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동부 늪지대
동부 늪지대가 금지로 지정된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지도의 일부를 차지할 정도로 넓은 면적.
그럼에도 인간의 거주가 아예 불가능할 정도로 환경은 참혹하다.
울창한 밀림은 시야를 혼탁하게 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음울함을 자아낸다. 아래의 늪지는 사람의 하반신이 잠길 정도의 수위.
섭취했다간 병에 걸릴 법한 혼탁한 물속에는 뭐가 숨어 있는지 눈으로 식별하기 어렵다. 썩은 악취는 냄새를 구별할 수 없게 하고 불쾌감을 가중시킨다.
감각의 협소는 공포 그 자체.
그리고 늪지대의 주민도 큰 문제다.
늪지 속에 숨어 있는 악어는 먹이를 물고 회전한다. 제법 칼밥을 먹은 전사의 하반신조차 뜯어 버릴 힘이다.
모기 떼는 밤낮 구분 없이 피를 빨아 댈 것이고, 거대한 뱀은 인간을 통째로 삼킬 생각이 가득하다. 육식 식물은 물론, 치명적인 독충과 독초는 당연한 요소다.
심지어 동부 늪지대에는 여러 지배자가 있다.
생존자들이 악명을 지어 기록을 남긴 아인종과 이형종. 늪 한가운데에서 그들과 마주쳐 놓고 살기를 바라는 건 행운의 영역이다.
또한 깊은 수렁이 알게 모르게 깔려 있다.
잘못 발을 디디는 순간 점토와 모래가 피해자를 사정없이 끌어당길 것이다. 바닥은 없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서서히 빠져 들어가는 악몽의 굴레.
마법사라면 비행으로 빠져나갈 수 있겠지만, 그 외 마땅한 수단이 없다면 끝장이다.
질식당해 죽은 시체는 수천 년이 지나도록 진흙 속에 홀로 남게 되는 것이다. 마치 방금 죽은 것처럼 썩지도 못하고.
늪지대의 개척은 지극히 어렵다.
게다가 개척으로 얻을 이점 또한 부족했다.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았으니까. 이미 왕국이 다스리는 영토는 넓었다.
고작해야 이득을 볼 수 있는 건 이동 시간의 단축이다. 딱히 쓸모는 없다. 차라리 지금처럼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가는 편이 더욱 경제적이었다.
동부 늪지대.
인간의 관점에서는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건 엘프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이 병든 숲을 보십시오, 형제여. 이건 자연이 아닙니다. 자연이란 자고로 생명력이 넘쳐흘러야 하는 법인데, 여기는 썩은 것투성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생명은 많은 것 같은데.”
벌레까지 포함하면 밀도 대비 숫자는 압도적이다.
“생명력하고 생명은 엄연히 다릅니다. 그리고 엘프가 중시하는 건 터전으로 삼을 수 있는 조화. 그런 관점에서 이 늪지대는 불모지나 다름없습니다. 또한 제가 계약한 정령은 늪지대의 정령이 아니라 숲의 정령이기에, 이런 환경은 저나 정령에게나 맞지 않습니다.”
“이해는 했다. 그런데 늪지대의 정령이란 것도 있나?”
“없습니다. 숲의 정령이 어쩌다 자리를 잡으면 모르겠지만 그런 경우는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그만큼 늪지대가 기피될 정도로 끔찍하다는 뜻이죠. 만약 형제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 늪지대에 얼씬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차라리 인간들 틈에서 살고 말지.”
그렇게나 싫은 건가…….
지금 카란스는 정령 마법으로 만든 뿌리로 이동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악취 나는 물속에 발조차 담그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였다.
카란스가 드러내는 혐오감은 인간을 보는 것과 버금갈 정도였다.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가.’
베르덴은 비행 마법으로 고도를 유지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귀한 로브와 장비를 늪에 빠뜨리는 건 본능적으로 매우 꺼려지는 일이었다. 어떤 사람인들 그렇지 않겠냐만.
“그 생각은 다른 엘프들도 같은 건가?”
