의 지식 교류는 흔한 일이다.

가르침이나 서적과 같은 일방향 교류나 한 마법적 의문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고 토론하는 쌍방향 교류 등.

대중에 널리 퍼진 마법은 그렇게 발전해 왔다.

“보다시피 나는 살아온 세월이 긴 만큼 많은 지식을 섭렵해 왔네. 그리고 자네는 젊지만 감히 타인과 비교를 불허할 천재성을 갖고 있지.”

마법의 초월자에게 닿을 수 있을 만큼.

“우리 둘 사이의 차이점이 명확하네.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지. 그렇기에 서로 간의 지식 교류는 유익한 시간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네. 설령 어느 하나의 일방적인 흐름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애셔,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에드몬의 제안은 예정에 없었다.

하지만 베르덴은 굳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왕성에서 취하는 휴식의 일환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베르덴에게 마법이란 일상 그 자체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대신 하루에 한 시간씩.”

“오, 정말인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네! 그럼───”

에드몬이 활짝 웃으며 당장 고난도의 마법적 이론을 거론했다.

개중에서도 난해하기로 악명이 자자한 다중 연속성 이론. 같은 원소 마법사로서 여러 의견을 나누기에는 안성맞춤인 의제였다.

그러나 에드몬은 알지 못했다.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사내가 다중 연속성 이론의 창시자라는 걸.

“어?”

에드몬이 말 그대로 정면에서 박살 났다.

하루에 한 시간씩. 며칠에 걸쳐 스스로 해석하고 쌓아 온, 다중 연속성 이론에 대한 지식의 탑이 무너져 내렸다.

베르덴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모험가 겔톤보다는 덜하긴 했지만, 정신적 충격은 강력했다. 어쩌면 레오닐에게 당한 것 이상으로.

에드몬은 노년의 나이에 작은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왕성 에스노렌에 칼리아 일행이 찾아왔다.

* * *

“여기가 왕성 에스노렌…….”

태생이 귀족인 칼리아와는 다르게 페르네와 카란스는 왕성에 출입하는 게 처음이었다.

평민 출신이자 정보상인 페르네는 감탄에 찬 눈빛으로 복도를 둘러봤다.

엘프 카란스는 인간의 왕성이 숲에 둘러싸여 있는 것과 넓이에 비해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한적함을 마음에 들어 했다.

도살자 갈리아크는 로아프라에 남았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그는 사건의 직접적인 관계자가 아니었으니까. 빈테르트의 로베르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두 사람과 한 엘프가 왕성에 입성했다.

늦은 식사를 하고 여독을 푼 그들은 최고 귀빈실에서 베르덴과 에드몬을 만났다.

안부 인사를 하던 중 칼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할아범? 안색이 안 좋은 것 같다만…….”

“아, 음, 아무것도 아닙니다, 칼리아 아가씨. 자, 일단 앉으시죠. 중히 할 얘기가 있으니.”

베르덴을 슬쩍 본 에드몬이 손을 휘저었다.

잠시 후 다과를 앞에 둔 채 모두가 자리에 착석했다.

“그래서 그 할 말이라는 게 뭐지?”

“음, 그러니까…….”

에드몬은 조심스레 지난 일들에 대해 나열했다.

이미 후작에게 인가를 받은 사안이었다.

카란스는 당사자고, 페르네는 후작가의 조력자며, 칼리아는 후작가의 독녀였으니까. 결정적으로 베르덴과 친분이 깊었기에 자격은 충분했다.

당연하게도 실리스와 마녀에 대한 이야기까지.

가능한 적게 아는 것이 좋겠지만, 이들이 입을 함부로 놀릴 일은 없을 터였다.

“……그렇게 된 겁니다.”

에드몬의 목소리가 그치자 침묵이 흘렀다.

루비넬리안 공작가, 왕녀, 대규모 인체 실험 등. 너무도 스케일이 큰 사건이기에 머리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어, 어…….”

“구제할 수 없는 쓰레기들……!”

페르네는 어쩔 줄 몰라 했고, 칼리아는 팔짱을 낀 채 왕가에 대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카란스가 기만의 얼굴을 해제했다.

