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18화 (218/366)

218화 술잔 (2)

에스퍼렌사 후작은 슬하에 세 명의 남매를 두었다.

그중 칼리아가 막내이자 독녀이며, 그녀의 위로 두 명의 형제가 존재한다. 가문의 혈통대로 붉은 기가 도는 머리칼과 눈동자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지금은 나를 제외하고 전부 유학을 가 있는 중이기에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 오늘을 기점으로 세어 보면 벌써 2년이 훌쩍 넘었군.”

고위 귀족의 가문으로서는 이례적이다.

후작가의 장남과 차남이면, 더군다나 그 나이면 배움을 추구할 게 아니라, 가문 내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어야 하는 게 보통이니.

그게 가능한 경우는 대략적으로 두 가지다.

‘후작의 승계자가 이미 정해져 있거나 승계 경쟁이 아예 없거나.’

그런 베르덴의 생각에 칼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따지면 우리는 둘 다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군. 왕국은 기본적으로 장자 승계가 원칙이기도 하고, 첫째 오라버니와 달리 나와 둘째 오라버니는 후작이란 직위에 별로 흥미가 없거든.”

남작조차 영지와 직위를 물려받기 위해 피를 튀긴다.

아무리 계급이 낮다고 해도 귀족은 귀족. 그 이권은 포기하기 어려운 과실이다.

그리고 에스퍼렌사 후작가는 왕국 정상급.

그런 가문에서 권력 경쟁이 전혀 없다는 건, 후작의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겠지. 부모 된 입장으로서 형제들 간에 이를 드러내는 건 결코 원치 않을 테니.

“그래도 후계자인 장남까지 유학을 간 건 의외입니다. 후작가는 어떻게 한다고 해도, 그 휘하에 있는 귀족들의 충성을 얻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닐 텐데.”

“그건 전적으로 에스티리아 왕국 탓이다. 애셔,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이 왕국의 위정자와 권력자가 어떤 자들인지.”

부정부패로 물든 귀족.

심지어 로아프라라는 지하 도시가 버젓이 존재한다. 그 세력은 후작가조차 불가침조약을 맺어야 할 정도.

왕가는 말해 봐야 입만 아프다.

“그런 왕국에 있어 봤자 배울 수 있는 건 없다…… 라는 게 첫째 오라버니의 지론이었고, 아버지께서는 고심 끝에 존중하셨지. 그 결과가 유학이다. 그리고 마침 둘째 오라버니도 마법사로서 그쪽에 관심이 있었기에 함께했고.”

첫째는 가문의 경영을 위해, 서대륙에 있는 아르나크 제국으로.

둘째는 가문의 발전 및 본인을 위해, 서대륙에 있는 마법 도시 비렌테로.

“둘 다 제 실력을 보란 듯이 입증해 귀빈으로서 대접받고 있다. 내가 말하는 것도 뭐하지만…… 뛰어난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을 겸비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니까.”

“…….”

“첫째 오라버니는 타고난 지도자였고, 검술 또한 아버지의 뒤를 잇기에 부족함이 없지. 그리고 둘째 오라버니는 마법사인 어머니의 피를 강하게 물려받아, 후에 에드몬 할아범의 자리에 올라설 거라고 평가되고 있다.”

후작가를 지탱할 기둥으로서.

“그에 비하면 나는…… 이도 저도 아니지.”

칼리아가 머리를 쓸었다.

닭고기를 뒤적이다 식기를 내려놓았다.

“애셔, 솔직히 네가 보기엔 어떤가. 나는 귀족다운가 아니면 기사다운가.”

“그건…….”

칼리아의 행적을 떠올렸다.

검을 든 기사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누구에게 물어도 후자라고 답하겠지. 나처럼 귀족의 의무를 지킨답시고, 매번 기사단을 이끌고 일선에 나서는 귀족은 그다지 없으니. 반면에 형제들은 보다 귀족에 어울리는 인간이다. 실리를 우선하나 다른 것들도 놓치지 않지.”

