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58화 (258/366)

258화 꿈 (3)

레오닐과 그 측근들을 죽이기 위해 준비한 실리스의 마법, <위괴의 악몽>.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 갇힌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마모되며 끝내는 서로를 배신하게 된다.

왕실 궁정 마법사단 2석차, 라첼.

풍족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그를 낳은 부모 또한 아주 부유하게 잘 살다가 늙어 죽었다.

여신 루아스가 내린 천수를 누리는 건 더없는 호상이다.

루아스교의 주교급 인사에게 기도를 부탁하여, 부모의 호화로운 장례를 치른 라첼은 효자였다.

적어도 그의 가정 내에서는.

라첼은 딱히 부족할 것 없는 삶을 살아왔다.

막대한 재산을 등에 업고,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배움을 수확한 끝에 궁정 마법사단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권력자로 결실을 맺었으니.

덕분에 숱한 마법 연구로 손이 피로 물들었지만 책임을 묻는 이는 없었다. 원한을 갖고 찾아오는 자도 없었다.

라첼은 그런 위치였고, 그런 집단에 몸을 담았다.

‘그랬는데…….’

라첼이 1석차 헤이넬을 멍하니 바라봤다.

상관인 그녀가 마법으로 어머니를 찢어 죽이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 뇌리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지만 잊히기는커녕 더욱 선명해졌다.

‘대, 대체 뭐야, 이 기억은!’

혼란을 겪던 라첼이 뒷걸음질 쳤다.

애써 고개를 돌린 시야에 레오닐이 비쳤다.

왕국 최강이자 라첼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존재.

어쩔 겨를도 없이, 그가 아버지를 산 채로 불태우는 기억이 강제로 떠오른다.

“아……!”

오랜만에 들어 보는 그리운 목소리… 그로 이루어진 절규가 고막을 찔렀다.

갑자기 코앞에서 솟아오른 불길 속에서 끔찍한 비명이 끊임없이 메아리친다.

새빨간 바다를 힘겹게 헤어 나온, 온몸의 피부가 벗겨진 붉은 아버지가 언데드처럼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아들아, 저자에게 복수해 다오

“끄읍…… 끄으읍……!”

라첼이 얼굴을 부여잡았다.

콰드드득. 손톱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뜨거운 핏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어떻게든 기억을, 감정을 부정하려 했으나 주체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목소리가 교차했다.

───죽여, 죽어, 죽여, 죽어, 죽여, 죽어, 죽여, 죽어.

속삭임이 영혼을 울린다.

더 이상은 참기가 어려웠다.

이 복수심을.

“흐아아아아아아아악!”

라첼이 울부짖으며 헤이넬에게 지팡이를 겨냥했다.

마력을 끌어올리며 마법을 연산하고 있자, 옆에서 찬란한 스태프가 날아왔다.

뻐억! 얼굴을 얻어맞은 라첼이 바닥을 굴렀다.

부어오른 볼을 어루만진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성이 돌아온 눈동자에 험악한 인상을 지은 레오닐이 반사되었다.

“실망스럽군, 라첼.”

“아…… 죄, 죄송합니다, 각하!”

“쯧, 쓸모없긴.”

혀를 찬 레오닐이 고개를 돌렸다.

그가 넓게 방출한 마력에 혼란을 겪고 있던 수하들이 정신을 차렸다. 이렇게 충격을 주면 호전되긴 하지만…… 점차 간격이 짧아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죄다 미치광이가 되겠군.’

레오닐이 입술을 짓씹었다.

마녀의 심장을 연구해 왔지만, 이처럼 마녀의 마법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의 화염으로도 손상되지 않는 걸 보아, 이 어두운 공간은 물리적인 피해에 면역을 지닌 것 같았다.

그래도 이 뭔지 모를 마법이 영원히 계속될 리가 없다는 건 자명했다.

이 세상에 무한이라는 단어가 허락된 건, 마탑의 동력원 외에는 없으니.

“윽…….”

레오닐이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 또한 악몽의 침식에서 자유로을 수는 없었다.

경험하지도 않은 기억과 감정이 내면에서 스멀스멀 솟아오른다. 다른 마법사들을 전부 죽이라고 속삭이며.

‘서로 간의 분열을 유도하고 있는 것인가.’

지독한 정신계 마법이다.

설마 6위계 상위의 마도사인 자신마저 위협할 줄이야.

실리스가 마녀의 힘을 이어받은 것도, 이와 같은 마법을 언제부터 준비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죄다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었다.

어쨌든 이대로 당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무력함은 레오닐과 어울리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

‘아니, 있다.’

레오닐이 눈을 빛냈다.

즉시 공간가방에서 마녀의 심장을 꺼냈다.

두근, 두근.

몇 번이나 느껴 온 맥동이 촉각을 타고 전해진다.

