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37화 (237/366)

237화 약속

관리자에게 가르침을 사사받은 몇 주간의 시간.

그동안 베르덴은 마도왕의 마력 운용법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었다.

그 외의 시간에는 여러 실험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고, 결과를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해 두었다.

‘필요한 과정이긴 했지만…….’

묘한 생소함이었다.

설마 자기 자신을 연구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생각에 잠긴 베르덴은 기록한 결과들을 떠올렸다.

‘먼저, 6위계 마도사로서의 경지.’

첫째, 마력량 증가.

위계가 높아지면서 심장에 깃든 마력이 다시 일부 해금되었다.

이로써 마력량만큼은 초월자에 필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더욱 많은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심장 가득히 들어찬 마력에서 충만감이 느껴진다.

둘째, 마력회로의 확장.

아티팩트, 삼원색의 중심.

각 원소 마법의 특징을 추출해, 마법에 덧씌우거나 합성 마법에 사용할 수 있는 기능, 혼돈은 베르덴의 마력회로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마력회로가 더욱 넓어지고 강인해진 지금, 그 부담이 확연히 줄어든 상태. 아티팩트의 부작용은 이제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와 더해서 마안 또한 이전보다 많은 횟수의 반동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셋째, 쿼드라 캐스팅.

동시에 네 개의 마법을 발동하는 고위 마도사의 기술.

베르덴이 6위계 마도사에 도달하면서, 마법사의 한계인 트리플 캐스팅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마법 전술의 폭은 한없이 넓어졌다.

물론 쿼드라 캐스팅을 통한 합성 마법도 있긴 하지만…… 강력한 위력과 별개로, 쿼드라 이상부터는 합성 효율이 최악 중의 최악이다.

마법에 소모되는 마력이 수십 배 이상으로 증가하는 건 베르덴에게도 탈력감을 안길 정도. 고위계 마법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렇지만 필요한 순간 비장의 수단이 되리라는 건 자명했다.

여기까지가 6위계에 도달하면서 얻은 결과물.

‘그리고 마도의 능력.’

위계의 틀을 벗어난 자유로움을 구사하는, 마도 <무한>.

본래라면 연산을 거쳐 형태를 갖춰야 할 마법을, 베르덴의 생각과 의지만 가지고 마법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관리자의 언급에 의하면 이론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마도라고.

이것이 절반의 마도라니, 훗날 마도가 완성된다면 얼마나 강해질 것인가. 문득 기대감이 들었다.

‘다만 마도를 남발해서는 안 된다.’

강력한 마도임과 동시에 불완전하기에 부담이 매우 크다.

가볍게 펼치면 크게 상관은 없지만, 위력적으로 구현한다면 마력회로와 정신에 겹겹이 부담이 축적된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피로는 차후 회복이 느리다는 것이 큰 단점이다.

위계 마법을 기반으로 사용하면서 마도를 더하는 전술.

그것이 지금의 베르덴에게 있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게 결론이었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의 신체.’

역천으로 재구성된 육체.

결과적으로 베르덴이 바라는 대로 한계 위계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지만, 외모나 심장에 깃든 미지의 마력 등 예상치 못한 변화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의문은 주검의 영광을 토벌하던 중 ‘어째서 루아스교의 기적이 나에게 통하지 않는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부분은 관리자에게 직접 조언을 구했다.

───루아스교의 기적을 받을 수 없다? 그래…… 그렇군. 아예 같지는 않으나, 그와 같은 경우는 세상에서 극소수만에게 해당되는 것이니 그대가 모를 수도 있겠지.

───저와 같은 사람이 과거에도 있었습니까?

───흠, 사람이라. 그대도 알다시피 루아스교는 오로지 인간을 위한 종교다. 그리고 그 고고한 신성력과 기적 또한 반드시 인간 종족만을 위하지. 그렇다면 베르덴. 초월자는 인간일까, 아닐까?

───그 말씀은…… 초월자는 인간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인간이 아니라 단정 짓기보다는, 인간으로서 인간의 범주를 초월했다는 말이 옳겠지. 다시 말해 여신 루아스의 포용을 받을 수 있는 기준점에 서 있다고 보면 될 거다.

관리자의 말에 의하면, 초월에 이른 자에게는 루아스교의 기적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그 정도는 초월자 개개인마다 다르다고.

다만 베르덴처럼 기적이 아예 통하지 않는 경우는 접해 본 적이 없다. 비교 대상이 설령 마도왕 본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어쨌든.

‘내 육체는 인간의 기준을 벗어났다는 뜻이 된다.’

생각해 보면 단서는 있었다.

시설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 스캔을 마친 알파가 언급했었다. 베르덴의 종족이 불명이라고.

또한 마력의 순수성.

카란스가 세계수와 비슷한 순결함이 느껴진다고 했을 만큼, 베르덴이 가진 마력은 자연의 마력보다도 투명했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으니, 인간 외의 종족이 가진 마력 특성도 다룰 수 있는 건가? 어쩌면 마도를 펼쳤을 땐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처럼 흘러가지는 않았다.

