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44화 (244/366)
  • 244화 암흑가의 왕 (1)

    <지형조작>은 정해진 한계가 없는 특별한 3위계 마법. 이름 그대로 대지로 인식된 지형을 시전자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로움을 지니고 있다.

    일부 무너진 지반을 다지거나 갱도의 천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기둥을 세우는 등 실제로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다만 <지형조작>을 주력으로 삼거나 전투에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마법사는 거의 없다.

    마력이 스며들지 않으면 지형을 움직일 수 없는 제한성. 규모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마력이 소모되는 극한의 비효율성.

    위 두 가지 치명적인 요소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베르덴은 그러한 단점들을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

    초월자에 필적하는 마력량 앞에 효율은 무의미하다.

    그와 더해서 마도왕의 마력 운용법, <아케인> 덕분에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마력을 확산시키는 게 가능해졌다.

    그나마 발목을 잡고 있던 제한성마저 사라지게 된 것이다.

    반파된 로아프라.

    이것이 그 결과였다.

    베르덴이 마력에 집중해 주변을 감지했다.

    더 이상 살기를 가진 자는 없다.

    아까처럼 저항하려고 노력하는 자 또한 없었다. 완전히 의지를 상실한 암흑가의 구성원들은 무릎을 꿇은 채 생존을 갈구하고 있었다.

    자신의 팔을 끌어안은 채 몸을 덜덜 떠는 인간들이 부지기수였다.

    ‘얼추 정리는 됐군.’

    몇몇은 도중에 기절했는지 지면에 쓰러지긴 했지만…… 딱히 방해는 안 되니 굳이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

    허공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쿠웅! 근처에 착지한 갈리아크가 가볍게 숨을 털었다. 몇 명을 베었는지 모를 만큼 전신이 피투성이였다.

    그간 추적당하면서 당해 온 수모를 일부나마 되갚은 모양인지 개운한 얼굴.

    갈리아크가 주변을 둘러보며 훼월을 어깨에 메었다. 굳지 않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이야, 아주 초토화를 시켜 놨구만. 내가 마법 쪽은 잘 모르기는 한데, 아무리 마도를 개척했다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니지 않냐? 도대체 뭘 어떻게 처먹고 다닌 거야? 응?”

    “글쎄.”

    “새끼, 또 대충 둘러대는 것 봐라. 그래, 싫으면 말하지 마라. 어차피 내가 알아 봤자 써먹지도 못할 테니까.”

    갈리아크는 궁금하지 않다며 이마를 긁적였다.

    그 대신 즐겁다는 듯 베르덴을 연신 흘겨보며 혼자 실실거렸다. 그다지 좋게 느껴지는 눈빛은 아니었다.

    이윽고 빈테르트의 성 앞에 도착했다.

    절벽 아래에 있는 지하 호수로 둘러싸여 있는 성채. 먼 과거 잿빛 왕성을 축성하다 죽은 유골이 호수 바닥에 잠겨 있었다.

    고개를 앞으로 향했다.

    성문으로 향하는 다리 위에 수십 명의 인파가 몰려 있었다. 무기를 쥔 그들이 베르덴과 갈리아크를 보더니 어깨를 움찔거렸다.

    ‘빈테르테의 조직원인가.’

    별 관심은 없다.

    이미 로아프라에서 힘의 격차를 보여 줬으니 애써 놈들까지 하나하나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베르덴이 오리엔트를 들었다.

    일순 퍼져 나간 마력의 기파에 대기가 진동했고, 힘에 이끌린 작은 돌조각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리모스>

    대지의 첨단이 성문에 쇄도한다.

    마법의 궤적에 있던 조직원들이 혼비백산하며 다리 위에서 뛰어내렸다. 격한 물소리가 저 아래에서 들려왔다.

    그 직후.

    콰드득───콰아아아앙!

    여지없이 관통당한 성문과 성벽.

    이어진 폭발에 균형이 깨져 버린 성문 전체가 시끄럽게 내려앉았다. 침입자에 대한 대비도 안 한 것인지, 어떠한 보호 마법진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있어 봤자 약간의 시간을 버는 정도에 그쳤겠지만.

