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39화 (239/366)
  • 239화 밖으로 (2)

    왕국의 내전은 모든 귀족을 들썩이게 했다.

    대화로만 주고받는 정치 싸움은 뒷전이다. 필요한 건 무력. 각자가 지지하는 왕자의 승리만이 유일한 희망일 뿐.

    누군가는 재산과 병사 그리고 탐욕이 가득한 충성심을 바쳤고, 누군가는 자신과 자신의 가문이 무사하길 바라며 전장에 나섰다.

    해가 지날수록 왕국의 국운은 우하향 내리막길이다.

    더군다나 올해는 언데드 사태와 내전으로 인해 절벽으로 치달았다. 모험가, 상인, 시민, 정보상 등 눈치가 있는 사람들은 왕국을 떠나가고 있다.

    이대로 자리 잡고 있어 봤자 좋을 일이 없을 거라 확신한 것이다.

    하지만 왕도 왕자도 귀족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목적만을 우선시하며 다른 사람이 뭐 어떻게 되는 상관하지 않는 족속들이었다.

    황폐해져 가는 나라라고 해도 무소불위의 지배자가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을 놓지 않았다.

    아무리 못해도 나라가 망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바람일 것이다.

    주위를 보는 건 여전히 중립 귀족들밖에 없었다.

    에스퍼렌사 후작을 필두로 한 귀족 집단.

    왕가가 아닌, 에스티리아 왕국에 충성을 바친 자들이다.

    능력보다 욕심을 앞세우는 왕자와 귀족들을 견제하고 감시, 그리고 왕국을 위해서 행동하는 게 그들이 자처한 의무였다.

    후작은 파벌을 이끌고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근방의 도시로 향했다.

    전황을 보며 승자를 예측하고 새로운 왕을 어떤 식으로 견제해야 할지, 또한 기울어 가는 왕국을 어떻게 재건해야 할지 회의를 하기 위함이라는 게 공식적인 이유였다.

    “그런 상황에 빈테르트가 애셔를 노린다니……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군.”

    칼리아의 말에 페르네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거야 당연했다. 그녀들은 레오닐의 실험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으니까.

    내막을 아는 자는 관계자 외 극소수였다.

    “…….”

    팔짱을 끼고 있는 카란스는 침묵을 고수했다.

    실험과 관련된 내용을 발설하지 않는 건 형제와의 약속이었다. 페르네의 품속에 숨어 있는 블루가 은은히 반짝였다.

    칼리아가 말했다.

    “뭐, 어찌 되었든 빈테르트가 날뛰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수만은 없지. 하물며 후작가의 비호를 받는 자를 습격한다면 말이야. 무사히 너희들을 비행정에 태울 수 있어서 다행이군.”

    “전부 칼리아 님 덕분이죠.”

    이곳은 후작가가 가진 비행정의 선실.

    칼리아가 페르네와 카란스를 구출하기 위해 가져온 벨로스로, 이전에 주검의 영광을 추적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비행정이었다.

    이번에는 훔치지 않았다.

    마침 라인즈 근처에 있던 걸, 긴급 상황임을 고지해 임시로 사용을 허가받았다……. 담당자에게 제대로 된 대답은 듣지 못한 것 같지만.

    어쨌든.

    “……하아.”

    옆에 서 있던 기사단장 베스파.

    그가 한숨을 내쉬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칼리아 님, 구출 작전이 잘 끝나서 저도 좋지만, 문제는 이 다음입니다.”

    “빈테르트와의 불가침조약 말인가? 알고 있다. 그리고 놈들도 페르네와 애셔가 우리와 친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테고. 먼저 조약을 어긴 건 저쪽이다.”

    “그래서 문제인 겁니다. 결국 조약이 깨지지 않았습니까.”

    여태까지 빈테르트와 에스퍼렌사 후작가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 적이 없었다. 불가침조약이 체결된 후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애셔가 빈테르트에게 중요하다는 건가.’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게 아니면 설마 애셔를 빈테르트로 끌어들이는 게 목적?

    ‘그렇다면 이해는 안 가는 것도 아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빈테르트에 들어갈 리가 없겠지. 내가 아는 애셔라면.’