“전부는 아닙니다만 태반 이상은 제 뜻에 동조할 거라 믿습니다. 적어도 제 누이가 봤다면 여길 완전히 뒤집어엎었을 겁니다. 저 이상으로 썩은 물과 나무를 굉장히 혐오하거든요.”
누이라면 세계수의 관리자를 말하는 건가.
‘분명 이름이 세렌디아였지.’
카란스의 기억에서 본 적이 있는 엘프였다.
그나저나 엘프도 취향이 각양각색인 듯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긴 하지만 수평과 수직이 어우러진, 집단주의 사상을 가진 엘프는 비교적 성향이 전체적으로 균일할 줄 알았는데.
어쨌든 다수의 엘프는 썩은 걸 싫어한다.
베르덴은 그 사실만을 머릿속에 남겨 두며 엘프라는 종족을 조금 더 이해했다.
앞으로 나아가던 그때, 거대한 나무를 하나 발견했다.
다른 늪지대의 식물과는 달리 생명력이 물씬 느껴졌다. 교감을 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카란스가 나무에 손을 대었다.
눈을 감자 일순간 사라지는 소리.
고요해진 늪지대의 품속에서 카란스가 말했다.
“역시 숲의 정령의 힘이 정상적으로 발휘되지 않는군요. 집중을 해 봤지만 교감이 깊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추적은 무리라는 의미인가?”
“아슬아슬하게 가능은 합니다. 형제가 찾고 있는 인간 무리가 이 근처를 지나갔다고 하는군요. 다만 시간을 지체하게 된다면 이 늪지대는 그들의 흔적을 잊을 겁니다. 그러니 서두르는 게 좋겠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다.
베르덴과 카란스가 속도를 높였다.
그러다 먼젓번에 얻은 흔적의 끝에 도달하면, 다시 적합한 나무를 물색해 추적을 이어 나갔다.
카란스의 활약 덕분에 베르덴은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냥 순탄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늪지대의 주민들이 몰려든다.
* * *
탐색자들은 제법 명성을 떨친 유물 탐사단이다.
의뢰의 특성상 온갖 험지를 탐사하는 만큼 아인종과 이형종과 맞닥뜨리는 상황이 빈번할 수밖에 없었다.
모험가가 아닌 그들로서는 교전을 피하는 게 기본적인 원칙이었다.
그런 이유로 매직 아이템 혹은 연금술로 만든, 특수한 향수 등을 사용해 체취를 지우거나 기척을 숨겨, 사냥꾼들의 감각을 속인다.
주로 깊은 숲이나 늪지대에서 마차를 끌고 이동할 때 쓰는 방법이다.
당연하게도 베르덴과 카란스는 그러한 준비가 부족했다. 왜냐하면 애초에 유물 탐사단이 아니니까.
신선한 냄새가 포식자들을 자극했다.
“이런, 또 쫓아옵니다!”
카란스가 연신 활시위를 당기며 소리쳤다.
팍! 팍! 일직선으로 날아간 나무의 화살이 곤충의 머리를 관통했다. 그 빈자리를 다른 이형종이 채웠다.
정령 마법으로 계속해서 화살을 생성하고는 있지만 수가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베르덴의 스태프에서 불꽃이 명멸했다.
<화염역병>
다섯 줄기의 불길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타깃은 벌레 형태를 한 이형종 한정. 뾰족한 침을 가진 거대 모기 떼와 녹색 산성 액체를 뚝뚝 떨어뜨리는, 이족 보행 곤충이 단번에 소멸했다.
[키르르르륵.]
소란이 점점 커진다.
그럴수록 괴물의 숫자가 더 많아지고 있다.
마법으로 세 자릿수에 육박하는 벌레를 쓸어버렸음에도, 그 배를 훌쩍 넘는 무리가 사방을 에워쌌다.
멀리서는 희미한 기척을 가진 아인종들이 점차 가까워지는 게 느껴진다.
카란스의 시선이 그를 포착했다.
“움직임이 조직적입니다. 아마도…….”
“그래,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가 있는 것 같군.’
이형종과 아인종이 섞여 있는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물론 빛이 들지 않는 동굴에서처럼 서로 물어뜯다 끝내 공존을 하는 경우도 있긴 하나, 그건 특수할 정도로 밀폐된 환경이기 때문이다.
