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60화 (260/366)
  • 260화 레오닐 (2)

    레오닐의 마도 <급화(急火)>.

    그가 개척한 길에는 세 가지 특성이 존재한다.

    첫째, 심장의 마력을 폭발시키듯 방출하여, 화염계 마법의 즉시 사용이 가능하다.

    그 대가로 급격한 마력 소모와 더불어 육체적인 반동이 뒤따르지만, 마도사로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명확하다.

    그리고 둘째, 화염 폭발에서 발생한 잔불에서 2차 폭발이 일어난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하나의 화염구로도 수십 명을 죽이는 것이 가능한, 화염 마법이 가진 위력의 강화다.

    마지막으로 셋째, 레오닐은 자신의 화염에 완전한 면역을 지니고 있다.

    콰아아앙! 콰아앙!

    에스노렌의 중심이 뒤흔들렸다.

    왕성을 구성하는 여러 구조물이 무너지고, 화마에 휩싸여 잿더미로 변하고 있다. 정돈된 가도는 엉망이 되고 폐허가 되었다.

    그야말로 격전.

    하지만 일방적이기도 했다.

    “하하하하핫! 어딜 그렇게 도망만 다니느냐!”

    레오닐이 무차별적인 파괴를 일삼았다.

    그는 비행조차 사용하지 않은 채, 중심에 자리를 잡아 마력을 휘둘렀다. 모든 마법적 역량을 화염계 마법에 치중한 것이다.

    본래 레오닐은 보다 ‘근접’에 특화된 화염 마도사.

    그러나 초월자의 힘을 손에 넣은 그에게, 더 이상 거리의 유무는 의미가 없었다.

    “방금 전 보인 만용은 어디로 갔느냐, 에스퍼렌사 후작! 좀 더 발버둥 쳐 봐라, 더!”

    레오닐의 이명은 미친 불, 광염(狂炎).

    이름 그대로, 지금 그의 모습은 광기로 가득했다.

    에드몬은 피하기 급급했다.

    연이은 폭발 소리에 의해 고막이 터졌는지 귀에서 피가 흘렀다. 자칫 저 화염에 휩쓸린다면 여지없이 즉사할 터.

    초월자의 마법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뭐라도 해야 한다.’

    콰아아아앙!

    옆에서 열기가 덮친다.

    고통스러웠으나 기어코 참아 낸 에드몬이 마력을 비틀었다.

    “하아아아압!”

    휘몰아치는 폭풍의 기류가 맹렬한 열기를 꺼뜨렸다.

    초월자의 불길을 약화시킬 수 있는 힘은 분명 흔치 않았다.

    그 기회를 포착한 멜자르드와 후작이 서로 반대 방향에서 레오닐에게 달려들었다.

    “그래, 에드몬. 거친 바람은 불꽃마저 죽이지.”

    레오닐이 턱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바람은 오히려 화염을 더 키울 뿐이다.”

    사그라들던 불꽃이 거세게 타올랐다.

    하늘로 솟구친 화염이 분산되며 폭우처럼 내리꽂혔다.

    “이런───”

    붉은 비에 맞닿은 것들이 재가 되었다.

    순식간에 에드몬이 있던 자리는 불지옥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를 걱정할 여유는 없었다.

    후작과 멜자르드가 전력을 다해, 각자의 기운을 검과 신체에 집결시켰다. 기회는 결코 많지 않았기에.

    “에드몬이 타 죽었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줄이야. 참으로 매정하군.”

    레오닐이 이글거리는 불길을 둘렀다.

    <피엔드리아>

    불길이 폭발하며, 수십 개의 자그만 화염구가 허공에 수놓였다.

    마도가 더해진, 수백이 넘는 연쇄 폭발이 주변을 초토화했고, 당연하게도 후작과 멜자르드는 피하지 못했다.

    검은 연기가 자욱하다.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이 정도로 쓰러지지 않았음을 안다.

    마녀의 심장을 이용한 탓인지, 아직 초월자의 격을 정상적으로 다루지 못했지만, 몸에 깃든 초월자의 감각이 알려 주고 있었다.

    ‘그러니 일대를 아예 지워 버린다.’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오른쪽으로 강제로 신경이 쏠렸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레오닐.”

    멜자르드의 기예.

    연기 속에서 들려오는, 진중한 음성에는 거부하기 어려운 힘이 담겨 있다.

    레오닐은 애써 저항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에 마력을 맡겼다.

    쿼드라 캐스팅.

    <크레버>

    수십 개의 불꽃이 연기를 관통했다.

    그를 넘어, 정확히 멜자르드에 착탄하며 생긴 잔불이 일제히 폭발했다.

    충격에 버티지 못한 갑옷이 손쓸 새도 없이 파괴되었고, 멜자르드는 삽시간에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졌다.

    완전한 무력화.

    ‘이제 마지막.’

    레오닐이 고개를 돌렸다.

