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승리
베르덴이 눈을 떴다.
칠흑 같은 어둠만이 시야에 가득했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으며 몸을 일으키자, 딱딱한 돌조각들이 잔해 더미에서 굴러떨어졌다.
급하게 숨을 들이마신 그가 상체를 들썩였다.
‘어떻게 된 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력을 무리하게 쥐어짜 내다 의식이 흐릿해진 것이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었다. 촉각이 제대로 기능하는 걸 보면 죽지는 않은 것 같은데.
제정신을 차리는 데 애를 쓰고 있자 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리자.’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확신한 대로 역천의 부작용은 없었지만 탈력감이 전신을 옭아맸다. 마력 또한 완전히 소모되어 마력 고갈이 일어나고 있다.
전능감을 발현했던 심장은 잠잠했다.
그러나 쓰러져서는 안 된다.
후웅.
날아온 오리엔트를 손에 쥐었다.
그것을 지팡이로 삼아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기진한 상태임에도 투지와 혈기를 드러내는 베르덴의 모습에 관리자가 기가 찬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몸으로도 여전히 싸우려 하는 건가.”
“아직, 승패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하, 젊은 나이에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그리도 정신력이 강인한 건지. 이제는 놀랍다 못해 질릴 정도로군.”
관리자의 손에서 스태프가 사라졌다.
마력을 회수해 형체를 지운 것이다. 이전에 보였던 적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관리자가 독백했다.
“……나는 마도왕이라는 본체에서 파생된 마법적인 존재다. 아무리 애를 써도 본체의 인격을 거부할 수 없는 가짜이자, 명령만을 지키다가 언젠가 사라지게 될 분신이지.”
관리자는 소모품이다.
그런 그에게는 의무 외의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마법을 구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력이 소모되고 나서야 비로소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시설을 지킬 힘이 없었기에 분신의 사명에서 벗어난 것이다.
처음으로, 관리자는 알고 싶었다.
“젊은 마법사여, 그대의 이름을 듣고 싶다.”
베르덴은 스스로를 애셔라고 소개했었다.
당연하게도 관리자가 묻는 건 그러한 가명이 아니었다. 마탑주나 관리자나, 그들에게는 이름을 숨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서 초월자란 거겠지.
숨을 몰아쉰 베르덴이 오랜만에 자신의 본명을 입에 담았다.
“베르덴, 입니다.”
“베르덴…… 베르덴…….”
관리자가 그 이름을 되뇌었다. 잊지 않으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던 그가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아주 미약한 존재감이 빛을 발했다.
“그대도 보다시피 지금의 나는 시설을 수호할 힘이 없다. 기껏해야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게 전부. 저위계 마법이라도 쓰려다 까딱하면, 그것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소멸하고 말 터.”
관리자가 선언했다.
“베르덴이여, 그대가 나를 상대로 승리했음을, 이 자리에서 확언한다.”
“…….”
“이제 이 시설은 그대의 소유다. 본체에게 맹세하건대 이후로 어떤 형태로든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임을 첨언하지.”
승패가 확정되었다.
시설의 관리자가 패배를 인정함으로써 승자는 베르덴이 되었다. 그것이 진심이자 현실임을 깨닫자 긴장된 근육이 탁 풀렸다.
억지로 붙잡던 의식의 끈이 점차 느슨해짐을 느꼈다.
관리자가 눈을 감았다.
“그러니 이만 쓰러져도 좋다.”
쿠웅.
베르덴의 몸이 앞으로 기울며 힘없이 쓰러졌다. 손에서 벗어난 오리엔트가 바닥을 구르다 툭 멈춰 섰다.
물론 죽은 듯이 기절했을 뿐 생명력이 다한 건 아니었다. 귀를 기울이니 작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관리자가 안도했다.
분신이라 생리적 기능은 없음에도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만큼 오늘 있었던 하루가 다사다난했다는 것일 터.
그래도 결국 결착이 났다.
왠지 모르게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끼기기기기기긱!
관리자실의 문이 개방되었다.
본인의 허락도 없이. 억지로 연 탓인지 문의 기능이 크게 손상되었다. 그 너머에서 골렘들이 나타났다.
관리자가 눈을 깜빡였다.
“……알파?”
[마도왕 폐하 생존 확인. 구출 준비. 관리자는 제가 맡겠습니다.]
알파가 베르덴을 지키듯 섰다.
다른 골렘들이 쓰러진 베르덴을 수습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
관리자는 알파를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면 알파가 한 손으로 떠받치고 있는 것에.
“그대…… 지금 뭘 들고 있는 것인가?”
