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19화 (219/366)

219화 오리엔트 (1)

베르덴이 사용하는 룬 스태프, 오큘러스.

그를 재활용하는 건, 인간 중에서는 극소수의 대장장이만이 가능하다.

외수, 라이너스는 그중 하나.

“슬슬 시작해 볼까.”

며칠을 들여 전용 도구 및 특수 용기를 완성했다.

라이너스가 가죽끈을 입으로 당기며 오른팔의 역할을 할 집게를 고정했다.

먼저 할 작업은 룬의 해체.

눈앞에 있는 건 단순한 룬이 아니라, <충격>의 고등 룬이다. 실수는 곧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룬 작업에서 일말의 오차조차 없는, 까다롭고 섬세한 손재주는 필수적이다.

짝!

왼손으로 얼굴을 후려쳐 촉각과 시각을 바짝 세웠다.

───카앙───카앙!

금속을 두드려 스태프의 고정대를 만들었다.

조임쇠와 튼튼한 줄로 오큘러스를 단단히 묶고는 곧바로 작업을 진행했다.

오로지 왼손만으로 진행되는 룬 추출.

카각…… 카각…….

극한까지 끌어올린 감각만큼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시간이 지나자 느껴지는 건 손에 잡힌 추출 도구의 딱딱함뿐. 도구가 자신이 되고, 자신이 도구가 되는 물아일체의 시간이다.

스스로를 장인이라고 칭하려면 당연히 갖춰야 할 집중력. 한동안 눈을 감지 않았더니 흰자가 벌겋게 물들었다.

이틀이 지났다.

목이 마르고 허기가 진다.

식사를 미루고 작업 속도를 높이는 건 라이너스의 오랜 습관이었다. 혀를 내밀어 마른 입술을 적신 그가 손끝에 힘을 주었다.

“됐…… 다!”

카각. 소리와 함께 마침내 룬 문자가 분리되었다.

곧장 옆으로 옮겨 세공된 마석에 이식했다. 베르덴의 요청으로, 에스퍼렌사 후작가에서 준비해 준 마석이었다.

라이너스가 들뜬 숨을 내쉬었다.

“휴우, 오랜만에 하니 빡세구만.”

손을 쥐었다 폈다.

뻐근하긴 하나 예전의 감이 거의 돌아왔다.

간단히 식사를 한 뒤 하루 종일 잠을 잤다.

완전히 체력을 회복했으니 본격적으로 스태프 제작에 들어갈 차례.

화르르르륵!

마석을 넣고 전력으로 활성화했다.

마력 용광로의 온도를 최대한으로 높였다.

오큘러스의 뼈대와 데인스 강 주괴.

그와 함께 쓸 여러 금속 주괴들을 각기 다른 용기에 넣고는 마력의 불바다 속에 집어넣었다. 최상위 금속까지 남김없이 녹으려면 며칠은 기다려야 한다.

쉴 시간은 없다.

그동안 가장 중요한 작업을 해야 하니.

터벅, 터벅.

열기로 후끈거리는 피부를 식히며 걸음을 옮겼다.

“혼자 오브를 조합하는 건 처음인데…….”

긴장이 되긴 하지만, 곧 가라앉았다.

스승에게는 제대로 가르침을 배웠다. 기억과 육체에 배움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설령 재가 되어 버린다고 해도 잊지 않는다.

무지개 불꽃이 담긴 돌, 원소의 숨결을 특수한 장치에 집어넣었다.

이어서 그 장치와 네 개의 관으로 연결된 투명한 용기의 중심에 마력 크리스탈을 고정했다.

“이런 씹! 새거라 그런지 X같이 안 돌아가네.”

끼릭. 끼리릭.

이 악물고 나사를 돌려, 특수한 장치에 마력 용광로를 연결했다.

밸브를 열어 막혔던 통로를 개방했다.

마력과 뜨거운 열기에 반응한 원소의 숨결이 무지갯빛 불꽃을 발산했다. 네 개의 관을 타고 옮겨 간 불꽃이 마력 크리스탈이 있는 용기에 가득 찼다.

“어디 보자…….”

눈을 보호하는, 확대경 고글을 착용하고 내부를 바라봤다.

크리스탈에 원소의 숨결이 스며들고 있다.

물론 당연하게도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만으로는 소용없다. 숨결이 전부 스며들 수 있도록 크리스탈을 세공해야 한다.

‘위부터 시작할까.’

무리해서는 안 된다.

느리더라도 하나씩 차분하게.

벨브를 잠가 통로를 닫았다.

잠시 후 무지개 불꽃이 원소의 숨결로 되돌아갔다. 관을 차단하고 용기를 열어 마력 크리스탈을 꺼냈다.

위이이이잉!

발판을 밟자 합금 디스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스며드는 과정, 침성(浸成)에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정확히 짚어 크리스탈을 디스크에 갈았다. 꼼꼼히 확인하고는 다시금 불꽃을 스며들게 한다.

이런 과정을 셀 수 없이 반복해야 한다.

마력 크리스탈이 무지갯빛을 띠기까지 말이다.

