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53화 (253/366)
  • 253화 대관식 (1)

    칼리아는 내숭을 떨며 사교계에서 웃음을 흘리는 한낱 영애가 아니다.

    자랑스러운 에스퍼렌사 후작가의 독녀이며, 후작가의 백결 기사단을 이끄는 지휘관이자 기사에 가까웠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건 기본.

    평정심을 되찾고 돌파구를 찾는 것이 그녀가 추구하는 사고방식이었다.

    어째서 로아프라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하긴 하다.

    하필이면 그론드가 죽은 이 시점에서.

    하나 그렇다 해도 진위를 알아야겠다며 난리를 피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뭐가 됐든 애셔와 관련된 게 분명해 보이니.’

    그러니 그에게 일임하되, 도움이 필요하다면 조력하면 된다.

    칼리아는 베르덴을 신뢰하고 있었다.

    구태여 이유를 말할 것도 없었다. 그가 걸어온 발자취가 대신 답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공간이 분리된 거라면…… 애셔, 너라고 해도 달리 방도가 없지 않나. 내가 알기로 공간 마법을 쓰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애초에 공간 마법 사용자는 세계를 뒤져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귀하고…… 설마?”

    “아니, 나도 공간 마법에 대해선 모른다.”

    공간과 관련된 마법은 마법 체계 중 최고난도에 속한다.

    공간 속성에 대한 마법적 적성, 공간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 공간 마법을 위계로 구현할 수 있는 마력.

    위 삼박자가 어우러져야 간신히 이룩할 수 있다.

    물론 베르덴은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췄다.

    ‘그런데 정작 공간 마법이 기록된 서적을 접한 적이 없는 게 문제지.’

    워낙 손에 넣기 힘든 물건이고 해석하기가 난해하기에, 보헤미른 마탑주의 개인 서고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마탑에서 생활하던 시절엔 근처조차 다가가지 못했다.

    대신 공간 마법진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위계 마법과 달리 마법진에 대한 지식은 비교적 접하기 쉬웠다.

    그리고 베르덴은 마법진에 대해서, 세계적으로 손꼽힐 거라 자부하는 전문가.

    당연히 공간 이동 마법진 또한 작성할 줄 안다. 실제로 보헤미른 마탑에서 탈출할 때 그 마법진을 사용하기도 했으니까.

    ‘다만 이 또한 당장의 선택지는 될 수 없다.’

    마법진을 파훼하는 건 위계와 무관하나, 마법진을 작성하는 건 위계를 따른다.

    위력과 성능이 높은 마법진일수록 보다 고위계를 요구하는 건 사실.

    공간 이동 마법진을 개인이 작성하려면, 최소 7위계에 도달해야만 가능하다.

    그게 아니라면 특수한 재료들로 마법진을 구성해야 한다.

    보헤미른 마탑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마탑에서도 구하기 힘든 것들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암흑가를 뒤지는 건 시간 낭비에 불과할 터였다.

    다시 말해, 공간 속성 마법과 마법진으로 로아프라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베르덴의 강한 부정.

    칼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그 두 가지 방법이라는 게 뭐지?”

    “하나는 파괴 마법이다. 단순히 공간을 일그러뜨릴 정도의 강한 충격을 가한다면 장막은 무너지겠지.”

    베르덴이 마도로 창조한 것들 중 최강의 위력을 자랑하는 그 마법이라면, 마녀의 봉인을 부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

    “부작용?”

    “자칫하면 로아프라가 날아간다.”

    과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였다.

    직접 사용해 본 적이 없기에 뭐라 안전을 장담할 수가 없다.

    실수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후폭풍에 의해 로아프라의 절반가량이 쑥대밭이 될 수도 있다. 폐쇄성을 띠고 있는 지하 도시이기에.

    당연히 근방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죽겠지.

    심지어 시전자인 베르덴조차 무사할 거라고 확답할 수 없다.

    …….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그야 당연했다.

    이들 중 베르덴의 마법이 가진 위력에 대해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베르덴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야이…… 진짜 그럴 생각은 아니겠지? 응? 하지 마. X발, 생각도 하지 말라고!”

    갈리아크가 식은땀을 흘렸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칼리아가 베르덴의 소매를 잡았다.

    “그건 아닌 것 같다, 애셔.”

    “형제여, 저는 살아서 고향이 보고 싶습니다.”

    “애셔 님, 안 그러실 거죠? 그쵸?”

    “내가 그론드의 금고까지 줬는데……!”

    반짝!

    모두가 필사적으로 만류했다. 심지어 블루까지 튀어나와서.

    어차피 베르덴으로서도 하지 않을 선택이었다.

    기껏 로아프라를 재건했는데 다시 왜 부수려고 하겠나. 그리고 민간인 피해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면, 진즉에 레오닐까지 처리했을 것이다.