    직후 에스퍼렌사 후작이 공중에서 날아왔다.

    읽기 쉬운 움직임에 <작염구>를 날려 보냈지만, 갑자기 공간이 비틀리며 마법이 옆으로 비껴 나갔다.

    멀리서 실리스가 가파른 호흡을 내쉬며 손을 뻗고 있다.

    “마녀라고 대우해 줬더니 번번이 방해를 하는군.”

    그사이 지면에 착지한 후작이 검날을 번뜩였다.

    기예의 극치, 절기.

    절백切白.

    스스로 새하얀 흐름이 되었다.

    에스퍼렌사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기예로, 일시적으로 무기에 극도의 예리함을 부여하고 모든 저항력을 강화시킨다.

    그론드와 달리 후작 스스로 이룬 것은 아니었지만 그 또한 절기였다.

    레오닐이 심장의 마력을 촉발시켰다.

    <아르도르의 불길>

    화염, 그 자체가 된 육신.

    사람의 몸과 갑옷쯤은 손쉽게 불태워 버릴 열기가 덮쳐 왔다. 절기라 해도 7위계 마법 앞에서 얼마 버티지 못한다.

    지체하면 정신체는 녹아 버릴 것이다.

    그때, 후작의 눈이 포착했다.

    레오닐이 무의식적으로 스태프를 뒤로 빼는 모습을.

    그 순간 궤적이 비틀린 검격이 마녀의 심장을 노렸다. 불길에 피부가 지글거리고, 억지로 뒤튼 움직임에 근육이 끊어졌지만 견뎠다.

    저것이 레오닐의 약점인 것을 알기에.

    “?!”

    눈을 부릅뜬 레오닐이 스태프를 숨기며 왼손을 뻗었다.

    콰드드드득!

    칼날이 화염과 손바닥을 가르고 손목뼈에 닿았다.

    조금 더 힘을 준다면 팔 하나를 잘라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의 의지는 여전히 견고했지만, 손에 쥔 검은 화염을 견디지 못했다.

    부러진 도신이 녹아내린다. 최상위 금속의 합금으로 만든 검이.

    고통에 일그러진 레오닐의 표정이 보였다.

    “감히.”

    레오닐이 손날을 펴 휘둘렀다.

    화염의 칼날이 후작의 갑옷과 몸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멀리 나가떨어져, 바닥을 구른 후작이 비명을 토했다.

    장기가 크게 손상되었고, 녹아 버린 갑옷이 피부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레오닐이 마무리를 하려 하자, 다시금 공간이 비틀렸다.

    실리스. 정신계를 조작한 그녀의 곁에는 후작과 멜자르드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서서히 정신체가 회복 중이었다.

    “더 이상의 저항은 의미가───”

    갑자기 덮친 바람에 의해 말이 끊겼다.

    기류가 합쳐지며 거대한 폭풍이 된 그것이 레오닐을 가두었다.

    “전하! 어서 두 분을 데리고 도망치십……!”

    콰아아아앙!

    막을 수 없는 힘이 폭풍을 와해시켰다.

    에드몬이 전력을 냈음에도 잠깐의 시간 벌이조차 못 했다.

    어느새 레오닐이 접근해 에드몬의 다리를 태워 버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열감이 신경을 강타했다.

    “끄아아아아아!”

    “왕녀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면 숨어 있기나 할 것이지. 정신체라고 해도 너무 까부는군. 네가 죽어도 마녀가 그 피해를 전부 회복시킬 수 있을 것 같으냐? 내가 하고자 했다면 이미 불쏘시개가 되었을 것들이.”

    콰직.

    레오닐이 에드몬의 머리를 짓밟았다.

    “에드몬, 너도 참으로 한심하구나.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도 이 모양, 이 꼴이라니. 차라리 궁정 마법사단에 들어왔다면 이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하게 살았을 터인데.”

    “허, 내가 인체 실험이나 일삼는 미친 집단에 들어갈 것 같으냐? 꺼져라……! 나는 너희들 같은, 짐승만도 못한 것들과는 다르니까.”

    “그래서 네가 내 발밑에 있는 거다. 내가 한계를 넘어 초월을 이루는 동안, 되지도 않는 윤리와 선 따위를 지키고 앉아 있으니. 너는 마법사가 아니다. 그저 마법을 쓸 줄 아는 머저리일 뿐.”

    에드몬이 쿨럭거리며 입가를 비틀었다.

    “각하의 검에 당한 놈이 초월자? 다크 워튼의 마탑주께서 보시면 아주 기가 차시겠군.”

    레오닐이 이를 드러내며 강하게 발을 비볐다.

    에드몬의 고통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영 성에 차지 않았다.

    왼손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거슬릴 만큼 욱신거렸다.

    ‘에스퍼렌사 후작. 설마 마녀의 심장을 노리는 데 몸을 던질 줄이야.’

    손을 베인 건, 한순간의 방심이었다.

