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42화 (242/366)

242화 악몽 (3)

“……뭐라?”

암흑가의 왕, 그론드가 눈썹을 씰룩였다.

삭막한 알현실의 공기가 폐를 날카롭게 찔렀다. 왕좌 아래에 부복한 빈테르트의 친위대원이 침을 삼키고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애셔와 갈리아크가 아우로플에 입성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움직이고 있는 방향으로 보아, 목적지는 이곳 로아프라로 보입니다.”

“슬레이는?”

“그 둘 외에는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 애셔의 모습이 멀쩡하다는 걸 보아, 서로 엇갈린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아무리 슬레이가 소규모 비행정을 운용했다고 한들, 로아프라도 아니고 왕국 전역을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만약 마주쳤다면 곱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슬레이는 암살 계열의 수장인 데다가, 로바트와 록키 형제는 경비 계열의 간부에 위치한 강자들이니.

그들과 동행한 암살자들 또한 살인에 이골이 난 자들이었다.

“…….”

툭. 툭. 툭.

건틀릿에 휩싸인 손가락이 팔걸이를 두들겼다.

다른 팔로는 턱을 괸 그론드가 입을 다물었다. 작게 기우는 회색의 왕관. 탁색의 금안이 깊게 가라앉았다.

‘마법사 애셔.’

슬레이의 추적을 피할 정도로, 감쪽같이 종적을 감춘 자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심지어 바로 자신이 직접 지배하는 영역에.

분명 우연은 아닐 터다.

놈은 분명히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다른 날도 아니고, 지금 이 시점에 나타난 걸 보면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의문이 들었다.

‘왜 이곳으로 온 거지?’

숨어 있어도 모자랄 판에 제 발로 찾아오다니.

결국 포기하고 빈테르트에 항복하러 온 것인가? 아니면 저번처럼 담판이라도 지을 작정인 건가?

뭐가 됐든 간에 멍청한 판단이었다.

빈테르트는 인도적인 집단이 절대 아니니까. 그것도 귀중한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게 만든 목표물에 대해서는 말이다.

“그래도 뭐, 재미는 있군.”

그론드가 피식 웃었다.

어쨌든 이렇게 암흑가에 직접 찾아와 줬으니, 왕이 된 자로서 환영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수고를 덜게 해 준 것에 대해 마땅히 치하해야겠지.

소소한 잔치와 함께.

“메라든.”

“부르셨습니까, 폐하.

“로아프라 전체에 고하라.”

그론드가 선언했다.

“애셔를 데려오는 자에게, 빈테르트의 일원이 될 자격을 부여하겠노라고.”

* * *

대도시답게 아우로플의 거리는 복작거렸다.

살벌한 무기를 소지한, 근육질의 거구를 가진 갈리아크는 시민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다급히 물러섰다.

베르덴 또한 소란의 대상이었다.

물론 갈리아크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였다. 신비한 외모와 감히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장비.

그간 접해 온 왕국의 귀족들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했다.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하나 두 사람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새끼들, 움직이는 거 보니까 꽤나 당황했나 보구만.”

인파 속에 감지자들이 숨어 있다.

누군지 알아낼 필요도 없었다. 당연히 빈테르트의 관계자겠지.

거대한 지하 도시를 지배하는 조직의 영향력이 아우로플까지 뻗어 있으리라는 건 당연했다.

“벌써부터 이 X랄 난 거 보면, 아래는 아주 X지랄이 나고 있겠는데.”

“자신 없나?”

“벌레 하나 밟아 죽이는 건 쉽지. 근데 그게 수십 수백이 되면 언제 다 죽이고 앉아 있겠냐? 솔직히 무리지.”

갈리아크는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하나 혼자 암흑가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주관적으로 봐도, 객관적으로 봐도 마찬가지였다.

어중간한 놈들 수백 명이 달려든다면, 죽지는 않는다고 해도 지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원소계 마법사가 있으면 얘기가 달라지지. 네가 마법만 완성하면 잔챙이는 그냥 뒈지는 거니까. 전위는 내가 맡고.”

