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21화 (221/366)

221화 무덤으로 (1)

베르덴에게 의뢰를 받은 탐색자들은 미지의 유적을 찾기 위해 여정을 시작했다.

과거 같은 유적을 찾다가 실종된 유물 탐사단.

세월에 의해 희미해진 그들의 자취를 쫓아 움직였다. 그렇게 탐색 범위는 왕국 전역에서 3개의 지역으로 축소되었다.

‘먼저 테인체 구릉.’

드넓고 완만한 산과 언덕 위를 거닐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시원하리만큼 주변 광경이 탁 트여 있었다.

오래된 유적이 있을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말인즉슨 탐색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다만 실제로 구릉에 숨겨진 유적을 발견한 사례가 있으니 무시할 수 없는 노릇.

그런 와중에 실종된 탐사단의 흔적을 발견한 건 다행이었다. 구릉의 탐사는 상정했던 것보다 두 배 이상으로 빠르게 끝났다.

‘다음은 아르에곤 산맥.’

여러 산이 뒤엉킨 지형은 깊으면 깊을수록 무언가를 숨기기에 알맞은 장소다.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 만든, 유적의 ‘패턴’을 쓸 차례였다.

도중에 왕국의 도적단이 급습을 가하기는 했지만 문제는 없었다.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도적들을 참살했다.

놈들의 본거지에서 얻은 재산은 짭짤한 부수입. 유물 탐사단에겐 흔한 일이었다.

그렇게 나아가며 확보한 산맥의 자료들을 패턴과 대조해 본 결과, 이 산맥은 고대의 유적이 존재하기에 부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절대 없다’라는 건 아니었으나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미련을 단칼에 끊어 내는 건 유물 탐사단이 갖춰야 할 마음가짐이다. 괜히 이곳저곳 헤매다가는 막대한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다.

의뢰인들은 그런 예상 못 한 인내를 매우 싫어한다. 곧바로 산맥을 벗어났다.

‘마지막으로 동부 늪지대.’

발길이 끊긴 지역이다.

도적과 범죄자가 숨어들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금지. 사방에 먹잇감을 노리는 괴물들이 숨어 있었고 독을 품은 식물들은 언제나 위협적이었다.

솔직히 말해 탐색자들에게 힘겨운, 극한의 환경이었다.

모험가, 마법사, 학자 등 마법사적인 성향이 강한 베테랑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그러했다. 포션 및 해독제와 같은 소모품이 빠르게 소모되었다.

본래라면 마법사들이 보급을 하곤 했지만 이곳의 하늘은 자유롭지 않았다. 늪지대 위로 비행하면 어김없이 기괴한 조류들과 곤충들이 급습했다.

놈들 때문에 낭비되는 마력을 생각하면 자칫 잡아먹힐 수도 있었다. 마력이 없는 마법사는 양팔이 잘린 전사와도 다름이 없으니까.

그렇다고 절반을 보내자니, 본대가 위험부담이 컸다. 그러니 탐사단 전체를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두 차례의 보급으로 시간을 소모했다.

도중에 탐사 보고서를 의뢰인에게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보급의 주기는 대략 15일로 이루어졌다.

빌어먹을 늪지대의 악취는 신물이 날 지경이다. 모두가 말은 안 해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늪을 불태워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탐색자들의 리더, 라이반 크루소 또한 그랬으니.

‘그런 상황에서 유적을 발견한 건 운이 좋았다.’

라이반이 물을 마시며 눈동자를 굴렸다.

하늘을 가린 거대한 나무들.

빛이 거의 닿지 않는 이 늪지대 한가운데에 목적지가 있었다.

지상 위로 불쑥 고개를 내민 거대한 인공물.

덩굴로 뒤덮인 구조물은 기이하게도 문이 열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어두컴컴한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놓여 있었다.

“이런 형태의 고대 유적은 본 적이 없는데…… 굉장히 특이하군.”

마법사이자 연구자로서의 본능이 치솟는다.

미지라는 건 언제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라이반이 이끄는 탐색자들은 바로 그를 위해 만들어진 유물 탐사단이었다.