여태껏 납치한 엘프들을 희생양 삼아, 아이템의 형태로 가공을 완전히 마치긴 했지만 이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

‘이 심장을 내게 연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특이 형질의 마력회로가 필요하다.

또한 심장을 정상적으로 이식하려면 준비된 수술대와 인력이 필요하나…… 당장은 어찌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니 차선책을 쓰는 수밖에.

그래, 어쩔 수 없다.

“헤이넬.”

“가, 각하?”

레오닐이 헤이넬의 어깨를 잡았다.

따스한 손길에 그녀가 당황한 듯 눈을 깜빡거렸다.

“예전에 네가 궁정 마법사단에 들어오며 그랬었지. 나의 수족이 될 테니, 그에 걸맞은 명예와 권력 그리고 힘을 달라고.”

“네……? 아, 네, 그랬었…… 죠.”

헤이넬은 권력욕이 강했다.

그런 그녀는 레오닐의 곁을 보좌하며, 어지간한 귀족도 감히 누리지 못할 삶을 살아왔다.

무려 궁정 마법사단의 1석차.

레오닐을 포함한 이들 중에서도 2인자였으니까.

헤이넬은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 또한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왕국을 방패 삼아, 죽을 때까지 어떤 제약에도 구애받지 않는 마법 연구를 하며.

그것이 설령 인륜을 저버린 것이라고 해도.

순간 머리털이 삐죽 섰다.

헤이넬이 조심스레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수정이 보였다.

이 심장 소리가 나는 푸른 수정의 정체에 대해선 모르지만, 레오닐이 오랫동안 매달려 왔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헤이넬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당신, 설마……!”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레오닐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음을 돌릴 여지가 없다는 태도. 단박에 손을 쳐 낸 그녀가 마력회로를 활성화하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런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특이 형질 보유자는 워낙 희귀하니까.

그래서 헤이넬은 다른 보유자를 찾는 데 진심을 다했고, 지금까지 몇 명이나 되는 마법사들을 레오닐에게 바쳤다.

‘그런 내가 실험체가 돼서 죽는다고? 웃기지 마……!!’

배신감이고 뭐고.

헤이넬은 살기 위해 거침없이 마법을 연산하며 발버둥 쳤다. 선수를 잡았으니 그 또한 피해가 있었을 터.

5위계 특이 형질 마도사인 그녀는 강했다.

하지만 이변은 없었다.

레오닐의 화염이 날카롭게 쏟아졌다.

5위계와 6위계, 1위계라고 해도 힘의 격차는 압도적이다. 견딜 수 있는 시간은 잠깐에 불과했다.

전신의 피부와 근육이 바싹 타 버린 헤이넬이 꺽꺽대는 숨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네 희생은 기억하마.”

레오닐이 금속 말뚝을 꺼내 헤이넬의 몸에 박았다.

머리, 양팔, 양다리 그리고 심장까지 총 여섯 개. 직접 개량을 거쳐 휴대용으로 만든 특수 아티팩트.

화아아아아아악!

장치를 기동하자 헤이넬의 마력 저항력이 일시적으로 소거되었다.

<염동력>으로 숨어 있는 전신에 퍼져 있는 것들을 붙잡아 끌어 올렸다. 뜯긴 몸 안에서 식물 줄기와 같은 파란색 신경 다발이 나왔다.

특이 형질의 마력회로.

‘부작용은 무시한다.’

레오닐이 스태프와 그를 잡은 오른팔에 마력회로를 둘렀다.

그러곤 왼손으로 마력을 조작해 이식을 감행했다.

마력으로 형성된 열기가 따끔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로가 스태프를 단단히 감쌌고, 오른팔 자체에 부착되며 심장 부근까지 뿌리를 내렸다.

까앙!

스태프의 보석을 제거했다.

아주 값비싼 물건이지만 안중에도 없었다. 그 빈자리에 곧장 마녀의 심장을 박아 넣었다.

마력을 연동시키자 두 개의 심장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두근.

“쿠읍?!”

레오닐이 울컥 피를 토했다.

몸뚱이를 뒤틀며, 몸 전체가 터져 버릴 것 같은 격통을 필사적으로 견뎌 냈다. 핏줄이 터진 두 눈동자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윽고 잠잠해지던 찰나, 레오닐에게서 화염이 치솟았다.

광기 어린 불길이 피부를, 근육을, 뼈를, 영혼을 따스하게, 은은하게 감쌌다.

“아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건 그토록 바라 왔던 ‘각성’ 현상임이 분명했다. 인간을 벗어난 경지에 들어섰음의 증거이자, 그를 축하하는 환영식.

“하, 하, 드디어……! 그래, 드디어!!!”

레오닐이 왼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증폭된 힘, 결코 넘어설 수 없었던 경계에 발을 디디는 이 감각! 오랜 노력과 세월을 바친 실험은 성공으로 끝났다.