    베르덴은 언제나 자신이 정한 선을 지켜 왔다.

    어쨌든.

    “그럼 두 번째 방법으로 가도록 하지.”

    “그건 안전하겠지?”

    “피해는 전혀 없을 거다.”

    안도의 한숨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그를 뒤로한 베르덴이 고개를 돌렸다.

    다만 이 방법은 후폭풍 따위가 없는 대신 준비가 필요하다.

    혼자서도 마련할 수 있기는 하나 그렇게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릴 터. 이를 단축하려면 다른 마법사들의 손을 빌려야 한다.

    “로베르트.”

    “아, 네! 애셔 님.”

    “로아프라에 있는 바람 계열 마법사를 전부 소집해라.”

    죄다 3위계 이상으로.

    * * *

    “각하, 명령하신 대로 중립 귀족들의 시선을 데본 공작가로 돌렸습니다.”

    “……그래.”

    에드몬의 보고에 에스퍼렌사 후작이 고개를 당겼다.

    긴장 어린 숨을 내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걸어가 바깥으로 시선을 향했다. 광활하게 펼쳐진 새파란 하늘이 눈동자에 반사되었다.

    이곳은 후작가 소유의 대규모 비행정, 그 선장실.

    주위에는 중소 규모의 비행정들이 호위를 맡고 있다. 각 부대마다 지휘를 맡은 자들은, 후작가를 오래도록 지켜 온 가문의 가신들.

    1왕녀의 비밀을 알고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엄격하게 훈련된 기사들과 병사들에게는 어떤 명령이든 수행할 수 있는 충성심이 새겨져 있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후작가의 전력.

    이 모든 것은 수십 년의 결실이었다.

    ‘드디어인가. 아니면 벌써인가.’

    팔을 움켜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으나 무척이나 심란했다.

    본래 전면에 나서는 건 몇 년 뒤여야 했다.

    1왕자, 2왕자 그리고 3왕자의 각 세력들을 서로 반목하게 만들어, 왕가 전체의 전력을 차츰 깎아 내렸어야 했다.

    또한 암암리에 정치계를 흙탕물처럼 어지럽히고, 다른 공작가의 약점이 될 여러 부정을 수집하면서 중립 귀족의 세력을 키우는 게 목적이었다.

    에스티리아 왕의 서거 후, 왕국을 다시 재건하기 위해서.

    실리스 왕녀가 가진 마녀의 힘이라면, 안팎으로 왕국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었다. 왕자들 중 누가 왕이 되더라도 마찬가지일 터다.

    세력이 없는 왕은 그저 무력할 뿐이니.

    에스퍼렌사 후작은 왕가가 아닌 왕국에 충성했다.

    ‘실리스 전하께선 이 계획을 좋아하지 않으셨지.’

    그래, 그녀는 보다 확실한 복수를 원했다.

    그러나 후작의 기나긴 설득 끝에 보다 평화적인 방식에 일부 납득하게 되었다.

    실리스 왕녀에겐 에스퍼렌사 후작의 힘이 절실했으며, 후작이 아니라면 복수라는 행위 자체에 차질이 생기게 되어 버릴 테니까.

    왕녀는 힘이 필요했고, 후작은 피를 바라지 않았다.

    서로의 이해관계였고, 둘 간의 거래였다.

    ‘……어쩔 수 없었다.’

    왕국에 불필요한 고통이 더 생기지 않기를 원했으니까. 그것이 평화로운 왕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에스티리아 왕이 과거 못다 한 전쟁을 계속하려 했다면, 그럴 분위기조차 형성되지 않도록 정치적으로 움직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에스티리아 왕은, 레오닐은 선을 넘었다.’

    실리스가 숨겨 왔던 역린을 건드렸다.

    네 번째 왕비, 레미엔을 산 채로 해부한 것도 모자라, 그녀의 심장을 아이템 형태로 사용하기 위해 비밀리에 가공하고 말았다.

    ‘아마 목적은 마녀가 가진 특성 ‘마력 증폭’을 이용하기 위함이겠지.’

    그 힘을 손에 넣으면 위계와 무관하게 마법사가 가진 마력과 마법 자체가 한층 더 강화될 테니까. 심지어 부작용은 약간의 탈력감 외에는 없다.

    윤리와 인간성 따위 저버린 마법사라면 분명 바라는 기물일 것이다. 한계 위계에 다다른 레오닐이라면 더욱.

    그렇게 당초의 계획은 폐기되었다.

    격분한 실리스를 향해 에스퍼렌사 후작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더 설득을 하기에는 너무도 죄스러웠기에.

    왕국이 숨겨 온 어둠을 깨닫지 못한, 그저 정도를 부르짖던 무지한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우드득.