본모습을 드러내자 특유의 수려한 외모가 드러났다.

“형제여…… 그 레오닐이라는 인간은 어떻게 죽었습니까.”

베르덴이 레오닐의 최후를 떠올렸다.

거의 시체가 되어 버린 참혹한 몰골이 떠올랐다.

그걸 요약하자면.

“처참하게.”

움찔거린 카란스가 고개를 들었다.

이내 입가를 비틀며 쾌활하게 웃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형제여!”

짝짝짝짝!

카란스가 박수를 쳤다.

덩달아 정령 블루도 튀어나와 잘됐다며 빛을 깜빡였다.

카란스는 실험 재료로 왕국에 끌려와 오랜 시간 동안 고통받았다.

다행히 베르덴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다른 엘프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공동체 의식을 중시하는 엘프.

동족에 대한 원한은 매우 깊었다. 그 증오심은 블루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 사내의 죽음을 축하하는 엘프와 정령의 반응.

에드몬은 그를 보며 씁쓸함을 느꼈다. 그런 인생을 살아왔던 레오닐이 한심할 뿐이었다.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런 의미에서 카란스,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뭐지, 인간 마법사?”

태도가 싸늘하게 변했다.

이런 반응 정도야 이제는 익숙했다.

“레오닐이 사라진 지금, 자네의 처우를 생각해 봤네. 뭐, 솔직히 말해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지만. 그러니까 우리는, 자네를 대수림으로 보내 줄 생각이네.”

“……! 진심인가?!”

카란스가 눈을 크게 떴다.

에드몬이 물론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왕가에 의해 고통받은 피해자니까. 다만 조금만 기다려 주게. 방법은 현재 모색 중이니. 자네를 데리고 직접적으로 대수림으로 가는 건 위험할뿐더러 너무 먼 여정이기도 하니까. 양해를 부탁하지.”

“흠, 뭐, 좋다.”

카란스가 홱 고개를 돌렸다.

그리운 대수림으로 돌아갈 수 있다니…… 기쁨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때, 베르덴이 말했다.

“그런데 정령은 어떻게 할 거지? 대수림으로 돌아가는 길에 블루도 데려갈 건가?”

블루는 카란스와 계약을 했던 정령이었다.

현재는 연결이 끊기긴 했지만 그래도 동반자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근처라면 모를까, 아예 블루와 떨어지는 건 꺼릴 수밖에 없었다.

“음…….”

카란스가 깊게 고민했다.

페르네가 앞에 떠나니던 블루를 끌어안았다. 정이 들 대로 들었기에 이래도 헤어지는 건 싫었다.

“그건…… 블루와 대화가 필요한 문제 같습니다. 저 페르네라는 인간 여자도.”

카란스와 베르덴.

둘의 시선을 받은 페르네가 흠칫했다. 그러면서도 블루를 잡은 팔에 힘을 풀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하는군. 괜찮겠나?”

“아, 네. 저희끼리 한번…… 대화해 볼게요. 최대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요.”

페르네가 턱을 주억거렸다.

여기에 베르덴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블루의 거취는 저 셋이 알아서 할 문제니까.

이렇게 카란스와 블루에 대한 문제는 반쯤 해결했다.

그 순간, 칼리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애셔, 그럼 너는 언제 떠나는 거지?”

“……!”

모두가 귀를 쫑긋거렸다.

주목을 받은 베르덴이 손가락을 톡톡 두들겼다.

왕국에서의 마지막 목표였던 레오닐마저 처리했으니 당장 떠나도 되긴 하나, 아직 할 일도 남아 있고 깊게 생각할 것도 있었다.

그론드의 금고에 있는 막대한 자금을 어떻게 가져갈지도 문제고.

날짜를 정하기엔 애매하다.

베르덴이 쉽사리 답하지 못하자, 칼리아가 다시금 물었다.

“그럼 떠나기 전에는 말해 줄 수 있나?”

그거라면 얼마든지.

어차피 말없이 홀연히 사라질 생각은 없었다.

“뭐, 그러지.”

베르덴이 긍정했다.

그제서야 칼리아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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