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암흑가의 왕 (2)
그론드의 내면에서 차가운 분노가 들끓는다.
신체에서 보랏빛이 감도는 기운이 솟아오르자 감각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상대해 왔던 빈테르트의 일원과는 격이 다른 힘이 느껴졌다.
대도시보다 넓은 로아프라를 지배하는 만큼, 동대륙 최대 암흑가의 주인인 만큼, 스스로를 왕으로 여길 만큼의 존재감.
당연하게도 초월자는 아니나 예사롭지 않은 경지였다.
‘도발이 제대로 먹혔군.’
베르덴은 그론드를 단순히 배제하기만 할 생각은 아니었다.
준초월자로서의 힘을 시험하기에 좋은 상대인 데다가, 이제껏 접해 본 적 없는 종류의 강함을 경험할 기회였으니까.
다시 말해 한층 더 세상을 넓게 보기 위한 발판이었다.
그론드가 왕좌에서 일어섰다.
앞으로 걸어 나온 그가, 고통에 겨워하는 친위대원 메라든의 머리 위에 발을 올렸다.
“누가 더 위인 줄 알려 준다라.”
“폐, 폐하……?”
콰지직!
두개골이 두부처럼 으깨졌다.
열렬히 충성을 바치던 신하를 죽였음에도, 그론드는 어떠한 감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가치 없는 약자의 목숨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암흑가의 왕이 베르덴을 내려다봤다.
살기로 이루어진 압박감.
그론드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작게 웃었다.
“고작 쓰레기들 상대한 것 가지고 기고만장하구나.”
그론드가 거추장스러운 망토를 벗어 던졌다.
직후 갑옷, 각반, 건틀릿 등 그론드를 감싸고 있던 방어구가 퍼즐 조각처럼 나뉘었다가 다시금 조합되는 변화가 일었다.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전신 갑주.
가슴 정중앙에는 이유 모를 작은 틈새가 나 있었고, 목덜미에서 형성된 금속이 그론드의 머리를 감싸며 투구가 되었다.
어느 모로 보나 보통의 마법 물품이 아니었다.
베르덴이 흥미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 갑옷, 아티팩트인가.”
“눈썰미는 좋군. ‘인서드의 전신 갑주’. 기에 반응하여, 마법 저항력을 극대화하며 충격을 감소시키는 아티팩트다. 이걸 손에 넣은 뒤로 내 몸에 상처 하나 난 적이 없었지.”
이게 끝이 아니다.
스르릉.
그론드가 허리춤에 찬 무기를 뽑아 들었다.
대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짙은 남색을 띠고 있는 검이 세상에 드러났다. 일직선으로 된 칼날의 중심에는 푹 파인 부분, 4개의 혈조가 존재했다.
다음으로 왕좌의 장식이 분리되었다.
삼각 형태를 가진 금속 조각이 회전하며 허공 위를 맴돌았다.
“같은 아티팩트인 ‘마검 케덴스’와 방패 ‘플로티드’까지. 애셔, 네놈이 가지고 있는 무구 또한 보통을 벗어난 모양이나, 암흑가에 오랜 시간 군림해 왔던 나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아티팩트의 숫자는 극소수.
그런 물건을 무려 세 개나 가지고 있다니. 왕이라 자칭할 정도로 부유하고 사치스러운 장비들이었다.
‘뭐,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삼원색의 중심과 아인베르.
두 개의 아티팩트가 가진 무게가 새삼 의식되었다.
“그래서. 준비할 시간을 더 줘야 하나?”
“애써 태연한 척하는 건가. 과연 죽기 직전에도 그런 여유를 가장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군.”
그론드가 기를 활성화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기운이 알현실 전체에 아른거렸다. 투구의 틈새로 보이는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지금부터 네놈의 교만을 지르밟아 주마.”
제영制領.
공기 중의 흐름이 일그러지다 되돌아왔다.
불쾌한 감각에 베르덴이 손을 쥐었다 폈다.
신체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마력의 흐름 자체에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졌다.
“기예인가?”
“내 영역에 닿은 존재의 힘을 흐트러뜨리는 힘이다. 기를 다루는 자는 기의 운용을 저해하고, 신성력을 다루는 자는 기적의 효과를 감소시키지. 그리고 마법사는 마법의 연산을 방해하는 데다가───”
그론드가 입가를 비틀었다.
“비행을 저해한다.”
쿠웅!
알현실이 크게 울리며, 그론드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졌다. 정직하나 일개 마법사의 동체 시력으로는 반응할 수 없는 속도.
베르덴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기의 억압을 강제로 무시하면서 오리엔트를 겨냥했다.
트리플 캐스팅.
<플레어>
세 개의 화염 광선이 뻗어 나간다.
