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43화 (243/366)

243화 악몽 (4)

베르덴이 직접 로아프라에 찾아온 건, 비단 자신을 표적으로 삼은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만이 이유가 아니었다.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는 빈테르트의 지배자라면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고 있을 터. 새롭게 도달한 준초월자의 경지를 시험하기에는 적합하다는 판단도 있었다.

물론 본래의 목적은 잊지 않았다.

빈테르트를 처단해 귀찮은 일이 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하지만 당연하게도 암흑가의 왕만 처리한다고 한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소란이 완전히 가라앉을 리가 없었다.

두 눈으로 베르덴의 실력을 보지 못한 자들.

그리고 현실을 믿지 않는 남은 빈테르트의 잔당들이 계속해서 귀찮게 굴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이 로아프라를 무대로 한 전면전을 선택했다.

압도적인 힘의 격차를 보임으로써, 빈테르트만이 아니라 그 하부 범죄 세력들까지 한 번에 입을 닥치게 하기 위해서.

그 과정에서 살 기회를 베푸는 건 나름의 자비였다.

그러나 순수한 의도가 타인에게 고스란히 전해지지 않는 건 흔한 일이다. 반드시 직접 경험해 봐야만 깨닫는 것들이 있다.

세상이란 게 본래 그렇다.

“미친, 내 귀가 이상한 건가? 뭐? 뭘 꿇으라고? 무릎? 전에 뤼잉 코스타, 그 변태 새끼 하나 잡은 걸로 저러는 거야, 지금?”

“꺄하하하하하! 로아프라에 꼴랑 두 명만 찾아온 것부터가 이상했는데. 역시 머리에서 나사가 뭉텅이로 빠진 놈이었잖아? 여기 모인 게 몇 명인데.”

“애초부터 빈테르트의 표적이 된 것부터가 병신 아니냐? 살고 싶으면 대가리 처박고 빌기나 할 것이지. 저 얼굴이라면 노예로 비싸게 팔릴 텐데. 아, 그래서 생포하시라고 한 건가?”

“킥킥, 그럴지도. 근데 저 스태프하고 로브 엄청 비싸 보인다. 폐하께서 저 값도 쳐주시려나?”

“근데 저 마력, 뭔가 이상한데…….”

주위에서 터진 비웃음 소리가 허공을 맴돌았다.

뭔지 모를 전율을 느낀 사람도 있었지만 곧 기분을 떨쳐 내었다.

상대는 고작 둘이고, 그를 노리고 있는 자는 수백을 넘어 천 명이 넘어간다. 그것도 뒷골목에서 코 묻은 돈이나 빼앗는 떨거지 수준이 아니었다.

암흑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권력자들이 끌어모은 세력들.

경쟁에서 이기고 빈테르트에 입회하기 위해 거르고 거른 실력자들이다. 얕보는 건 물론이고, 자신들의 패배와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래도 전격 마법사라고 하니 나름의 한 수는 있겠지. 뤼잉 코스타 놈도 전멸당하기도 했으니. 뭐, 이미 그에 대비해 매직 아이템을 준비했지만.”

로아프라 동쪽의 권력가 중 하나인 테르거. 그가 조소하며 측근들에게 턱짓했다.

“다른 놈들이 채 가기 전에 먼저 가서 잡아라. 연약한 마법사니 죽지 않게 조심하고. 그리고 저 갈리아크는 생포하란 말씀이 없으셨으니 목만 잘라 가져오도록.”

“예, 테르거 님.”

하나둘씩 무기를 손에 쥔다.

마법사와 궁수가 건물 지붕에 자리 잡았고, 검과 창, 도끼 등 근접 무기를 든 전사는 광장의 외곽을 새까맣게 물들였다.

점차 좁혀지는 포위망.

베르덴은 여전히 광장의 중심에 서 있었다.

“도살자, 너는 자유롭게 움직여라. 그리고 빈테르트의 성으로 가는 동안 방해하는 자들만 죽이도록.”

