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31화 (231/366)
  • 231화 마도 (1)

    고위계 원소 마법에는 동물 형태를 띤 마법이 존재한다.

    단순히 형태만을 모방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가진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재현한 것이다. 그러한 마법들이 베르덴의 눈앞에 펼쳐졌다.

    콰앙! 콰앙!

    얼음 독수리가 날아가 자폭했다.

    한기를 견디고 나아가자 벼락의 그물이 펼쳐졌다. <어스 클로>로 찢어발기고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이번에는 뱀인가.’

    대지를 육체로, 홍염을 영혼으로 가진 용암의 뱀.

    압도적인 위압감을 가진, 불과 대지에서 태어난 마법이 입을 쩍 벌리고 돌진해 왔다.

    베르덴의 사고가 가속했다.

    줄곧 유지하고 있던 집중력이 풀릴 때쯤이 되었지만 정신력으로 유지했다. 죽음의 경계선에 올라서자 정신과 육체가 하나가 된 듯한 감각이 일었다.

    <아웃버스트>

    응축된 바람을 폭발시켰다.

    충격을 버틴 베르덴이 비행을 제어했다. 뱀을 스치듯 피한 그가 곧장 관리자에게 쇄도했다. 몸 전체를 회전시켜 오리엔트의 끝에 더욱 파괴력을 실었다.

    쩌어어엉!

    스태프에 막혔다.

    그리고 이미 관리자의 보호막 또한 재생성이 가능한 상태.

    그래도 상관없다.

    거리는 좁혀졌으니 이제 물고 늘어지면 된다. 관리자가 강력한 마법을 시전할 기회를 줘서는 안 된다.

    전투 감각을 온전히 발휘한 베르덴은 폭풍이 되었다.

    오리엔트의 충격파와 원소 마법을 불규칙적으로 섞으며 관리자를 몰아쳤다. 피해가 여러 번 반복되자 보호막이 작게 일그러졌다.

    전력이 통한다는 반증이었다.

    베르덴과 스태프를 맞댄 관리자가 말했다.

    “그대는 근접전에 자신이 있나 보군. 내 보호막을 부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마법을 뚫고 오다니. 확실히 그대의 감각과 판단력으로는 효과적인 전술이겠지.”

    “……?!”

    터엉!

    순간적인 기교에 베르덴의 자세가 무너졌다.

    “하지만 그대가 읽었던 마도왕에 대한 문헌에는 그리 자세한 정보가 적혀 있지 않았던 모양이군. 마법전을 포함해 마도왕에게 약점은 없다고. 그것이 근접전이라고 할지라도.”

    관리자가 다가왔다.

    백색 스태프가 뒤늦은 잔상을 그렸다. 눈속임과 실체가 아무렇게나 뒤섞인 현란한 움직임은 감히 예측할 수가 없었다.

    <육체증폭>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 관리자 또한 부여 마법으로 자신의 신체 능력을 강화한 것이다.

    그 위계는 베르덴보다 높았다.

    단 세 번의 교차.

    첫 번째는 버텼지만 두 번째에 오리엔트가 튕겨져 나갔다.

    이어 세 번째에 강화 자동 마력 방벽이 쪼개졌다. 내구성이 강화됐음에도 관리자 앞에는 힘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네 번째 일격.

    우지직!

    스태프가 복부를 후려쳤다.

    장기가 쪼개지다 못해 짓이겨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멀리 나가떨어진 베르덴이 마력을 쥐어짜 냈다.

    비행으로 미끄러지는 낙법을 펼쳤다.

    “커억……!”

    후두둑.

    속에서 핏물이 쏟아진다.

    기껏 얼려 두었던 상처에서도 울컥 출혈이 뿜어져 나왔다. 리커버리 팔찌로 회복할 수준이 아니다.

    무릎이 무너진 베르덴이 바닥을 짚었다.

    ‘마도왕이 근접전이라니.’

    그것도 베르덴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

    사전에 들어 본 적이 없는 이야기다. 하기야 마도왕이니 근접전을 선보일 상황은 거의 없었겠지.