마침내 꿈을 이룬 그가 피눈물을 훔쳐 내며 말했다.

“전원, 정신 차려라.”

“헉!”

강대해진 레오닐의 존재감이 공간을 압박했다.

악몽으로 인해 서로를 공격하던 궁정 마법사들이 대번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보았다.

잔인하게 살해당한 헤이넬의 시체와 희열에 찬 레오닐의 모습을.

두려움이 깃든 시선이 모여들었지만 레오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푸른 수정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하, 그래. 이렇게 다루는 거로군.”

레오닐이 스태프를 가볍게 휘둘렀다

마녀의 심장이 발광하며 악몽의 어둠을 밝혔다.

쩌저저적.

그들을 가두고 있던 꿈의 일부가 무너졌다.

“흐음, 마녀가 된 왕녀라.’

레오닐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미소를 지은 그가 거침없이 밖으로 향했다. 이미 헤이넬의 존재는 잊어버렸다.

* * *

<위괴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총 두 가지.

지속 시간이 끝나기까지 기다리거나, 악몽에 빠진 자들 전부가 강인한 정신력으로 악몽 자체를 부수거나.

그중 전자는 아니었다.

마법의 지속 시간이 다하려면 아직 멀었으니.

하지만 후자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

설령 레오닐이 다른 마법사들을 전부 죽였다고 해도, 그의 정신력으로는 악몽을 헤집고 나올 수 없다는 게 실리스의 판단이었으니까.

<위괴의 악몽>은 모든 가능성을 대입한 끝에 결론 내린 최선의 마법이었다.

‘그런데 마법에서 벗어나다니.’

그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부정형의 악몽>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서 실체를 되찾기까지 했다.

잿빛 머리의 마법사의 등장 이상으로, 이와 같은 상황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상정하지 못한 변수였다.

실리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레오닐, 당신이 어떻게……!”

“어떻게라. 단적으로 말하자면 전부 레미엔 덕분이지.”

레오닐이 스태프를 흔들었다.

그의 신체와 연결된, 심장 소리가 들려오는 푸른 보석이 명멸했다.

“설마, 어머니의───”

심장.

눈을 부릅뜬 실리스가 주먹을 강하게 말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자 피가 흘러내렸다. 당장이라도 놈을 죽일 듯이 마력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레오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도 생소했고 또 위협적이었기에.

그를 감지한 건 베르덴도 마찬가지였다.

‘저자가 레오닐인가.’

듣던 것과 달리 외모가 엉망이지만 알 바는 아니다.

실리스가 처리하지 못했다면 예정대로 직접 처리하면 그만이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존재감이 발목을 잡았다.

“음?”

문득 레오닐이 베르덴에게 시선을 돌렸다.

조용히 응시하다 누군지 알겠다는 듯, 가슴 언저리까지 기른 턱수염을 쓸었다.

“아, 네가 그 애셔로군. 그론드가 쥐구멍을 뒤져도 찾을 수가 없다고 불평하더니, 왕녀에게 붙어 있었나?”

답할 생각은 없다.

베르덴은 역으로 질문했다.

“한계 위계가 6위계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 심장으로 초월의 경지에 다다른 건가?”

“초월……?”

실리스의 눈초리에 경악이 서렸다.

경지를 알아준 것이 꽤 반가웠는지, 레오닐은 활짝 웃었다.

“오, 아주 감이 좋군.”

* * *

공화국과의 전쟁 당시, 레오닐은 6위계 하위에 이른 마도사.

지금처럼 단장은 아니었지만 한계 위계가 무려 6위계 상위였기에 그 자리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직 극점에 다다르지 못했기에, 단신으로 전쟁의 판도를 뒤바꿀 수는 없었다. 자신의 한 몸은 챙길 수 있어도.

그러던 중 레오닐은 접하고 말았다.

마력을 증폭시키는 마녀라는 존재에 대해.

수준에 맞지 않는 힘을 가진 마법사들이 전황을 역전시키는 걸 두 눈으로 목격했다.

마법사라면 바라 마지않을 기물.

가능하다면 그 전부를 손에 넣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녀 연구의 총책임자인 신임 재상과 그와 관련된 모든 마법사 및 자료가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으니까.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에스티리아 왕의 명령하에 연구를 이어 나갔지. 하지만 알다시피 성과는 보지 못했다. 왕비를 산산조각 냈음에도, 루비넬리안 공작가를 멸문시켰음에도. 그렇게 실험 폐기라는 단계까지 밟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레오닐은 비밀리에, 마력의 근원인 심장을 빼돌려 연구했다.

시간이 흘러 6위계 중위를 거쳐 상위에 도달한 그는 단장이 되었고, 그 이후로 또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뇌한 끝에 하나의 실마리를 잡게 되었다.

