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경지
“음식을 섭취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이게 맛을 느낀다는 거였나. 기억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군.”
관리자는 대놓고 맛을 즐겼다.
마법사의 관점에서는 비효율적이었다. 분신은 영양이 전혀 불필요한 몸이었으니까.
“음, 이 육포하고 와인. 본체의 기억과 비교해 봐도 맛이 썩 괜찮도다. 베르덴이여, 그대도 나름대로의 미식을 추구하나 보군.”
관리자의 말투는 너무도 태연했다.
고위계 마법과 <아케인> 그리고 초위 마법으로 베르덴을 죽이려 했던 분위기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본래 <분신>은 6위계 환영 계열에 속한 마법이다.
상대의 감각을 교란시키는 속임수. 마력으로 이루어진 형체는, 마법을 연산하면서 내린 동작들을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분신은 결코 인간처럼 행동할 수 없다.
숙련도를 쌓아 정교한 분신을 만든다고 한들, 5위계 이상의 마법을 쓰게 만들 수는 없다. 독자적인 사고 능력은 당연히 무리다.
불가능한 존재.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납득이 된다.
‘마도왕이니까.’
마도 <근원>.
그것은 원소 계열에 특화되어 있었지만 마도왕의 연구에 의해 철저히 개량되어 여러 계열로 파생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마법과 마법진, 마법 이론 그리고 마법 물품은 전설적인 업적.
마도왕으로 인해 마법계의 발전이 100년 앞당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특이한 분신쯤이야 놀라운 축에도 속하지 못한다.
잠시 후 마도왕이 요기를 마쳤다.
맛과 식감의 여운에 만족한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몸은 괜찮은가?”
“물어보시는 게 늦지 않았습니까.”
“애초에 죽거나 불구가 될 정도는 아니었으니. 그나저나 마법사답지 않게 튼튼한 육체더군. 그대와 같은 수준으로 몸을 단련한 마법사는 역사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겠지.”
“관리자께서 직접 저를 치료하신 겁니까?”
“알파를 비롯한 골렘들은 이런 쪽에 지식이 없다. 물론 그대도 보다시피 나 또한 그리 자신 있는 분야는 아니지.”
어쩐지 처치가 엉망이긴 했다.
“그리 불평하지 말도록. 내 본체가 다칠 일이 어디 있다고 굳이 응급처치를 배울까.”
그건 그렇다.
관리자와의 마법전에서 베르덴은 사선을 넘나들었다. 분신이 이럴진대 9위계 초월자인 진짜 마도왕은 얼마나 강하다는 것인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니, 상상조차 하기 싫다고 해야 할까.
‘그나저나…….’
베르덴이 물끄러미 관리자를 바라봤다.
마법전에서 보였던 위엄이 사라진 그는…… 뭐랄까. 마도왕의 분신이라고 하기에는 묘하게 친근했다.
굳이 말하자면 인간미가 있다고 할까.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챈 관리자가 작게 웃었다.
“그대는 지금까지 마도왕이라는 전설적 존재를 자신만의 상상 속에서 구축했을 터. 서적으로만 혹은 이야기로만 접했으니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 실로 마도왕에 어울리는 이미지로 한정 지었을 거고. 그러니 실제와 괴리가 있을 수밖에.”
“괴리……?”
“본체는 언제나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지 않았다. 그는 초월자 중의 초월자였지만 기반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것이었으니. 기호도 분명했고 마도왕으로서의 책무나 사명감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마법에 미친 자답게 호기심이 많았고 제멋대로였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만 봐도 그렇고.
작게 중얼거린 관리자가 고개를 저었다.
“뭐, 본체는 그랬다. 마도왕이 어떤 성격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그보다는 베르덴, 그대와는 다른 주제에 대한 대화를 나눠 보고 싶은데.”
“그래서 제가 일어나길 기다리신 겁니까.”
“그대를 관리자실에 옮긴 후 벌써 나흘이 지났다. 안 그래도 형체를 유지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데 알파 때문에…… 음, 어쨌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대의 몸 상태에 대해서다. 이를테면 마도왕으로서의 호기심이자 조언이라고나 할까.”
몸 상태?
“딱히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만…….”
“정확히는 부상이 아니라 마력회로를 말하는 거다. 한번 그대 자신의 경지를 확인해 보도록.”
베르덴이 곧장 내면에 집중했다.
관리자가 말한 대로 전신의 마력회로를 관조했다. 이내 그 수준을 파악한 베르덴이 눈을 부릅떴다.
