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25화 (225/366)

225화 문제 (1)

인공 골렘 기술은 과거에 실전됐다.

몇 년 전, 아티슨 마탑이 일부 복원에 성공해 작은 형태의 골렘을 제작한 게 큰 성과였다.

그런데 말하는 인공 골렘이라니.

게다가.

‘마도왕이라고……?’

베르덴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지만 이 공간에 있는 건 둘뿐이다. 그리고 외눈 골렘의 눈은 정확히 베르덴을 바라보고 있었고, 골렘의 앞에 있는 건 베르덴이 유일했다.

사람을 헷갈릴 일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다는 건 무슨 뜻일까.

마력량, 마력 성질, 한계 위계.

이와 같은 중요 변수들을 확인한 결과, 마도왕의 것과 동일하다…… 라는 게 외눈 골렘이 한 말의 의미인 것 같은데.

‘종족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건 또 무슨 뜻이지?’

9위계 초월자, 마도왕의 무덤.

그 위대한 이름만큼이나 무덤 내에 얽혀 있는 함정, 즉 갖가지 시련을 돌파하여 마도왕이 남긴 유산을 손에 넣는 위험한 여정이 될 줄 알았다.

방주에서 분류한 고대의 시련이란 명칭답게 말이다.

그런데 말하는 골렘도 그렇고, 베르덴을 마도왕이라고 착각한 것도 그렇고.

하나같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아니, 그것보다 애초에 여긴 무덤인가?’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베르덴이 말이 없자, 기다리고 있던 외눈 골렘이 갸웃거렸다.

[마도왕 폐하. 응답 없음. 문제가 있습니까?]

시선의 초점이 현실에 놓였다.

여전히 외눈 골렘의 착각은 계속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마도왕으로서 무덤을 탐색할까, 아니면 베르덴으로서 무덤을 헤집을까.

잠깐의 고민 끝에 전자를 택했다.

연기에 소질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이런 상황을 처음 접하는 것도 아니니. 도중에 들키면 그때 후자로 행동을 전환하면 될 일이다.

베르덴이 말했다.

“아니, 문제없다.”

[문제없음. 응답 확인. 식별 종료.]

초록색으로 물들었던 외눈 골렘의 눈이 다시 파란색으로 돌아왔다.

[총괄 책임자, 개체명 알파. 책임자 명령 수행. 마도왕 폐하의 부재 중, 무단 침입 3건 및 시설 침입 3건 발생. 총합 6건. 현재 전부 해결 완료. 그리고 시설 문제가 3건이 발생했습니다.]

“……시설 문제?”

[자체적으로 해결 불가능. 시설의 기능 마비로 시설 관리자와 연결 끊김. 마도왕 페하에게 도움을 요청. 수락하신다면 안내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베르덴, 아니 마도왕의 힘이 필요한 모양.

그나저나 이 뭔지 모를 미지의 장소에서 발생한 문제들이라…… 마음 한편으로는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마법사로서의 호기심 또한 강하게 일었다.

역사서로만 접했던 마도왕과 관련된 유적이니.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락한다.”

[수락 확인. 먼저 상황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외눈 골렘, 알파가 종종걸음으로 앞장섰다.

발의 보폭이 작은 탓에 몸짓에 비해 빠르지는 않았다. 사람이 평범하게 걷는 속도보다 약간 느린 정도.

베르덴이 오리엔트를 쥐었다.

최소한의 의심을 남겨 둔 그가 알파의 뒤를 따라 통로로 향했다.

* * *

마도왕의 무덤은 고요했다.

베르덴과 알파의 발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 아래에는 기다랗고 넓은 복도가 펼쳐져 있었고, 적지 않은 간격을 두고 여러 개의 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크기에 비해 그 숫자가 적다.

그만큼 안이 넓다는 뜻일 터. 그중 일부는 벽면에 유리창이 나 있기에 안이 훤히 보였다. 스쳐 지나가며 내부를 확인했다.

‘……골렘이 한둘이 아니군.’

알파와는 다른 형태의 골렘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런데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동력을 상실하기라도 한 듯 어떤 마력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마석등의 불빛만이 사방을 비추고 있었다.

‘여긴 도대체 뭐지?’

의문은 더욱 깊어진다.

여태까지 쌓아 온 지식과 상식과는 궤를 달리하는 생소함이다. 물씬 느껴지는 이질적인 분위기…… 기시감이 든다.

그래, 마치 이건 무덤이 아니라───

[도착했습니다, 마도왕 폐하.]