    결국 다시 의문이다.

    뭐, 나중에 애셔를 만난다면 알게 될 일이다. 그렇게 칼리아는 생각을 마쳤다.

    “확실히 조약을 어긴 빈테르트는 큰 위협이다. 설상가상으로 근방에 아버지도, 에드몬 할아범도, 멜자드르 경도 없지. 전부 중립 귀족 파벌의 회의장으로 향했으니. 그래도 라인즈를 방패로 삼는다면 놈들도 섣불리 움직이지는 못할 거다.”

    “하나 도착하려면 약 이틀 정도가 남았습니다. 만약 놈들이 작정했다면…… 그때까지 습격을 막을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그렇겠지. 그래도 벨로스라면 괜찮을 거다.”

    여기에 내장된 보호 마법진은 원거리 공격에 대한 방비가 되어 있다.

    그 대신 생명체의 물리적인 출입까지는 막을 수 없지만 과한 걱정이다.

    상공에서 벨로스에 침입하려면 마법사가 직접 들어오거나 비행정을 투입해야 할 테니. 전자는 자살행위고 후자는 생각하기 어렵다.

    “아무리 빈테르트라고 해도 페르네를 추적하는 데 비행정까지 동원할 리가…….”

    쿠우우우웅!

    순간 기체가 크게 흔들렸다.

    조종의 실수 따위가 아니다. 외부 충격으로 인한 현상이 분명했다. 비행정을 다뤄 본 칼리아이기에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건 분명한 이상 사태였다.

    “페르네, 너는 여기서 대기해라. 벨로스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니.”

    “네, 네, 칼리아 님.”

    “그쪽은 어떻게 할 거지?”

    “나는 나갈 거다.”

    카란스가 단검을 빼 들었다.

    범상치 않은 기세다. 귀족에게 거리낌 없이 반말을 하는 걸 보면 평범한 인물은 아닐 터. 강자임을 인지한 칼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칼리아, 베스파, 카란스.

    서로 눈을 마주친 이들이 곧장 갑판으로 향했다.

    백결 기사단. 그리고 칼리아가 고용한 올빼미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추격이 붙었습니다.”

    올빼미가 후방을 가리켰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 칼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높이 떠 있는 세 척의 소규모 비행정이 벨로스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중 정면에 있는 비행정, 그 끄트머리에 선 사내를 발견했다. 섬뜩할 정도로 새하얀 눈동자가 그녀를 직시했다.

    “……누가 봐도 빈테르트에서 나온 자군.”

    통상적인 소규모 비행정에서는 나올 수 없는 속도다.

    강제로 동력원을 과열시킨 건가? 그랬다가는 손상이 클 텐데. 뭐가 됐든 기체 차이가 커서 급선회로 따돌리는 건 무리다.

    불리하지만 어쩔 수 없다.

    스릉.

    칼리아가 새하얀 검을 빼 들었다.

    “전원, 전투 준비를 갖춰라.”

    * * *

    콰아앙! 콰앙! 콰아아아앙!

    벨로스의 보호막이 크게 흔들렸다.

    백결 기사단이 전력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역부족이었다.

    애초에 수적으로도 열세인 데다가, 놈들의 비행정이 벨로스의 위에 자리를 잡은 터라 위치상 우위를 빼앗겼다.

    거의 수직으로 낙하하는 마법과 화살.

    그 와중에 비행정 한 척이 급속도로 접근하고 있다.

    혀를 찬 칼리아가 소리쳤다.

    “백병전을 대비하라!”

    기사들이 일제히 자세를 잡았다.

    곧이어 비행정에서 낙하한 다수의 침입자가 벨로스의 갑판에 착지했다. 아까 보았던 불길한 사내가 가장 앞에 섰다.

    “칼리아 드 에스퍼렌사. 실물은 처음인가”

    “네놈은 누구지?”

    “슬레이. 암흑가를 지배하는 왕의 검이다.”

    들어 본 적 있다.

    빈테르트의 암살 계열의 수장, 슬레이. 조직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권력자이자 강자다.