마법이 코앞까지 육박했음에도 그론드는 피하려 하지 않았다. 상단에서 하단으로, 속도를 지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보랏빛 검기에 마법이 쪼개졌다.
절반으로 나뉜 <플레어>가 마력으로 화하며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마법 파훼?’
힘에 의해 마법이 박살 난 게 아니다.
마법을 형성하고 있는 마력의 배열 자체가 끊어졌다. 정황상 마검이라 불린 아티팩트의 성능임이 분명했다.
‘마법을 베는 검이라.’
생각해 보니 아티팩트 소유자와 맞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색다른 양상의 전투였다.
베르덴의 몸에 마력의 빛이 일었다.
찰나의 순간에 부여 마법을 펼쳐 신체 능력을 강화, 오리엔트에 마력을 융합시키고는 지척에 다가온 그론드를 향해 강하게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중력을 덧씌운 룬의 충격파와 검기가 충돌했다.
* * *
로베르트와 가일이 아우로플에 돌아왔다.
배후에서 내전을 지휘하고 감시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한가로이 휴식을 취할 여유는 없었다.
‘어서 폐하께 보고해, 슬레이를 도울 인력을 충원해야 해.’
딱히 깊은 충성심이라든가, 조직에 대한 소속감이라든가 동료애가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이유는 하나, 빈테르트의 수장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바깥과 달리 능력만 있으면 권력과 돈을 거머쥘 수 있는 뒷세계.
계산과 예측이 빠르고 정확한, 타고난 통찰력. 감성을 배제하고, 언제나 이성적인 판단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은 로아프라의 삶에 적합했다.
근본도 없는 밑바닥 출신에, 나이가 서른도 채 되지 않은 로베르트가 출세할 수 있는 유일한 길.
그녀는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다할 뿐이었다.
“……?”
지하도를 향하던 로베르트가 주변을 살폈다.
언제나와 같은 평소의 거리이긴 하다만…… 뭔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몇몇 상인이 가판대에서 쏟아진 식품과 물건을 허겁지겁 집어 들었고, 가만히 선 시민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닥을 툭툭 밟고 있다.
사소하지만 왠지 모르게 눈에 거슬렸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뇨, 신경 쓰지 마세요.”
가일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곧 지하도에 도착한 두 사람이 계단을 내려갔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복도를 살피자 로아프라를 오가는 행렬이 아예 없었다. 심지어 아우로플의 경비병 또한 자취를 감췄다.
넓은 지하도는 텅 비어 있었다.
“아무래도 기분 탓이 아닌 모양이네요.”
가일이 말없이, 날이 휘어진 단검을 빼 들었다.
그는 그론드의 비서이자, 빈테르트의 중요 인물을 지키는 경호원이기도 했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VIP 전용 마력 승강기에 올라타 곧장 암흑가로 직행했다.
그리고 유리 너머로 로아프라가 보였다.
“어……?”
로베르트가 당혹감을 내비쳤다.
곁에 있던 가일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초점을 암흑가의 거리에 고정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해가 따라가지 않는다.
그 정도로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광경이었다.
뒤틀린 지축에 의해 지반 곳곳이 붕괴되었다.
쩍쩍 갈라져, 불규칙적으로 솟아오르고 가라앉은 거리는 흉흉했다. 폭삭 주저앉은 건물은 잔해가 되어 침묵했다.
광장 부근에 세워진 시계탑은 머리만이 남아 있었다.
완전히 동작을 멈춘 시계 초침이, 언제 이 상황이 발생했는지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현재 로아프라의 3분의 1이 궤멸된 상황.
파괴의 흔적은 광장부터 잿빛 왕성까지 이어져 있다. 그를 확인하고 나서야 로베르트는 확신했다.
이건 자연적인 지진 같은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힘에 의해 만들어진 풍경이라고.
‘설마…… 레오닐이?’
그것밖에 없다.
이러한 광범위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건, 현재 이 왕국에서 6위계 마도사인 레오닐밖에 없었다.
쿠웅.
승강기가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움직였다.
아무리 레오닐이 기다림에 지쳤다고 하지만, 로아프라를 이렇게까지 공격했다는 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빈테르트와 마찰이 있었다는 게 분명해.’
말인즉슨 암흑가의 왕과 레오닐이 모종의 이유로 적대 관계에 놓였다는 것.
대체 원인이 무엇일까.
사상 초유의 사태에 로베르트의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던 중, 잔해 사이에 몸을 숨긴 채 무릎 꿇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몰골이 몹시 엉망이었지만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레니덴?”
도박사 레니덴.
로아프라 남쪽의 권력자 중 하나인 그가 깍지를 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불러 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가일이 어깨를 흔들고 나서야 반응을 보였다.