위계는 마력에 기반한 경지.

다시 말해 마력을 증폭시킬 수 있다면 위계마저 강제로 상승시키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가설.

“목적은 마력 증폭이 아니라 ‘위계 증폭’으로.”

마녀의 신체를 이용해 마력 증폭제를 제조하는 것보단 가능성이 있었다.

레오닐이 설계한 가설은, 궁극적으로 마녀의 심장을 마법사의 심장과 연결하는 게 전부였으니.

“하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왕에게 내막을 밝히고 직접 지원을 요청했지. 아, 물론 위계 증폭이 아니라 신임 재상의 연구를 이어 간다고 꾸며서. 그랬더니 무척이나 기뻐하더군. 왕비의 심장을 빼돌렸다는 사실보다, 전쟁 당시에 손에 넣었던 군세를 다시 얻을 수 있다는 것에 환희했지.”

레오닐이 실리스를 보며 조소했다.

“네 아비인 에스티리아 왕은 의심도 없이 잘 속더군. 우둔한 자가 정복왕이라는 허명에 집착하니 무척이나 이용하기 쉬웠어. 어쨌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6위계에서 7위계로 증폭.

현재 레오닐은 7위계 마도사, 즉 초월의 경지에 이르렀다. 적어도 이 스태프를 쥐고 있는 동안은.

“하하핫, 대체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마법사인 애셔, 너라면 잘 알겠지.”

“…….”

“나는 초월자다. 그것도 정해진 한계를 극복하고 넘어선, 진정한 초월자! 더 이상 그 오만한 다크 워튼의 마탑주도, 어떤 초월자도, 세계 그 어느 누구도 나를 아래로 볼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그들처럼 세상에 군림할 것이다.”

레오닐이 말을 이었다.

“불쌍한 왕녀여, 감히 나를 함정에 빠뜨린 건 괘씸하기 그지없지만 용서하겠다. 명분은 이해할 수 있고, 특히나 마녀의 핏줄과 기억을 갖고 있기도 하니.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모르겠지만, 되지도 않는 복수는 포기하고 나와 함께해라. 그렇게만 한다면 진력을 다해 마녀의 혈통을 번영시켜 줄 터이니.”

“그 입 닥쳐!”

실리스가 악에 받친 얼굴로 손을 내뻗었다.

정신을 비틀어 고통을 주려고 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비극적이게도 그녀가 사랑하는 어머니의 심장이 레오닐의 정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흠, 영특하나 아비를 닮아 우둔한 면이 있군. 뭐, 좋다. 이 부분에서는 설득이 필요하겠지. 그리고───”

레오닐의 눈이 베르덴을 직시했다.

“이제 너는 딱히 필요 없지만…… 특이 형질 보유자의 마력회로는 워낙 희귀하니, 훗날을 대비해 챙겨 두는 게 좋겠어.”

“자신감이 과하군.”

베르덴의 벽안에 마력이 일렁였다.

눈을 끔뻑이던 레오닐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폭소했다.

“하하하하핫! 자신감이 과하다니, 누가 할 소리를 하는 건지. 나름 웃긴 만용이었지만, 너와 같은 잔챙이를, 초월자인 내가 상대하는 것은 너무도 부끄러운 일일 터.”

레오닐이 스태프를 휘저었다.

허공이 유리 조각처럼 깨지며, 그 안에서 궁정 마법사들이 나타났다. 레오닐과 같이 악몽에 갇혔던 강자들.

그들은 레오닐 덕분에 악몽의 영향에서 벗어난 데다가, 이 정신계에서 실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깨끗하게 잡아라. 마력회로가 손상되지 않게.”

“예, 각하.”

단호한 명령이 마법사들의 정신에 깊게 박혔다.

직후 레오닐과 실리스가 있던 공간이 나선으로 비틀리더니, 빨려 들어가듯 두 사람이 모습을 감췄다.

아무래도 마녀의 심장으로, 정신계로 구축된 이 세계를 조작한 모양. 베르덴 자신에게 직접 작용한 것이 아니라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놈을 잡을 땐,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는 게 우선이겠군.’

주의점 하나를 머릿속에 새겨 두었다.

레오닐이 초월자가 된 건 놀랍지만 딱 거기까지. 당연하게도 두려움 따위의 감정이 생길 리가 없었다.

‘그나저나 잔챙이라…….’

이제 와서 저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불쾌하기보다는 우스웠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초월자가 되었다고는 해도, 벅차오른 감정에 눈앞이 흐려져 상대의 수준조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게.

생각을 마친 베르덴이 의식을 돌렸다.

질서정연하게 움직인 궁정 마법사들이 주위를 물 샐 틈 없이 포위했다. 각자의 지팡이와 스태프가 단 한 사람을 겨냥했다.

베르덴이 그를 보며 오리엔트를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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