    미처 다가오기도 전에 그의 마법에 죄다 죽었을 테니.

    ‘역시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건가.’

    부상을 손보고 몸을 일으켰다.

    관리자는 고고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거리는 다시 멀어졌다.

    숨을 들이마시며 지친 감각을 일깨웠다.

    필사적으로 마법을 헤치며 나아갔다. 육체가 너덜거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지척에 도달할 때까지.

    “무모하군.”

    스태프가 휘둘린다.

    노리는 곳은 다시 복부. 베르덴은 피하지 않았다. <중량화 부츠>로 체중을 높이고 몸을 낮추었다.

    타격에 도달하는 순간 스태프를 붙잡아 전신으로 충격을 분산했다.

    이번엔 날아가지 않았다.

    충격력을 완전히 견딘 베르덴이 깊게 신음했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관리자가 그를 내려다봤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겠다는 건가. 그 몸 상태로 어떻게 내 뼈를 취하겠다는 거지?”

    재촉하지 않아도 보여 줄 생각이다.

    마안이 명멸했다.

    과도한 사용에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그의 손에 회색의 마력이 맺혔다.

    ‘그 별 마법인가.’

    관리자는 모종의 마법을 경계했다.

    베르덴을 주시했지만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은 반대였다.

    ‘……뒤?’

    관리자가 고개를 돌렸다.

    원격 회수 기능에 의해 베르덴에게 날아오는 오리엔트, 그 첨단에 은하수가 맺혔다. 그러는 사이 베르덴이 다가가 관리자의 팔을 붙잡았다.

    “내가 보호막을 제대로 형성할 수 없도록 이렇게 다가온 것이냐?”

    정답이다.

    베르덴이 가진 마력 저항력.

    그가 붙어 있는 한 보호막으로 완전히 신체를 지키는 건 불가능하다. 초월자의 마력이라고 할지언정 베르덴을 침범할 수는 없으니.

    그 직후.

    혜성, 라레니아(Rarenia).

    은하수의 격류가 두 사람을 덮쳤다.

    베르덴은 튕겨져 나갔고 관리자는 스태프를 들어 정면으로 막아 냈다. 강력한 물리력에 쭉 뒤로 밀려났지만 그뿐.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참으로 뼈를 깎는 노력이었다. 하나 회심의 마법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구나. 차라리 그 떨어지는 별을 썼으면 나았을…….”

    관리자가 말을 멈췄다.

    어두운 별무리가 몸에 아른거린다. 그와 동시에 마력의 흐름이 통제를 따르지 않기 시작했다.

    별의 잔흔.

    혜성의 격류는 흐름을 거스른다.

    “……설마.”

    관리자가 서늘함을 느꼈다.

    시선의 끝에는 베르덴이 있었다. 그가 오리엔트를 공중으로 띄워 올리자, 황금빛 보석에서 오로라가 뿜어져 나왔다.

    <극광의 영역>

    원소 마법의 시전 속도 증가 및 원소 저항력의 대폭 상승.

    보다 마력의 흐름이 원활해진다. 관리자와는 대비되는 감각이었다. 허공으로 치솟은 베르덴의 양손에 각각 불과 번개가 맺혔다.

    호흡을 고르며 지면에 있는 관리자와 눈을 마주쳤다.

    “이제, 제 차례입니다.”

    두 개의 속성이 하나로 합쳐진다.

    이윽고 관리자를 향한 원소 폭격이 시작되었다.

    * * *

    마법이 무차별적으로 폭주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마법 중 가장 강력한 것들을 여지없이 발동했다. 관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멈추지 않았다.

    마력이 급속도로 소모되었다.

    ‘여기서 끝내야 한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쓸 수 있는 수단을 전부 써야 한다.

    콰앙! 콰앙! 콰과광!

    바닥을 화염으로 불태웠다.

    차갑게 언 천장에서는 고드름이 무수히 쏟아졌다. 둘이 합쳐지며 수증기가 일었고, 중력의 소용돌이로 일대를 뒤집었다.