“6위계?”
벽을 넘었다.
5위계 상위에 오른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데 이상하다.’
6위계라는 건 분명히 느껴진다.
한데 세부적인 경지를 읽을 수 없다. 하위인지 중위인지 상위인지. 사이사이에 있는 계단이 무너져, 각 층이 하나라도 된 것만 같다.
어떻게 딱 잘라 경지를 확신하기가 너무도 애매했다.
‘두 번째로 역천의 마법진을 기동한 영향인가?’
사실 그것밖에 원인이 없긴 하지만…… 여전히 경악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의 1위계가 상승하게 된 셈이니.
“그대 본인이 봐도 이상할 거다. 그렇게나 급격한 변화를 꾀한 사례는 본체의 기억과 상식에는 없다. 설령 그것이 가능했다고 해도, 육체가 견디지 못하고 진즉에 터져 버렸어야 정상이겠지.”
하지만.
“이론상 가능한 경우가 딱 하나 있다.”
관리자와 베르덴.
서로의 시선이 교차했다.
“베르덴이여, 그대는 과거 6위계, 아니 그 이상의 경지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 * *
베르덴은 역천을 위해 마탑의 동력원을 이용했다.
동력원의 선을 뽑아, 그 연결부를 자신의 심장에 직접 꽂아 넣은 것이다. 그렇게 다리를 잇고는 순환, 즉 동력원의 일부가 되었다.
그 감각은 여전히 기억 속에 새겨져 있다.
인간이란 종을 초월한 것 같은 기분. 자신의 의지로 무한의 마력을 움직이는 전능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
베르덴이 그때를 떠올리며 입을 닫았다.
이 상황에서의 침묵은 곧 긍정이나 다름없었다.
관리자가 말했다.
“짐작가는 것이 있나 보군.”
“……말해야 합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대의 몸에 새겨진 그 마법진의 영향이겠지.”
관리자는 베르덴을 치료하던 도중 역천의 마법진을 자세히 살폈다.
마도왕에게조차 미지.
며칠에 걸친 고찰을 통해서야 겨우 그 본의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관리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마력회로를 확장시키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더군. 단순히 육체의 변화를 넘어 종국에는 육체 자체를 개변하는, 세상의 이치와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다.
육체 개변은 곧 태생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의미와 같았으니까. 이건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할 발상이자 행동이었다.
심지어 본체인 마도왕조차도 말이다.
“그 마법진. 그대가 직접 창시한 것인가?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
“미쳤군, 미쳤어. 진심으로 미쳤다는 말밖에 나오지가 않는구나.”
정상도 비정상도 아니다.
그러한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그야말로 광인이 만들어 낸 결과물. 스스로의 목숨을 완전히 도외시한 산물이었다.
육체를 재구성하는 것에 확률은 없었다.
천만 명이 시도한다면 천만 명이 죽게 될 터다. 그 이상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불가능의 극치였다.
“그런데 그대는 성공했군. 그리고 아마 그 과정에서 초월자에 필적하는 경지를 잠깐이나마 경험한 것일 터. 그대가 지닌 압도적인 재능 또한 그 결과 중 하나일 테지.”
“답하지 않아도 이미 확신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이래 봬도 마도왕의 분신이니까. 마법적 능력은 부족해도, 직관력과 통찰력은 본체와 그리 다를 바가 없다. 그보다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스스로 얻은 재능이라…… 그대는 알면 알수록 미지로 가득하군. 그런 의미에서 질문해도 되겠나, 베르덴?”
“그러시죠.”
“왜 그 마법진을 만든 것인가?”
어째서냐라.
그야 하나뿐이 더 있겠나.
격렬한 감정을 떠올린 베르덴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상대는 사라지게 될 분신이다. 이곳에서의 대화가 바깥으로 나갈 일은 전무하다. 그렇기에 애써 숨기지 않았다.
“복수를 위해서입니다.”
“복수라…… 뜻밖이군. 하나 그렇기에 이해가 돼. 그러한 명확한 목적이 존재하지 않고서야, 그만한 정신력과 집념을 가질 수는 없을 테니.”
관리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무슨 복수지? 그대의 가족이나 친구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건가? 아니면 가문 전체의 몰살?”
그럴듯한 동기를 나열했다.
깊은 복수심은 본디 누군가의 목숨과 관계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베르덴의 대답은 예상을 아득히 벗어났다.
“마탑에서 인체 실험을 당했습니다.”
“……?!”