    후작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어째서 왕국은 이렇게 변해 버리고 만 것일까.

    “각하, 괜찮으십니까……?”

    에드몬의 걱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와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줄 순 없었다.

    “그보다 칼리아는 무사하겠지?”

    “백결 기사단만이 아니라 애셔 또한 같이 있으니 문제없을 겁니다. 허허,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건지. 그게 아니면 안 본 사이에 경지를 이룩한 건지. 설마 그 아이가 그론드를 단신으로 처단할 줄은…….”

    어처구니없는 소식이긴 했다.

    하나 사실인 걸 어쩌겠나.

    중요한 건 칼리아는 안전하다는 거고, 로아프라가 봉인되면서 애셔가 개입할 여지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 차라리 잘됐다.’

    2왕자와 2왕비를 절벽으로 몰아 넣어 투신하게 만들고, 데본 공작을 비행정과 함께 폭사시켰으며, 3왕자를 자살하게 만든, 레오닐을 포함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힘.

    실리스 왕녀.

    꿈을 이용해 정신을 일그러뜨리는 마녀가 대관식에서 본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지극히 위험할 테니, 만에 하나의 일을 대비해 로아프라에 얌전히 봉인되어 있는 편이 훨씬 나았다.

    이미 에스퍼렌사 후작가를 지지하는 중립 귀족들은 다른 곳으로 보냈다.

    가주가 사망한 데본 공작가가 대관식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감시하라는 이유로. 그들과는 계획을 공유할 정도로 믿음이 깊지 않았다.

    어차피 계획에 필요한 무력은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이로써 왕도에는, 데본 공작가 외 전하의 복수 대상만이 남았다.’

    에스티리아 왕.

    노스램드 공작가.

    1왕자와 그의 비밀 사교회.

    레오닐을 포함한 궁정 마법사단.

    이들 중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

    상황은 이미 전개되었으니 맡은 의무를 다할 뿐이다.

    부패한 왕국을 척결하고, 피로 물든 평화 속에서 안주해 왔던 무지한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속죄하기 위해서.

    “전 함대, 전진하라.”

    후우우우우웅.

    에스퍼렌사 후작가의 함대가 상공을 가로지른다.

    은폐 마법진을 두르고 전쟁을 준비하듯 완전한 무장을 갖춘 채.

    지금쯤 축제 분위기일 왕도 레티아를 향해서.

    * * *

    로베르트가 마법사들을 정해진 위치에 대기시키는 동안, 베르덴은 왕성 위에 홀로 남아 나름대로의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성 일대를 아우르는 마법진을 작성하던 그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장막으로 흘러나오는 무지갯빛이 은은하게 어둠을 밝힌다.

    “복수라.”

    실리스는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소망했다.

    그녀는 긴 세월을 인고하며 준비를 갖췄고 마침내 때를 맞이했다.

    베르덴은 기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이토록 자신과 비슷한 목적을 가진 사람을 마주한 건 처음이었으니.

    종류가 다르긴 하나 실리스가 가진 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복수를 막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복수는 무의미하다, 어차피 지난 일이다, 그렇게 해 봤자 바뀌는 건 없다…… 라는 말을 하려는 것 또한 당연히 아니다.

    그딴 건 겪어 보지 않은 자들이 부르짖는, 같잖은 훈수에 불과하다.

    만약 그런 말을 앞에서 지껄이는 자가 있었다면, 단언컨대 베르덴이 직접 입을 부쉈을 것이다.

    “…….”

    실리스는 그토록 바라 마지않았던 복수에 가까이 다가섰다. 그에 반해 베르덴은 아직 준비 단계에 불과했다.

    즉, 실리스가 걷는 길은…… 어쩌면 베르덴이 걸어야 할 길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묻고 싶은 게 있다.’

    그래서 봉인을 뚫고 바깥으로 나가려 한다.

    다른 날은 안 된다.

    반드시 복수를 앞둔 지금이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원하는 대답을 솔직하게 들을 수 없을 테니까.

    실리스가 협조를 부탁한다고 했지만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협조를 하겠다고 답한 것도 아닌 데다가, 베르덴은 일방적으로 봉인되어 버린 피해자에 불과했으니까.

    애초에 초면인 상대의 말을 잠자코 들을 성격도 아니었다.

    실리스는 조심스러웠고 또 치밀했지만 딱 하나를 간과했다.

    여태까지 베르덴이 쌓아 온 힘과 지식 그리고 무구는, 그녀가 상정했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는 걸.

    복도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노크 소리가 들려오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로베르트가 나타났다. 한차례 호흡을 고른 그녀가 차분하게 입술을 떼었다.

    “애셔 님, 말씀하신 대로 준비를 마쳤습니다.”

    짧은 기다림은 끝.

    이제 로아프라를 나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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