“……그러지.”

갈리아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 죽어도 모험가인 그가 베르덴을 파티의 리더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순간적으로 느낀 저 마력량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X발, 몇 개월 사이에 진짜 괴물이 됐군.”

갈리아크가 중얼거리며 훼월을 양손으로 쥐었다. 손바닥에 묻어 있던 식은땀을 문질러 지워 버렸다.

쿠웅!

송곳니를 드러내며 앞으로 돌진하는 도살자. 붉은 기운에 휩싸인 도끼날이 허공을 가르자 단말마의 비명이 되돌아왔다.

시선을 뗀 베르덴이 앞을 바라봤다.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범죄자들이 킥킥거리며 검을 까딱거렸다.

“이봐, 어차피 도망도 못 칠 텐데, 기왕이면 좋게 좋게 가자고. 괜히 저항하겠다고 까불다가 피를 보면 손해잖아?”

맞는 말이다.

하나 거절한 건 너희 본인이다.

마침내 베르덴이 움직였다.

무감정한 시선만이 감도는 투명한 벽안. 마력회로를 전력으로 활성화한 그가 오리엔트를 지면에 내리찍었다.

<지형조작>

그리고 지하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로아프라는 오직 인간만의 터전이다.

감히 세상을 나돌아다닐 수 없는 갈 곳 없는 자의 안식처이며, 시시각각 수많은 범죄가 발생하는 뒷세계의 온상이다.

만들어진 이래, 아인종과 이형종의 침범을 단 한 번도 허락한 적이 없는 지하 도시. 바깥에서는 최악의 도시라고 할지언정, 누군가에게는 아기의 요람과도 같은 장소였다.

쩌저저적. 쩌저저저저적.

그런 로아프라가 광장을 중심으로 쪼개지고 있다.

강진(強震)에 의해 수많은 건물이 폭삭 가라앉았고, 어제까지 거닐었던 익숙한 뒷골목이 산산조각 났다.

암흑가의 지축이 송두리째 뒤틀린다.

그 충격에 바닥에 주저앉은 권력자 하나가 이내 눈을 부릅떴다.

“이게 뭐야…….”

모든 것이 시시각각 뒤바뀌고 있다.

이제까지 그들이 살아왔던 로아프라가 마치 파도처럼 물결쳤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여긴 바다가 아니라 지하 도시인데.

이윽고 대지가 뒤집히며 위로 솟구쳤다. 당장 밟고 있던 거리가 반으로 갈라지며 거대한 절벽이 생겨났다.

칠흑 같은 어둠이 자리 잡은 까마득한 높이.

“아, 안 돼! 아아아아아아악!”

미끄러진 용병 하나가 틈새로 추락했다.

절규는 곧 굉음에 묻혀 사라졌다. 그러한 죽음에도 누구도 제대로 반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 그랬다.

인지를 초월한 무언가를 경험하면, 머릿속이 백지가 된 것처럼 어떤 생각도 행동도 할 수 없다고.

평소에는 관심도 없는 이야기였으나 지금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 현상을 광장 근처에 모인 모두가 겪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영원한 건 아니었다.

혼란에서 벗어나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권력자, 마법사 토르만이 소리쳤다.

“저 마법사를…… 애셔를 당장 멈춰라! 아니, 죽여라!”

마법사다운 정확한 판단이다.

확실히 베르덴을 저지하면 로아프라에 일어나고 있는 기현상은 사라지겠지.

다만 토르만의 역량은 부족했다.

베르덴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본래의 목적인 생포를 잊고 있었으니까. 이건 정신력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말 못 들었나! 어서 죽여! 죽이란 말이다!”

“네, 네!”

부하들이 곧장 무기를 겨냥했다.

현실감각이 사라졌기에 반사적으로 명령에 반응한 것이었다. 평소의 습관이 체화되어 표출된 움직임이었다.

