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30화 (230/366)

230화 분기점 (3)

고열과 빛이 가까워진다.

가만히 서서 유성을 바라본 관리자가 마도왕의 직관력을 발휘했다. 1초의 순간이 수십 개로 쪼개지는 흐름 속에서 마법을 분석했다.

‘오직 마력만으로 이루어진 파괴 마법이라.’

어떤 원소의 속성도 띠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케인>과 같이 마력 조작의 일종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웠다.

관리자가 더욱 안력을 높였다.

그러자 유성의 근간이 되는 회색의 빛, 별자리 같은 것이 보였다.

즉,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속성이니 마도일 테고, 저 마력의 구체는 그런 마도에서 기인된 마법임이 분명하다.

‘나를 상대로 전력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마법진이 새겨진 눈.

그리고 정체 모를 마도까지.

관리자가 입가를 비틀었다.

괘씸하면서도 유쾌하다. 어느 누가 마도왕을 상대로 수단을 숨기려 하겠는가. 생소하다 못해 신선하게 느껴진다.

물론 딱 그 정도였다.

관리자가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유성과 손바닥이 맞닿으며 공간이 울렸다.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손아귀를 움켜쥐었다. 삽시간에 유성 내부로 침투하는 관리자의 마력.

이내 손목을 비틀자 유성이 갈기갈기 찢기면서 붕괴되었다.

────!

그 과정에서 섬광과 폭발이 일었지만 관리자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보호막이 없다고 한들, <아케인>의 창시자인 마도왕에게 마력만으로 이뤄진 마법은 무용지물일 뿐.

<육체증폭>

그 순간, 빛을 뚫고 나온 베르덴이 육박했다.

보호막의 재생성 시간을 노린 것이다. 그의 주위에 생성된 수십 개의 석편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마도왕에게 돌진하는 마법사는 또 처음 보는군.”

화아아악!

관리자의 마력 방출로 인한 충격파에 바위 파편이 부서졌다. 베르덴의 곧장 마안이 발동했다.

<그라운드 메이든>

산산조각 난 파편들이 재구성되었다.

자그마한 바위 가시들로 변한 그것들이 다시금 관리자를 향해 쇄도했다. 눈 한 번 깜빡이기도 전에 이루어진 마법 연계.

어느덧 베르덴은 관리자의 지척에 닿아 있었다.

<아케인: 마력 융합>

백색의 스태프가 맥동한다.

섬뜩함이 들 정도로 집결한 마력. 관리자가 위에서 아래로 스태프를 내리치자, 그 여파만으로도 마법이 박살 났다.

베르덴 또한 마력을 집중시킨 오리엔트를 휘둘렀다. 중력이 덧씌워진 충격파가 정면을 향해 몰아쳤다.

콰아아아앙!

서로의 스태프가 맞부딪쳤다.

카각. 카가각. 금속이 연신 비명을 질러 댔다. 팔이 부러질 것 같은 격통이 일었다. 자세가 무너지지 않도록 버티는 게 전부였지만 베르덴은 당황하지 않았다.

보호막을 부순 이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관리자가 취할 행동을 예측했고, 그 생각대로 흘러갔으니까.

지금, 둘 사이에 벽은 없다.

<혼명混明>

흑마도사, 백골의 비올라를 참패시킨 혼돈 마법.

베르덴에게서 퍼져 나온 암청색의 파동이 관리자와 주변을 집어삼켰다. 오리엔트 너머로 느껴지던 압력이 사라졌다.

빛이 사라지자, 관리자가 있던 자리에 베르덴이 서 있있다.

그만한 충격에도 회색 왕좌를 비롯한 관리자실의 풍경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내구성.

베르덴이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리는 약 서른 걸음. 같은 눈높이에 백색의 마법사가 떠올라 있다.

관리자가 자신의 왼손을 바라봤다.

상처는 없었지만 소매가 일부 그을려 있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은 그가 말했다.

