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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47화 (247/366)

247화 찬탈

오늘날 천재라는 단어는 아주 흔하게 사용된다.

마을에서 가장 똑똑하다거나, 아카데미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거나, 남다른 실력으로 출세를 한다거나 등.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면 주위 사람들이 하늘이 내린 인재라며 찬양하고 또 질시한다.

그 결과 본인은 생각하게 된다.

자신은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선택받은 존재라고.

하지만 진정한 천재는 다르다.

타인을 넘어 세상을 압도하는 재능을 가진 그들은 단신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끼친다.

스스로 군림하는 자.

세간에서는 그런 존재들을 ‘초월자’라고 일컫는다.

그론드는 천재였다.

세상을 지배할 수 없는 흔한 천재였지만, 최소한의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천재이기도 했다.

‘나는 세상에 군림할 수 없다.’

젊었을 적, 용병 생활을 하던 와중에 얻은 깨달음.

그렇게 스스로의 눈높이를 낮췄지만, 그론드는 자신의 재능과 힘이 평균보다 뛰어나다는 건 자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주변인 중에서는.

───그론드, 네가 왜 우리를……!

몸담았던 용병단을 몰살했다. 부유한 의뢰인을 죽여서 재산을 빼앗았다.

그러곤 타국으로 넘어가자 아무도 추적하지 못했다. 칼질 몇 번으로 10년 동안 용병으로 살아야 모을 수 있는 돈을 손에 넣은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진리였다.

법과 도덕보단 원초적인 힘이야말로 가장 상위에 있는 개념이었다.

이후 그론드는 외부의 영향이 없되 풍족한 장소를 찾아 헤맸다.

세상에 군림할 수 없으니 작은 영역의 지배자라도 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찾아낸 것이 바로 로아프라였다.

‘마음에 드는군.’

지하 도시의 왕.

그야말로 이상향이었다.

결심을 한 그론드는 로아프라에서 이름을 떨쳤다.

그러자 관심을 가진 전 로아프라의 지배자가 접근했고, 빈테르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과정은 의도대로 흘러갔다.

그로드는 빈테르트라는 조직과 암흑가의 운영 방식 그리고 인간의 생리를 아주 면밀하게 파악했다.

자신이 지배하기 위해서.

───감히 네놈이 나를 배신해?!

몇 년 후, 그론드는 전 지배자의 목을 베었다.

암흑가의 모두가 알 수 있을 만큼, 보란 듯이 왕좌를 찬탈했다. 그리고 역대 가장 강력한 로아프라의 지배자가 되었다.

무소불위의 권력, 아름다운 여자, 무수한 돈.

경매장을 통해 손에 넣은 아티팩트 등 찬란한 길을 걸었다.

성공적인 삶 속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론드는 꿈을 조금 더 넓히기로 결정했다. 양지로 나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세상은 무리더라도, 부패한 왕국 하나쯤은 감당할 수 있다.’

오랜 노력과 많은 비용.

결국 그론드의 힘을 빌린 1왕자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왕국이 손에 들어온다.

계획은 무척이나 순조로웠다.

한 마도사를 표적으로 삼기 전까지는.

* * *

───!

그론드의 의식이 부상했다.

신음하며 상체를 일으키자 자연스레 머리가 아래로 향했다.

뚝…… 뚝…….

새빨간 액체가 방울져 흘러내린다. 피였다.

투구 너머로 인서드의 전신 갑주가 크게 손상되어 있는 게 보였다. 일그러진 금속 중 일부가 근육을 뚫고 장기 곳곳을 찔렀다.

직접 상처 부위를 눈으로 확인하자, 과거에 잊어버린 격통이 신경을 잡아 비틀었다.

“끄으으윽……!”

그론드가 휘청거리며 천천히 일어섰다.

주변을 둘러보니 거대한 크레이터가 시야에 비쳤다. 안력을 높이니 공기 중에 얼음 결정이 반짝이며 떠다니고 있다.

고통 탓인지 뭔지 머리가 멍했다.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지 기억이 흐릿했다.

투둑. 투두둑.

그론드가 이를 악다물고 위로 향했다.

손을 짚으며 등반하자 작은 돌조각들이 굴러떨어졌다. 그렇게 크레이터를 벗어난 순간,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섬뜩한 존재감에 고개를 들었다.

잿빛 머리와 투명한 벽안. 잠시 잊어버렸던 기억이 뇌리를 강타했다.

자신의 영역을 무참하게 짓밟은 장본인.

“애, 셔……!”

분노 그리고 공포.

이에 그론드가 격노하며 팔을 휘둘렀다. 솟아오른 두려움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본능적인 발버둥.