옆에서 한스가 다가왔다.

“라이반 님, 탐사 준비를 마쳤습니다.”

유적을 발견하자마자 단 두 시간 만에 탐사 캠프를 완성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각자 부여받은 임무를 실행했다. 마법진을 형성해 외부 침입을 막고, 천막을 세워 잘 곳을 만들거나 장비를 점검하는 등 정비를 마쳤다.

“하하, 수개월간 고생해서 그런지 모두 의욕이 대단하군. 그럼 선발대를 구성하도록 하겠네. 지하 아래 부근을 탐색해 어떤 유적인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니.”

“알겠습니다. 그런데 의뢰인에게 언제쯤 연락하는 게 좋겠습니까?”

“흐음…….”

의뢰인, 애셔.

그와 합의한 것들 중에는 유적 탐사의 직접 참가라는 조건이 있다. 반드시 이행해야 할 사안이다.

왜냐하면 유적의 열쇠로 추정되는 푸른 사파이어를 애셔가 가지고 있으니까.

“일단 기초 탐사를 마친 뒤에 보내도록 하지. 캠프를 만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말이야. 휴식은 취해야 하지 않겠나.”

“그럼요. 아주 당연한 말씀입니다.”

한스가 웃으며 아부했다.

그렇게 선발 탐사대가 만들어졌다.

리더인 라이반과 2인자 한스가 그 일원이었다.

옛 유적에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대충 구경만 한다고 탐사대원 한두 명만 보내는 건 위험하다. 그들을 찾아 소수의 인원이 가고 또 실종되는 건…….

가능한 기피해야 할 상황이다.

“주의 사항은 전부 지겹도록 기억하고 있을 테니 말은 않겠네. 선발대에 포함되지 않는 대원들은 자유로이 휴식을 취하되, 지원 요청이 오면 곧바로 나갈 수 있도록 대기하도록 하게.”

“예, 리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각 선발대에게 마법이 부여되었다.

헬리온 마탑 출신, 5위계 부여 마법사 라이반의 마법이다. 이로써 어지간한 함정에도 즉사할 위험은 없을 터.

“이제 내려가도록 하지.”

전위는 백금 등급 모험가와 상급 용병 출신 전사 둘이 담당했다. 마법사들은 철저하게 그들을 지원할 것이다.

터벅, 터벅.

느리고 분명하게 지하로 발을 디뎠다.

휴대용 마석등을 설치하며 어둠을 밝혔다. 벽면에는 인위적으로 그어진 홈 여러 개가 통로를 따라 쭉 자리해 있었다.

그를 보던 한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라이반 님, 이 홈…… 뭔가 익숙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눈에 익다.

다른 마법사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아직 판명 난 건 없다.

다시 숨을 죽이고 아래로 내려가자 끝에 도달했다. 하나의 문이 있었는데, 침입자를 환영한다는 듯이 활짝 열려 있었다.

하지만 탐사대의 이목을 끈 건 그게 아니었다.

통로를 따라 이어진 홈들.

그 틈새가 일제히 집결된, 문 바로 위에 새겨진 표식.

지고한 팔각성(八角星).

각 빈자리에는 서로 다른 마법 문자가 가득했다. 저건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위대한 마법진이기도 했다.

라이반이 목소리를 흘렸다.

“저건 마도국의 국기…….”

마도국은 서대륙에 있다.

그리고 에스티리아 왕국은 동대륙의 국가다. 서로 접점이 있을 리가 없다.

‘아니, 단 하나라면 가능성이 있다.’

머나먼 과거에 실종된 마법의 정점.

“마도왕 올다르크.”

그 한마디에 탐사대가 경악했다.

“라, 라이반 님. 그 말씀은 여기가 마, 마, 마도왕의 유적이라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마법진이 새겨져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생각해 보면 유적 자체가 마도국의 것과 닮아 있기에 익숙해 보였던 걸세. 그러니 최소한 마도국과 관련된 유적이고 최대로는 마도왕의…… 무덤이라고 추정이 되는군.”