    ‘설마 수장이 직접 올 줄이야.’

    섬뜩한 목소리.

    살아 있는 칼이라도 되는 것처럼 예기가 흘러넘친다. 목이 서늘하다. 움직임 하나조차 놓쳐서는 안 된다고, 직감이 그렇게 속삭였다.

    “그 잘난 검이 여기는 무슨 일이지? 애셔의 행방이라도 물어보려 온 건가?”

    “그것에 대답할 의무는 없다.”

    슬레이가 턱짓했다.

    그러자 뒤에 있던 로바트가 <뇌격>을 방출했다. 다행히 직격당한 기사는 없지만 전격 마법사의 존재는 큰 위협.

    그것을 시작으로 암살자와 기사단 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베스파, 어떻게든 마법사를 처리해라! 저자는 내가 맡겠다!”

    칼리아가 신속하게 돌진했다.

    하나 슬레이에게 닿지 못했다. 근육질의 거구가 길을 막아섰다.

    “어딜 지나가려고!”

    로바트의 쌍둥이 동생, 록키.

    부여 마법으로 신체를 강화한 그가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건틀릿과 검이 맞닿으며 충격파가 일었다. 얕볼 수 없는 위력.

    뒤로 밀려난 칼리아가 미간을 찡그렸다.

    “형! 내가 막았어!”

    “잘했다, 록키. 다른 기사 놈들은 내가 죽일 테니 너는 칼리아만 맡아라. 나중에 가지고 놀아야 하니 죽이지는 말고.”

    칼리아와 베스파. 그 휘하에 있는 백결 기사단의 발까지 묶였다. 가장 위험한 적인 슬레이를 견제할 인력이 부족했다.

    양손에 단검을 든 슬레이가 고개를 기울였다.

    “생각보다 쉽게 끝나겠군.”

    흐려지는 신형.

    순식간에 전장을 파고든 그가 사각에서 베스파의 목덜미를 노렸다. 기사단장을 죽이면 사기는 완전히 꺾일 터.

    채앵!

    그런데 막혔다.

    “가까이서 보니 더 못생긴 얼굴이군. 기분 나쁜 인간.”

    “……?!”

    카란스의 발길질이 허공을 갈랐다.

    급하게 회피한 슬레이가 눈을 부릅떴다.

    “엘프?”

    카란스는 기만의 얼굴을 해제했다.

    힘을 숨기고 있는 상태에서는 슬레이를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체를 들키지 않기로 약속했으나 형제와 친분이 있는 자를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형제가 싫어할 테니.’

    카란스가 마력을 끌어모았다.

    그에 동조한 숲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습은 나중의 일이었다.

    “역겨우니 어서 죽어라, 쓰레기 인간.”

    엘프와 인간이 격돌했다.

    눈으로 좇기 힘든 일격이 교차했다. 갑작스러운 카란스의 등장으로 인해 슬레이의 신경이 한곳에 집중되었다.

    갑판 위의 전투는 백중세를 이루었다.

    카각. 카가각.

    칼날을 맞댄 슬레이가 흉악한 살기를 드러냈다.

    “에스퍼렌사 후작가가 엘프를 키울 줄은 몰랐는데.”

    “말하지 마라, 인간. 기분 나쁘니까.”

    “소문대로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 넘쳐 나는군.”

    슬레이가 바닥을 박찼다.

    기민한 몸놀림으로 거리를 벌린 그가 단검을 서로 교차시켰다. 칼날에서 스산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궁금하군. 엘프의 목을 자르는 건 어떤 기분일지.”

    대답할 가치도 없다.

    그래도 가벼이 여길 생각은 없다. 카란스는 그에 대응해 정령 마법을 준비했다.

    팽팽한 긴장감.

    서로가 움직이려던 그 찰나였다.

    화아아아아악!

    “뭣…….”

    위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칼리아도, 빈테르트도 예기치 못한 현상에 일제히 하늘을 바라봤다. 벨로스를 폭격하고 있던, 빈테르트의 비행정 위에 빛의 기둥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마력은……!’

    분명히 느껴진다.

    익숙하면서도 전보다 더욱 강대해진 힘이.