    “크하하하! 공성 마법 아니랄까 봐 시원하네! 야, 저 새끼들 물에 젖은 채로 도망치는 것 좀 봐라. 아주 볼만한데 그래?”

    풍경을 구경하며 다리를 건넜다.

    그렇게 무너진 성문을 넘어 왕성의 외곽에 발을 디뎠다.

    * * *

    빈테르트의 경비 계열 수장, 드레이큰.

    그는 최근까지 왕자들 간의 내전에 합류해 활약을 펼치다 얼마 전에 복귀했다. 언제나처럼 약을 탄 술을 마시며 하루를 낭비하는 삶을 보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지진 한번 일어난 적 없었던 로아프라에 몇 번이나 굉음이 들려왔다. 그와 함께 발생한 진동은 드레이큰에게도 분명히 전해졌다.

    외곽과 내곽을 가르는 통로에 선 드레이큰이 침묵을 고수했다. 곧이어 들려오는 두 사람의 발소리가 정적을 부쉈다.

    “…….”

    드레이큰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광장부터 왕성까지 이어지는 길 전체가 폐허가 되어 있다. 로아프라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흙먼지와 잔해 속에서 무릎 꿇고 비는 사람들.

    본 적 없는 참상이었다.

    다음으로 초점을 가까이 두었다.

    자연히 미증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베르덴을 직시했다.

    드레이큰은 어릴 때부터 감이 좋다.

    그가 타고난 재능은 상대의 수준을 가늠하는 데 있어 더없이 유용했다. 식은땀이 흘러 턱 끝에 맺혔다.

    ‘……괴물이군.’

    이전에 뤼잉 코스타 건으로 봤을 때와는 차원이, 격이 다르다.

    설마 그사이에 저만한 성장을 이룩했다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그 당시엔 힘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겠지.

    그때 노예 남매에 대한 건으로 빈테르트와 적대하려고 했었으니까. 만용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납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납득해야만 했다.

    ‘젠장.’

    과거의 악몽이 떠오른다.

    드레이큰이 들고 있던 술병을 단번에 들이켰다.

    신체 능력을 강화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마약이 체내에 깊게 스며든다. 이만한 양은 중독성이 강하고 후유증이 심하지만 나중 문제였다.

    점차 심신이 안정된다.

    술기운에 휘둘릴 몸이 아니었지만, 지독한 술의 향취 덕분에 상념이 조금이나마 잊혔다. 드레이큰이 검을 들었다.

    칼날에 막강한 기운이 맺혔다.

    ‘슬레이란 놈보다는 낫군.’

    베르덴이 처리하려고 하자, 갈리아크가 앞으로 나섰다.

    “저 자식은 내가 상대하지. 안 그래도 네 그 미친 마법 때문에 제대로 뭘 하지도 못했거든. 그리고───”

    “그럼 먼저 가지.”

    “어? 야! X발, 어르신 말하는데 말을 끊어? 에라이, 싸가지 없는 새끼.”

    무시하고 베르덴이 허공에 떠올랐다.

    대놓고 내곽을 넘어 왕성으로 향하려 하고 있음에도 드레이큰은 제지하지 않았다. 아예 그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베르덴이 모습을 감췄다.

    갈리아크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쯧쯧, 겁먹은 거 봐라. 집 지키는 X새끼면 막아야 되는 거 아니냐?”

    “……네가 나였다면 그랬겠나?”

    “몰라, 내 알 바야? 저 새끼는 지금 내 편인데. 그보다 꼬리 내리는 건 그렇다 쳐도 네가 모시는 왕 죽이러 가는데 그걸 그냥 내버려 두냐? 포기라도 한 거야?”

    “흥, 네놈은 폐하를 모르는군.”

    드레이큰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가끔씩 세상에는 범인이 감히 대적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나타난다. 저 애셔란 괴물도 그런 존재 중 하나겠지. 하나 폐하 또한 범인의 기준을 벗어난 존재다.”

    그리고.