“예로부터 마법계에 영향력을 끼치고자 했던 마도사는 마도를 개량하여, 타인 또한 사용할 수 있는 수많은 마법을 탄생시켰다. 그렇게 마법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전과는 다른 다채로움을 지닐 수 있게 되었지. 그런 식으로 마법계는 발전해 왔다.”

“…….”

“그런데 방금 전의 떨어지는 별을 연상시키는 마법은, 분명 마도에서 비롯된 마법임에도 개량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대는 분명 마도를 개척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지.”

마치 타인의 마도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다.

마도왕의 기억을 살펴봐도 이와 같은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마법은 번개와 화염, 중력 속성이 겹쳐져 있더군. 그것도 각 마법의 특징만을 추출하여 조합한 위력. 합성 마법의 공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 이건 모종의 아티팩트를 쓴 것으로 보이는데.”

고작 한 번이다.

비장의 수단을 일견하자마자 관리자는 그 이치를 정확히 꿰뚫었다. 불가해한 마법 이해력과 통찰력이었다.

관리자가 눈을 가리켰다.

“또한 그 눈. 원거리에서 마법을 생성시키는 것도 모자라, 마법의 연산을 생략하기까지 하다니. 내 본체는 이제까지 기이한 눈을 가진 존재들을 봐 왔지만 그대와 같은 경우는 처음이다.”

기이한 눈?

“……저 말고도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겁니까?”

“그대도 알다시피 이 세상에는 특별함을 가진 자가 많고, 그 안에는 특별한 눈을 가진 자 또한 존재하지. 하지만 그대와 같이 이치를 벗어난 눈을 가진 이는 없었다. 특이 형질은 아닌 듯한데, 그 이름은 무엇인가?”

“일단, 마안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마안. 마력의 눈. 그래, 직관적이고 어울리는구나.”

고개를 끄덕인 관리자가 말을 이었다.

“본래 관리자는 효율적으로 침입자를 상대하는 것이 원칙이다. 아무리 본체가 대단하다고 해도 분신은 영원히 존속할 수 없으니. 매번 마력을 낭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나는 지금까지 그 원칙을 지키며 내 책무를 다했다.”

하지만.

“아무리 마도왕의 분신에 불과하다고 해도, 마법사인 그대는 분명 내게 닿았다. 그것이 고작 로브의 흠집에 불과하다 해도. 그러니 본체의 인격이 바라는 대로 나 또한 마도왕으로서 힘을 보이리라.”

관리자가 팔을 쓸었다.

그을려 있던 소매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분신에게 겉모습은 실존하는 것이 아닌, 마력으로 꾸며 낸 것에 불과했다.

“……!”

그와 동시에 기세가 일변했다.

이전에는 위압적이고 난폭했다면 지금은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가웠다.

관리자에게서 피어오르는 마력이 달라졌다.

그의 눈동자와 마찬가지로, 고요한 푸른색과 찬란한 금색이 뒤섞인 색이었다.

베르덴이 입을 악다물었다.

오리엔트를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드디어 온다.’

올다르크 루인 아케나드.

그가 가진 마도왕이라는 칭호 아래에는 피의 강이 흐르고 있다. 과거 그와 적대했던 자들이 남긴 흔적이다.

누구도 감히 항거하지 못했다.

원소 마법의 정점에 달한 존재.

그는 마도왕이라 불리기 이전, 세상에서 이렇게 불렸었다.

살아 있는 천재지변, 천변(天變)의 마도사.

그의 원소는 자연재해와도 같다.

관리자가 왼팔을 들었다.

그의 스태프가 정확히 도전자를 겨냥했다.

자세를 낮춘 베르덴이 집중력을 높였다.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된다. 선수를 취할 게 아니라 관리자의 마법에 정확히 대처해야만 한다. 삐끗하면 그대로 죽을 테니까.

대기가 서서히 끓어오른다.

신경이 바늘로 관통당하는 듯한 찌릿함이 이는 순간.

<헬파이어>

원뿔 형태로 뻗어 나간 7위계 화염이 공간을 불태웠다.

* * *

9살, 마탑에서 짐꾼으로 일하고 있던 도중 로벨린이 책을 두 권 선물해 주었다.