엘프의 특징 중 하나인, 직접적인 마력을 통한 신체 강화.

그 능력을 모방하려 했고, 성공은 했으나 터무니없이 효과가 낮았다. 고작해야 2위계 부여 마법 수준.

고위계 부여 마법의 발끝조차 따라갈 수 없었다.

베르덴은 인간이 아니되, 모든 종족을 아우르는 육체를 가진 건 아니라는 반증이었다.

‘말인즉슨, 독자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건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지금으로서 알아낼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이에 대해서는 훗날에 고찰을 이어 나가야 할 문제였다.

생각을 마친 베르덴이 고개를 들었다.

“…….”

몸이 반투명해진 관리자가 보인다.

마력을 최대한 아껴 가며 끌어 온 시간이 끝에 다다랐다는 의미였다. 천천히 계단을 걸어 내려온 관리자가 베르덴에게 발걸음을 향했다.

“베르덴, 그대가 <아케인>의 마력 운용법을 모방할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그렇다 해도 그 성취 속도는 비정상적이군. 본체의 직계 혈족조차 그대 앞에서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겠어.”

“관리자에 비하면 멀었습니다.”

“확실히 나에 비해서 멀고 부족하지. 그럴 게 아니라 반드시 그래야만 해. 벌써 <아케인>을 마스터하면 본체의 체면이 말이 아닐 테니. 심지어 그대는 <아케인>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대의 향상심은 이해하는 바이나, 자신의 수준을 인정하고 만족할 줄도 알아야 이로운 법이다. 끝이 없는 진보는 영원의 굴레가 되어 그대를 속박할지도 모르니.”

언어 속에 진중함이 담겨 있다.

“지금의 그대라면, 세상에 대적할 존재가 그리 많지는 않을 거다. 그대가 갖춘 아인베르도 그렇지만 이치를 벗어난 마도와 <아케인>. 그리고 그 성신 마법이라는 것까지 있으니…… 초월자라고 해도 결코 가벼이 상대할 수 없겠지.”

이윽고 베르덴의 앞에 관리자가 다가섰다.

“베르덴, 그대의 목적은 여전히 변함이 없나?”

“변함없습니다.”

“그대의 복수심은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그대는 마탑의 실험체가 아니라 강대한 마도사다. 바란다면 어디에서든 영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터. 그런데도 목숨을 걸고, 초월자가 다스리는 마탑 전체를 무너뜨릴 것인가? 그 과정에서 죽을 수도 있을 텐데.”

“제 선택은 같습니다.”

“어째서지?”

“그게 제 삶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베르덴이 즉답했다.

꺾이거나 휘어지지 않는 기세가 담긴 단호함이었다.

차가운 분노와 평생의 증오.

하나 공허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벽안을 마주한 관리자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언젠가 복수를 이루고 말겠군. 그리고 그 바람은 필연적으로 그대의 정신적 깨달음과 관련이 있을 테지. 이건 그대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니 뭐라 해 줄 말은 없지만, 그 외적으로 하나 조언하지.”

관리자가 베르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반드시 혼자서 이뤄야 한다는 것에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물며 마탑을 상대한다면 말이지.”

“동료를…… 만들라는 말씀입니까?”

“동료를 두어도 되고, 그대가 직접 집단을 이끌어도 되겠지. 둘 다 의미는 비슷하지만 말이야. 그대에게 끔찍한 삶을 안겨 준 마탑인 만큼, 그대와 비슷한 복수심을 품은 자들이 있을 테니 함께한다면 의미가 있겠지.”

“…….”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관리자로서 존재했다. 그리고 그대를 만나고 난 후, 문득 일생을 떠올려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군…… 혼자는 고독한 법이라고. 뭐,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어디까지나 그대의 결정에 달려 있지만.”

관리자가 가볍게 한숨을 털었다.

청금색의 눈동자가 미약하게 반짝거렸다.

“베르덴, 그런 의미에서 하나 약속해 다오.”

“말씀하십시오.”

“이 시설은 언젠가 그대에게 필요하게 될 거다. 시설에서 연구하고 있는 물건들은 아주 유용하니. 그러니 알파를 버리지 마라.”

관리자가 말을 이었다.

“그대도 알겠지만 알파 또한 본체의 기억을 일부 물려받았다. 그래서 극히 희미하지만…… 마음도 지니고 있지. 그대를 지키기 위해 선뜻 목숨을 내걸었던 것처럼. 분명 수백 년 만에 찾아온 창조자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일 터. 본인은 모르고 있겠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겠나?”

이해한다.

베르덴이 나지막이 답했다.

“관리자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 시설은 제 것이라고. 저는 제 걸 버리지 않습니다.”

“그랬었지. 그래, 그거면 되었다.”

관리자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대는 이만 갈 길을 가거라. 소멸의 순간은 홀로 맞이하고 싶으니.”

관리자가 돌아섰다.

서서히 작아져 가는 그의 뒷모습은 더욱 희미해졌다. 지금 이 순간이 그와의 마지막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관리자,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인가?”

“왜 저에게 호의를 베푸신 겁니까.”