사력을 다한 주먹이 베르덴의 가슴을 강타했다.

처음으로 공격이 닿았다.

그런데 어떠한 비명도 들려오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기조차 제대로 실리지 않은 주먹질 따위로 아인베르의 물리 저항력을 관통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굳이 피할 필요조차 없었다.

<빙뢰의 선격>

전격이 담긴 얼음의 발톱이 그론드의 머리를 향했다.

본래라면 통하지 않을 마법이었으나, 이미 <글레시어스>로 인해 아티팩트의 기능은 대부분 상실한 상태.

쩌어어억!

“끄윽, 끄아아아아악!”

투구가 산산조각 났다.

혹한의 벼락이 한쪽 눈을 앗아 갔다.

비명을 지르는 그론드를 향해 베르덴이 왼손이 뻗었다.

<아케인: 임팩트>

콰아아앙!

마력의 충격파에 그론드가 바닥을 굴렀다.

끈질기고 강인한 육체 탓에 즉사는 면했지만 치명상은 피할 수 없었다.

근육이 파괴되고 신경이 뒤틀렸다.

끊어질 듯한 신음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베르덴이 그론드의 등을 짓밟았다.

무거워지는 중력이 전신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그론드가 친위대원 메라든을 밟아 죽인 것과 비슷했다.

베르덴에게 있어, 그론드는 약자였다.

“사, 살려 다오……!”

자존심을 버리고 목숨을 구걸했다.

암흑가의 왕치고는 추레한 모습이었으나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생명이 본능적으로 가장 중요시하는 건 다름 아닌 자신의 생명이니까.

“…….”

서늘한 침묵이 감돈다.

그론드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네,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이냐. 돈? 권력? 여자? 바란다면 전부 주겠다. 아니, 너에게 빈테르트를, 이 로아프라의 왕좌를 넘겨주마!”

“관심 없다.”

“로아프라만이 아니다! 네가 권좌를 손에 넣고, 내가 그 곁을 보좌한다면 에스티리아 왕국까지 손에 들어온단 말이다! 그리고 하고자 한다면 다른 나라들까지 집어삼킬 수 있을───”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

죽음이 시시각각 선명해지고 있다.

재빨리 머리를 굴린 그론드가 다시금 소리쳤다.

“그, 그렇다면 레오닐은! 레오닐은 특이 형질인 너를 노리고 있다……! 내가, 내가 도와준다면 보다 쉽게 죽일 수 있을 터!”

그론드가 스스로에게 가치를 부여했다.

자신을 죽이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에 대해 설파했다. 어떻게든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다만 그뿐이었다.

벽안에 마력이 넘실거린다.

염동력. 근처에 떨어져 있던 그론드의 마검이 베르덴의 손에 들어왔다. 보이는 것과 다른 가벼운 무게감.

그론드의 입이 벌어졌다.

“애셔어어어!”

베르덴이 주저 없이 팔을 휘둘렀다.

촤아아악!

칼날이 목을 베어 갈랐다.

전문적인 검사에 비하면 부족한 검격이었으나 무력화된 그론드에게는 충분한 예리함이었다.

검의 궤적을 따라 선혈이 튀었다.

툭.

손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그럴듯한 유언은 없었다. 고통의 감각과 의식은 저항할 새도 없이 단번에 날아갔다.

바닥에 고이기 시작한 피 웅덩이에 얼굴이 반사됐다.

그론드는 여전히 눈을 뜨고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거부하기라도 하듯.

그론드 베일 디 발리다스.

암흑가의 왕이 맞이한 최후는 그가 죽여 왔던 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후우.”

베르덴이 숨을 내쉬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실망스러운 상대이긴 했지만 유익한 경험이었다. 아티팩트 소유자와 전투를 벌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으니까.

로아프라에 온 이후, 상당한 마력을 소모했다.

특히나 정면으로 아티팩트를 부수는 건 꽤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몸과 마력회로에 피로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베르덴이 마검 케덴스를 바라봤다.

크레이터 옆에는 바닥에 널브러진 플로티드가 있었다.

인서드의 전신 갑옷은 망가지긴 했지만 무려 아티팩트 두 개가 넝쿨째 들어온 셈. 부수입이라고 하기에는 가치가 너무 높았다.

‘쓰임새는 떠오르지 않지만.’

뭐, 딱히 상관은 없다.

베르덴은 결과에 대해 내심 흡족해했다.

그때,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베르덴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너진 성벽 너머로 네 사람이 보였다.

피투성이인 갈리아크는 베르덴을 보며 힘없이 낄낄거렸고, 빈테르트에 속한 세 사람은 경악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아는 얼굴이군.’