둘 다 마도왕에 대한 내용으로, 하나는 태반이 그림인 동화책이었고 하나는 글만 빼곡한 역사서였다.

이미 마법에 꽂혀 있던 베르덴은 동화책보다 역사서에 흥미를 가졌고, 쉬거나 잠에 들기 전 등 시간이 날 때면 틈틈이 책을 읽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마도왕이라는 존재에 대해 조금씩 알아 갔다. 그가 어떤 위업을 달성했고, 얼마나 대단한 전설들을 이룩했는지 눈에 담았다.

그렇게 1회독을 마친 베르덴은 생각했다.

───나도 마도왕 같은 마법사가 되고 싶다.

치기 어린 꿈이었다.

변변찮은 마법사조차 되지 못할 아이의 분에 넘치는 꿈. 그래도 당시에는 나름대로 행복했었다.

베르덴은 잘 때마다 바랐다.

부디 자신이 바라 마지않았던 마법사가 되는 꿈을 꾸게 해 달라고. 그중에는 마도왕과 만나 보고 싶다는 허황된 소망도 있었다.

그의 위대한 일생을 직접 듣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었다.

그랬었는데.

‘역시 꿈하고 현실은 다르군.’

콰과과과광!

비행하는 베르덴의 뒤로 연쇄폭발이 일어났다.

급격하게 역방향으로 틀면서 몸을 뒤집었다. 천장에 발을 딛자 아래에서 암석이 뒤섞인 폭풍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지끈.

베르덴이 마안을 번뜩였다.

<중력 붕괴>

일시적으로 중력을 흐트려 마법을 와해시켰다.

직후 발아래에 <역중력>을 발동해 서둘러 바닥으로 낙하했다. 벼락으로 이뤄진 감옥이 그가 있던 자리를 덮쳤다.

바람을 일으켜 속도를 죽인 베르덴이 지면에 착지했다.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이었다, 젊은 마법사여. 이 마법에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궁금해지는군.”

계단 위의 회색 왕좌.

제자리를 되찾은 관리자가 스태프를 높이 들었다. 머리 위에 작은 태양이 생성되었다. 관리자실에 가득 찬 새빨간 불빛이 베르덴을 향해 쇄도했다.

<메테오>

다가오는 열기에 주춤했다.

식은땀이 증발되고 머릿털이 쭈뼛 선다. 맞기는커녕 스치기만 해도 즉사, 충격파에 휩쓸리기만 해도 중상을 피할 수 없을 터.

‘맨몸으로 버티는 건 여기까지인가.’

마법사의 회한.

마력의 빛이 베르덴을 감쌌다.

<원소의 장벽>

<순수한 외투>

<프로텍션>

원소 저항, 마력 저항, 물리 저항.

부여 마법으로 저항력을 최대한 높였다.

제한 시간이 있기에 최대한 아꼈건만 어쩔 수 없다. 이어 바닥을 박참과 동시에 삼원색의 중심으로 물리 저항력과 화염 내성을 가진 보호막을 둘렀다.

───콰아아아아앙!

메테오가 착탄했다.

작열하는 충격파가 닥쳐왔다.

“칫……!”

보호막이 산산조각 났다.

재생된 자동 마력 방벽도 박살 났다. 튕겨져 나간 베르덴이 가까스로 제동을 걸었다. 시꺼먼 연기 속, 시야가 흔들리고 이명이 들려왔다.

장기가 뒤엉키는 기분.

목젖까지 솟구친 위액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최상의 결과다.’

자칫하면 시체조차 찾지 못했을 뻔했으니까.

확실히 장비의 격차가 크다.

더불어 마안과 베르덴의 연산 속도가 합쳐진 덕분에, 높은 위계를 다루는 관리자가 큰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전체적인 양상으로 볼 때 베르덴은 선전하는 중이었다.

‘충분히 해볼 만해.’

관리자의 존재감이 약해졌다.

공방으로 인해 적잖은 마력을 소모한 것이다. 그가 마력으로 이뤄진 분신이기에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상대의 마법 위력을 상쇄하는 데 집중하고, 미처 피하지 못하는 건 몸으로 견디는 외줄타기의 마법전.