관리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법에 미친 마법사들이 벌이는 인체 실험이 얼마나 끔찍한지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그 광기는 고대에서도 잔혹함의 극단이었다.
마도왕이 직접 그러한 마법사들을 토벌한 적이 있기에 자세히 알고 있었다.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이내 관리자가 고개를 숙이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런 일이…… 미안하군.”
관리자는 숙연해졌다.
제정신 박힌 마법사라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정작 본인인 베르덴은 담담했지만.
삽시간에 차가워진 분위기.
관리자가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그러니까 말인즉슨 그대의 몸은, 그때의 경험을 다시 걷고 있는 거다.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가 본 적 있는 길이기에 보다 더 빨리 적응하고 진화하는 것이지. 그리고 이건 내 사견이지만…… 사실 지금 그대의 육체라면 7위계에 올라도 이상할 건 없다.”
7위계……?
베르덴이 눈을 깜빡였다.
7위계라니. 훗날이면 모를까, 당장은 현실적으로 와닿지가 않는 경지였다. 힙겹게 생각을 정리한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 말씀은, 7위계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겁니까?”
“그렇다. 바로 이 문제지.”
관리자가 자신의 이마를 톡톡 두들겼다.
“그대는 아직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 * *
본래 마도란 마법사의 본질이다.
최소 5위계에 이른 자가 깨달음을 얻어 개척하는 것이 바로 마도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고, 베르덴은 마도사였다.
그렇기에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마도사가 되었는데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니.
“지당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베르덴, 여기서 마도를 보여 줄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베르덴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여러모로 삐걱거리기는 했지만 고통은 감내했다. 숨을 들이켜며 정신을 집중시켰다.
마도 <무한>.
베르덴의 검지손가락 끝에 중력의 나선이 탄생했다.
이건 어떤 위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베르덴의 의지이자 심상을 그대로 구현한 마력이며 마법이었다.
“역시…….”
관리자가 턱을 쓸었다.
청금색 눈동자가 핵심을 꿰뚫었다.
“그대는 진실로 마도사다. 그러나 그대의 육체는 이미 저 너머로 향한 것과 달리 정신은 그대로이기에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기에 마도 또한 불완전하지. 이르자면 ‘절반의 마도’라고 할 수 있겠군.”
“……!”
눈가를 씰룩인 베르덴이 즉답했다.
“하지만 저는 분명 마도를 봤습니다.”
“마도를 봤다……? 설마, 그대는 마도의 심연을 기억하고 있는 건가?”
더없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베르덴에게 펼쳐진 무수한 마도들이 말이다. 그러한 설명에 관리자의 표정이 더욱 진지하게 바뀌었다.
“본래라면 그 심연은, 마도를 걷는 즉시 머릿속에서 잊힌다. 워낙 찰나이기도 하고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이기에 그렇지. 그 순간을 기억하는 건 본체처럼 특별한 존재들 외에는 없다. 한데 다수의 마도라…….”
말끝을 흐렸다.
생각이 보다 더 깊어졌다.
“그대는 심연에서 어떤 길도 택하지 않았지. 하나 그것 또한 선택이고, 하나의 마도라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 다시 정리하자면───”
베르덴의 몸은 특별하다.
육체와 정신이 조화를 이루어야 개척할 수 있는 마도를, 오직 한계를 넘어선 신체의 성장만으로 이룩한 것이다.
그 절반이라고 해도.
관리자가 이를 확신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베르덴, 그대는 초위 마법을 막아 낸 순간을 기억하는가?”
“기억, 나지 않습니다.”
“그때 나는 보았다. 의식을 잃은 그대에게서 발현된 검붉은 마력을…… 그것은 분명히 내 태초의 불꽃을 완전하게 ‘파멸’시켰다.”
……그 위압감이란.
“검붉은 마력…… 그럼 그것이 제 진정한 마도란 말입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사실 정황상으로 봐도 타당하지. 아무래도 아득해진 정신이 일시적으로나마 육체와 조화를 이뤘기에 발현된 모양이니.”
베르덴이 주먹을 쥐었다.
경지를 정확하게 특정할 수 없는 6위계와 절반의 마도라니.
“그렇다면, 제 경지는 대체…….”
“글쎄,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 그래도 굳이 구분을 짓자면───”
육체는 마법적으로 완성되어 있다.
정신적 깨달음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초월자가 될 수 있는 상태.
마도왕이 나지막이 말했다.
“준(準)초월자라고 할 수 있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