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55화 (255/366)

255화 대관식 (3)

왕성 에스노렌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역대 가장 큰 행사라고 할 수 있는 날이기에 서로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트집 잡히는 것이 두려워, 시도 때도 없이 옷매무새에 신경 썼고 예절 또한 잊지 않았다.

물론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긴장을 풀었다.

“어휴, 하필이면 오늘까지 내가 담당이라니. 대체 무슨 고생이람.”

하녀가 숨을 헐떡였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왕가의 탑.

거리가 꽤 있어, 다급하게 뛰어온 탓에 폐가 욱신거렸다.

이대로 좀만 더 쉬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기다리는 분이 계신다.

말 한마디로 그녀의 목을 잘라 버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무서운 분이.

대충 땀만 닦아 낸 하녀가 철창을 개방하고 문을 열었다.

방에는 1왕녀 실리스가 있었다.

예상대로 어젯밤 대충 침대에 눕혀 놨던 모습 그대로였다.

딱 봐도 불편해 자세이긴 하지만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니 당연히 움직일 리가 없다. 뭐라 불평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세게 자극하면 몸 내부에서 발작이 일어나고, 심하면 심장도 멎는다곤 하지만 이 정도로 반응하는 일은 없다.

“그럼 모실게요.”

대충 실리스를 휠체어에 앉혔다.

드드드드득. 존경 따위는 없이 인적이 드문 복도를 거칠게 가로질렀다. 사람이 보일 때쯤에서야, 신경 써서 그녀의 자세를 고쳐 두었다.

그러곤 왕가의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전문가들이 화려한 옷과 화장으로 실리스를 치장했다. 행사를 위해 최대한 꾸미라는 왕가의 명령이 있었기에.

이후 바깥으로 나가자 왕가의 마차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분부하신 대로 실리스 전하를 모시고 왔습니다.”

“이제부턴 내가 모실 테니 물러가라.”

하녀가 깊숙히 허리를 숙였다.

재상 팔로란드가 휠체어를 끌어 1왕자 앞에 대령했다. 그 또한 대관식 전용 의복을 막 갖춘 상태였다.

발르그나가 턱을 쓸며 실리스를 훑어봤다.

“흠…….”

그건 배다른 동생을 보는 시선이 아니었다.

물건의 가치를 가늠하는 감정사이자 판매자의 눈빛과도 같았다.

“딱히 더 손볼 건 없나. 정신은 비어 있긴 해도 적어도 외관만큼은 왕가의 일원답군. 어서 태우도록 하라.”

“예, 전하.”

실르스가 휠체어째로 후열에 있는 마차에 실렸다.

그를 보던 발르그나도 발걸음을 옮겼다. 왕국의 상징이 새겨진 망토를 자랑스럽게 휘날리며, 가장 호화로운 중앙 마차에 탑승했다.

히히힝───!

근육질의 말이 다리에 힘을 싣는다.

그를 호위하는 왕가의 근위 기사단과 궁정 마법사들. 오늘의 주역들이 왕도 레티아의 광장으로 향했다.

* * *

쇄애애애애액!

무사히 봉인을 뚫고 나온 베르덴이 드높은 하늘 위를 질주했다.

다시금 세 개의 광환을 두른 그의 속도는 이미 극점에 다다른 지 오래였다.

날짜를 세어 보니, 시간에 맞춰 대관식에 도착하는 것이 빠듯했기에, 일절 휴식도 없이 약 이틀간을 비행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다 할 피곤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준초월자가 되며, 신체 자체가 인간의 한계를 넘었기 때문이리라.

뭐,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이 정도의 강행군은 거뜬히 버틸 수 있었다.

마력량이야 차고 넘쳤고, 여태껏 체력 단련을 꾸준히 해 오기도 했으니까. 베르덴은 준비된 마도사였다.

그나저나.

‘왠지 모르게 하늘이 고요하군.’

왕도에 가까워질수록 그렇다.

단순히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왕도에서 큰 사건이 벌어지리라는 건 잘 알기에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베르덴이 사색에 잠겼다.

‘마녀의 마법은 위력과 성능을 예단하기 어렵다.’

로아프라 전체의 봉인.

그리고 암상인 일행의 실체를 이동시킨 것까지.

즉발 형태의 마법이 아니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실리스는 이 모든 걸 계획이라고 말했으니까. 사전에 모종의 준비를 갖췄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딱히 눈여겨볼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베르덴이 알고 있는 위계 마법과는 종류와 성질이 다르다는 것이다.

‘관리자가 그랬었지. 마법적으로 분석했을 때, 특이 형질은 마도의 부분이라고.’

그리고 실리스는 단순한 특이 형질 보유자가 아니다.

마녀라는 혈통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구사할 줄 안다. 다시 말해 실리스는 한 명의 마도사라고 해도 좋을 터였다.

기존의 마도사보다도 더 위험한.

하지만 하나의 의문은 떨칠 수 없었다.

‘과연 실리스가 레오닐을 감당할 수 있는가?’

6위계 화염 마도사, 광염(狂炎) 레오닐.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그의 마법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인지하고 있다.