예를 들어 귀족이 중범죄를 일으켰다고 가정해 본다면, 칼리아는 명확한 증거를 확보한 뒤 당장 구속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하지만 형제들은 다르다.

그들은 증거를 빌미로 귀족을 압박하며 이권을 취할 것이다. 정치로 이뤄진 귀족계에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쓰임에 따라 범죄자를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다름 아닌 칼리아의 형제라면 분명히.

귀족보다 기사에 어울리는 그녀로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차이였다.

“내게는 어려운 일이다. 약점을 잡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도, 부패한 귀족을 바깥에 내버려 두는 것도.”

칼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난간 아래로 보이는 주점의 손님들. 웃고 떠드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혹시 비행정에서 했던 대화를 기억하고 있나. 그, 세상이 조금 더 깨끗해지길 바란다는 말…….”

“기억합니다.”

주검의 영광을 토벌하러 갈 때였다.

“그게 내가 선택한 정도(正道)라고 했지. 아무리 목적지가 멀다고 해도, 내 행동의 결과는 무의미하지 않을 거라고. 그리 자신 있게 말했지만…… 후우, 남에게는 처음으로 터놓고 밝히는 건데 그리 숭고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사실 보다 속물적이지.”

칼리아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나는 형제에 비해 귀족다운 자질이 부족했다. 자명한 사실이지. 그나마 귀족으로서 봐 줄 만한 건 후작가의 독녀라는 사실뿐이었다.”

외모도 못나지 않았으니 정략결혼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걸 알고 있던 칼리아는 어릴 적부터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태어난 가문은 에스퍼렌사 후작가였다.

혼인을 강제할 필요 없는 고고한 위치.

봉신 가문들은 이미 돈과 권력으로 끊을 수 없는 충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더군다나 에스퍼렌사 후작과 후작 부인은 자식을 끔찍하게 아낀다.

그런 그들이 부패한 귀족들에게 칼리아를 시집 보낼 리가 만무했다. 당연히 왕가 또한 마찬가지.

“그렇다고 해서 타국의 귀족들과 연을 맺을 수도 없었다. 왕가에서는 외부의 간섭을 매우 경계하고 있으니까. 루아스교조차 거슬려하는데 후작가의 딸이 타국과 정략결혼을 하는 걸 지켜보고 있을 리가 없지. 그런 내게 뭐가 남아 있을까.”

베르덴의 시선이 칼리아의 손을 향했다.

손바닥 위로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검입니까.”

“그래, 검이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내 재능을 단련하고 또 단련했지. 그러면서 가문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 그 해답이 명성이라고 생각했다.”

후작의 여식이 직접 범죄자를 척결한다.

왕국에서는 그야말로 파격적이었고 생각 이상으로 효과적이었다. 이제는 귀족들조차 굉장히 꺼리게 될 정도가 되었으니.

백강 칼리아.

그녀는 정의롭다며 칭송받았다.

“……보람찬 일이었다. 범죄자를 잡는 것도, 무고한 시민들을 구하는 것도 전부.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는 걸 보면, 검은 가벼워졌고 속은 자긍심으로 가득 찼지.”

하지만.

“에스퍼렌사 후작가의 이름이 함께 불릴 때마다, 목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마음 한편이 굉장히 불편하더군. 결국 내가 검을 단련한 이유는 가문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는데…….”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고 싶다.

그건 선의로 이루어져 있는, 열등감을 포장하기 위한 이상(理想)이었다.

목적과 선의.

각각의 가치가 서로 충돌했다.

칼리아는 그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내게 답을 줄지도 모르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게 저입니까?”

“그래. 애셔, 너다.”

칼리아에게 있어, 애셔와 같은 인물은 처음이었다.

처음이야 뛰어난 재능을 가진 마법사라고만 생각했다.