    따뜻한 하층.

    차가운 상층.

    불안정한 공기.

    조건을 갖추자 뇌운이 형성되었다.

    전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 자연에 비해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무대로는 충분하다. 곧이어 <극광의 영역>이 끝남과 동시에 오리엔트를 회수했다.

    <원소화>

    속성은 벼락.

    몸 주변에 천둥이 메아리쳤다.

    <강뢰>

    거대한 번개가 구름에 스며들었다.

    수천 개로 쪼개진 벼락을 <뇌령>으로 제어했다. 여기서 중력 압축이 필요하지만 원소화가 된 상태로 쓸 수는 없다.

    ‘하지만 대체는 가능하다.’

    다시 한번 <뇌령>을 써서 중첩시킨 뒤 사력을 다해 번개를 끌어모았다. 잠시 후 뇌우의 중심에 광원체가 형성되었다.

    억지로 아래로 끌어내렸다.

    <루인Ruin>

    광원체가 대기를 뚫고 낙하했다.

    그렇게 지면에 착탄한 순간.

    ────!

    소리 없는 섬광이 공간을 잠식했다.

    거대한 푸른 기둥이 치솟아 뇌우를 없애 버리고는 천장과 맞닿았다. 이윽고 기둥이 소멸했다.

    초고열과 빛이 사라진 자리에 연기와 침묵이 내려앉았다.

    “허억, 허억…….”

    베르덴이 숨을 헐떡였다.

    격통이 이는 머리. 두 눈에선 실핏줄이 터져 피가 흘러내렸고, 무리한 마력 운용에 부상이 더 심해졌다. 그야말로 전력의 일격이었다.

    비행을 유지하기도 버거워 아래로 내려갔다. 입가에 맺힌 핏방울을 손으로 훔쳤다.

    ‘기척은…… 없다.’

    마력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렇다는 건 관리자는 죽었다는 뜻일까. 그래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상황을 살폈다.

    그 순간.

    “더없이 훌륭했다.”

    “……!!”

    검은 연기가 걷히고 관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또한 만신창이였다. 베르덴의 마법에 몇 번이나 적중당한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 살아 있었다.

    ‘위력이 부족했던 건가……!’

    “마력의 흐름을 흐트러뜨리는 마법에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 또한 마도왕이기에 할 수 있는 방심이겠지. 덕분에 통제권을 되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어진 마법들. 확실히 비장의 수단이라고 할 만하더군. 하지만 부족했다.”

    제 모습을 되찾은 관리자가 다가왔다.

    베르덴이 반응하려 했지만, 무리하게 마법을 쓴 반동이 회복되지 않았다. 어느새 관리자가 다가와 그의 몸에 손을 올렸다.

    <아케인: 임팩트>

    충격파가 육체의 외부와 내부를 난도질했다.

    마법사의 회한이 부서졌고 유자의 로브가 버티지 못하고 찢겨 나갔다. 벽에 부딪힌 베르덴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눈앞이 끊어질 듯 흐릿하다.

    육체가 말을 안 듣는다. 몸을 일으키려다가 무너지며 등이 바닥에 닿았다. 관리자가 다시금 그를 향해 걸어왔다.

    그때, 관리자의 발밑에서 빛이 반짝였다.

    겔톤에게서 받은 덱사르의 보석. 그 안에 담겨진 마법진이 관리자를 휘감았다.

    보헤미른 마탑.

    발로크 베시아스의 봉인 마법진 중 하나, <유수幽囚>.

    관리자가 마법진의 구성을 바라봤다.

    “상당히 수준이 높은 봉인이군. 그나저나 그 찰나의 순간에 마법진으로 나를 가둘 생각을 하다니, 경외심이 들 정도의 집념이도다. 하나 이런 건 시간 벌이밖에 되지 않는다.”

    그의 손이 마법진이 닿았다.

    마력이 뒤틀리며 봉인이 조금씩 파훼되기 시작했다.