로베르트와 눈을 마주쳤다.

“……!”

스산함이 깃든 시선에 로베르트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녀가 알고 있던 애셔라는 마법사와는 현격하게 다른 존재감이 엄습했다.

꿀꺽.

로베르트가 침을 삼켰다.

우연히 그론드의 죽음을 목격했기 때문일까, 순간 보이지 않는 칼날이 목전까지 다가온 듯했다.

목덜미가 차갑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자신도 모르게 손끝이 덜덜 떨렸다.

‘아니, 정신 차려야 돼.’

최대한 이성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당황만 할 게 아니라 이럴 때일수록 반드시.

어떻게 여기서 도망칠 수 있지?

어떻게 대처해야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거지?

살 수 있는 방도를 찾으려 애쓰던 와중에, 문득 레니덴의 말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직감 또한 속삭였다.

곧 판단이 섰다.

로베르트가 결연한 표정으로 베르덴에게 다가갔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정적 속을 맴돈다.

빈테르트의 수장 중에서도 가장 약한 무력을 가진 로베르트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에서 태연히 움직일 수 있는 담력에, 가일과 드레이큰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존경심마저 일었다.

“…….”

이윽고 그녀가 멈춰 섰다.

베르덴과 고작 서른 발자국조차 안 되는 거리.

침묵 끝에 마침내 로베르트가 움직였다.

털썩.

“암흑가의 새로운 왕을 뵙습니다.”

이성에 기반한 합리적인 선택.

죽기 싫은 로베르트가 새로운 지배자를 환영했다.

* * *

에스티리아 왕성, 에스노렌은 고요했다.

내전이 진행되고 있을 당시, 그 싸늘한 분위기와는 종류가 다른 적막이었다. 모두가 새로운 왕의 시대를 대비하고 있었다.

차기 왕위는 1왕자 발르그나의 것으로 결정이 났다.

경쟁을 벌일 만한 후보자들이 전부 죽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현 에스티라아 왕이 직접 인정한 왕위 계승권.

2왕비가 죽었음에도 그는 어떠한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되든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후 발르그나는 이미지 관리에 나섰다.

가장 먼저, 자살로 종결된 2왕자 로트닐과 3왕자 에버스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직접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 주었다.

“발르그나 전하, 만세!”

“이토록 자상하신 왕자 전하께서 왕위에 오르신다니. 에스티리아 왕국에 큰 축북이로다!”

많은 시민이 발르그나를 찬양했다.

이유야 간단했다. 내전의 원인은 전적으로 2왕자의 책임이라고 익히 알려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자살의 원인은 내전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걸 거부했기 때문이라고도.

1왕자의 비밀 사교회.

조작된 여론은 대중의 시야를 좁혔다.

조금이라도 발르그나의 성격을 아는 자라면, 에스티리아 왕가를 접한 자라면, 세간의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을 리가 없었겠지만.

대중들은 드러난 부분만을 보며 열광하기 바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에스노렌 변두리에 있는 탑.

감옥과 같은 방 안에서, 1왕녀 실리스가 왕도를 내려다보며 냉소했다. 백금의 눈동자에 경멸과 혐오가 서렸다.

그러나 곧 가라앉았다.

상황은 아주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계획대로 1왕자가 승리했고 내전의 과정에서 데본 공작이 죽기도 했다.

가능하면 직접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그의 죽음에 간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만족해야겠지.

‘곧 대관식이 시작된다.’

고대하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에스티리아 왕가, 귀족, 시민.

‘어머니의 죽음’에 관여했었고, 그 죽음을 양분 삼아 평화와 행복의 나날을 누렸던 무지한 자들이 모이는 바로 그날.

인형으로 살며, 수십 년간 가슴속에 묻어 둬야만 했던 감정을 여지없이 드러낼 것이다.

“후우…….”

그때까지 참아야 한다.

무대의 완성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

그때, 실리스의 정신에 누군가 간섭했다.

이것이 가능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조용히 눈을 감고는 내면에 집중했다.

정신을 느슨하게 풀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리스 전하.

───말하세요, 로리안.

최측근, 로리안.

정신 감응이란 특이 형질을 가진 마법사이자, 실리스와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복수자들 중 하나였다.

───그게…… 로아프라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로아프라?

실리스가 미간을 좁혔다.

암흑가에서 문제라니…… 설마 그론드가 바깥으로 나서기라도 했단 말인가? 예측되는 변수는 그것밖에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실리스가 물었다.

───도대체 어떤 문제죠?

───암흑가의 왕이 죽었습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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