[소형 동력원입니다.]
2차 동력실에 있는 동력원.
그것이 알파의 손에 장착되어 있었다.
“그걸로 출력을 과열시켜 문을 강제로 연 것인가? 도대체 어째서…….”
[정지. 정지. 관리자는 움직이지 않을 것을 권고. 동력원을 폭발시키면 마력의 구성체인 관리자에겐 치명적입니다.]
관리자는 황당했다.
동력원을 폭발시키겠다고? 정황으로 보자면…… 베르덴을 구하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보인 건가?
“알파여, 그렇게 되면 그대는 죽을 텐데.”
[상관없음. 마도왕 폐하의 안위가 최우선. 관리자 정지. 조금이라도 마력이 감지된다면 유예는 없습니다.]
알파는 단호했다.
타협은 없다는 듯 동력원을 흔들었다.
관리자가 짧은 수염을 어루만졌다.
놀라운 걸 넘어 몹시 신기했다. 자폭으로 협박이라니. 지난 500년이 넘도록 알파가 이런 이상 행동을 보인 적은 없었는데.
‘하기야 본체로부터 기억을 받은 건 알파도 마찬가지니.’
물론 사고를 담당하는 기억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변화는 변화였다. 원인은 당연하게도 베르덴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관리자가 말했다.
“그렇게 으름장 놓을 필요는 없다. 이미 나에게 뭔가를 할 만한 마력은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스캔 중…… 마력량 확인. 관리자의 말은 진실입니다.]
“그렇겠지. 그리고 나는 이미 베르덴…… 아니, 마도왕 폐하에게 더 위해를 가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니 어서 저 폐하를 옮겨라. 죽을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이대로 방치해 두는 건 여러모로 옳지 않을 테니.”
알파가 고민했다.
동력원과 관리자를 바라보다가 이내 외눈을 번뜩였다. 긍정이라고 판단한 관리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파여, 더는 걱정 말고 안심해도 좋다.”
[…….]
“폐하는 무사하니 동력원은 이만 내려놓도록.”
[…….]
“놓으라고. 그거 터지면 다 죽는다.”
대치는 조금 더 이어졌다.
* * *
오랫동안 터전으로 삼은 페르페르 주점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그래도 페르네는 우울하기는커녕 활기에 가득 차 있었다. 그녀가 모시고 있는 마법사 덕분에 이전보다도 더 크고 화려한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설계는 어떤 식으로 하지? 인테리어는 또 어떻게 꾸며 볼까?
아니, 이참에 정보상하고 분리해서 아세른 제일가는 주점으로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지낼 곳이야 새로 마련하면 되는 거고.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이었다.
정보상 페르네는 새로운 장난감을 선물받은 아이처럼 헤실거렸다.
……얼마 전까지는.
슬론의 깊은 숲.
간이 오두막 안에 몸을 숨긴 페르네가 조심스레 물었다.
“카란스 씨, 오늘은 어떤가요?”
“어제하고 같다. 외부인은 감지되지 않는다.”
지붕 위에 누운 카란스가 흥얼거리며 대답했다.
위험도가 높은 아인종이 도사린 숲이라고는 하나 가디언 엘프에게는 제집이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도시에 있었을 때보다도 즐거워 보였다.
맛 좋은 음식을 기대하기는 어렵긴 해도.
그런가요. 그럼 다행인데…….”
페르네 한숨을 내쉬며 턱을 괴었다.
코끝을 간질이는 특유의 풀 냄새. 멀리서 불길하기 짝이 없는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생소한 환경에 어깨를 움츠렸다.
손을 휘저어 머리칼을 헝클어뜨렸다.
‘하아,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왕국에 내전이 터졌다.
2왕자, 3왕자 연합과 1왕자 간의 혈전. 설마설마하던 물리적인 왕위 다툼이 일어났단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런 내전을 촉발시킨 원인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고.
그래도 동요는 오래가지 않았다.
아세른은 내전 영향이 적은 편이기도 하고, 그녀가 손을 잡은 에스퍼렌사 후작은 대표적인 중립 귀족이니.
내전에 휘말려 상대 진영의 정보를 모으라든가, 암살을 의뢰하라든가 같은 요구는 당연하게도 없었다.
이렇게 보면 내전 자체는 당장 페르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그다지 주지 못했다.
문제는 로아프라였다.
암흑가를 지배하는 빈테르트, 그 암살자들이 페르네를 쫓고 있다.
