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귀빈 (1)
전격을 두른 암석 파편이 피부와 근육 그리고 뼈를 꿰뚫었다.
통증을 인지하는 건 잠깐에 불과했다. 인간의 의식을 이루고, 유지하는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두뇌 활동이 멈추자, 남은 오른쪽 눈마저 초점을 잃었다.
눈동자 속에 조금이나마 머물고 있던 생명의 빛이 완전히 사그라진다.
직후 멍하니 꿈틀거리던 입술도 정지했다.
마법사의 동력인 심장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체내에 흐르던 마력이 빠르게 허공으로 흩어진다.
그와 동시에 푸른빛을 내뿜고 있던, 오른팔에 부착된 마력회로가 바싹 말라비틀어졌다. 수분을 공급받지 못한 나무뿌리처럼.
“…….”
햇빛을 가린 구름이 드리운다.
차가운 그림자 속에서 완전히 숨이 끊어졌다.
궁정 마법사단장, 레오닐 베르타나스.
에스티리아 왕국의 최강으로 불렸으며, 초월자라는 꿈을 꾸고 또 이루었던 잔혹한 마도사가 이 순간 삶을 마감했다.
마법계의 거인 중 하나가 이렇게 저물었다. 그 죽음을 애도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스르륵.
넝마가 된 육신이 제 역할을 상실한다.
스태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손가락이 천천히 벌어졌고, 곧 주먹을 쥐고 있던 오른손이 맥없이 풀어졌다.
───툭.
작은 소리를 내며 굴러온 금속 막대가 베르덴의 발치에 닿았다.
조용히 왼손을 뻗어 레오닐의 스태프를 집어 들었다.
자연스레 피가 묻어 있지 않는 부분을 잡고는 첨단을 바라봤다. 예의 푸른 수정과 함께, 그를 고정하는 장치가 있었다.
<염동력>
허리춤에 있는 단검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장치 사이에 칼끝을 욱여넣고는 옆으로 강하게 비틀었다.
덜컥, 정상적으로 수정과 스태프가 서로 분리되었다. 이젠 쓸모없어진 막대기를 대충 던지고는 푸른 수정을 자세히 살폈다.
‘이게 마녀의 심장…….’
레오닐이 수십 년에 걸쳐 완성한 결정체.
미약한 푸른빛이 베르덴의 벽안에 반사되었다. 규칙적인 박동 소리가 손끝을 타고 전해진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초월의 경지에 닿게 한 기물이 눈앞에 있었다.
베르덴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걸 사용한다면 나도 다음 경지에 들어설 수 있는 건가.’
자체 위계를 증폭하는 효과라면 분명 그렇겠지.
그리고 그 경지는 레오닐과는 격이 다를 것이다.
베르덴은 준초월자였으며 한계 위계라는 틀을 부순 지 오래였으니까.
한계를 벗어난 육체는 이미 더 높은 경지의 힘을 감당하고도 남을 테고, 가진 역량 또한 초월자의 경지를 소화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레오닐처럼 끝끝내 자멸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초월자라.’
정신적 깨달음은 기약을 알 수 없다.
그를 생략하고 초월을 이룩한다면…… 복수에 몇 발자국 더욱 가까워진 셈이 되겠지.
특히나 7위계 마법과 초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당장 보헤미른 마탑주인 발로크 베시아스와 대등하게 전면전을 치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마녀의 심장을 사용한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저벅, 저벅.
레오닐의 시체를 일별한 베르덴이 걸음을 옮겼다.
왕성 에스노렌의 중앙, 어머니의 복수를 꿈꿔 온 여인에게로.
* * *
바닥에 주저앉은 실리스가 하늘을 바라봤다.
황혼의 빛이 아닌 드넓은 창공이 시야에 펼쳐져 있었다. 익숙하고도 시원한, 왕성과 자연의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다리와 맞닿아 있는 벽돌의 질감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감각의 한편을 차지하던 정신체의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신계는 무너졌다.
그녀가 있는 곳은 현실이었다.
“……하.”
실리스가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떨리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체중에 짓눌린 무릎이 아파 왔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직전의 마법전을 떠올리는 게 전부였다.
압도당하는 레오닐. 거대한 태양과 회색의 별. 어둠과 섬광. 그리고 무너지는 세상.
무엇 하나 손댈 수 없었다.
마녀의 가시왕관의 힘을 빌렸음에도 전혀 미치지 못했다.
어릴 적, 스스로 인형이 되어야만 했던 무력함이 다시금 떠오른다. 오래도록 꿈꿔 왔고 준비했음에도 결국 타인에게 이끌리고야 말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허탈하다.
