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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27화 (227/366)
  • 227화 관리자

    마침내 에스티리아 왕국의 썩은 고름이 터졌다.

    북부에서 1왕자와 2왕자 간의 본격적인 분쟁이 시작되었다. 검과 화살 그리고 마법으로 인해 대지가 피로 물들었다.

    중립 귀족들은 자신들의 영지를 지키는 데 집중했다. 혹여 자신의 선택이 잘못될까 봐 덜컥 겁이 난 것이다.

    내전의 영향이 전염된다면, 그렇게 지지하던 왕자가 패배한다면 영영 돌이킬 수 없을 테니까.

    물론 그런 귀족만 있는 건 아니었다.

    에스퍼렌사 후작가와 그 봉신 가문들처럼, 왕가에 대해 회의적인 충성을 갖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그랬듯 자신의 영지민들을 우선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 중엔, 에스퍼렌사 후작이 반란을 일으켜 라인즈처럼 살기 좋은 도시가 많아지기를 내심 바라는 자도 적지 않았다.

    셀 수 없는 생각들이 서로 뒤엉켰다.

    여러모로 올해의 왕국은 과거 전쟁 이후로 최악이었다.

    경직된 도시의 분위기 속, 낡은 주점의 구석에 자리 잡은 손님들이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그들 손에는 며칠 전에 발간된 신문이 들려 있었다.

    “왕위 계승 때문에 전쟁? 아니,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내전이라니…… 이게 대체 말이 되는 소리야? 그리고 왕국은 장자 계승이 원칙 아니었어?”

    “딱 봐도 2왕자 전하께서 불복하신 거잖나. 여기 노스램드 공작가의 장남 실종되었다는 거 보이지? 내 소문을 들어 보니까 2왕자 진영에서 몰래 암살했다고 하더라고. 능력도 좋고, 1왕자 전하께서 신임하는 분이시기도 했으니 눈에 거슬린 거겠지.”

    “이야,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다고 하더니. 이게 딱 그 짝이구만. 그런 무서운 사람이 왕이 된다면…… 으으,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군. 1왕자 전하께서 승리하셔야 할 텐데.”

    이처럼 시민들의 여론은 대부분 1왕자 발르그나에게 향했다.

    결코 우연으로 만들어진 상황은 아니었다. 1왕자의 그림자에서 암약하고 있는 비밀 사교회의 솜씨였다.

    광인 톨라브는 2왕자 진영에 마약을.

    거상 다리오는 1왕자에게 필요한 자금 지원을.

    설계자 넬리타는 각 도시의 신문사를 이용해 2왕자에 대한 악명을.

    용병단장 게울은 다른 용병들을 위협하고 직접 내전에 고용되어 실질적인 전력을.

    암상인 클란드는 비밀 사교회의 뒤를 봐주며 이 사실을 철저히 은폐했다.

    거짓은 반복될수록 진실로 느껴진다.

    2왕자 진영의 병사들은 온갖 악재에 정신력이 마모되었다. 떨어지고 있는 사기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엄중히 단속을 했음에도 탈영병이 없는 날이 없었다. 목이 걸린 시체들이 분위기를 더욱 흉흉하게 만들었다.

    어지러운 혼란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거리가 사라져 버린 사내가 있었다.

    도살자, 갈리아크.

    콰앙!

    식탁에 부딪친 맥주잔이 박살 났다.

    그 소리에 다른 손님들이 어깨를 떨며 위축되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지만 누구도 제지하지 못했다.

    근육질의 덩치와 살벌한 도끼날에 종업원이 덜덜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갈리아크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에라이, X발. 운도 X나게 없지.”

    모험가 자격을 1년간 박탈당한 후, 그레이에서 의뢰를 받기 위해 에스티리아 왕국으로 넘어왔다.

    얼마 전까지는 꽤나 순조로웠다.

    의뢰로 돈도 벌고, 그 돈으로 암흑가 경매장에서 훼월도 사고, 언데드 토벌에 참가해서 적잖은 보수를 챙겼다.

    치열한 전투를 통해 스스로의 성장을 도모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내전 때문에 일거리가 없어지다니.’

    공국에서 후작가 하나가 멸문당하고 난 후의 상황이 재현된 것 같다. 화가 나는데 어디 풀 데가 없는, 아주 짜증 나는 상황.