그런데 만약 세공이 과하면, 불꽃은 걷잡을 수 없이 크리스탈의 안을 파고든다.

다시 말해 폭발이다.

충격이 약해 다치진 않겠지만…….

“실패하면 애셔한테 죽겠지.”

원소 마법사에겐 말 그대로 아티팩트와 같은 것들이니.

그러니 심혈을 기울였다.

금속 추출이 끝난 후에는 단조와 열처리 그리고 세공을 동시에 진행했다.

최상위 금속 흑요, 일명 흑강과 데인스 강을 기반.

칼같이 비율을 맞추어 합금에 사용될 금속들을 뒤섞었다. 마지막으로는 마법 처리를 거친 소울 트리의 줄기들을 녹여 넣었다.

만들어 둔 틀에 넣고 부었다. 식히고 부쉈다.

그렇게 스태프의 뼈대를 완성한 라이너스가 담금질과 벼름질을 시작했다.

땅! 땅! 땅!

금속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다리와 허리 등 전신을 활용한 망치질이다. 남은 왼팔에 축적되는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터득한 라이너스만의 방식이다.

치이이이익!

담금질에 사용되는 마력수가 증발되어 수증기가 자욱하다. 다시금 달궜다.

아주 특별한 합금이기에 내부까지 열이 닿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세공을 이어 갔다.

땅────! 땅────!

치이익!

카가가각각!

무아지경이다.

시간이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필요한 영양분만을 섭취하고 대장간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재료는 충분히 채워 넣어져 있으니까.

라이너스는 장인이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난 새벽.

“……성공했다.”

라이너스의 얼굴에 무지개가 비쳤다.

원소의 숨결이 크리스탈에 전부 스며든 것이다. 오브의 조합이 보란 듯이 성공했다.

‘오브라고 하기엔 수정에 가까운 모습이긴 한데.’

별로 이상한 건 아니다.

마력 크리스탈은 각자마다 다른 구조를 띠고 있으니까. 구체 세공 형태가 익히 알려져 있을 뿐, 다른 형태가 빚어진다고 해도 문제는 전혀 없다.

이윽고 스태프의 단조와 열처리마저 끝이 났다.

“아이고, 삭신이야…….”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뼈를 깎는 작업으로 정신과 육체가 마모되었다.

그래도 이제 완성이 코앞이다.

남은 전력을 끌어모아 움직였다.

고정된 스태프에 <충격> 룬을 이식했다.

진즉에 뼈대에 자리를 만들어 놨기에 위험하지도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룬이 일순간 파랗게 빛났다.

제대로 이식에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역시 나구만.”

라이너스가 미스릴 장갑을 착용했다.

조심스레 오브를 꺼내자, 장갑 너머로 막대한 울림이 느껴졌다.

꿀꺽.

침을 삼키며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스태프에 다가선 라이너스가 팔을 들었다. 비어 있는 위치에 오브를 장착한 그 순간 황금빛이 명멸했다.

서로 동기화된 스태프와 오브.

후욱.

마력의 파동이 맥동하며 대장간 전체를 진동시켰다.

라이너스가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전신이 땀에 젖은 라이너스가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리고 웃었다.

“걸작이군.”

때마침 새벽이 걷혔다.

동쪽에서 후광처럼 떠오른 태양이 새로운 스태프의 탄생을 맞이했다.

* * *

대주교와 마탑주가 떠나며 회담은 완전히 끝이 났다.

날이 밝자마자 에스퍼렌사 후작가의 비행정에 탑승해 왕도 레티아를 떠났다.

난간에 몸을 기대어 왕도를 바라봤다.

며칠 안 되는 시간이긴 하나 막대한 성과와 경험을 얻었다. 베르덴은 이번 왕도행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그건 에스퍼렌사 후작가 또한 그러했다.

돌봐 주고 있던 교인들을 루아스교에게 보내 주고, 대주교에게 직접 공헌을 인정받아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워렌스를 마탑으로 보내면서 마탑주와도 연을 트게 되었으니.

저택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따가운 눈초리를 받긴 했지만…… 문제없이 마무리되었기에, 더 이상 베르덴에게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며칠 간의 비행.

별일 없이 후작가의 저택에 도착했다.

“음, 이번에 보니 비행정 인테리어가 좀 상했던데. 이참에 확인해 봐야겠군. 칼리아 아가씨, 함께하시겠습니까?”

“그러는 게 좋겠군. 중앙 계단 하나가 삐걱거리는 게 좀 거슬렸거든. 아, 애셔. 그럼 조심히 돌아가도록.”

“그래.”

에드몬이 눈을 깜빡였다.

“엇, 아가씨한테 말을 놓……?”

“시끄럽고 따라와라, 할아범.”

칼리아가 에드몬을 끌고 비행정 안으로 들어갔다.

간단한 작별 인사였다.

베르덴이 비행정에서 하차하자, 그를 알아본 저택의 사용인이 다가왔다.

“애셔 님, 라이너스 님에게서 스태프가 완성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

마침내 고대하던 시간이다.

