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40화 (240/366)

240화 악몽 (1)

마법사는 많은 분야에서 활약하는 존재.

특히나 그들이 구사하는 원소 마법은 사람 하나쯤은 손쉽게 죽일 수 있는 파괴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단점 또한 명백하다.

마법사의 신체 능력과 인지 능력은 대개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런 이유로 마법사를 혐오하거나 질시하는 자들은 ‘유리 몸’이라며 멸칭한다.

뭐라 한들 결국 조잡한 단검 따위에 죽을 수도 있는 게 마법사였으니까.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마법사는 확실히 급습과 위기에 취약하다.

방심한 마법사가 암살당하는 일도 적지 않으며, 절체절명의 순간 마법 연산에 실수해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나 후자는 신참 모험가의 경우에 자주 발생한다.

아카데미를 졸업했든 탁월한 재능을 타고났든 간에 실전의 공포를 접해 보지 못한 자는 짐이 되어 버린다.

실시간으로 급변하는 상황에 적응하면서, 마법을 연산하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강철보다 더 단단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이렇듯 마법사의 빈틈은 훤하다.

즉, 암살자에게는 아주 쉬운 먹잇감.

실제로 슬레이는 빈테르트와 대립하거나 방해되는 마법사들을 숱하게 죽여 왔다. 자거나 혹은 인파 속에서 목이 잘려 나간 자들의 최후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가끔 눈치 빠른 자는 저항도 했지만 딱히 의미는 없었다. 마법을 피해 접근만 하면 끝이었으니까.

일반적인 마법사의 동체 시력으로는 슬레이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게 불가능하며, 연약한 마력 방벽은 단검으로 찢어발기면 그만이었다.

암흑가의 암살자, 슬레이.

그는 지금껏 스스로에게 어떤 마법조차 허용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럴진대 고작 마법사가 휘두르는 스태프라니.’

아무리 불의의 일격이라고 한들 위협적일 리가 있나.

마법사가 제 발로 죽을 자리에 들어오는 모습에, 슬레이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방금까지는.

쩌어엉!

교차한 두 개의 단검이 오리엔트를 막아 냈다.

“?!”

슬레이가 버티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직전에 갑판을 박차며 피해를 최소화했음에도 무거운 충격. 입에서 작게 숨이 터져 나왔고, 단검을 쥔 양손이 미약하게 떨렸다.

‘어떻게 스태프에서 이런 위력이…….’

마치 거대한 둔기에 부딪힌 것만 같다.

매직 아이템의 효과라도 해도 예상 밖의 위력이다. 그러던 순간 오리엔트와 맞닿은 칼날에 한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스테이시스>

쩌저저적.

삽시간에 퍼져 나간 냉기가 전신을 뒤덮었다.

“스, 슬레이 님?”

대답은 없었다.

얼음 동상이 된 슬레이는 침묵했다.

뭔가 잘못됐다.

빈테르트의 암살자들이 한 발짝 뒷걸음질 쳤다.

비행정 하나가 통째로 폭발한 데 이어 슬레이까지…… 특히나 목표물인 잿빛 머리칼의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압도적인 존재감.

이건 암흑가의 왕, 그 이상의───

콰자자작!

그때, 얼음을 부수고 나온 슬레이가 베르덴에게 돌진했다.

로바트는 그걸 신호라고 받아들였다.

다른 암살자들의 호위 속에서 모든 매직 아이템을 써 가며 마법 연산 시간을 단축시켰다.

그럼에도 베르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스테이시스>를 버틴 건가.’

아군의 비행정이라 가능한 깔끔하게 처리하려고 했는데.

확실히 책임자는 다른 모양이다. 그게 슬레이라 불린 암살자에게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용히 오리엔트를 다잡았다.

“형제여, 제가 돕…….”

“필요 없다.”

제지당한 카란스가 멈춰 섰다.

움직이려던 칼리아와 베스파, 올빼미 그리고 다른 이들도 멈칫했다. 베르덴의 목소리에서 묘한 압력이 느껴졌다.

그러는 동안 로바트가 마법을 완성했다.

<팔차의 뇌전>

5위계 집중 마법.