    “오셨습니까, 형제여.”

    “……형제? 엘프를 말하는 건가?”

    “너 따위가 알 건 없지만 특별히 하나 말해 주지.”

    카란스가 미소 지었다.

    “네놈들은 이제 죽었다.”

    * * *

    베르덴은 게드슨이 예상한 지역으로 직행했다.

    세 개의 광환을 두른 그는 고작 하룻밤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칼리아의 비행정을 확인했다.

    <순광>

    공간을 이동하자마자 주변을 인식했다.

    낯선 비행정의 갑판과 낯선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베르덴이 서 있는 장소는 빈테르트의 비행정 위.

    가능하면 벨로스로 직행하고 싶었으나, 공간 이동으로 자칫 비행정의 보호 마법진이 붕괴할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었다.

    “…….”

    정적이 내려앉았다.

    모여든 시선들을 무시하고, 비행정의 선수(船首)에 오른 베르덴이 벨로스를 주시했다.

    ‘적대 비행정은 총 세 척. 카란스가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걸 보면, 갑판 위에 있는 놈들이 빈테르트의 주력인가.’

    상황 파악은 순식간에 끝났다.

    뒤에서 금속음과 함께 마력이 느껴진다. 고개를 슬쩍 뒤로 향하자, 빈테르트의 암살자들이 각자의 무기들을 베르덴에게 겨냥했다.

    슬레이의 측근, 케리아가 히죽였다.

    “잿빛 머리…… 네놈이 애셔로군. 설마 제 발로 돌아올 줄이야. 이렇게 칼리아와 같이 잡을 수 있게 되다니, 슬레이 님께서 기뻐하시겠어.”

    저번에 마주했던 암살자들과 비슷한 어조다.

    반드시 자신의 생각대로 되리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깊게 박혀 있다. 베르덴은 그러한 믿음을 부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시선이 비행정의 중앙으로 향했다.

    “동력원은 저쪽인가.”

    오리엔트에 불길이 모여든다.

    숨이 턱 막힐 정도의 마력. 그와 함께 갑자기 대기의 온도가 들끓기 시작했다.

    ‘전격이 아니라 화염이라고?’

    뭐가 됐든 심상치 않다.

    당혹감을 숨기지 못한 케리아가 소리쳤다.

    “당장 막아!”

    마법과 화살이 날아온다.

    그 뒤로 암살자들이 달려들었다. 나름 재빠른 대응이었으나 늦었다.

    <대화재>

    탁.

    스태프와 맞닿은 갑판에 불길이 스며들었다.

    삽시간에 퍼진 열기에 비행정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내부에서 솟구친 화염이 동력원의 역할을 하는 마석과 선장실을 단번에 불태웠다.

    운전을 맡은 암살자가 즉사했다.

    조타 장치마저 재가 되어 버린 비행정이 크게 휘청거렸다.

    쩌저적.

    동력실에서는 마력과 열기가 뒤엉켰다.

    손을 쓸 수도 없이 팽창한 공기가 순간 한 점에 모여들었다. 이내 작은 불씨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막대한 에너지가 발생했다.

    부풀어 오른 선체를 본 케리아가 목소리를 흘렸다.

    “……설마.”

    불길한 예감은 여지없이 적중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비행정이 공중에서 폭발했다.

    화염으로 이루어진 원형의 막이 내부에 있는 모든 걸 깡그리 불태웠다. 그 여파에 구름이 크게 물러났으며 근처에 있던 비행정까지 영향을 끼쳤다.

    당연하게도 선원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

    방금까지 멀쩡히 있던 비행정이 소멸했다.

    그 광경을 가까이서 목격한 모두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칼리아도 베스파도 슬레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 의문의 답이 곧 찾아왔다.

    어느새 아래로 내려온 베르덴이 벨로스 위에 착지했다.

    너무도 급작스러운 등장에 모두가 뭐라 할 말을 잃었다. 침묵 속에서 투명한 벽안이 슬레이를 응시했다.

    “네가 책임자군.”

    쩌엉!

    휘둘러진 오큘러스가 슬레이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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