    생각에 잠겨 있던 갈리아크가 눈썹을 씰룩였다.

    ‘잠깐. 이번에도 애셔하고 관련된 건 아니겠지?’

    딱히 확증은 없다. 심증이 그럴 뿐이다.

    그 잿빛 머리 마법사는 자신보다도 미친놈이었으니. 그렇지 않고서야 공국에서 그만한 사건을 일으키고, 고작 1년밖에 안 된 사이에 5위계에 다다르지 못했을 테니까.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만.

    “X발, 그냥 싹 다 부숴 버릴 수도 없고.”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다.

    1왕자든 2왕자든 아무나 죽이고 내전을 끝내 버리고 싶었다. 물론 생각뿐이었다. 아무리 갈리아크가 전투광이라고 하지만 전쟁에 참가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왕가에 쫓기는 것 또한 사절이고.

    갈리아크가 혀를 찼다.

    “쯧. 왕국을 떠야 되나. 모험가 자격 회복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애셔, 그 새끼한테 밥도 얻어먹어야 하고…… 어이, 쳐다만 보지 말고 여기 맥주 하나 더 가져와.”

    “네, 네!”

    종업원이 곧장 술을 대령했다.

    갈리아크가 술잔을 잡던 그때였다.

    “어, 어서…… 히익!”

    살벌한 기세를 가진 자들이 주점에 들어왔다.

    주저앉은 종업원을 무시한 그들이 구석으로 가더니, 갈리아크가 자리 잡은 테이블을 원형으로 둘러쌌다.

    그중 한 사내가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갈리아크가 삐딱하게 고개를 틀었다.

    “이 새끼들은 또 뭐야?

    “빈테르트.”

    알고 있는 이름이다.

    암흑가 로아프라를 지배하고 있는 놈들.

    “그쪽하고 척진 적은 없는 걸로 아는데. 아, 설마 그때 로아프라에서 애들 빼냈다고 뒤끝 부리는 건가?”

    “폐하의 어명을 전하러 왔다.”

    “무슨 어명?”

    “애셔는 어디에 있지?”

    “애셔……?”

    갈리아크가 눈을 깜빡였다.

    “아니, 그 새끼를 왜 나한테서 찾아?”

    “네 일행이니까.”

    “내가 왜 걔 일행인데?”

    “말장난하지 마라.”

    서늘한 칼날들이 갈리아크를 겨냥했다.

    하나같이 사람을 많이 담가 본 듯한 살기였다. 콱! 사내가 단검을 뽑아 테이블에 내리꽂았다.

    “갈리아크, 너에게 선택지를 주겠다. 순순히 협조해서 목숨을 부지하거나, 온갖 고문을 당해 알고 있는 걸 털어 내거나. 개인적으로 후자를 추천하지. 그 거대한 몸은 오락거리로 삼기 꽤나 좋아 보이니.”

    대놓고 협박이었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갈리아크가 이해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하, 그러니까 암흑가의 왕이 뭔 X같은 이유로 애셔를 찾는데, 그 새끼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나를 찾아왔다…… 이런 건가?”

    “입조심해라.”

    “그딴 건 너나 조심하고. 그래서, 찾는 이유는?”

    “알 필요 없다.”

    갈리아크가 고개를 숙였다.

    깊게 한숨을 쉰 그가 어깨를 들썩였다.

    “크크큭, X발, 이렇게 엮여 버리네. 아무래도 밥 한번 얻어먹는 걸로는 모자랄 것 같구만.”

    “중얼거리지 말고 대답해라.”

    “거, 보채기는. 그래, 선택해 주지.”

    벌컥, 벌컥!

    단번에 술잔을 비운 갈리아크가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세 번째 선택. 네놈 새끼들 다 쳐 죽이고 암흑가 왕의 멱을 따 버린다. 이제 만족하냐?”

    “감히 누구를────”

    뻐억!

    날아간 술잔이 사내의 머리를 강타했다.

    물론 유의미한 충격은 아니었다. 잠시 고개가 들린 사내가 앞으로 시선을 향했다.

    흉악한 미소를 지은 갈리아크가 일어섰다.

    그의 양손에는 어느새 두 개의 도끼가 들려 있었다.