하나 거기까지였다.

“당장 쏘지 않고 뭐 하는……!”

고개를 돌린 토르만이 움찔거렸다.

거기에 부하들은 없었다. 대지에서 솟아난 가시에 꿰인 시체들만이 보였다.

서늘한 기류가 목덜미를 스쳤다.

“자, 자, 잠깐───”

콰직.

무언가가 날아와 토르만의 가슴을 관통했다.

뒤늦은 고통과 함께 울꺽 피가 쏟아졌다. 시야가 암전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비명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만 아직 항복한 자는 없었다.

베르덴이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군.’

이쯤 되면 슬슬 나올 줄 알았는데.

그만큼 빈테르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건가. 아니면 암흑가의 왕에 대한 공포심일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생각 이상으로 강단이 있었다.

뭐, 본인들 선택이니 존중할 뿐이다.

폐허가 된 암흑가를 거니는 베르덴.

저 멀리 보이는 빈테르트의 성이 점차 가까워졌다

* * *

마르코는 전직 기사였다.

어떤 남작에게 충성했던,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기사. 상급자로 인해 책임을 도맡아 퇴출된 불쌍한 사내이기도 했다.

하나 그렇다 해도 기사는 기사였다.

당연하게도 기도 다룰 줄 알며 보기에 그럴듯한 검술도 구사할 수 있었다. 딱 칼밥으로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실력.

정착할 곳을 찾아 헤매던 마르코는 로아프라에 눌러앉았다.

바깥에서 용병 일을 하며 살아갈 바에, 범죄자 소굴이라고 해도 사람들 틈에서 사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기사 시절의 경험은 큰 도움이 되었다.

한 권력자의 눈에 띄어 조직에 들어간 그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적대 조직과 칼싸움만 하는 것뿐인데 과거에 받던 봉급보다는 수입이 훨씬 많았으니까.

드넓은 지하 도시.

마르코는 거리의 일원이 되어 충실하게 살아왔다.

그런 그의 세상이 파괴되고 있다.

“허억, 허억, 허억……!”

검은 이미 버렸다. 거추장스러운 흉갑도 떼어 버렸다.

비싼 물건이었지만 아깝고 자시고 할 때가 아니었다. 달리지 않으면 죽는다는 압박감이 마르코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시야에 로아프라의 풍경이 비쳤다.

“살려 줘! 살려 줘어어어어!”

“꺄아아아악!”

대지가 산 자를 집어삼킨다.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게걸스럽게 입맛을 다시고 있다. 양이 부족했는지 곧바로 다른 희생자의 발밑에 틈새가 벌어졌다.

귓가에 비슷한 비명이 또 들려왔다.

마르코는 그저 달렸다.

방금 지나쳐 간 여자, 마담 체리담이 소리쳤다.

“마법사 새끼들아! 제발 어떻게 좀 해 봐!”

“아, 알겠습니다!”

마법사들이 마력을 일으켰다.

건물 안에 숨어 벽을 세우고, 다시 장막으로 둘러 몸을 보호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제서야 마담과 마법사들이 안도했다.

하지만 의미 없었다.

콰아아아앙!

대지가 폭발했다.

건물과 장막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고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몰살당했다. 주위로 흩어진 혈흔만이 누군가 여기 있었다고 속삭였다.

‘제발, 제발, 제발……!’

마르코가 이를 악물고 달렸다.

갑자기 무너진 건물 잔해 위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죽은 권력자, 테르거의 몸뚱이가 굴러떨어졌다.

“크하하하하! 애셔, 이 미친 마법사 새끼! 도대체 얼마나 강해진 거야?!”

갈리아크가 양팔을 벌리며 환히 웃었다.

훼월의 날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며 손등을 적셨다. 그런 더러움이야 상관없다는 듯 도살자는 미친놈처럼 입가를 비틀며 힘껏 바닥을 박찼다.

콰지지지직!