레니덴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마와 턱에 난 찰과상에서 흐른 피가 굳어 있다. 넋이 나간 눈동자가 서서히 빛을 되찾았다.
“아…… 로베르트……?”
“이제야 정신을 차렸나 보네요. 먼저 물을게요. 레니덴,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무슨 일이 있었나고?”
레니덴이 어깨를 들썩였다.
허망한 웃음 속에는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전부 죽었소.”
“네?”
“감히 대적하려 했던 자는 전부 사라졌단 말이오. 살아 있는 지형이 저 틈새로 집어삼키고, 꿰뚫고, 흔적도 없이 날려 버렸지. 그자가 용서한 건, 나와 같이 무릎 꿇은 사람들뿐이오. 저기 있는 마르코 덕분에 살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었지, 하핫.”
횡설수설하는 말투에 로베르트가 미간을 좁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니덴이 말을 이었다.
“로베르트, 죽고 싶지 않다면 어서 무릎을 꿇으시오. 단신으로 도시를 멸하는 괴물 앞에, 그것이 유일한 살길이니까.”
레니덴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기분에 따라 도박으로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놀던 악랄한 모습은, 더 이상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이 도박사를 이렇게 겁에 질리게 했을까.
어쩌면…… 범인이 레오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화염 계열을 다루는 마도사가 벌인 일이라고 하기에는, 이 주변에 화재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로베르트가 고개를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레니덴처럼 무릎 꿇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난생처음 보는 비상식적인 광경에 소름이 끼쳤다.
그때, 멀리서 굉음이 들려왔다.
잿빛 왕성에서 퍼져 나온 진동이 멀리 있는 이곳까지 미친 것이다. 그 소리에 모두가 기겁하며 머리를 감쌌다.
저 왕성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
“……폐하를 뵈러 가죠.”
입술을 짓씹으며 망설이던 로베르트가 가일을 앞세우고 진원지로 향했다. 지금으로서는 그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 * *
슈화아아아악!
베르덴이 바닥에 발끝이 닿을 듯 말 듯, 저공으로 비행하며 기민하게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그를 앞지른 그론드가 마검을 휘둘렀다.
“하압!”
검기의 밀도가 줄어들며 범위가 넓어졌다.
그에 휩쓸린 베르덴이 알현실에 부딪혔다. 벽에 금이 갈 정도의 충격이었으나, 아인베르를 두른 그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론드가 날아와 팔을 내뻗었다.
오리엔트에 궤도가 틀어진 마검이 벽에 박혔다.
그에 그치지 않고 그론드가 벽면을 박차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카가가가각!
알현실에 깊게 새겨지는 검의 상흔.
힘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은 베르덴이 쭉 밀려나다, 압축된 공기를 폭발시키며 순간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염폭뢰>
직선의 궤적을 그리는 붉은 벼락.
그론드가 플로티드를 조작했다.
세 개의 금속 조각이 삼각 대열을 형성하자, 그 사이에 반투명한 막이 나타나 마법을 고스란히 막아 냈다.
5위계 합성 마법을 여파 없이 흡수하는 방어막.
‘아티팩트다운 성능이군.’
다시금 플로티드가 나뉘어 베르덴에게 쇄도했다.
방패지만 공격용으로도 사용 가능한, 공방 일체의 아티팩트. 위력적이지 않지만 신경을 분산시키기에는 유용했다.
<데몰리션>
중력의 구체로 플로티드를 튕겨 냈고, 검기를 쏘아 보내는 그론드에게는 <팔차의 뇌전>으로 대응했다.
“쿼드라 캐스팅. 역시 6위계의 마도사였나. 하나 레오닐과 동급의 경지라고 해도 변하는 건 하나도 없다.”
파지지지직!
여덟 개의 번개가 적중했다.
전류가 날뛰고 있음에도 그론드는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인서드의 전신 갑주가 가진 마법 저항력은 막강했다.
마검 케덴스에 남색의 기가 아른거린다.
절파折破. 지근거리에서의 기예가 베르덴의 보호막과 충돌했다.
<아케인>으로 형성한 것임에도, 마검의 특성 탓에 온전히 막아 내는 것은 무리였다.
찢겨 나가는 마력.
쩌어엉! 오리엔트로 막아 낸 베르덴이 옆으로 주욱 밀려났다. 일순간 전신이 저릿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그론드가 감탄을 내비쳤다.
“호, 설마 그걸 막아 낼 줄이야. 상당한 내구성을 가진 스태프로군. 그리고 내 기예 속에서도 그토록 빠른 마법 연산과 정밀한 비행을 유지하다니. 혹시 서쪽 제국의 워 메이지 출신인가?”
“…….”