전형적인 모험가의 전투 방식이었다.

“만약 내가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려고 했지?”

“뭘 어떻게 해. 암흑가로 내려가는 마력 승강기하고 입구를 싹 다 쳐부수고 잠적하려고 했지. 그러려고 도중에 추적도 따돌렸고. 아마 꽤 효과적이었을걸? 온종일 쫓기던 놈이 지들 본진에 나타나리라는 건 예상 못 했을 테니까.”

지하에 세워진 로아프라는 폐쇄성이 매우 짙다.

그렇기에 외부의 영향력이 적은 대신, 지상과 이어지는 통로는 한정되어 있었다.

갈리아크가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면 빈테르트 입장에선 꽤나 성가셨을 터다.

바깥으로 보낼 인력이 한정되어 버리게 된 셈이니까. 복구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테고, 그동안 추적자를 몰살하고 숨어 버리면 찾기 어려워졌겠지.

물론 위험성은 아주 높다.

그래도 하루 종일 추적당하며, 시도 때도 없이 습격당하는 것보다는 나은 생각이었다. 적어도 갈리아크에겐.

‘뭐, 이젠 벌어지지 않을 일이지만.’

곧 지하도에 도착했다.

과거 샘웰에게 안내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넓은 복도와 함께 승강기로 향하는 출입소가 보인다.

전과 달리 인파는 하나도 없었고, 아우로플의 경비대만이 남아 있었다.

그중 한 사내가 콧수염을 만지며 다가왔다.

“이런, 이런. 설마 샘웰이 데려온 고객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마치 사형수가 된 지인을 보는 것 같군.”

달리시안 소장.

샘웰과 함께 만났던 통로의 관리자였다.

“우릴 안내하러 온 건가?”

“빈테르트에서 그러더군. 당신 둘을 로아프라로 안전히 내려보내라고. 물론 검문은 없이. 그러니 소장으로서 마땅히 직무를 행하는 중이지. 그런데…….”

소장이 베르덴의 얼굴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확실히 얼굴값이 아깝군, 아까워. 도대체 처신을 어떻게 했길래 빈테르트의 표적이 된 거지. 응? 내가 당신이었으면───”

짜아아아악!

난데없이 거대한 손아귀가 소장의 뺨을 후려갈겼다.

옆으로 나가떨어진 몸뚱이. 그대로 턱이 돌아간 소장은 두 눈을 뜬 채 정신을 잃었다.

“뭔 안내역이 이렇게 말이 많아, X새끼가.”

퉷. 갈리아크가 침을 뱉었다.

경비병들이 황급이 창을 세웠지만 의미는 없었다.

“눈 깔아. 싹 다 죽여 버리기 전에.”

“윽……!”

도살자가 눈을 희번덕거렸다.

본능적으로 병사들이 뒤로 물러섰다. 개중에는 넘어진 사람도 있었다. 그런 그들 사이로 베르덴과 갈리아크가 지나갔다.

살기는 없었다.

그런데 조금 표정을 구긴 정도로 저렇게 겁먹을 정도라니.

“확실히 협박에는 일가견이 있군.”

“지금 얼굴 가지고 놀리냐?”

긴장감이 전혀 없는 분위기.

두 사람이 중앙 계단 아래에 있는 고속 마력 승강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자 미약한 소음이 들려온다.

강화 유리 너머에 비친 로아프라가 가까워졌다.

“아, 그런데 계획 같은 건 있냐? 방해되는 놈들 죄다 치워 버리면서 간다거나, 잔챙이는 적당히 무시하고 빈테르트 수뇌부 목을 딴다거나. 그런 거 있잖아?”

“둘 중 고르자면 전자겠지.”

“전자라…….”

그제서야 갈리아크는 확신했다.

옆에 있는 건, 전에 봤던 5위계 원소 마법사가 아니라고.

‘마도를 개척한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

개개인마다 마도를 개척하는 시간이 다르니까. 5위계에 도달하자 마도사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

그에 비해 6위계는 성장점이 다르다.