라이반이 빠르게 사고했다.

이윽고 유적을 바라보던 그가 마법을 시전했다. 교양으로 배운 2위계 원소 마법이 벽면을 후려쳤지만 흠집조차 낼 수 없었다.

“……어쩐지 고대의 것으로 보였음에도 풍화된 흔적이 없다 싶었더니, 이 구조물 자체에 마력이 깃들어 있군.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흠집조차 내지 못할 만큼.”

다름 아닌 마도국의 기술이다.

이로써 라이반의 주장에 무게가 실렸다. 그 사실에 선발 탐사대 전체에 침묵이 감돌았다. 멍한 시선이 표식과 문 너머의 암흑에 고정되었다.

라이반이 턱을 쓸었다.

‘의뢰인은 알고 있었던 것 같군.’

그렇기에 탐사에 합류하려 했던 거다.

그리고 푸른 사파이어의 유물 또한 넘기려 하지 않은 거고. 맞춰 보니 하나같이 내건 조건들이 전부 이해가 되었다.

‘대체 애셔는 누구인가?’

정체를 숨긴 마법사.

한스를 간단히 제압한 힘을 가진 그는, 누구길래 마도왕의 유물을 가지고 있을까? 어쩌면 마도국에서 파견된 인물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

생각을 마친 라이반이 입을 열었다.

“일단 올라간 다음에 채비를 갖추도록 하지. 그리고 의뢰인에게 연락을…….”

“라이반 님.”

한스가 라이반의 팔을 잡았다.

“바로 본 탐사를 시작하시죠.”

“뭐?”

“마도왕입니다, 라이반 님! 초월자 중에서도 정점에 있던 그 마도왕 말입니다! 만약 여기에 마도왕의 아티팩트가 잠들어 있다면…… 그건 의뢰인도 누구의 것도 아닌, 저희의 것입니다.”

서로 눈을 마주했다.

한스가 쓰고 있던 안경에 욕망이 가득했다. 마법사가 가진 본능이다.

침을 삼킨 라이반이 말했다.

“하, 하지만 열쇠가 의뢰인에게 있네.”

“그 푸른 사파이어는 필요 없습니다. 여기도, 저기도 문이 열려 있지 않습니까. 앞선 탐사대가 같은 유물을 가지고 통과한 게 분명합니다. 어쩌면 저 안에 열쇠가 굴러다니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납득이 되는 통찰력이다.

그래,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곳을 찾아온 건 탐색자들이 처음은 아닌 것으로 보이니.

라이반이 고개를 돌렸다.

다른 탐사대원들 또한 한스와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눈동자에는 저마다의 탐욕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를 보던 라이반 또한 마찬가지였다.

라이반 크루소.

그는 마탑 출신이다.

“……올라가서 의견을 모으도록 하겠네.”

곧장 지상으로 올라갔다.

탐색자들을 모아 결정을 내렸다.

결과는 만장일치.

역시나 반대는 없었다,

마도왕의 유적 탐사가 시작되었다.

* * *

“……탐색자들이 연락을 끊었다?”

베르덴의 물음에 페르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서가 올 시간이 이미 지났어요. 명백히 애셔 님과의 계약을 어긴 거죠. 동부 늪지대에서 전멸당한 거나 실종된 거면 이해하지만 그게 아니면…….”

페르네가 슬쩍 눈치를 봤다.

입가를 감춘 베르덴이 보고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 보고서에는 동부 늪지대로 세 번째 탐사를 진행한다고 적혀 있다.’

탐색자들은 두 번의 실패를 겪었다.

달리 말해 그만큼 늪지대에 익숙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왕국의 금지라 불리는 장소이기에 뜻하지 않은 위험에 처할 수도 있겠지만, 탐사대 전원이 몰살당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럼 남은 가능성은 하나다.’

탐색자들은 고대의 유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도왕과 관련되어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러니 의뢰인인 베르덴을 배제한 것이겠지.

마법사의 생리는 훤히 꿰뚫고 있다. 상대가 마탑 출신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열쇠는 나에게 있을 텐데.’