동부 늪지대의 넓은 지형과는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할 때쯤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쿵.
사람의 발소리와 흡사하다.
다만 그보다 수십 배는 큰 울림이었다. 하늘이 가려진, 어두컴컴한 늪지대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구어어어…….]
늪지대의 지배자 중 하나, 늪지 거인, 스웜피든.
끈적거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와 비슷하게 늪으로 이루어진 몸체가 반복적으로 꾸물거렸다.
카란스가 즉각 마력을 일으켰다.
나무뿌리가 놈의 몸체를 꿰뚫고 화살이 머리를 터뜨렸다. 그리고 베르덴이 쏘아 보낸 <화염구>가 폭발을 일으켰다.
그러나 위력이 무색하게 거인은 너무도 멀쩡했다.
유체에 가까운 몸뚱이는 금세 본래의 형상을 되찾았다.
“으, 썩은 웅덩이에 들어가 허우적거리는 듯한 느낌입니다. 마치 거대한 슬라임을 상대하는 느낌입니다.”
슬라임이라.
확실히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저 거인이 가진 부정형의 특성은 슬라임과 흡사하다.
어쩌면 슬라임의 변종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핵은 없을 것이다. 문득 명확한 에너지원이 없이 어떻게 살아 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곧 잡념을 털어 냈다.
이형종 중에는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존재가 즐비하니까.
어쨌든 육체를 완전히 붕괴시키는 것이 유일한 토벌 방법일 터.
“카란스.”
“예, 형제여.”
“만약 내가 늪지대를 쓸어버리면 어떻게 되지? 자연 교감에 문제가 생기는 건가?”
“작은 숲이라면 그렇겠지만 여기는 아닙니다. 생명력이 죽어 가고 있는 이딴 곳은 자연이 아니니까요.”
지극히 엘프의 기준이다.
잘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문제가 없다면 그걸로 됐다.
베르덴이 오리엔트를 다잡았다.
“잠깐 나무 위로 올라가 있어라.”
“알겠습니다.”
카란스가 숲의 정령을 데리고 위로 솟구쳤다.
베르덴이 무슨 짓을 할지 단번에 이해한 것이다. 괴물들 틈에 남겨진 베르덴이 마력을 일으켰다. 사방에서 거리를 좁히고 있던 놈들이 움츠러들 정도의 압박감.
‘안 그래도 귀찮았는데 잘됐군.’
마도왕의 무덤이 코앞에 있다.
고작 늪지대의 괴물들 따위에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드물게 짜증을 드러낸 베르덴이 마법을 연산했다.
허공에 화염의 구체가 구현된다.
그 열기에 늪이 끓기 시작했고 벌레들은 몸부림치며 붉게 타올랐다. 생전 느껴 본 적 없는 뜨거움에 스웜피든이 한 발짝 뒷걸음질 쳤다.
본능의 경종이 울린 것이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늪지대의 지배자 중 하나로서 남고 싶었다면, 모험가들 사이에서 두려운 이형종으로 남고 싶었다면 나타나서는 안 됐다.
트리플 캐스팅.
<작염구>
거대한 불덩이들이 늪지에 떨어졌다.
콰과과과과광!
고막을 찢는 폭발과 함께 주변 일대가 화마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파괴는 끊이지 않는 연속성으로 늪지대의 주민들을 학살했다.
늪지대의 지배자든 뭐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저항은 무색했고 결과는 같았다. 잿빛 마법사의 신경에 거슬린 놈들은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동부 늪지대 역사상 최악의 생태계 교란종.
그 이름은 베르덴이었다.
* * *
동부 늪지대의 일부가 초토화되었다.
자제할 필요가 없는 베르덴은 원 없이 원소 마법을 흩뿌렸고, 그로 인해 늪의 터전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제 모습을 되찾으려면 수년은 있어야 할 터.
베르덴은 늪지대의 괴물들에게 공포스러운 환경 파괴범이었다.
[키이이이…….]
[끄륵……! 끄륵……!]