“그래, 말하지 마라. 어차피 곧 있으면 싫다고 해도 줄줄이 말하게 될 터이니.”
그론드가 검날을 세웠다.
콰아앙! 콰앙!
격전에 이은 접전에, 넓은 알현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고를 가속시키던 베르덴이 마안을 번뜩였다.
<혼명>
“……?!”
혼돈의 파동이 확산한다.
갑작스러워 플로티드로는 막을 수 없다. 그론드가 반사적으로 베려고 했으나 마법의 범위 자체를 완전히 무로 만들 수는 없다.
콱! 마검을 알현실에 박아 넣었다.
마법이 전신을 휘감으며 강력한 열과 물리력이 뒤따랐지만 아티팩트의 저항력을 뚫을 수 없었다.
바닥에 거친 흉터를 남긴 그론드가 뻐근해진 근육을 한차례 풀었다.
“처음 보는 속성과 마법진이 떠오른 눈동자. 마도와 특이 형질인가? 숨겨 둔 수였던 모양인데, 제법 강력한 위력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내게 닿지는 않았군.”
마검의 끝으로 베르덴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제 슬슬 네놈의 마력도 바닥이 날 터. 로아프라를 엉망으로 만들면서, 쓸데없이 마력을 낭비하지 않았더라면 더 분투할 수 있었겠지만 어쩔 수 없겠지. 로아프라에 온 것도, 내게 대적한 것도 네놈이 선택한 결과이니.”
그론드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강자로서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
베르덴이 그론드의 전체적인 수준을 가늠했다.
아티팩트를 두른 놈의 속도는 방주의 후보인 핏빛검 레이라 이상이며, 전사로서의 힘은 글러트니의 이빨이었던 루펠을 넘어섰다.
그와 더해서 그론드의 기예과 아티팩트는 마법사와 완전한 상극을 이룬다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기에.
“실망이군.”
“……뭐?”
벽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론드는 그 시선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시금 반문했지만 베르덴은 대답하는 대신 마력회로를 전력으로 활성화했다.
<아케인>으로 마력 방출을 억제하지 않은 힘이 드러났다.
쿠구구구구구……!
마력의 폭풍이 거칠게 휘몰아친다.
그 물리력에 알현실 전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힘을 직접 목도한 그론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냐, 이 마력량은.’
방금 전과 비교도 되지 않는 마력이 감돌고 있다.
설마 지금까지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감히 자신을 상대로?
분노와 당황이 뒤섞인 감정에 그론드가 마검을 움켜잡았다.
후욱.
베르덴은 오리엔트를 들었다.
마안에 비친 허공에 홍염의 바다가 나타나 물결쳤다. 무한의 마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 조합된 불꽃이 수십 개의 화염창을 형성했다.
암흑가의 왕은 아티팩트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강점은 때론 크나큰 약점으로 변질되기도 하는 법이다.
‘그론드는 자각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이제 알고 싶지 않아도 깨닫게 될 것이다.
첫 번째.
폭격이 떨어진다.
콰과과과광!
연쇄적인 폭발이 그론드를 삽시간에 에워쌌다.
마검으로 벨 숫자가 아니다.
충격을 견뎌 내며 플로티드로 보호막을 만들었다.
마법이 그치자, 발을 굴려 화염을 걷어 낸 그론드가 반격에 나서려고 했다.
그러나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새 하늘에 떠오른 수십 개의 얼음창이 그를 겨냥하고 있었으니까.
두 번째.
“이런…….”
얼음의 비가 쏟아진다.
한기가 폭발하며 공기를 얼렸다. 연이은 마법 폭격에 버티지 못한 플로티드가 튕겨져 나갔다.
한계에 다다른 아티팩트를 재사용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크으윽……!”
연거푸 검기를 형성에 마법을 격추했다.
미처 막지 못한 얼음창은 전신 갑주에게 맡겼다.
그러나 원소의 효과에 저항할 수 있다고 해도, 모든 충격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조금씩 밀려난 그론드의 균형이 깨져 버렸다.
직후 낙법을 취해 추하게 널브러지는 건 피해 내고는, 발끝에 체중을 가득 실었다.
‘이만한 마법을 두 번이나 행했으니 빈틈을 보일 터.’
그게 상식이었다.
그론드가 날카롭게 눈을 뜨며 고개를 들었다.
하나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예상은 빗나갔다. 허공을 가득 메운, 수십 개의 번개의 창이 그론드를 향해 번쩍였다.
베르덴은 태연히 서있었다.
지금까지 마력을 많이 소모한 건 부정할 수 없으나 여력은 충분하다.
그론드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불완전하다고 해도 초월의 경지는 격하의 존재가 가진 상식과 시각으로 감히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세 번째.
그론드가 움찔거렸다.
투구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