대체 뭘 위해 참고 견뎌 가며 악착같이 살아왔을까.
“……!”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앞으로 고개를 향하자 잿빛 머리의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여러모로 격전을 치른 모습이었으나, 이렇다 할 부상은 없어 보였다. 그의 손에는 마녀의 심장이 들려 있었다.
광기에 물들어 있던 레오닐은 어디에도 없었다.
‘역시 저 사람이 이긴 건가.’
단신으로 상위 궁정 마법사들을 전멸시키고, 초월의 경지에 닿아 있던 레오닐마저 참패시켰다.
일개 개인이라고 할 수 없는, 너무도 강대한 힘이다. 도대체 정체가 뭐길래 저 나이에 저런 마력을 품고 있는 걸까.
제 손으로 복수는커녕 어머니의 심장도 되찾을 수 없는 실리스로서는,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수준의 강자였다.
어느새 베르덴이 지척에 다가왔다.
그림자가 실리스의 머리 위로 드리웠다.
어떤 이유로 자신을 찾아온 걸까, 아니면 이전에 대답을 듣지 못했던 질문이라도 다시 하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였다.
“살펴보니 달리 손상된 부분은 없더군.”
베르덴이 마녀의 심장을 실리스에게 내밀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실리스가 멀뚱히 눈을 깜빡거렸다.
“이걸 왜 저한테…….”
“결이 다르다고는 해도 일단은 부모의 유품이니까. 그러니 자식한테 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다.
어떨결에 실리스의 손에 가공된 심장이 쥐였다.
잊을 수 없는, 그리운 심장 소리가 약동하고 있다. 미지근했지만 뭐라 말할 수 없는 따스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뚫어져라 푸른빛을 응시하던 실리스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양손으로 심장을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다음 천천히 턱을 들고는 조심스레 입술을 달싹였다.
“……레오닐을 처단한 건 애셔, 당신이에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레오닐에게 빼앗을 수 없었을 테니, 저로서는…… 이 심장의 소유권을 주장할 자격이 없어요.”
실리스가 입술을 짓씹었다.
그러면서도 마녀의 심장은 단단히 쥐고 있었다.
그녀는 모순적인 행동으로 베르덴에게 묻고 있다.
한계를 넘어 위계를 증폭시키는 마녀의 심장.
그 힘이 7위계나 8위계에 다다른 초월자에게도 통용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와 관계없이 마법의 길을 걷는 자라면 누구라도 손에 넣고 싶어 할 것이다.
그리고 베르덴은 초월자가 아니다. 그에 근접한 경지에 이르렀다.
마녀의 심장만 있다면 레오닐처럼 단번에 초월자가 되는 것도 가능할 테지. 실리스도 대충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마녀의 심장을 이렇게나 선뜻 넘기는가.
전혀 아깝지 않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쉽게 소유권을 포기하는가.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실리스의 순수한 의문이었다.
“소유권이라. 그럼 반대로 묻지. 내가 왜 인체 실험의 산물인, 이 심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하, 하지만 위계를 상승시킬 수 있는…….”
“애초에 그 전제가 틀렸다.”
서늘함이 느껴질 정도의 단호한 태도.
말문이 막힌 실리스를 향해, 베르덴이 나지막이 말했다.
“마법사라고 해서 모두가 레오닐 같지는 않다, 실리스 왕녀.”
“……!”
“각자에겐 나름의 선이라는 게 있지.”
베르덴이 과거를 떠올렸다.
비공식 실험체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는 마탑 전체를 증오했었다.
일꾼이든 마법사든 상관없이, 마탑 내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찢어발겨 자신이 겪은 고통을 받게 하고 싶었다.
어쩌면 유일한 친구인 로벨린마저도.
하지만 그건 찰나에 불과했다.
점차 돌아오는 이성이 감정을 재고시켰다.
베르덴의 원한과 관련도 없는 자들에게마저 분풀이를 하는 건 의미가 없을뿐더러 레오닐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리는 셈이니.
그래서 때를 기다렸다.
로벨린이 마탑을 떠난 이후, 비공식 실험과 관련 없는 자들이 마탑을 나서는 마도축제를 역천의 기점으로 잡았다.
복수의 해당자에게는 더한 증오를, 그 외에게는 이성적 판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애꿎은 이가 잔혹한 복수극에 휘말리지 않기를 원했다.
다른 이들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베르덴은 그러했다.
그렇게 베르덴은 자신만의 선을 정했다.
개중에서도 마법을 위한 인체 실험은 용납하지 않는다. 실리스가 없었다면 마녀의 심장은 이미 파괴되어 가루가 됐을 것이다.