    “지하 도시에 사는 시궁창 쥐새끼 아니랄까 봐 찍찍거리기는. 아가리 나불거리지 말고 들어오기나 해, 이 병신들아.”

    “……팔다리만 끊어라.”

    사내는 빈테르트의 암살 부문의 간부 중 1인.

    그의 명령에 휘하의 암살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갈리아크가 맹렬한 기운을 내뿜으며 몸을 회전시켰다.

    콰앙!

    폭음과 함께 주점의 벽이 터져 나갔다.

    * * *

    베르덴이 창조한 역천의 마법진의 본의는 육체의 변화다.

    마법계에서 자살행위라 일컬어지는, 기존의 마력회로를 강제로 확장하여 위계를 높이는 금기의 수단.

    그 끝에는 ‘육체의 재구성’이라는 궁극이 존재한다.

    본래라면 이룰 수 없는 기적이다.

    하지만 무한한 마력이 있다면 가능하다. 그렇게 확신한 베르덴은 마탑의 동력원을 이용하기 위해 그 기술력을 파헤쳤다.

    동력원의 구성, 마탑 전체로 마력을 운반하는 마법진 등.

    베르덴조차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나 지금은 그 정도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하기엔 충분했다.

    1차 동력실은 마탑의 열화판.

    손상된 부분을 고치는 건 베르덴의 능력 범위 내에 있다.

    [1차 동력실 복구 완료. 전체 전력 37% 회복. 감사합니다. 마도왕 폐하.]

    보란 듯이 성공했다.

    실험실에 남아 있는 마력이 그 통로를 타고 흐른다. 열이 발생하자, 지독한 한기가 서서히 사라졌다.

    ‘이제 문만 해결되면 되는 건가.’

    2차 동력실의 문은 1차 동력실과는 다르다.

    문이 열리지 않는 건 동력이 부족한 게 원인. 그러니 마법진을 수정해, 동력으로 사용되는 마력을 일부 비틀어 문에 직접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방주의 마법사, 칼라드가 실패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베르덴은 달랐다.

    침묵을 동반한 인고의 시간. 턱 끝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잘못된 부분은 없는 것 같은데…… 알파, 이 정도면 되는 건가?”

    [스캔 중…… 최소 마력량 도달 확인. 수리 골렘 투입하겠습니다.]

    수리 골렘이 나섰다.

    확실히 구조가 다른 탓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수리 골렘의 마력을 충전한 후,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마찰음 속에서 베르덴은 잠시 잠을 청했다.

    정신적인 피로를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끼기기기긱.

    얼마 후, 틈새가 벌어졌다.

    베르덴이 눈을 뜨자, 마력이 다한 수리 골렘이 멈춰 서 있었다.

    [문 개방 성공. 남은 시설 문제 1건. 2차 동력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수리 골렘은?”

    [수리 골렘 불필요. 2차 동력실과 관리자실에는 강제로 문을 개폐하는 장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알파를 따라 복도를 통과했다.

    2차 동력실.

    베르덴의 앞에 거대 도시의 성문에 필적하는 문이 나타났다. 동력실의 중심에는 비규칙적으로 깜빡거리는 구체 형태의 마력이 존재했다.

    사방으로 이어진 홈에 마력을 보내는 것으로 보아, 실험실 전체를 유지하는 동력원임이 분명했다.

    ‘일종의 소형 동력원인가.’

    용량이 적고 불안정하다.

    슬쩍 보니 마법에 적중당한 흔적이 있다. 방향을 보아 관리자실에서 날아온 마법인 것 같은데…….

    [외부 충격으로 인해 동력원 마력 대부분 상실. 시설 문제 해결 방안. 마도왕 폐하의 마력이 필요합니다.]

    부족한 마력을 채우는 작업.

    이제까지의 문제들 중에서 가장 쉬운 해결 방안이다. 동력원에 손을 갖다 댄 베르덴이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동력원 전력 실시간 확인. 37%…… 44%…… 51%…….]

    동력원의 마력이 급속도로 회복된다.

    5위계 마법사 수 명에 필적하는 마력량이 소모되었다. 그럼에도 베르덴의 심장박동은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해지는 기분이군.’

    기분 탓이라고 하기에는 묘했다.