가디언 엘프인 카란스를 간단히 제압한 데다가, 에스티리아 왕국의 최강이라 일컬어지고 있으니.

베르덴이라 해도 적당히 상대할 경지가 아니다.

게다가 궁정 마법사의 단장인 만큼 온갖 마법 물품을 소지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티팩트를 소유하고 있을지도.

‘관리자와는 다르게.’

아무리 이례적인 특이 형질을 물려받고, 그와 관련된 아티팩트를 사용한다고 한들 레오닐을 쉽사리 배제하는 건 어렵다는 판단이 섰다.

베르덴은 회의적이다.

그리고 문제가 될 만한 점은 하나 더 있었다.

‘레오닐이 가지고 있는 마녀의 심장.’

베르덴이 그론드를 처리했기에, 레오닐은 특이 형질 보유자를 손에 넣지 못했다. 그러니 실험 또한 완성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절대적인 명제는 아니다.

레오닐은 오랜 시간 인체 실험에 손을 대 온, 인간성을 상실한 광기의 마도사. 승기를 잡은 순간 빈틈을 주지 않고 목숨을 끊어야 한다.

궁지에 몰린 놈이 무슨 수를 쓸지 알 수 없었으니까. 어쩌면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도착하면 알게 되겠지.’

베르덴이 비행에 집중했다.

이제 왕도 레티아에 거의 다다랐다.

* * *

대관식의 날이 찾아왔다.

얼마 전까지 언데드 사태와 내전의 여파로 뒤숭숭한 기류가 은연중에 흐르고 있었으나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인파로 북적거리는 왕도의 거리는 생기로 가득했다.

“따끈따끈한 치즈와 훈제 돼지고기를 넣은 샌드위치 팝니다! 음료수까지 더해서, 특별히 오늘은 단돈 660엘크!”

“엄마, 나 저거 먹고 싶어!”

“그래그래. 다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러 가자.”

“와! 아빠, 저기 봐! 저기! 기사님들이야!”

가족들이 거리를 거닐며 활기를 즐기고 있다.

도중 시비가 붙어 소란을 조성하는 사람이 몇몇 보였으나, 경비병이 나서자 입을 다물고는 조용히 사라졌다.

워낙 사람이 많아서 불미스러운 일이 종종 일어나긴 해도, 이전의 흉흉한 분위기보다는 훨씬 나았다.

쿵! 쿵! 쿵!

그때, 왕도의 바닥이 진동했다.

똑같은 갑옷과 검을 든 기사들이 길을 열고 있다. 그들의 묵직한 발소리가 가슴을 울리는 듯했다.

대해가 갈라지는 것처럼, 어느새 거리 한복판이 텅 비었다.

그 위로 왕가의 표식이 새겨진 마차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금빛이 감도는 갑옷을 착용한 왕실 근위 기사단이 곁을 지켰고, 궁정 마법사들은 주변 일대를 감시했으며, 왕가 소속의 비행정 함대는 드높은 상공을 점거했다.

“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감탄을 내비쳤다.

이윽고 마차가 멈춰 섰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도열하는 기사들. 장엄한 공기가 흐르는 광장의 중심에 발르그나가 발을 디뎠다.

착용한 의복이 달라서인가. 아니면 자격을 갖춘 것인가.

이제는 왕자의 티를 벗어나, 제법 왕의 면모를 풍기고 있다.

“역시. 참으로 고귀한 모습이도다.”

“발르그나 전하께서 다스리는 왕국이라니. 앞날이 기대가 되는군.”

“사람을 아끼시는 분이라고 하니, 전보다 더 살기 좋아지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발르그나를 환영했다.

설계자 넬리타로 인해 형성된 여론. 또한 그간 왕국에서 일어난 여러 악재로 인해 불만이 쌓여 가던 중이었다.

이런 시기에 발르그나의 머리에 왕관이 씌워진다는 건, 그 자체로 새로운 기대감이 만들어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광장에 설치된 넓은 단상.

계단을 오른 발르그나가 턱을 치켜올리며 착석했다. 차례로 레오닐, 노스램드 공작, 재상 등 주요 인사들 각자 빈자리를 채웠다.

마지막으로 왕녀 실리스가 얼굴을 보였다.

휠체어를 탄 그녀의 눈은 죽어 있었으나, 그래서인지 햇빛에 반사된 백금의 머리칼이 더 찬란해 보였다.

“저분이, 그, 인형 왕녀……?”

“허…….”

시민들은 그저 입만 달싹였다.

소문으로 듣기만 했지, 이렇게 실물로 마주하는 건 처음이다.

“설마 이렇게나 아름다우실 줄이야.”

“나도 동감이야.”

어째서 인형이라고 불리는 건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아무런 미동조차 없이, 가만히 있는 모습에 더욱 시선이 쏠렸다.

‘흥. 고블린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 좇는군.’

실리스가 주인공이 되어 버린 상황에, 발르그나는 불쾌함을 느꼈다. 그래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순순히 넘어갔다.

이후 왕녀는 정략결혼으로 비싸게 팔릴 몸.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대중의 관심을 받는 건 필요한 수순이었다.