“선이라니…….”
실리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니까 그 선 때문에 당장 초월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겠다는 거군요.”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이건 내게 있어 당연한 거니까.”
실리스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말문이 막힌 그녀가 고개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가공될 대로 가공되어, 더 이상 심장이라고 볼 수 없는 수정, 그 빛이 피부를 어루만졌다.
문득 이전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생각했다.
복수에 눈이 먼 판단, 대관식 전날에 든 망설임,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돌이켜 보면 후회가 가득하다.
“애셔, 저는…….”
실리스가 뜸을 들이곤 말을 이었다.
“제 방식은 틀렸을까요.”
“글쎄, 나도 아직 복수를 이루지 못해서 모르겠군.”
베르덴이 왕도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여전히 조용한 기류만이 흐르고 있었다.
“뭐, 본인이 더 잘 알겠지.”
실리스가 힘없이 웃었다.
우문현답이다.
그의 말대로 그녀는 누구보다도 답을 잘 알고 있었다.
백금색 눈동자와 함께 머리 위에 있던 가시왕관이 기울었다. 바닥에 떨어진 마녀의 아티팩트가 구르던 끝에 회전하며 멈춰 섰다.
꿈은 끝났다.
* * *
실리스가 가진 마녀의 힘은 꿈을 조작한다.
개중에는 악몽만이 아니라 선몽도 있으며, 꿈의 상황을 의식에 덮어 거짓된 기억을 심어 두는 것도 가능하다.
가시왕관을 쓴 실리스에게 저항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력이 강인한 사람은 없었다. 레오닐마저 당할 수밖에 없었던 마법이니.
이후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
약간의 소란이 일기는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평생 한번 볼까 말까 한 대관식이 중요했으니까.
가장 먼저 의식을 회복한 에스퍼렌사 후작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1왕자 발르그나의 머리에 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왕관을 얹었다.
“발르그나 전하, 아니 폐하 만세!”
“에스티리아 왕국 만세!”
“왕가여, 영원하라!”
온갖 환호성이 왕도를 뒤덮었다.
발르그나가 기계처럼 손을 흔들자, 더욱 큰 박수 소리와 함성이 거세게 활기를 불태웠다.
그런 상황 속에서 레오닐을 비롯한 몇몇 사람이 모습을 감추었다.
뭔지 모를 정신적 혼란에 쓰러지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관식은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결과, 관계자 이외에는 실리스의 마법에 대해 누구도 인지하지 못했다.
“대관식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2년 정도면 서거할 에스티리아 왕을 대신해 1왕자 발르그나가 왕위에 앉게 되겠지.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왕성 에스노렌의 발코니.
에스퍼렌사 후작이 앞에 마주 앉은 베르덴에게 상황을 요약해 설명했다.
굳이 그가 아니더라도 암상인이나 로리안이 했어도 될 일이지만 후작이 그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고 싶었으니까.
베르덴이 말했다.
“실리스…… 전하는 어떻게 됐습니까.”
“마녀의 가시왕관을 사용한 반동을 견뎌 내고 계신다. 정상적으로 몸을 움직이려면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하시더군.”
……과연 마음도 같이 회복될지는 의문이지만.
작게 숨을 내쉰 후작이 차로 목을 축였다.
그러다 순간 느껴진 통증에 몸을 움찔거렸다. 찻잔 속 내용물이 파도치며 일부가 바깥으로 쏟아졌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확실히 레오닐의 화염이 지독하기는 하군. 왕녀 전하께서 정신체의 피해를 최대한 완화시켜 주셨음에도 충격이 남아 있을 줄이야.”
“그래도 다른 두 사람에 비해선 나은 편이니 다행이군요.”
에스퍼렌사 후작이 피식 웃었다.
멜자르드와 에드몬은 아직까지 침상에 누운 채,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앓고 있다. 확실히 그 둘에 비하면 멀쩡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나저나.”
후작이 이마를 문질렀다.
촉각을 자극하자 겨우 동요가 가라앉았다.
“왕국 최강이 된 소감은 어떤가.”
질문을 받은 베르덴이 고개를 돌렸다.
발코니 아래로 왕도 레티아의 경치가 그를 반겼다.
“풍경은 좋군요.”
그렇게 말하는 베르덴의 팔목에는, 왕가의 상징이 새겨진 미스릴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별다른 마법 효과가 없는 단순한 액세서리지만, 그건 이 왕성에서 하나의 신분을 의미했다.
타국의 공작급이나 받을 수 있는 대우.
베르덴은 에스티리아 왕가의 최고 귀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