실수하면 끝장이지만 이것이 베르덴에게 있어 가장 승산이 높은 공략법이었다.

“그래, 철저한 소모전. 분명 그대에게 있어 그것이 최선책일 테지. 그리고 다름 아닌 그대이기에 가능한 방식일 테고. 직전에 보여 준 대처 능력과 판단력은 훌륭했다.”

관리자가 팔을 당겼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공단空斷>

반월의 궤적을 그리는 스태프에서 보랏빛 칼날이 날아왔다.

공간 계열 중에서도 절대적인 물리적 파괴력을 자랑하는 파괴 마법. 끔찍한 예기는 영혼조차도 가를 것이다.

‘무조건 피해야 한다.’

막는 건 논외다.

닿는 순간 마법이든 뭐든 절단될 테니.

베르덴이 곡예를 펼쳐 칼날을 회피했다.

안심하려던 찰나, 앞뒤에서 마력이 느껴졌다. 허공에 벌어져 있는 보라색의 틈새. 그 안으로 모습을 감춘 공단이 다시금 베르덴 앞에 나타났다.

‘공간 이동……?!’

감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무리한 움직임에 육체가 비명을 질렀다.

촤아아아악!

허리가 잘리는 듯한 격통이 일었다.

아래로 곤두박질친 베르덴이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았다. 갈라진 마법사의 회한. 옆구리에서 흐른 피가 다리를 타고 뚝뚝 떨어졌다.

“큭…….”

치명상까지는 아니지만 출혈이 심하다.

장비 때문에 불로 지지는 건 어렵다. 판단을 내린 베르덴이 곧장 냉기를 일으켜 상처를 지혈했다.

부상 상태를 인식하고 응급처치 하기까지 3초 남짓.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자들에게 있어서는 긴 시간이기도 했다.

베르덴이 고개를 돌렸다.

터벅, 터벅.

관리자가 걸음을 옮기며 계단을 내려온다.

최상위 속성인 공간 마법을 사용한 대가로 그의 존재감이 한층 더 줄어들어 있었지만 아직도 여력은 충분해 보인다.

“방금이, 기회가 아니었습니까?”

“그대도 알겠지만 공간 마법은 시전자에게 막대한 반동을 초래한다. 그래서 마법 물품이나 아티팩트 그리고 마법진을 통해 구현하는 것이고. 본체였다면 어떤 영향도 없었겠지만 분신에 불과한 나에게는 큰 부담이다.”

관리자가 계단 아래에 도달했다.

“물론 관리자로서라면 무리해서라도 배제하려고 했을 거다. 하나 마법전이 지속될수록 내 근간인 마도왕의 인격이 속삭이는군. 관리자가 아니라 마도왕으로서 그대를 상대하라고. 아무래도 그대라는 존재에 자극을 받은 모양이야.”

“…….”

“어쩔 수 없이 나로서는 따를 수밖에. 뭐, 분신으로서는 저항할 수 없는 본능이란 것이다. 왜냐하면 마도왕이 바라는 것이 곧 내가 바라는 것이 되어 버리니.”

쿠웅.

바닥이 울렸다.

“젊은 마법사여, 그대에겐 아직 감춰 둔 것이 남아 있을 터. 그러니 보여라. 죽음 뒤에 허무함을 남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그야말로 오만하다.

그러나 납득이 된다. 눈앞의 존재는 그것이 허락된 위대한 강자다.

베르덴이 숨을 들이마셨다.

‘더 이상 소모전을 유지하는 건 어렵겠군.’

관리자가 내려왔다는 건 그런 의미일 테니까.

그러니 남은 비장의 수단을 준비된 차선책으로 바꿀 수밖에.

각오를 다진 베르덴이 안광을 번뜩였다.

관리자를 향해 맹진하며 두 손으로 오리엔트를 다잡았다.

원거리에서 근거리.

죽음이 목전에 닿을 듯하지만 필요한 무모함이다.

관리자를 죽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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