여덟 갈래로 갈라진 벼락에 사각은 없다.

전격의 폭발이 베르덴을 휘감았다.

직후 기를 끌어모은 슬레이가 기예를 펼쳤다. 극도로 기민한 몸놀림으로,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궤도를 꺾으며 상대의 등허리를 노렸다.

슬레이의 목적은 암살이 아니라 납치.

하반신이 불구가 된다면 데려가기 쉬울 거라는 계산이었다.

콰직!

손맛은 있다.

그런데 비명이 없었다.

“……마력 방벽?”

<아케인>으로 구현한 마력의 보호막.

베르덴의 숙련도가 마도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정도 충격에 깨질 리가 없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믿기지 않을 수밖에.

그들의 눈에는 1위계 기초 마법인 마력 방벽으로 버텨 낸 것으로 보일 테니.

베르덴이 고개를 옆으로 향했다.

마법진이 떠오른 벽안이 슬레이를 직시했다.

“……!!”

소름이 끼친다.

당장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중력의 사슬이 슬레이의 다리를 옭아맸다. 필사적으로 단검을 휘둘러 사슬을 파괴했다.

하나 피하기엔 늦었다.

<빙뢰의 선격>

전격을 품은 얼음의 발톱이 슬레이의 가슴을 관통했다.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방어구를 뚫고, 강력한 벼락과 함께 신체 내부를 파괴하는 혹한의 한기.

단일 마법이기에 광범위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으나 살상력은 6위계 중에서도 드높다.

“커, 커억…….”

흘러내린 피가 얼어붙는다.

힘없이 떨어진 단검. 견디지 못한 슬레이가 축 늘어졌으나 그의 눈은 여전히 베르덴를 응시하고 있었다.

살기와 분노를 담은 채.

‘누가 보면 내가 습격한 줄 알겠군.’

뭐, 끝난 일이다.

<크랙>

퍼어어엉.

얼음이 조각 나며 슬레이가 폭사했다.

* * *

슬레이가 죽었다.

방금까지 그였던 조각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인간인 이상 죽음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빈테르트의 최정상급 실력자의 마지막은 너무도 간단했다.

그만큼 실력 차가 크다는 건가?

그럼 저 마법사는 대체 뭐란 말인가? 암살자들 사이에 공포와 전율이 전염되기 시작했다.

베르덴이 옆으로 몸을 돌렸다.

다음은 전격 마법사 차례.

팔을 들어 오리엔트를 길게 뻗었다.

<아케인: 마력 융합>

타인을 위압하지 않을 정도로 집결된 마력량.

폭발하듯이 터져 나온 한 줄기 광선이 군중을 넘어 정확히 로바트에게 쇄도했다.

피할 속도가 아니다.

곧장 전격의 장막을 둘러 스스로를 보호했다.

“엇……!”

장막이 버티지 못하고 붕괴한다.

위계 마법도 아니고 순수한 마력으로 쏘아 낸 게 이런 미친 위력이라니. 장막이 깨지자마자 마력 방벽을 동원한다고 해도 버틸 수 있는 건 고작 초 단위.

죽음을 직감하자 로바트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그의 뇌리를 스쳤다.

문득 후회가 들었다.

이런 괴물인 줄 알았다면…… 경매장에서 경쟁 입찰에 3번이나 졌다고, 그래서 복수하고 가진 걸 빼앗겠다고 슬레이를 따라오지 않았을 텐데.

“……록키.”

로바트가 동생에게 손을 뻗었다.

이내 장막을 부순 광선이 시야를 휩쓸었다. 말 그대로 박살이 난 로바트가 비행정 바깥으로 떨어졌다.

범죄 세력의 간부치고는 화려한 최후였다.

“혀어어어어어엉!”

록키가 절규했다.

눈에 핏발이 선 그가 베르덴에게 달려들었다. 쌍둥이 형의 죽음에, 사리를 분별할 이성이 완전한 상실한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주위 사람들은 보고만 있지 않았다.

“오우거만도 못한 것이 감히 형제에게.”

쩌어억!

카란스가 날아와 록키를 걷어찼다.