    “초월자가 아닌 이상, 그 어떤 ‘마법사’도 폐하를 상대로 이길 수는 없다. 로아프라를 지옥으로 만든 괴물이라고 해도 말이지.”

    “크하하하하! 자신하기는. 야, 괜히 예측하는 건 삼가는 건 좋을걸? 저 애셔란 녀석은 X나 비정상적인 놈이니까. 뭐, 사족은 여기까지만 하고.”

    갈리아크가 훼월을 휘둘렀다.

    궤적을 따라 흐르는 바람이 드레이큰의 피부를 스쳤다.

    “내가 사실 나름 전도유망한 모험가거든? 지금은 잠시 모험가직을 박탈당하긴 했지만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네놈에게 용건이 있다.”

    “용건?”

    “내가 전에 미스릴 승급 예정자하고 붙었다가 거하게 털렸거든. 끝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손도 못 대고 한 방 먹었지.”

    갈리아크가 목을 쓸었다.

    굴곡이 져 있는 흉터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궁금해지더라고. 미스릴 등급이 죄다 그렇게 강한 건지, 아니면 그년만 특별했던 건지 말이야. 그래서 이참에 확인해 보려고. 전직 미스릴 등급인 너하고 백금 등급 모험가인 나. 둘 중 누가 더 강한지.”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건가?”

    “그럼 X발, 뭐 가만히 앉아서 구경이나 하고 있을까? 애셔한테 죄다 쓸려 나가기 전에, 비중도 채울 겸 얻어 가는 것도 있어야지?”

    도살자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같잖은 도발에 드레이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타락한 모험가가 검날을 세웠다.

    서늘한 눈빛이 후배 모험가를 응시했다.

    “너는 세상의 기준으로 범인에 불과하다. 나 또한 범인에 속하지만, 결국 너는 내 상대가 될 수 없었다.”

    “X 까시고. 서로 할 말 다 했으면 무게 그만 잡고 덤비기나 해, 이 플레이트 무단 소지범 새끼야.”

    갈리아크가 몸을 낮췄다.

    발끝에 체중을 싣고, 기를 최대한 끌어모아 돌진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드레이큰 또한 술병을 던지며 상대에게 육박했다.

    카아아앙!

    훼월과 검이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 * *

    베르덴은 곧장 왕성의 꼭대기로 향했다.

    로아프라를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본래의 목적도 달성했으니, 느긋하게 성을 탐색할 생각은 없었다.

    그건 암흑가의 왕을 처리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았다.

    유리가 없는 창에 들어서자 회색 융단이 깔린 통로가 나타났다.

    복도 끝에 자리를 잡고 있는, 짐승 그림이 새겨진 금속 문. 당장 그곳으로 향하며 염동력으로 문을 개방했다.

    세 명이 베르덴을 맞이했다.

    왕좌에 앉은, 회색 왕관을 쓴 사내.

    어두운 금발과 탁색의 금안 그리고 특이한 갑옷까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외견이었다.

    그 앞에는 철저한 무장을 갖춘 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무슨 친위대라도 되는 건가. 전신을 완전히 가린 터라 시각으로는 성별조차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태연히 알현실로 들어서는 베르덴.

    거만하게 앉아 있는 로아프라의 지배자가 턱을 쳐들었다.

    “보고받은 것보다 외모가 뛰어나군. 평민은 아닐 테고, 귀족 아니면 왕족 출신인가?”

    “네가 암흑가의 왕인가?”

    “질문에 질문으로 답한다라. 뭐, 좋겠지.”

    사내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었다.

    기괴한 문양이 새겨진 건틀릿이 마찰음을 내었다.

    “내 이름은 그론드 베일 디 발라디스. 빈테르트의 정점이자 로아프라의 지배자인 암흑가의 왕이다. 내 성에 온 걸 환영하지, 애셔.”

    그론드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알현실의 창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이전의 모습을 찾기 어려운, 로아프라라는 이름의 폐허가 있었다.

    “그나저나 소문과는 다른 실력을 갖고 있더군. 이런 식으로 내 로아프라를 뒤집어엎을 줄이야. 설마 저만한 힘을 숨기고 있을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어.”