그들에게는 마도왕의 유물, 푸른 사파이어가 없다.

그런데도 탐사를 감행했다면, 그와 비슷한 물건을 손에 넣었거나 필요가 없다는 상황이 된다.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마도왕의 무덤은 방주에서 지정한 고대의 시련. 베르덴 이전에 다른 도전자들이 있었고, 누구도 돌아오지 못했다고 리스너가 언급했었다.

그러니 사퍼이어와 같은 유물이 발견되거나 혹은 문 자체가 열려 있을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직접 가 봐야겠군.’

그것도 지금 당장.

보고서를 챙긴 베르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늪지대로 가시게요? 애셔 님이니 별문제는 없겠지만, 보고서만으로는 추적하기 어려울 텐데요.”

“혼자 갈 생각은 없다.”

이 주점에는 칵테일을 즐기고 있는 숲의 추적자가 있었으니까.

그러던 그때였다.

콰앙!

주점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모두의 시선 속에서, 한 사람의 그림자가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헝클어진 머리, 망가진 안경.

피투성이의 로브는 여기저기 찢겨 있었다. 그야말로 만신창이었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조차 저런 몰골은 아닐 것이다.

불청객은 베르덴이 아는 얼굴이었다.

“……한스 데이켈?”

탐색자들의 2인자, 한스.

자신의 이름이 불린 그가 고개를 들었다. 베르덴을 인식하자 흐릿해진 초점이 또렷해졌다.

“다, 당신…….”

털썩.

다가오던 한스가 힘없이 넘어졌다.

고통에 신음했지만 일어날 기력조차 없었다.

베르덴의 시선은 싸늘했다.

“내 허락 없이 유적을 탐사하겠다는 조건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게…….”

“전부 죽었나?”

“모, 모르겠습니다.”

한스가 이를 악물었다.

“여기저기서 발동한 마법 함정 때문에 바, 반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후, 후퇴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마법진에 휘말려서…… 뿔뿔이 흩어져서…… 저만 겨우……!”

“날 찾아온 이유는?”

“도, 도와주십시오……!”

탐색자들은 붕괴했다.

확인된 생존자는 한스가 전부였다. 뭔가를 할 수 있는 기반을 잃은 거나 다름없었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건 의뢰인인 베르덴이 전부였다.

마도왕의 유적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동료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계약을 어겨 놓고 뻔뻔하다.

하지만 마도왕의 유적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건 한스뿐이다.

베르덴이 말했다.

“곧장 안내…….”

그때, 한스의 몸에 마법진이 떠올랐다.

“어? 어? 이게 뭔…….”

한스가 마법진을 더듬었다.

당연하게도 사라질 리가 없었다.

찰나의 순간에 베르덴이 마법진을 분석했다.

전체적으로 시계의 형태를 띠고 있는 마법진이다. 움직이는 초침이 한 바퀴를 도는 순간, 지연되었던 마법이 발동하는 구조다.

‘그리고 저 안에 내재된 마법은…….’

“……?!”

눈을 부릅뜬 베르덴이 소리쳤다.

“페르네!”

“엣, 꺄악!”

베르덴이 페르네의 팔을 잡아, 자신의 뒤에 숨겼다.

전력으로 마력회로를 활성화한 그가 오리엔트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지형조작>

“어억?!”

주점의 바닥이 한스를 덮쳐 가두었다.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카란스! 블루! 도와라!”

“알겠습니다, 형제여!”

반짝!

베르덴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심지어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다. 그가 이토록 당황한 것을, 이들은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유를 묻지 않고 움직였다.

“숲이여!”

숲의 정령.

카란스의 의지에 따라 정령 마법이 발동되었다.

바닥을 뚫고 나온 나무뿌리들이 한스가 있던 자리를 뒤덮었다. 그 위로 베르덴이 <중력 장막>을 덧대었고, 블루는 물의 장막을 펼쳐 주위 사람을 보호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

한스의 눈에 비친 마법진의 초침이 끝에 도달했다.

틱.

빛을 흡수하는 섬광.

막대한 폭발이 페르네의 주점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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