    그래도 레오닐은 초월자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 결국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한 건 자신이었으니까.

    그러던 중, 누군가 접근했다.

    느껴지는 마력으로 보아, 2석차 라첼이었다.

    “쯧, 고작 어린 마법사 하나 처리하는 데 늦었…….”

    “쿨럭, 쿨럭! 쿨럭!”

    바닥에 착지한 라첼이 울컥 피를 토했다.

    죽음이 드리운 얼굴로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각하, 놈은…… 괴물…….”

    털썩.

    라첼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빛이 사라져 가는 눈동자. 뻥 뚫려 있는 가슴에서는 다량의 피가 흘러내렸다.

    그의 몸 아래로 피 웅덩이가 번져 나갔다.

    ‘죽었다고?’

    라첼의 생기가 사라졌다.

    사망. 분명히 실체화를 시켰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미간을 꿈틀거린 레오닐이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잔챙이라고 생각했던 사내가 어느샌가 서 있었다.

    “네가…….”

    레오닐이 말을 멈췄다.

    사내의 뒤로, 상위 궁정 마법사들이 전멸한 광경이 비쳤다.

    * * *

    궁정 마법사는 그저 고위계 마법사로 이루어진 집단이 아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인 그들은, 왕가를 수호하는 만큼 개개인의 전투력은 출중하며, 그와 더해서 집단전에도 능숙하다.

    단순히 위계만 높은, 이론만 뛰어난 마법사들과는 격이 다르다.

    “……어떻게.”

    그렇기에 레오닐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궁정 마법사단에서도 내로라하는, 상위 석차에 있는 자들이 전부 몰살을 당했다니. 그것도 고작 젊은 마법사 하나 따위에게.

    1석차 헤이넬이 없긴 하지만, 그럼에도 믿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애, 애셔? 자네가 여기에 왜 있는 건가?!”

    에드몬의 목소리를 뒤로한 베르덴이 주위를 바라봤다.

    빈사에 이른 후작과 멜자르드, 그 두 사람을 지키고 있는 실리스. 그리고 레오닐에게 짓밟혀 있는 에드몬까지.

    상황을 파악한 그가 실리스에게 고개를 향했다.

    “실리스, 레오닐이 이 정신계를 조작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나?”

    “아…….”

    실리스는 순간 멍해졌다.

    그가 당하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이렇게나 빨리 올 줄은 상상치도 못했다.

    곧 정신을 차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남은 마력을 전부 소모하면, 세계를 고정하는 건 가능해요.”

    “그럼 당장 해라. 놈이 도망가기 전에.”

    “뭐?”

    레오닐이 눈을 끔뻑였다.

    지금 자신이 뭘 들었는지 곱씹었다. 이내 의미를 깨달은 레오닐이 격분하며 악귀처럼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누가 도망간다고?! 이 잔챙이 따위가!”

    “애셔! 당장 물러나게!”

    콰과과과과과광!

    레오닐이 스태프를 휘두르자, 연속적인 폭발이 베르덴을 덮쳤다. 자그마한 퇴로까지 통째로 날려 버렸다.

    저 불바다 속에서 멀쩡할 가능성은 없을 터.

    경고를 했던 에드몬이 탄식하며 입을 벌렸다.

    그때였다.

    붉은 열기 속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어깨를 움찔거린 레오닐이 곧장 화염을 두른 왼손으로 막아 냈다.

    파지지지지직!

    강력한 벼락에 휩쓸린 그가 뒤로 밀려났다.

    별 피해 없이 막아 냈지만 미소를 품고 있던 입가가 단단하게 굳었다.

    손에 남아 있는 거뭇한 자국과 피부를 뚫고 찌릿거리는 감각. 그리고 후작이 새긴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화염 속에서 그림자가 드리웠다.

    베르덴. 그가 상처 하나 없는 모습으로 태연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네가 진정한 초월자라고?”

    베르덴이 제자리에 섰다.

    내면에 잠들어 있는 마력이 술렁였다.

    “웃기는군.”

    명백한 비웃음.

    그걸 본 순간, 레오닐은 머릿속에서 뭔가가 끊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후작의 검에 베이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경지에 이르며 잊어버렸던 감정이 용솟음쳤다.

    그건 모멸감이었다.

    “이…….”

    꽈드드드득.

    살갗이 뒤틀릴 만큼, 스태프를 쥔 레오닐이 격분했다.

    “네놈의 잿더미조차 불살라 주마.”

    베르덴이 대답 대신 마력을 빛냈다.

    더 이상 대화할 가치도, 이유도 없는 상대에게 더 시간을 할애하기 싫었다.

    눈앞의 레오닐을 죽여 왕가의 인체 실험을 뿌리 뽑고, 에스티리아 왕국을 떠날 생각이었기에 더더욱.

    직후 맞부딪친 화염과 벼락.

    그 사이에서 일어난 폭발이 마법전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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