관리자는 가르치는 도중 말했었다.

베르덴이 얻은 것은 승자로서 마땅히 쟁취해야 할 것이라고.

그리고 <아케인>을 가르친 건, 어쭙잖게 그 편린을 따라 할 바에야 제대로 가르쳐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해서라고.

하지만 그것이 진짜 이유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관리자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서로의 시선이 교차했다.

“이미 대답을 마친 질문이로군.”

걸음은 더욱 멀어졌다.

이윽고 관리자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천천히 한 발짝씩. 처음에도 그러했듯 마지막 또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것이었다.

“감사했습니다, 관리자.”

작별 인사를 건넨 베르덴 또한 등을 돌렸다.

관리자는 부서진 왕좌로, 베르덴은 관리자실 밖으로 향했다.

각자의 발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그런 와중에도 둘은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시작과 끝이었다.

* * *

베르덴은 외딴 공간에 들어섰다.

시설에 왔을 때와 같은 공간 이동진이 시야에 비쳤다. 그 옆에서 알파가 한 개의 지팡이와 한 개의 스태프를 양손에 든 채, 베르덴을 맞이했다.

[베르덴 폐하. 공간 이동진 준비를 마쳤습니다.]

“고맙군. 그런데 그건…….”

[관리자의 부탁. 베르덴 폐하에게 전달하라고 했습니다.]

스태프와 지팡이.

분명 방주에서 온 도전자의 무기들이었다. 관리자와의 마법전 도중에 소실된 줄 알았는데 남아 있었던 건가.

‘나중에 방주에게 전달하면 되겠군.’

물론 직접 쓸 생각은 없다.

좋기는 해도 오리엔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리고 시중에 내다 파는 건 논외.

그 정도로 빈궁하지도 않기도 했지만 그럴 생각도 들지 않은 게 이유였다. 1차 동력실에서 챙긴 마법사의 유품과 같이 리스너에게 건네주는 게 좋겠지.

베르덴은 공간가방에 그들의 유품을 보관했다.

[그리고 하나 더. 베르덴 폐하에게 전달할 물건이 있습니다.]

알파가 푸른 사파이어를 꺼냈다.

리스너가 주었던 것과 같은 형태의 것이었다.

[내부에 자동 공간 좌표 기록 기능 추가했습니다.]

즉, 연구를 완성하면 신호를 보내겠단 뜻이었다. 과거 마도왕에게 그러했듯이 말이다.

베르덴이 주저 없이 사파이어를 챙겼다.

“알겠다. 그날을 기다리지.”

[이번엔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알파가 외눈을 빛냈다.

고개를 끄덕인 베르덴이 공간 이동진 위에 섰다. 알파가 장치를 조작하자, 보라색 빛이 발광하며 마력이 일었다.

알파가 작은 팔을 흔들었다.

[조심히 가십시오. 베르덴 폐하.]

“그럼 다음에 보도록 하지, 알파.”

[다음에. 약속. 입니까?]

약속이라.

“그래, 약속하지.”

화아아아악!

빛이 공간을 메운 끝에, 베르덴과 함께 공간 이동진이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 적막함이 감돌았다. 외로운 공간 속에서 알파가 하염없이 허공을 바라봤다.

[약속.]

이내 알파가 총총걸음으로 시설로 돌아갔다.

연구의 완성을 위해.

그렇게 베르덴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 * *

“……떠났나.”

관리자는 왕좌에 앉아 베르덴이 시설을 나가는 걸 인지했다. 고작 한 사람이 사라졌을 뿐인데, 시설의 고요함이 생소하게 다가왔다.

그런 정적 속에서 관리자는 생각했다.

베르덴이란 존재.

그가 개척한 무한의 마도.

초위 마법을 부순 검붉은 마력.

얼마 전부터 이어진 고찰이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

“……세상의 특이점.”

본인도 정확히 자각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베르덴은 세상의 법칙을 파괴했다.

하늘이 부여한 한계를 스스로 깨부쉈고 그의 마도는 무한을 내포하는 시점에서 이치를 벗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의 검붉은 마력은 그야말로 파멸이다.

세상의 기준을 역행하는 이물(異物). 이르자면 역천의 존재라고나 할까.

“하, 본체가 보면 뭐라고 할까. 몹시 궁금하군.”

어쩌면 본체가 바라던, 뭔지 모를 목적에 부합하는 자일지도 모른다. 뭐, 아닐 수도 있고. 일개 분신이 가진 한계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하나는 장담할 수 있다.

베르덴의 존재는 이 세상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킬 거라는 걸. 그렇게 시대는 역사상 유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거라는 걸 말이다.

관리자의 마력이 흩어진다.

명멸하는 푸른빛. 손끝부터 육체가 사라져 갔다.

소멸을 앞두고 있지만 전혀 아쉬움은 없었다. 무의미한 분신의 삶, 그 마지막에는 의미를 남겼으니까.

더 이상 관리자는 고독하지 않았다.

“……무운을 빌지, 베르덴.”

이내 마력의 빛이 사라졌다.

관리자가 사라진 공간에는 무너진 왕좌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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