그의 유례없는 행보를 목격하기 전까지.

왕국의 2대 금지에서 사령의 보주를 가져왔고, 칼리아가 항거할 수 없는 언데드를 단신으로 소멸시켜 버렸다.

그리고 로아프라에서는 불법 노예인 남매를 구출하고는 빈테르트와 맞섰다. 심지어 이번에는 초월자에게 도전하고는, 다크 워튼의 마탑주에게 인정받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압도적인 마법사.

하나 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한다.

‘……자유롭다.’

칼리아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스스로에게 얽매여 있는 그녀와는 다르다고.

그렇기에 이런 자리를 만들었다.

눈앞의 마법사라면 지금의 자신에게 필요한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묻는다.

“애셔, 너는 왜 남매를 구했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질문이길 바라며.

* * *

소란이 가득한 주점 속.

베르덴이 칼리아의 눈을 직시했다. 더없이 진지한 눈동자였다.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었군.’

간단히 생각할 의문도 아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답을 구하고자 하는 칼리아의 관점에서는.

베르덴은 칼리아의 물음에 떠올렸다.

어째서 샤를로트와 에이든을 구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다.

남매의 모습이 마탑의 실험체로 살았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들었으니까. 뤼잉 코스타가 언급한 실험체라는 단어가 역린을 건드렸으니까.

그리고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던 자신의 처지를 둘이 겪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에.

이렇듯 복합적이다.

그렇다면 목적과 선의.

칼리아가 방황하고 있는 이 둘 중 무엇에 해당되는 것일까.

이내 베르덴이 답했다.

“목적에 가까울 겁니다.”

“……그런가.”

칼리아의 표정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하나 베르덴은 아직 말을 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선의 또한 분명히 있습니다.”

“뭐?”

칼리아가 미간을 작게 찌푸렸다.

“목적을 동반한 선의라면…… 그건 위선이 아닌가.”

“그렇다면 후작가를 위해 명성을 쌓은 건 선입니까, 위선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악입니까.”

“그건…….”

칼리아의 말문이 막혔다.

당연히 뭐라 구분 지을 수 없었으니까. 선과 악,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앞을 바라보기에 세상은 너무도 복잡하다.

베르덴이 물었다.

“칼리아 님은 범죄자를 처단하고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진심으로 후회한 적이 있습니까?”

자연스레 칼리아가 손을 쥐었다.

빈손이지만 검의 손잡이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목숨을 구원받은 사람들의 안도와 그녀 자신이 검을 휘두를 때의 마음가짐 또한.

“……아니, 없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돌이켜 후회가 없다.

그렇다면 방황할 이유가 없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행동할 테니까.

중요한 건 후회하지 않는 거다.

베르덴이 칼리아의 술잔을 채웠다.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럼 너는…… 진심으로 후회한 적이 있나?”

“없습니다.”

역천을 이룬 뒤엔 단 한 번도.

베르덴이 망설임 없이 단언했다.

그 단호한 대답이 주점의 소란 속에서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칼리아가 손끝으로 턱을 괸 채 베르덴을 멍하니 바라봤다.

검붉은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취기가 올라온 건지 아니면 노르스르함 조명 탓인지 피부가 상기되어 보였다.

그녀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칼리아.”

“……?”

“앞으로 칼리아라고 불러라.”

베르덴이 눈을 깜빡였다.

그 반응에 칼리아가 미소 지었다.

“이상할 것도 없지 않은가. 일방적으로 네가 내 목숨을 구해 준 꼴이기는 하다만, 어쨌든 생사를 함께한 사인데. 그리고 초월자에게 도전한 네가 귀족이란 계급을 신경 쓸 리도 없을 테고. 말을 놓는 거야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칼리아가 술잔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갑작스런 제안이긴 하나 상관은 없었다. 말을 높이는 건 겉치레에 불과했으니까.

베르덴이 술잔을 쥐었다.

“그러지, 칼리아.”