그가 향한 위치에서 반토막 난 시체가 허공에 떠올랐다.

“흐윽, 흐으윽……!”

마르코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감정이 가슴속에서 북받쳐 올라왔다. 진짜로 너무 무서워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대부분의 생존자들이 그와 같았다.

전의와 살기 그리고 탐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오직 살아남는 데에 집중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무릎을 꿇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베르덴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으니까.

실시간으로 붕괴되는 이 지옥 속에서 누가 가만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겠는가. 정신이 나간 자가 아니라면 백이면 백, 조금이라도 멀리 도망치는 걸 택할 것이다.

빈테르트에 대한 충성? 공포심? 그딴 건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러던 그때였다.

생존자 중 공포에 맞서는 무리가 있었다.

“저기 애셔다! 저 새끼만 죽이면 돼!”

“부여 마법으로 막든 뭘 하든, 어떻게든 접근해서 죽여! 살고 싶으면 죽이라고!”

그 용기는 그야말로 찬란했다.

불가해한 재해에 절망하지 않고 맞서싸우는 저항자들. 어쩌면 그들이라면 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이나마 들었다.

마르코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피어오른 먼지구름 속으로 용사들이 모습을 감췄다. 직후 끔찍한 파육음이 들려오더니 갑자기 소리가 멎었다.

화아아아악!

폭풍이 일며 먼지가 걷혔다.

직전까지 살아 숨 쉬던 자들은 잔해와 하나가 되어 쓰러져 있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베르덴이 걸어오고 있었다.

푸른 심연이 담겨 있는 벽안이 마르코와 마주쳤다.

“허억!”

순간 멈춰 버린 숨.

깜짝 놀란 마르코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몸이, 영혼이 제멋대로 떨렸다. 고작 상체만을 세우는 게 최선이었다.

“……!!”

저벅, 저벅.

끔찍한 재해를 일으킨 존재가 가까워지고 있다.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르코가 반사적으로 머리를 감쌌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눈에 띄지 않을 테니 목숨만은 제발……!!!”

사력을 다해 간절히 빌었다.

하나 그럼에도 베르덴은 멈추지 않았다.

마르코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나…… 이제 죽는 건가? 방금 죽어 나간 사람들처럼?’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전직 기사고 뭐고 체면을 차릴 때가 아니었다. 마음은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졌다.

이게 꿈이라면 어서 깨기를 바라며, 마르코가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고통이 찾아오지 않았다.

설마 그사이에 죽기라도 한 건가 싶었지만…… 감각은 여전히 느껴진다. 눈물로 흐릿한 시야에 쩍쩍 갈라진 로아프라의 바닥이 들어왔다.

마르코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코앞까지 다가왔던 발소리가 아득해진다. 백금의 로브를 두른 베르덴 또한 멀어지고 있었다.

“어…… 어?”

살려 준 건가? 왜?

무수한 가능성이 뇌리를 스쳤지만 딱 들어맞는 게 없었다. 그러다 문득 마르코가 자신을 바라봤다.

무릎을 꿇은 채 한없이 몸을 웅크리고 있는 비굴한 자태.

설마.

“죽기 싫다면 무릎 꿇라는 게 사, 사실이었어……?”

그것밖에 이유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했다.

마르코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어쨌든 간에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전신을 엄습했다.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도중에 자세가 풀어졌다간 죽을지도 모르니까.

“아…….”

마르코가 하늘을 바라봤다.

시야 가장자리에 박살 난 로아프라가 아른거렸다. 그래도 꿈이길 바랐는데…… 보이는 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잔인한 악몽 또한 현실이었다.

콰아아아앙!

거친 폭음이 고막을 강타했다.

멍하니 눈동자를 굴리니, 거대한 성문이 처참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빈테르트가, 로아프라가 무너진다.

마르코가 조용히 손을 모았다.

평소에는 찾지도 않던 신을 향해 기도했다.

“부디……!”

이 악몽을 끝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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