알파가 어떤 문 앞에 다가섰다.

그러자 마력이 반응함과 동시에 내부가 드러났다.

원형으로 이루어진 장치에 마련된 공간에는 세공된 마석이 여럿 꽂혀 있었고, 원의 중심에는 360도로 회전하는 의자가 놓여 있다.

‘여기가 상황실인가.’

참으로 신기한 구조다.

흥미롭게 둘러보고 있자, 알파가 의자 옆에서 빤히 베르덴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앉으라는 모양.

함정은 아닌 것 같다.

마력 감지로 훑어봤지만 정교하게 만들어진 금속 의자에 불과했다.

조심스레 의자에 앉았다.

[현재 확인 대기 중인 무단 침입자 기록이 3건. 기록을 확인하겠습니까?]

“기록?”

문서를 말하는 건가?

수락하자 알파가 장치에 다가가 팔을 움직였다. 그 순간 위에 있던 마석 하나가 발광하더니, 어떤 장면이 허공 위로 떠올랐다.

베르덴이 고용한 유물 탐사단.

그들이 무덤에서 온갖 마법 함정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와해되어 버린 탐색자들.

혼란 속에서 도망치는 한스 데이켈의 몸에 마법진이 설치되었다.

다음 장면에서는 공간 이동 함정에 당한 라이반 크루소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어떤 미로에서 거대한 골렘에게 처참하게 분쇄되어 사망했다.

그 잔해들은 바닥이 열리며 깔끔하게 청소되었다.

환영 따위가 아니다.

저건 과거의 기억 그 자체였다.

그 사실에 베르덴이 경직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누군가의 기억을 기록하고 열람할 수 있다니.

마치 마도사의 마법 <기억 전이>와 흡사하다. 물론 알파가 보여 준 영상에는 오로지 ‘시각적’ 정보밖에 없었지만 그렇다 해도 실로 경악스러운 광경이었다.

‘발상 자체가 생소한 건 아니다.’

마탑, 마도국, 마법도시를 아우르는 마법계.

숱한 마법사들 사이에서 ‘기억’을 보관해 옮기는 것에 대해 거론된 적이 있었고, 실제로 기술 실현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보란 듯이 실패했다.

적지 않은 예산을 잡아먹고도 성과는 조금도 얻지 못했다. 구현되지 못한 발상은 그저 기록 속에 남아 잊혔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보게 되다니.’

그것도 완성에 이른 상태로.

설마.

베르덴의 뇌리에 어떤 가능성이 스쳤다.

[마도왕 폐하, 나머지 2건의 기록도 확인하겠습니까?]

“……확인하겠다.”

두 개의 기억이 연달아 눈동자에 비쳤다.

하나는 탐색자들과 비슷한 행색의 유물 탐사단이 전멸당하는 장면이었고, 다른 하나는 열린 문으로 침입한 거대한 뱀이 흔적도 없이 지워지는 내용이었다.

잠시 후 영상이 종료되었다.

기록을 담고 있던 마석의 빛이 잠잠해졌다.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베르덴의 벽안에 점차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그 반대였다.

그러니 확인할 수밖에.

[기록 재생 종료. 문제가 없다면 시설 문제로 안내하겠습니다.]

“……알파,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경청.]

무거운 긴장이 내려앉았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한차례 호흡을 가다듬은 베르덴이 나지막이 물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이곳에 온 게 언제지?”

알파가 즉답했다.

[467년 11개월 23일 4시간 38분 17초 전입니다.]

마도왕이 세상에서 모습을 감춘 건 약 500년 전.

역사서에는 그렇게 남아 있긴 하나, 현 마법계에서는 500년 전에 사망했다는 게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당시만 해도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으니까. 마도왕이 직접 세운 마도국에서도 비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바였다.

‘그런데 알파의 대답은 이를 전면에서 부정하고 있다.’

베르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걸어가 장치에 손을 얹었다. 금속의 서늘함이 피부에 스며들었다. 그 감각이 머릿속에 있는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질적인 분위기.

복도에서 느낀 기시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이곳은 무덤 따위가 아니야.’

여긴.

‘마도왕의 실험실이다.’

* * *

마도왕의 생사가 불분명해졌다.

아무리 초월자라고 해도 몇 세기에 걸쳐 지금까지 살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마도왕이니 혹시 모른다.

그는 역대 마법의 초월자 중에서도 가장 이례적인 존재이니.

그보다 문제는 이 실험실이다.

“이곳이 설립된 지 얼마나 지났지?”