이로써 단상 위의 자리가 전부 채워졌다.

전통대로 대관식의 진행은 재상이 담당한다.

재상 팔로란드가 왕가에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양피지를 펴 보였다.

“지금부터 에스티리아 왕가의 1왕자, 발르그나 베인 디 에스티리아의 대관식을 거행하노라.”

왕실 음악대가 위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무겁고 웅장하며 소름이 끼치는 배경음이 사방에 깔렸다.

다음으로 재상이, 에스티리아 왕가의 수훈을 읊었다.

장장 15분간 낭송이 이어진 끝에 마무리를 지었다. 조용히 양피지를 거둔 재상이 발르그나를 바라봤다.

“발르그나 베인 디 에스티리아는 나와 무릎을 꿇으라.”

왕관을 받기 위해 필요한 절차다.

단상의 중심에 선 발르그나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직후 저 멀리서부터 에스퍼렌사 후작이 혼자 같은 보폭으로 걸어왔다.

저벅, 저벅.

후작의 양손에 보라색 쿠션이 하나 들려 있었고, 왕가에서 직접 제작한 천이 그 위를 덮고 있다. 저 안에는 발르그나를 위한 왕관이 잠들어 있다.

‘하, 드디어.’

발르그나의 몸이 절로 떨렸다.

머리 위에 왕관이 씌워지는 광경을 상상하자 심장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심지어 에스퍼렌사 후작은 중립 귀족의 정점.

다른 누구도 아닌 그에게 왕관을 받으며 왕권을 인정받는 건, 모든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역시 중립 귀족들이란.’

평소에는 귀찮고 거슬리기 짝이 없지만 이럴 땐 아주 써먹기 좋다.

게다가 다른 중립 귀족들은 발르그나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데본 공작가가 사고를 칠 걸 대비해, 알아서 견제까지 해 준다니.

‘왕가가 아니라 왕국에 충성한다고?’

그래,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라.

그 덕분에 큰 이득을 봤으니까. 그리고 이후에도 그럴 것이다.

‘내가 곧 왕국이니.’

중립 귀족들의 멍청한 작태에 그만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자신에게 왕관을 씌워 주는 후작을 비웃는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즐거운 생각을 하며 발르그나는 짧은 기다림을 달랬다.

그 순간.

쿠구구구구구───!

왕도의 외곽 쪽에서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직전처럼 기사들이 발을 구르는가 싶었지만 대관식의 행사와는 무관했다.

발르그나, 재상, 레오닐 등 모두가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이게…… 이게 무슨 일이냐?!”

콰아아아아아!

무지갯빛 광채가 성벽에서 치솟는다.

일정 간격으로, 무려 수십 개에 다다르는 마력의 기둥이 왕도 전역을 감쌌고, 그 끝은 구름 너머를 관통하고 있었다.

“하, 하늘이…….”

하늘이 변하고 있다.

빛과 어둠이 뒤섞인 연보라색 황혼이 왕도 전역을 뒤덮었다. 난데없는 기현상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게 무슨 현상이지?’

레오닐이 안력을 높여 상황을 파악했다.

하나 그의 지식으로는 저 하늘이 무엇인지 미처 간파할 수가 없었다. 마법적인 현상이라는 것 외에는.

“루아스시여, 루아스시여!”

“엄마아아아아!”

“꺄악! 밀지 마세요!”

혼란이 가중되기 시작한다.

병사들이 진정시키려 했지만 사람들이 물결치듯 술렁이는 걸 막기는 어려웠다. 기사들이 나선 뒤에야 겨우 가라앉은 정도.

다만 다시금 소란이 이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발르그나가 입술을 짓씹었다.

‘뭔지는 몰라도 서둘러 대처해야 한다.’

기다리던 대관식이 엉망이 되기 전에.

또한 이건 왕으로서의 능력을 보여 줄 차례이기도 했다. 결심한 1왕자가 명령을 내리려고 하자,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

에스퍼렌사 후작이 옆을 지나쳤다.

연보라색으로 물든 하늘이든, 대관식의 주인공인 발르그나든, 마치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걸음걸이.

당혹에 물든 눈동자가 멍하니 그의 뒤를 좇았다.

왕관의 운반자가 실리스에게 다가섰다.

“후작? 지금 거기서 뭘 하는 거지?”

“…….”

후작은 대답 대신 천을 들췄다.

쿠션 위에는 주문 제작을 한 발르그나의 왕관 따위는 없었다. 그 대신 흉흉한 가시가 기괴하게 뻗어 나온 것이 있을 뿐.

‘가시로 만들어진 왕관이라고……?’

발르그나가 눈을 끔뻑였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머리가 멍했다.

후작이 무정한 표정으로 가시 왕관을 손에 들었다.

그러고는 이지를 상실한 실리스를 향해 양팔을 뻗었다. 누가 제지할 겨를도 없이 가시 왕관이 실리스의 머리 위에 얹혔다.

“전하, 때가 되었습니다.”

때? 때라니, 무슨 때?

의아하던 찰나, 발르그나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수십 년간 인형으로 살아온 실리스.

그녀가 제 스스로 움직이며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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