광대뼈를 으깨는 감촉. 비틀거리며 주춤하는 록키의 뒤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백영白影.

잔상을 그린 칼리아가 검을 휘둘렀다.

무방비하게 무릎 뒤를 베인 록키가 앞으로 고꾸라졌고, 그보다도 빠르게 움직인 그녀가 놈의 목을 베었다.

검붉은 핏물이 갑판 위로 쏟아졌다.

슬레이 사망.

로바트와 록키 형제 사망.

세 척의 비행정 중 하나 소멸.

무게 추는 기울었다.

서로 눈치를 보던 암살자들이 서둘러 탈출을 감행했다.

그들에게 항복한다는 선택지는 결코 없었다. 붙잡히면 교수형, 잘해 봤자 평생 감옥에서 썩게 될 테니.

베스파가 소리쳤다.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라!”

“예!”

기사들이 암살자들을 철저히 막아 냈다.

<비행>을 써서 비행정으로 도망치려는 자도 있었으나 끝내 닿지 못했다. 올빼미의 화살이 족족 놈들을 추락시켰고, 나머지는 기사단의 마법사가 직접 처단했다.

반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카란스가 나무뿌리로 발판을 만들더니 근처에 있던 비행정을 급습했다. 그런 그를 기사단이 뒤따랐다.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빈테르트의 일원들이 속수무책으로 쓸려 나갔다.

슬레이를 잃은 충격을 아직도 회복하지 못한 것이다. 이로써 완전히 승기를 잡은 칼리아가 한숨을 내쉬며 베르덴에게 다가왔다.

“후우,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감사를 전하지, 애셔.”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늦기는커녕 절묘했지. 그나저나 빛과 함께 나타날 줄은 몰랐는데. 그리고 안 본 사이 많이 바뀐 것 같기도 하고…… 뭐, 이건 나중에 묻기로 하지. 그보다는.”

칼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벨로스를 폭격하던 비행정이 멀어지고 있다.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후퇴하는 움직임. 그리고 암흑가의 왕에게 상황을 보고를 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가능하면 처리하고 싶지만 너무 멀군. 소규모 비행정이라 추적하기도 쉽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놓아 줄 수밖에 없겠어.”

“그럼 내가 처리하지.”

“일단 라인즈로 가서…… 뭐?”

베르덴이 마력회로를 전력으로 활성화했다.

그와 동시에 마도왕의 마력 운용법으로 마력 방출을 억제했다. 자칫 칼리아의 비행정에 악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니.

현재 베르덴의 마력량은 초월자에 비견된다.

파지지지직!

스태프에서 뻗어 나온 강렬한 뇌격이 구름에 스며들었다. 푸른빛이 번쩍이며 우레 소리가 들려왔다.

수십 초간의 연산 끝에 마법이 완성됐다.

베르덴이 오리엔트를 아래로 내리그었다.

추락하는 뱀.

<청사뢰>

퍼져 나가는 전류, 뇌운이 맥동한다.

이윽고 푸른빛이 터져 나오며, 거대한 벼락으로 이루어진 뱀이 낙하했다. 입을 쩍 벌린 괴물이 빈테르트의 비행정에 육박했다.

소규모 비행정은 선체 내구력이 취약하다.

그뿐만 아니라 보호 마법진 또한 마찬가지. 하나 그렇다고 한들 마법으로 침몰시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실력 있는 마법사 수십 명이 일제히 폭격을 가하지 않는 한.

하지만 결과는 이렇다.

콰과과과과!

막대한 열과 압력.

마법진이 단번에 박살 나며 비행정이 두 동강 났다. 마법에 노출된 동력원까지 폭발하며 충격을 더했다. 새까맣게 탄 잔해들이 낙하한다.

거센 폭풍이 벨로스까지 닿아 휘몰아쳤다.

검붉은 머리칼이 바람에 나부낀다.

칼리아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작게 목소리를 흘렸다.

“……헐.”

빈테르트 암살자, 전멸.

* * *

당장의 위협은 사라졌다.

하지만 벨로스의 선실은 누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고요했다. 모두가 눈동자만을 움직이며 베르덴을 흘겨봤다. 심지어 정령들까지도.