그러나 시위조차 할 수 없었다.
먹잇감을 쫓던 주민들은 보금자리에 숨어 모습을 감췄다. 스웜피든을 포함해 늪지의 지배자 셋이 학살당한 이후부터 그러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방해하지 않으면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특히나 이형종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었다.
“이제야 잠잠해졌군.”
“…….”
카란스는 침묵했다.
아무리 그가 썩은 늪지대를 싫어하는, 지역 차별자 엘프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처참해질 줄은……. 아주 조금이지만 죄책감이 일었다.
뭐, 곧 사라졌지만.
늪지대에서의 추적은 한결 더 수월해졌다.
가속화된 속도는 탐색자들 이상.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유적의 입구와 그 주변에 세워진 탐색자들의 캠프.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마법진의 흔적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록 관리하지 않아 이미 효력을 상실했다.
그 결과 마차를 끌고 왔던 말들은 찾아온 괴물들에게 잡아먹혔을 것이다. 난장판이 된 캠프와 널브러진 말의 고삐 주변에 혈흔이 짙게 남아 있는 걸 보면 분명.
‘한스처럼 탈출한 사람은 없는 거 같은데.’
베르덴이 고대의 유적에 다가갔다.
살며시 손을 대자 마력이 느껴졌다. 확실히 이건 마도국이 자랑하는 건축 기술이었다.
옛날과는 달리 현재는 어느 정도 정보가 풀려 독점 기술은 아니었지만, 이만한 정교함을 갖출 수 있는 건 현시대에 마도국이 유일했다.
마탑에서 얻은 지식 중 하나였다.
이제 고대의 시련이 코앞이다.
호흡을 다스리며 긴장과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러던 중 카란스가 말했다.
“형제께서 만족하는 것 다행입니다. 아주 보람찬 일이었습니다.”
“네 덕분이지.”
“하핫, 별말씀을.”
카란스가 쑥스러운 듯 볼을 긁적였다.
그러다 미소를 지우고는 유적의 입구를 응시했다. 지하의 암흑이 눈동자를 가득 메웠다.
“형제도 알다시피 저희 엘프는 인간보다 수명이 깁니다. 그중에서도 관리자 격에 위치한 엘프는 기나긴 세월을 살기에 500년 전의 시대를 경험한 분도 계시죠. 그렇기에 마도왕이란 이름은 엘프들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엘프가 과거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옛 관리자께서 말씀하시길, 마도왕은 성군(聖君)과 폭군(暴君)의 기질이 뒤섞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와 더불어, 지극히 인간답지만 가진 힘은 초월의 극치이기에 자연재해와 다름이 없으니. 인간이라는 종과 별개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시해야 할 존재라고도 하셨습니다.”
“…….”
“그러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런 마도왕의 무덤이라면 저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 가득할 테니.”
카란스는 유적 탐사에 동행하지 않는다.
마도왕의 무덤에 도사린 여러 위험들 때문이다. 전력의 베르덴과 필적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미지의 변수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늪지대에 오기 전, 카란스가 먼저 언급한 사실이었다.
베르덴은 카란스의 진심 어린 충고를 받아들였다.
서로 악수를 나눴다.
“그러지. 안내해 줘서 고맙군, 카란스. 페르네에게 돈을 꽤 남겨 놨으니,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낌없이 써도 충분히 남을 거다.”
“기다림이 지루하지는 않겠군요. 감사합니다.”
카란스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형제여.”
가볍게 지면을 박찬 카란스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 한바탕 괴물들을 쓸어버렸으니 도중에 습격을 당하는 일은 아마 없을 거다. 설령 지난번처럼 포위된다고 해도 카란스의 실력이라면 찰과상 없이 빠져나갈 수 있을 터.
달리 걱정할 이유는 없다.
‘……이 정도면 됐겠군.’
마법사의 회한에 새로이 등록한 부여 마법 등. 베르덴은 유적 앞에서 보유하고 있는 모든 비장의 수단을 다시금 점검하고 상기했다.
그야말로 전력이다.
이 이상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마도왕의 무덤.
그 안으로 역천의 마법사가 한 발짝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