    역천의 마법진에 흐르는 마력의 빛이 더욱 강해지는 게 느껴졌으니. 흐름을 따라 베르덴이 마력을 더욱 강하게 방출했다.

    그러던 순간, 동력원의 마력이 강하게 명멸했다.

    [동력원 100% 복구 완료. 시설 문제 3건 전부 해결. 실험실이 정상 가동됩니다.]

    알파가 확언했다.

    이로써 복구 작업은 끝이 났다.

    시간이 꽤나 걸리기는 했지만 유익한 시간이기도 했다. 평생 동안 쌓아 온 마법 지식과 타고난 마법 이해력을 원 없이 발휘할 수 있었으니.

    알파가 말했다.

    [관리자실 스캔…… 문제없음. 관리자를 만나겠습니까?]

    “만나겠다.”

    [마도왕 페하의 명령 확인. 관리자실을 개방하겠습니다.]

    알파가 동력원을 조작했다.

    그러자 문의 표면에 떠오른, 총 10개의 마법진이 하나둘씩 움직였다. 위아래에서 각자 맞물리던 마력의 원이 이윽고 하나가 되었다.

    쿠구구구구……!

    성문이 움직인다.

    마도왕의 실험실.

    그 가장 깊은 장소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관리자를 만날 차례였다.

    * * *

    베르덴은 알파와 함께 관리자실에 발을 디뎠다.

    빛 한 점 없는 심연이 둘을 맞이했다. 분명 <암시>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시야가 훤히 밝아지지 않았다.

    고작해야 약 20미터 앞을 볼 수 있을 정도. <마력 감지> 또한 무용지물이다.

    ‘어떤 마력이 방해하고 있는 건가. 이런 적은 처음이군.’

    시각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베르덴은 다른 감각에 집중하며 관리자실을 가늠했다. 그렇게 파악한바 1차 동력실과 2차 동력실보다 넓은 공간임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기둥 네 개가 천장을 받치고 있었다. 그 외 잡히는 건 없었다. 고독하고 황량한 장소였다.

    알파의 눈이 빛났다.

    [총괄 책임자, 개체명 알파. 마도왕 폐하 귀환. 관리자는 응답하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문제라도 있는 건가?

    알파도 영문을 모르겠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섬뜩한 마력이 발밑에서 느껴졌다.

    즉각적으로 시선을 아래로 향하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마법진이 베르덴과 알파를 감싸고 있었다.

    특유의 보랏빛.

    “공간 마법진……?!”

    곧장 마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강제적인 공간 이동을 막기 위한 저항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마법진 발생. 관리자. 해명을 요구────]

    화아아아악!

    공간 이동이 발동했다.

    자색의 섬광이 번쩍이자 알파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베르덴이 홀로 남았다. 콰앙! 굉음과 함께 관리자실의 문이 닫혔다.

    ‘……함정인가?’

    알 수 없다.

    알파의 반응을 떠올려 봤을 때, 관리자와 관련된 것 같은데. 어쨌든 예기치 못한 상황인 건 자명하다.

    현실을 마주한 베르덴이 곧장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숨 막히는 어둠이 감돌았지만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마도왕 행세를 하는 침입자라. 이런 적은 또 처음이군. 설마 알파의 식별 기능을 속이는 자가 나타날 줄은 몰랐는데.”

    “……!”

    관리자실이 밝아졌다.

    갑작스러운 빛에 동공이 수축되었다. 이내 환경에 적응한 베르덴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향했다.

    관리자실의 끝.

    그곳에는 10개의 계단이 있었고, 그 위에는 잿빛의 왕좌가, 그 왕좌에는 백색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노인의 왼손에 쥐인 하얀색 스태프에서 빛이 명멸했다. 마탑주를 포함해, 지금까지 만난 어느 누구보다도 ‘위대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존재감.

    그리고.

    ‘설마 저 모습은…….’

    베르덴의 눈동자가 선명해졌다.

    반사적으로 과거가 떠올랐다. 과거 역사서에서 본 초상화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자신도 모르게 경악이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도왕……!”

    마도왕, 올다르크 루인 아케나드.

    그에 노인이 답했다.

    “한눈에 알아봐 주니 고맙군. 이 시설에 들어온 네 번째 ‘침입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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