    그론드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한데 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같은 공포에 기반한 감정이 전혀 없었다. 베르덴이 구현한 참상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그래서 직접 여기까지 온 이유는 무엇이냐. 단순히 나에 대한 보복인가? 그게 아니면 빈테르트에서 너를 노린 이유라도 알고 싶은 건가?”

    “레오닐과의 거래를 말하는 건가?”

    “……!”

    그론드가 처음으로 동요를 드러냈다.

    설마 내막에 대한 것을 베르덴이 알고 있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호오, 아주 흥미롭군. 꽤 아는 게 많은 것 같아.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곧 죽을 사람한테 말할 필요가 있나?”

    “뭐? 하하하! 이거…… 아주 시건방지기 짝이 없군.”

    그론드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네놈이 여타 마법사와 비교를 불허할 만큼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위에는 위가 있는 법. 아무리 네가 대단하다고 한들, 힘껏 발버둥을 친다고 한들 나를 이길 수는 없다. 왜냐, 그게 당연하니까.”

    그론드의 눈빛은 강철과도 같았다.

    오로지 승리만을 생각하고 있는, 오만하고도 절대적인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한낱 허세 따위가 아닌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왕국의 그림자를 지배하는 또 하나의 왕이다. 에스티리아의 최강이라는 그 레오닐조차 함부로 나를 건들 수 없지. 네 앞에 있는 자는 바로 그런 존재다. 그런데 네가 감히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론드가 조소했다.

    로아프라의 거주민들에게는 지배자로서 위엄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나 베르덴에게는 아니었다.

    뭐랄까.

    저건 마치.

    “동굴 속 고블린 같군.”

    널리 알려진 속담이다.

    동굴이란 좁은 세상에 살아가는 고블린은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최강인 줄 안다. 바깥세상이 어떤지 모르고, 바깥에 어떤 존재가 살아가는지 모르기에.

    훗날 동굴을 나선 고블린은 동굴에 있을 때와 같이 행동한다.

    뭐가 뭔지 모르고 제멋대로 알량한 힘을 휘두르고 다니다가 죽임을 당하는 것이, 동화 속 결말이었다.

    그론드와 비교하면 어떨까.

    그는 로아프라라는 동굴에서 살아가며 본인을 왕으로 칭하고 있다. 암흑가가 국가도 아니고, 하다못해 왕가의 사생아도 아닌 자가 말이다.

    그런 그론드의 결말이 어떨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베르덴의 눈에는 선했다.

    “말버릇이 심하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우드득.

    그론드가 어금니를 깨물며 노기를 드러냈다.

    “누가 저 입 좀 다물게 하라.”

    반응은 순식간이었다.

    무기를 빼어 든 친위대원이 베르덴에게 달려들었다.

    둘은 슬레이나 드레이큰에 비해 부족하기는 해도 명백한 강자였다. 그론드의 곁을 지킬 수 있을 만큼.

    ‘물론 애셔를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놈이 어떤 마법을 다루는지 정확히 알 수는 있을 터. 그론드 나름의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

    하지만 예상이 빗나갔다.

    오직 마력과 스태프만으로 대처한 베르덴. 총 다섯 차례에 이어진 공방 끝에 결판이 났다.

    한 명은 정통으로 머리를 맞고 즉사했다.

    그리고 친위대원 메라든은 복부를 가격당해 나가떨어졌다.

    “끄으윽……!”

    그론드의 발치까지 나가떨어진 그가 피를 토하며 신음했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우그러진 갑옷 너머, 내부에 있는 장기에 대한 충격이 극심했다. 기절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그론드가 표정을 찡그렸다.

    여전히 왕좌에 앉아 있는 채로.

    그 모습을 베르덴이 차갑게 응시했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군.”

    “네놈…….”

    “왕좌에 앉아 있으니 진짜 지배자라도 된 것 같나?”

    쿠웅.

    베르덴의 스태프가 바닥을 두드렸다.

    한차례 울려 퍼진 파동이 알현실 전체에 퍼져 나갔다.

    “내려와라. 누가 더 위인지 알려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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