    그 틈에 베르덴이 다시 일어나려 하자 관리자가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마법전을 이어 나가는 건 무리다. 설령 그대가 다시 일어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아직 나에게는 능히 그대를 죽일 마력이 남아 있으니.”

    관리자의 존재감은 처음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그래도 아직 초월자였고 베르덴이 전력이라고 해도 죽일 힘이 있었다. 이미 경험을 한 그에게 더는 같은 수가 통하지 않을 테니.

    “쿨럭, 쿨럭! 더, 할 수…….”

    “포기해라. 실력은 나이가 아닌 재능과 노력에 비례하나 그대는 너무 일렀다. 만약 10년이 지난 후에 내게 도전했다면 결코 후회하지 않았을 것을…….”

    후회? 천만에.

    베르덴은 후회하지 않았다. 무참하게 당해 쓰러진 이 순간조차도. 호흡을 고르고 다시금 근육에 힘을 주었다.

    관리자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젊은 마법사여, 그대는 왜 그렇게까지 해서 일어나려 하는 건가. 도대체 어째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려서라도 이루고 싶은 게 있는 것인가?”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반드시 이뤄야만 하는 게 있다.

    베르덴이 덜덜 떨며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피를 많이 흘려서일까, 격상의 상대에게 이렇게나 절벽에 몰린 건 처음이기에 그런 걸까. 한없이 맑아진 머리에 분노와 증오가 들끓었다.

    하찮은 고뇌 따위가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 담긴 진심이었다.

    ‘……복수.’

    악몽 같은 삶을 보냈던 보헤미른 마탑을 무너뜨리고 싶다.

    무력했던 자신을 이용한 마탑의 마법사들을 찢어발기고 싶다.

    순수하게 마법을 좋아하고 또 추구했던 자신을 무참하게 짓밟은 마탑주를 죽이고 싶다.

    고통이 무엇인지.

    절망이 무엇인지.

    그들에게도 알려 주고 싶다.

    실험체에 불과했던 약자의 마법으로.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다.

    복수를 이루기 전까지 죽지 않겠다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베르덴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대는 최선을 다했다.

    “…….”

    “그대는 이미 한계란 말이다.”

    ……한계?

    베르덴의 이마에 핏대가 돋았다.

    “웃, 기지 마……!”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한계라는 말로 감히 자신을 틀에 가둘 수는 없다. 그것이 마도왕이든 여신 루아스든 마찬가지다.

    정신은 분명하고 마력은 조금이나마 남았다.

    관리자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하긴 해도 문제는 없다. 눈앞의 존재는 마도왕의 마법과 마도를 쓴다고 해도 불완전한 초월자.

    완숙한 마탑주에 비하면 부족하다. 결국 복수의 여정을 위한 발판일 뿐이다.

    짓밟을 준비는 되었다.

    베르덴이 하늘로 뻗었던 손을 강하게 쥐었다.

    그때였다.

    “……!”

    너덜거리던 가죽 소매가 떨어졌다.

    그 사이로 드러난 팔에서 역천의 마법진이 보였다. 기이하게도 여느 때보다 더욱 강렬한 마력이 마법진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나 지쳤는데도, 이렇게나 마력을 소모했음에도, 명멸하며 베르덴을 부르고 있다. 아직 비장의 수단이 남았다고.

    베르덴의 초점이 선명해졌다.

    아.

    ‘……그런 거였나.’

    그렇다. 그래, 이제야 알겠다.

    역천의 마법진에 흐르고 있는 마력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신의 육체에 생긴 변화가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진정으로 준비가 된 건 베르덴의 생각만이 아니었다.

    베르덴이 남은 왼팔을 들었다.

    봉인진이 깨지기 직전, 관리자는 순간 그가 포기하려는 걸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과거 스스로의 한계를 부수었던 마법사의 입가에는 기대가 서린 웃음이 맺혀 있었다. 이내 손목을 비틀며 자신에게 손바닥을 향했다.

    “개신(開身).”

    발광하는 마법진.

    강제로 확장되는 마력회로.

    베르덴의 두 번째 역천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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