충분한 재능과 노력이 있다 해도 시간이 필요한 드높은 경지. 안 본 지 얼마나 지났다고 거기까지 이룩했을리가 없겠지만…….

‘이 자식이 비상식적이라는 게 문제지.’

솔직히 말해 외모와 성격 외에는 모든 게 달라진 거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작년까지만 해도 불과 3위계였던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도대체 그사이에 무슨 인생을 살아온 건지.

어쨌든.

‘아주 기대되는군.’

이만한 경지를 이룬 마법사를 보는 건 처음.

여기서 그 힘이 어떤 것인지 온전히 눈에 담으리라. 그런 다짐을 하며 갈리아크가 강자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쿵.

마침내 지하 도시에 다다랐다.

승강기에서 내리자, 둘을 기다리고 있던 자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 중에 로아프라에 사는 일반인은 한 명도 없었다.

“벌레 새끼들. 아주 바글바글하구만.”

갈리아크가 입가를 비틀었다.

* * *

수십 명으로 이뤄진 로아프라의 환영객.

누군가는 긴장된다는 듯 무기의 손잡이를 몇 번이나 다잡았으며, 누군가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살기와 탐욕이 뒤엉킨 눈빛이 사방에 만연했다.

‘거슬리는군.’

베르덴이 눈가를 씰룩였다.

그때, 장검을 어깨에 멘 사내가 껄렁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와, 생긴 것 봐라. 딱 보니까 네가 애셔구나?”

“…….”

“쫄아서 대답도 못 하나 보네. 야, 벌써부터 겁먹을 필요 없어. 당장 뭘 어떻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사실 우리끼리 내기를 한 상황이라서 말이야.”

갈리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기? 무슨 내기?”

“위대한 암흑가의 왕께서, 애셔를 데려오면 빈테르트에 넣어 주신다고 공표하셨거든. 공헌도에 따라 인원은 최대 5명까지. 다시 말해 선착순인 셈이지.”

“아하, 그러니까 얘를 두고 게임을 하겠다?”

“그런 셈이지. 뭐, 사실 개판 날 거 뻔하긴 한데…… 그래도 시작만큼은 최대한 공정하게 할 생각이야. 룰은 간단해. 애셔가 광장에 도착하면 바로 경쟁 시작. 그리고 우리끼리는 공격하지 않는다.”

외우기 쉽지?

사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갈리아크라고 했나? 참고로 너한테는 현상금이 걸려 있어. 그것도 무려 10억 엘크. 이것도 선착순이지.”

“나까지? 뭐, 됐고. 그래서 너희들은 뭔데?”

“뭐긴. 도중에 누가 반칙을 하지 않도록 지키러 온 호위지. 이를테면 안내역이라고나 할까?”

“오, 안내역.”

갈리아크가 웃었다.

그와 동시에 지면을 박차며 돌진했다.

쩌어어억!

체중과 속도를 실은 앞차기가 사내에게 적중했다. 충격에 날아간 녀석이 후방에 있던 인파와 충돌한 끝에 바닥에 널브러졌다.

거의 반으로 접힌 허리. 즉사였다.

“이 새낀 말도 많은 데다가 건방지기까지 하네? 아주 콱 뒈질라고.”

이미 뒈졌는데.

몇 명이 말을 삼켰다.

갈리아크가 베르덴에게 물었다.

“야,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지금부터 조져?”

“잠깐.”

베르덴이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이내 사방으로 뻗어 나간 마력이 로아프라에 퍼져 나갔다. 그것을 감지한 암흑가의 실력자들이 곳곳에서 술렁거렸다.

“뭐야, 갑자기?”

“마력감지인 거 같은데?”

마력감지는 범위에 따라 마력 소모가 극심하다.

그런데 그런 기초 마법을 여기서 왜 발동하는 거지? 자포자기라도 한 건가? 그런 의문을 무시한 베르덴이 마력에 집중했다.

‘근처에 민간인은 없다.’

건물 대부분이 비어 있다.

특히 광장 근처에서 감지되는 인간들은 죄다 무기를 가진 채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아무래도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외곽으로 피신한 모양.

‘잘됐군.’