[535년 8개월 11일 14시간 28분 29초가 지났습니다.]

마도왕이 활동할 당시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어째서 마도국이 있는 동대륙이 아니라 서대륙에 지어진 거지? 그리고 무려 400년 이상이나 방치한 이유는? 실험실의 목적은?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의문투성이다.

‘아니,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다.’

그래 봤자 답은 나오지 않을 테니.

지금은 실험실 전체를 직접 확인하는 게 먼저다.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기 위해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진실과 미지의 마법 기술.’

베르덴은 반드시 알아낼 생각이었다.

한 명의 마법사로서. 과거에 사라진 마도왕이 대체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알파, 시설 문제로 안내해라.”

[확인. ‘골렘 제작’ 시설로 안내하겠습니다.]

다시금 알파가 앞장서서 걸었다.

상황실에 있는 문을 넘어, 복도에서 더 먼 깊숙한 장소로. 그렇게 한동안 걷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뭔지 모를 기계 속에 골렘이 잠들어 있었다.

“……문제라는 게 이 골렘인가?”

[약 6년 전, 내부의 충격으로 마법진 손상 및 동력 상실. 그로 인해 실험실과 1차 동력실, 1차 동력실과 2차 동력실, 2차 동력실과 관리자실이 완전 격리된 상태. 시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기 있는 ‘수리 골렘’이 필요합니다.]

내부의 충격?

“습격자가 있었다는 건가?”

[시설 침입 3건 중 2건으로 인해 피해 발생. 1건은 2차 동력실에 들어간 침입자가 동력원을 손상. 최근 1건은 1차 동력실에 들어간 침입자가 마법진을 파괴했다고 추정합니다.]

시설 침입자 3건.

빛을 잃은 유물 또한 세 개. 말인즉슨 습격자는 방주의 일원일 터.

어째서 그런 짓을 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알 수는 없겠지.

“침입자는 어떻게 됐지?”

[침입자 둘은 관리자가 직접 살해. 1차 동력실에 갇힌 침입자는 소재 불명입니다.]

방주의 일원들을 죽였다라.

고대의 시련에 도전하고자 했던 만큼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었을 텐데. 마도왕의 실험실을 관리하는 존재이니만큼 격이 다르다는 건가.

어쩌면 몸체의 절반 이상이 최상위 금속으로 이루어진 거대 골렘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베르덴이라 해도 여간 곤란한 게 아닐 테지.

그때, 알파가 말했다.

[시설 복구 계획 순서 설명. 수리 골렘으로 완성하여 동력을 상실한 문을 강제로 개폐. 1차 동력실의 문제점 해결. 2차 동력실의 동력원 수복. 관리자와의 접촉입니다.]

작은 팔이 잠든 골렘을 가리켰다.

[이 수리 골렘은 제작 도중 중단된 상황. 몸체는 완성. 해결 방안 제시. 전용 마법진의 완성 및 순도 높은 마력 필요. 마도왕 폐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마력의 순도는 충족할 거다.

가디언 엘프 카란스가 직접 인정했으니까.

그다음은 골렘 제작인데…….

“골렘 제작서는 어디에 뒀지?”

이곳은 엄연한 실험실이다.

당연히 그와 관련된 자료도 남아 있을 터. 베르덴의 예상은 적중했다.

[골렘 자료는 B-4 구역에 존재.]

하지만.

[현재 동력의 부재로 완전 격리된 상태입니다.]

“…….”

순간 문을 파괴해 버릴까 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마도왕의 실험실은 마도국의 건축 기술로 만들어져 있다. 기본적으로 마력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며, 언뜻 봐도 물리적인 내구성이 뛰어나 보인다.

부수는 데 성공한다면 필연적으로 실험실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터다.

결과적으로 정보는 하나도 없다.

더군다나 베르덴은 골렘 제작 경험이 전무했다. 막막하긴 하지만…… 그래도 절망적이지는 않다. 알파의 말에 따르면, 직접 손봐야 할 건 골렘에 깃든 마법진뿐이니까.

베르덴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마법진의 스페셜리스트다.

“……바로 시작하지.”

[마도왕 폐하 만세.]

알파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감정적인 건지 기계적인 건지 모를 반응이었다.

‘어쨌든.’

인공 골렘은 특수한 마법진을 사용한다.

그리고 수리 골렘의 마법진은 그보다 더욱 복잡하고 세밀했다. 마도왕이 직접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난생처음 접하는 구성의 마법진.

베르덴이 벽안을 빛내며 천천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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