붙잡힌 정보원이 정기 보고에 아무 일 없다는 연락을 보내면서, 숨겨진 암호문으로 추적을 경고해 주었기 때문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덕분에 카란스에게 도움을 받아 진즉에 숲으로 피신했다.
그 정보원은 어떻게 됐을까. 이미 죽었겠지.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내심 루아스에게 기도하며 애도를 표했다.
‘그런데 왜 빈테르트가 애셔 님을 쫓는 거지?’
생각해 봐도 당최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도 불순한 목적임은 분명하겠지. 지금은 원인을 파악하는 것보다 대처가 더 중요하다.
‘에스퍼렌사 후작가로 정보원을 보내긴 했지만……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빈테르트는 가장 먼저 라인즈로 가는 길목을 감시하고 있을 테니. 발각되지 않을 정도로 우회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게 유일한 도움의 손길이다.
‘아니면 애셔 님이 돌아오시거나.’
물론 그럴 확률은 희박하다.
말로만 듣던 마도왕, 그 무덤에 간 이상 무사히 돌아올 수 있다고 장담조차 할 수 없다. 함정에 당해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도왕의 망령과 대차게 싸우고 있을 수도.
‘뭐가 됐든 간에 그 사람이 죽는 건 상상이 안 가지만.’
어쨌든 지금은 추적을 피하며 자연에서 살 수밖에. 마침 숲의 주민인 엘프가 페르네의 곁을 지켜 주고 있기도 하니.
다른 정보원들도 흩어지라고 했으니 잘 숨어 있을 거다. 혹시 몰라 동부 늪지대 부근에 정보원을 심어 놓기도 했고.
“블루야, 애셔 님은 무사히 돌아오시겠지?”
곁에 있던 블루가 반짝였다.
확고한 긍정이 담긴 빛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인간. 형제는 아무 일 없이 돌아올 거다.”
천장에서도 같은 의견이 들려왔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페르네가 시선을 돌렸다.
오두막의 창 너머로 음산한 숲이 보였다. 그 안에 도사린 어둠은, 마치 읽을 수 없는 미래처럼 캄캄했다.
* * *
고아원에서의 삶은 평범했다.
그때는 베르덴도 마냥 천진난만한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보다 고집이 특이할 정도로 세긴 했지만 아무튼.
그러던 어느 날, 마법을 목격했다.
전직 종군 마법사였던 이웃 할아버지의 손에서 피어난 작은 불꽃. 고아들의 구경거리에 불과한 용도였지만 베르덴에게는 다르게 다가왔다.
갖고 싶다.
베르덴은 마법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떼를 써도 할아버지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어린 나이라는 특권을 빌려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어째서 마법을 알려 주지 않았던 걸까.
단순히 귀찮다거나 제자에게만 전수해야만 한다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베르덴을 바라보고 있는 표정에는 측은함이 묻어나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이웃 할아버지는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한계 위계가 1위계라는, 베르덴의 별 볼 일 없는 재능을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다시 묻고 싶다.
아직도 같은 생각이냐고.
* * *
베르덴의 의식이 각성했다.
깨끗한 벽안에 낯선 천장이 비쳤다.
“큭…….”
팔을 움직이려 하자 전신에서 격통이 일었다.
힘겹게 턱만을 당겨 아래를 내려다보자 돌돌 말린 붕대가 몸 곳곳을 압박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포션의 흔적도 보인다.
누가 했는지는 몰라도 솔직히 치료…… 라고 하기에는 볼품없는 처치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건가.’
부러진 뼈가 잘못되지도 상처가 곪지도 않았다.
체력도 일부 돌아온 데다가 바닥을 드러냈던 마력도 회복하고 있다. 뭐, 아주 조금이지만. 감각으로 판단한바, 지친 육체는 제대로 회복 중이었다.
리커버리 팔찌가 있었다면 더 수월했겠지만, 손목이 허전하다. 아무래도 마법전의 여파에 부서진 모양이었다.
악세서리 수준의 내구성이니 당연한 건가.
베르덴이 한숨을 털며 근육에 힘을 풀었다.
‘그보다.’
눈동자를 옆으로 향했다.
“옆에서 뭐 하고 계시는 겁니까?”
“그대가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었지.”
관리자가 최고급 육포를 오물거렸다.
그리고 한 손에는 와인이 병째로 들려 있었다. 상당히 눈에 익은 형태였다.
그야 그럴 수밖에.
둘 다 출처가 베르덴의 공간가방이었으니까.
베르덴의 시선을 받은 관리자가 와인병을 흔들었다.
“그대도 한잔할 텐가?”
“…….”
베르덴이 눈을 감았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한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중상자에게 음주는 금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