로아프라에 온 목적은 빈테르트의 궤멸.

그 과정에서 민간인을 건들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걸 신경 쓸 정도의 여유가, 베르덴에게는 있었다.

베르덴이 말했다.

“광장으로 가도록 하지.”

“대놓고 전면전이라. 뭐, 나쁘지는 않지.”

“하지만 그 전에.”

베르덴이 검지손가락으로 앞에 있는 인파를 가리켰다.

아까부터 향해 오는 질척거리는 시선이 상당히 불쾌했다. 그런 저들과 동행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

마력량이 급격히 증가한다.

몇몇 마법사들이 이상함을 느꼈지만 대처할 방법은 없었다.

성질이 변화하는 마력.

원인 모를 무게감이 서서히 어깨를 짓눌렀다. 이어 베르덴이 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중압>

쿠웅───쩌저저저적!

수십 명이 일제히 바닥에 처박혔다.

충격에 갈라지는 지면.

중력에 힘없이 이끌린 자는 머리를 강하게 부딪힌 것에 그쳤고, 조금이라도 버티려고 했던 자는 관절과 뼈가 그대로 박살 났다.

그와 동시에 거슬리던 불쾌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제야 편하군.’

베르덴이 발걸음을 옮겼다.

반송장이 되어 쓰러진 놈들을 넘어 광장으로.

“끄어…… 어…….”

“아…… 아…….”

고통 어린 신음이 가득한 참상.

그 안에 남겨진 갈리아크가 눈을 깜빡였다.

“X발, 저건 또 무슨 마법이야.”

* * *

베르덴은 거침없이 광장으로 향했다.

뒤늦게 따라온 갈리아크가 옆에 자리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만연한 살기가 더욱 짙어진다.

최소 수백 명에 이르는 자가 두 사람의 모습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무리에 섞여 있던 용병들이 쑥덕거렸다.

“응? 왜 저 둘만 와? 마중 나간 놈들은?”

“지금 그게 중요해? 신경 끄고 저 새끼들 어떻게 잡을지나 생각해.”

승강기로 향했던 무리는 금세 잊혔다.

모두가 두 목표물에 집중하며 각자만의 계획을 세웠다. 그러는 사이, 베르덴이 텅 비어 있는 로아프라의 광장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갈리아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X발, 여기저기 숨어 있는 꼴 봐라. 무슨 바퀴벌레도 아니고. 야, 애셔. 어디부터 죽일래? 동쪽부터? 아님 서쪽?”

갈리아크가 훼월을 꺼내 들었다.

전투광 아니랄까 봐, 시작하기도 전부터 살기를 번뜩이고 있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백금 등급 모험가를 떠올릴까.

“…….”

베르덴이 광장 중심에 섰다.

로아프라에 온 궁극적인 목적은 빈테르트의 지배자인, 암흑가의 왕이다. 그리고 적대하는 건 앞길을 방해하는 자들뿐.

물론 그 외는 죽이지 않을 생각이다.

민간인을 포함해, 전투 도중에 항복하는 자들까지 말이다. 어디까지나 베르덴은 학살자가 아니라 마도사였으니까.

그래서 나름의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물론 난장판 속에서 사람을 구별하는 건 어렵겠지.’

그래도 딱히 큰 문제는 아니다.

이미 그에 걸맞은 대책을 생각해 두었으니까.

마력을 일으키자 벽안이 명멸했다.

베르덴의 존재감이 강해지면서 순식간에 이목이 쏠렸다. 곁에 있던 갈리아크조차 흥분을 가라앉히고 시선을 향해 왔다.

베르덴이 입을 열었다.

“한 번만 말하지.”

마력을 타고 흐른 음성이 로아프라 전역에 울렸다.

빈테르트도, 여타 범죄 세력과 용병 그리고 시민들까지. 암흑가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가 자연스레 소리를 경청했다.

서늘한 침묵이 감돈다.

암흑가가 이제껏 없을 정도로 고요해졌다. 그를 뒤로한 베르덴이 나지막이 선고했다.

“무릎 꿇어라. 죽기 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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