보다 못한 올빼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크흠, 전에 흑랑 토렐드를 잡은 이후 그리 오래 지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경지가 많이 오른 듯하군.”

“나름 진전이 있었다.”

대체 무슨 진전이 있었길래 벼락으로 비행정을 없애 버리는 정도가 된 걸까. 그것도 고작 몇 개월 사이에.

올빼미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옆에서 흘끔거리던 칼리아가 물었다.

“애셔, 그런데 그 옷은 뭐지? 아주 잘 어울리긴 하지만 되게…… 아니, 아주 범상치 않아 보인다. 솔직히 말해 내가 본 어떤 것보다도 고귀해 보이는군.”

“멋집니다, 형제여.”

“고맙군. 최근 운이 좋아 손에 넣었지.”

……최근?

의자에 앉아 있던 페르네가 눈을 깜빡였다.

베르덴의 행적을 파악하고 있는 그녀였다. 최근이라면 분명 마도왕의 무덤이겠지.

‘그렇다는 건 당연히 저 옷은 마도왕의…….’

“헉!”

페르네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쿵! 책상에 이마를 부딪히면서까지 깊게 고개를 숙였다. 순간 시선이 모여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한 그녀 나름의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이번엔 베르덴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왕국에 내전이 터졌다고 들은 것 같은데.”

이건 정보원 게드슨에게 얻은 정보였다.

“그건 내가 말해 주도록 하지.”

기사단장 베스파가 왕국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노스램드 공작의 장남, 나이젤의 실종으로 발발한 내전. 신문을 보면 접전 끝에 전황이 1왕자에게 기울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곧 내전이 끝날 것 같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내전이 2왕자와 3왕자의 코앞까지 들이닥친 걸 보면.

‘내가 없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군.’

설마 내전이 일어날 줄이야.

사실 큰 감흥은 없었다. 누가 왕이 되든 간에 베르덴에게 그리 큰 영향은 없을 테니까. 칼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 문제는 내 아버지가 처리하실 일이지. 우리에게는 왕국의 앞날보다는 지금이 더 중요하다. 빈테르트가 애셔 너를 잡겠다고, 불가침조약까지 어기며 날뛰고 있으니까. 대체 놈들이 왜 너를 쫓는 거지?”

“글쎄.”

“……숨기는 게 있군. 혹시 내 아버지와 관련된 건가? 그럼 저 엘프도?”

칼리아의 눈썰미는 날카로웠다.

물론 베르덴은 대답하지 않았다.

레오닐의 실험에 대해 설명하기에는 말이 너무 길어진다. 에스퍼렌사 후작과 관련된 것이니 마음대로 발설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해결법은 간단하지.”

“해결법이라고?”

베르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 쪽으로 향하다 엘프와 눈을 마주쳤다.

“카란스, 미안하지만 조금 더 경호를 부탁하지.”

“맡겨만 주십시오, 형제여. 그런데 여기 있는 인간들에겐 제 정체를 들켜도 상관없는 겁니까?”

“그래, 비행정에 있는 동안은 본모습으로 다녀도 좋다.”

카란스가 다시 기만의 얼굴을 해제했다.

후련한 듯한 미소. 딱히 물리적인 불편함은 없을 테지만, 인간의 외형으로 다니는 게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칼리아, 너는 이대로 라인즈로 직행해라. 페르네, 너도 라인즈에서 카란스와 함께 움직이도록. 볼일을 마치면 찾아가도록 하지.”

“아, 네! 알겠어요, 애셔 님!”

“잠깐, 애셔. 볼일이라니? 지금 어디를…… 아니, 대체 뭘 하러 갈 생각이지?”

뭘 하긴.

“빈테르트를 지워 버리러.”

탁. 베르덴이 선실을 나섰다.

천천히 되돌아오며 닫히는 문. 복도에서 들려오던 발소리가 곧 사라졌다. 이내 창밖으로 순식간에 멀어져 가는 베르덴의 뒷모습이 보였다.

카란스가 블루와 함께 해맑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럴 수 없었다.

베르덴이 남긴 한마디에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뭘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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