곧바로 대장간으로 향하려 하자 옆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에스퍼렌사 후작.

그가 멜자르드 단장에게 말했다.

“잠시 대장간에 다녀올 테니, 나를 대신해 정리하도록.”

“예, 각하.”

후작이 베르덴에게 고개를 향했다.

“네 스태프에 막대한 재산이 들어갔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가신들에게 시달리고 있지. 그러니 아무리 보수라고는 한들, 직접 결과물을 확인할 권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뭐, 당연한 일이다.

후작가의 설비와 재료가 아니었다면 제작은 시작도 못 했을 테니.

“물론입니다, 각하.”

* * *

에스퍼렌사의 대장간.

열기는 꺼져 있고 고요한 숲처럼 조용했다.

안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주저 없이 문을 열고 대장간에 들어서자, 졸고 있던 라이너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으음, 애셔. 일찍 왔…… 아, 후작 각하! 어서 오십시오!”

“그 스태프는 어디에 있지?”

“네, 여기 있습니다!”

라이너스가 옆을 가리켰다.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는 무언가. 이내 꽉 잡아 천을 걷어 내자 고정대에 장식된 스태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으로 쭉 뻗은 금속의 막대.

그 첨단에는 사다리꼴의 윗부분을 뗀 것 같은, 네 개의 기둥이 중앙에 있는 크리스탈을 감싸듯이 보호하고 있었다.

간단한 디자인이다.

하나 은연중에 느껴지는 내력은 심상치 않다.

베르덴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대단하군.”

“하하, 이거 만드는 데 진짜 영혼을 쏟아부었다고.”

“제작 과정을 설명해라.”

“넵, 각하. 그러니까 어떻게 한 거냐면…….”

라이너스가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새로운 스태프.

최상위 금속의 함유량은 최소 기준인 1할 6푼을 넘어 2할에 육박한다. 넉넉히 확보한 걸 손실 없이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들어간 최상위 금속은 총 두 종류.

흑요, 일명 흑강과 데인스 강이다.

흑강의 모토는 흑요석이다.

흑요석은 본래 광물이 없는, 깨지기가 쉽지만 예리함을 지닌 암석. 전문적인 연마 과정을 거친다면 극도의 예리함을 지니게 된다.

그러한 특성을 아깝게 여긴 고대의 장인들은 새로운 금속을 창조했다.

마법적 처리를 통해 흑요석의 특성을 유지한 채 녹인 뒤, 단점을 없애 줄 각종 금속들을 추가했다. 그리고 특수한 처리를 하면 흑강이 만들어진다.

예리함, 경도, 강도를 고루 갖춘 최상위 금속이 말이다.

“기존에 있던 스태프를 녹이고 데인스 강 주괴를 섞었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미스릴, 다마스 강, 실렌 합금 등을 이용해 비율을 맞춰 조화를 이루었고요. 마지막으로 소울 트리의 줄기를 사용해 성능을 더욱 높였습니다.”

라이너스가 탁상 위에 놓인 녹색 줄기를 가리켰다.

베르덴이 말했다.

“쓰고 남은 건가?”

“세 개 쓰고 하나만 남았지. 전부 녹여 넣기에는 과도해서 말이야. 그나저나 소울 트리의 줄기란 거, 어디서 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좋은 소재던데. 특히나 마력 수용성과 전도율이 미스릴하고 오브와 아주 잘 어우러지더라고.”

라이너스는 신나게 떠들었다.

장인으로서 결과물에 아주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후작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저 스태프 하나에 얼마나 많은 재료가 들어간 건지…… 가치를 환산하자 눈앞이 아찔한 듯했다. 작게 심호흡을 해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래서 그 스태프의 성능은 뭐지?”

성능이라.

마침 베르덴이 확인할 참이었다.

그 전에 라이너스에게 물었다.

“라이너스, 이 스태프의 이름은 정했나?”

작명은 장인의 특권이다.

감정으로도 볼 수 있긴 하나 가능한 직접 듣고 싶었다.

라이너스가 씨익 웃었다.

“동쪽의 서광(曙光), 오리엔트(Orient).”

스태프를 완성했을 당시.

동이 트는 걸 보고 영감을 받아 지은 명칭이다.

“오리엔트…….”

마음에 드는 이름이다.

베르덴이 이름을 되뇌자, 마치 반응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스태프의 수정이 작게 명멸했다.

홀린 듯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천천히 손을 뻗어 오리엔트를 쥐었다.

오큘러스보다 무게감이 좀 더 강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이 완벽에 가까워 불편함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볍게 마력을 흘려 넣었다.

크리스탈의 황금빛이 차오르듯 빛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브와 룬을 소재로 사용한 스태프.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힘이 느껴진다.

당장 시험해 보고 싶다.

“각하, 근처에 쓸 만한 장소가 있습니까?”

“동쪽에 기사단이 훈련장으로 쓰는 산이 있다. 내 허락 없이 출입이 금지된 곳이니 마법을 시험하기엔 더할 나위 없겠지.”

후작이 직접 앞장섰다.

“안내해 줄 테니 따라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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