짠.

서로의 술잔이 마주쳤다.

왕도의 밤이 깊어졌다.

* * *

같은 시각, 에스티리아 왕성.

3왕자 에버스는 흐트러진 몰골로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별다른 안주도 없어 위장이 타는 듯했지만 상관없었다.

이내 술병을 비운 그가 책상을 내리쳤다.

바깥에서 곧장 사용인이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유리컵이 머리 옆으로 날아왔다.

“저, 전하…… 윽!”

쨍그랑!

컵의 파편이 피부를 스쳤다.

다행히 눈에 박히지는 않았다. 따끔한 피부를 조심스레 감싸고 있자, 3왕자가 소리쳤다.

“지금 술이 비었잖느냐! 내가 미리 갖다 놓으라고 말했을 텐데! 왜, 너도 내 꼴이 우스운 거냐! ”

“그, 그게 아니라…… 당장 대령하겠습니다!”

사용인이 다급하게 떠났다.

혀를 찬 에버스가 주먹을 쥐었다. 술이 없으니 기껏 잊고 있었던 현실이 떠오른다.

‘제기랄, 제기랄……!’

에버스는 주검의 영광과 손을 잡고, 언데드 사태를 일으키는 데 일조한 장본인이다.

분명 몇 개월 전까지만 했어도 아주 순조로웠다. 흑마법사의 힘으로 조합을 내세워 1왕자, 2왕자와의 간격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었다.

그랬었다.

“이 버러지 같은 자들이 내게 사기를 치다니!”

쾅!

주검의 영광의 노사.

강대한 언데드와 계약을 시켜 준다고 해 놓고, 물건을 받자마자 종적을 감췄다. 에스퍼렌사 후작가의 추적 때문에 도주한 모양.

사실 노사는 이미 죽었지만 에버스는 알 수 없었다.

주검의 영광에 대한 건 직접적인 관계자 외에는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었으니까. 에스티리아 왕조차 모른다.

그럴진대 안 그래도 빈약한 에버스의 정보력 따위로 내막을 알아 낼 가능성은 전무했다.

그러니 에버스로서는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게다가 설마 그런 게 가능할 줄이야……!’

에버스가 다크 워튼의 마탑주를 떠올렸다.

죽은 자를 되살려 대화를 하는 마법. 만약 마탑주가 직접 나서서 내막을 파고든다면, 언데드 사태의 범인은 에버스임이 발각될 것이다.

그랬다간 말 그대로 끝장이었다.

왕자고 뭐고 저잣거리에 끌려 나가 처형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들키지 않는 것과 별개로 상황은 최악이다.’

왕위 계승은 1왕자와 2왕자 사이에서 결정될 것이다.

이대로 어영부영하다가 목 날아가기 십상이다. 남은 전력으로 한 명을 선택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에버스 전하, 여기 술을…….”

“내놓고 꺼져라!”

새로운 술을 받아 그대로 들이켰다.

‘로트닐 형님도 세력이 크지만…… 발르그나 형님에게 붙는 게 확률이 높긴 하겠지.’

빈테르트가 뒤에 있으니.

입가를 훔치며 결정을 내렸다.

목숨 줄이 걸린 이상, 보다 승산이 높은 사람에게 붙어야 한다. 유배고 추방이고 나중에 생각할 문제다.

“윽…….”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비틀거리며 침대로 향하던 에버스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의식은 곧장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1왕녀 실리스.

그녀가 에버스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작게 말했다.

“부디 악몽이 현실이 되기를.”

악의로 가득찬 속삭임.

실리스의 모습은 마치 ‘마녀’와도 같았다.

폭풍은 이미 시작되었다.

* * *

에스퍼렌사 후작가의 대장간.

밤낮없이 빛을 내던 용광로와 쉴 새 없이 들려오던 금속의 울림.

공기를 진동시키며 동식물들의 잠을 깨우던 망치질 소리가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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