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폭풍전야 (5)
조제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초월자는 존재만으로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절대자다.
특히나 머나먼 과거에 초월자 혹은 그에 버금가는 존재들이 날뛰었을 때는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대륙이 불타고 도시가 무너졌다.
사람들의 피가 강이 되어 흘렀으며 시체는 산처럼 쌓여 언데드의 군락이 되었다. 대적할 수 없는 힘은 제어 없이 폭주했다.
그렇게 발생한 인명 피해는 기록자가 도중에 적길 포기할 정도였다.
────만약 다른 초월자들이 맞서지 않았다면, 모두가 힘을 합치지 않았다면, 대륙은 진즉에 멸망했을 것이다.
수기로 당시 상황을 자필한 옛 대주교의 사견(私見)이었다.
두려움에 떠는 것처럼 뒤틀린 문자들이 가득한 필체. 그래서인지 보다 현실감을 주었기에 뇌리에 강렬히 박힌, 인상 깊은 기억 중 하나였다.
조제프 옆에 앉은 마탑주.
그 또한 그만한 힘을 가진 초월자 중 하나다.
‘그런데 도전이라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니, 저건 잘못된 오만이다.
5위계 마법사가 어찌 초월자의 마력을 감당한다는 말인가.
자칫하다간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영구적인 장애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젊은 마법사가 초월자를 마주하고 제 딴에 용기랍시고 만용을 부린 게 틀림없다.
막아야 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살면서 처음 듣는 부탁이로군. 그렇기에 아주 흥미로워. 방식은 어떻게 하겠느냐.”
“마력 유형화로 부탁드립니다.”
“기본적인 마력 조작인가. 좋다. 그렇게 하지.”
삽시간의 대화가 끝났다.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조제프가 다급하게 마탑주를 말렸다.
“자, 잠시 멈추십시오, 마탑주님! 잘못하면…….”
“조용히 하게.”
마탑주가 미소를 지었다.
“지금 몹시 즐거우니.”
소름 끼치는 섬뜩한 웃음이다.
조제프는 마탑주가 저렇게 웃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하나는 알겠다.
네크로맨서는 지금 아주 진심이라는 걸.
“이런……!”
조제프가 곧장 신성력을 끌어올려 충격에 대비했다.
그 순간 마탑주가 마력을 개방했다.
* * *
초월자와 초월에 이르지 못한 자.
세상에는 이 둘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 존재한다.
이른바 각성(覺醒).
초월에 이르면 예외 없이 경험하는 개념이며 스스로가 초월자가 되었다는 걸 확신할 수 있는, 일종의 자격이다.
그리고 그 각성으로 얻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존재의 격(格)이다.
육체를 단련한 초월자는 기에,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는 마력에, 신앙을 갖고 있는 성직자는 신성력에 격이 깃들어 존재감을 드러낸다.
공포, 경외, 두려움, 혼절 등.
초월자 개개인마다 다르긴 하나, 뭐가 됐든 격이 가진 영향력은 강대하다. 기준 미달의 존재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그렇기에 절대자로 여겨지는 것이다.
쩌적. 쩌저적.
공간이 비명을 질렀다.
유형화된 마력에 물리력이 실렸다.
마탑주가 범위를 국한하고 있음에도 접견실 전체가 요동친다. 과자와 찻잔, 식탁 그리고 의자는 이미 짓이겨져 박살 났다.
“크으윽……!”
신성 보호막으로 충격을 버티는 조제프.
그를 사이에 두고 베르덴과 마탑주가 대치했다.
그러나 잠깐에 불과했다.
베르덴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손을 짚었다. 수백 갈래로 갈라져 가는 접견실의 바닥이 시야에 비쳤다.
숨조차 쉬기 어렵다.
에드몬하고는 도저히 비교가 안 된다.
심지어 이건 마력 위압도 아니다.
단순히 마력회로를 활성화해 마력을 방출했을 뿐이다. 이것이 초월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격임이 틀림없었다.
전신의 마력회로를 활성화했음에도 저항 자체가 무색하다. 역천을 이루고 난 후 압도적으로 밀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가치 있다.’
베르덴은 여태껏 적지 않은 경험을 쌓았다.
소울 트리, 글러트니의 루펠, 흑마도사, 에드몬, 궁정 마법사, 카란스 등 여러 강자를 상대했고, 전력을 다했을 때 패배한 적이 없었다.
마냥 좋아할 게 아니다.
그 말은 격상의 존재를 마주한 적이 없다는 뜻이 되니까. 그런 와중에 초월자를 만나게 된 건 행운이었다.
새로운 경험은 베르덴을 강하게 자극했다.
‘이건…….’
그래서일까.
베르덴의 심장 속, 잠들어 있는 미지의 마력에 큰 파문이 일었다.
제멋대로 체내에서 들끓는 마력이 마력회로를 억지로 넓히고 있다.
격한 고통이 일었지만 견뎌 낼수록 부족한 출력이 더욱 커져 갔다. 마치 초월자의 마력에 대항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성이 아닌 본능에 흐름을 맡긴다.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은 여전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의식이 점차 또렷해졌다.
정신력은 베르덴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다.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다. 그러리라고 마탑에서부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지금까지 각오는 여전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쿠구구구구……!
베르덴을 중심으로 마력의 파장이 일그러졌다.
그가 가진 마력이 초월자의 마력과 충돌하는 것이다. 저항이 거세지며 신체의 제어 능력을 일부 되찾았다. 더 이상 주저앉아 있을 이유는 없다.
무릎에 손을 얹은 베르덴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제프가 눈을 부릅떴다.
“마, 말도 안 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초월자의 격이 담긴 마력이다.
마도조차 개척하지 못한 마법사가 견뎌 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버티는 것을 넘어서 대항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마탑주 또한 조제프와 같은 생각이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것이냐.”
설명할 수 없다.
역천으로 재구성된 육체는 베르덴조차 미지인 부분이 많다. 하나 이 자리에 이유 따위는 중요치 않다.
베르덴이 힘겹게 입술을 떼었다.
“……부족, 합니다.”
마탑주는 위력을 조절하고 있다.
원하는 건 초월자의 힘이다. 일부가 아닌 본신의 마력 말이다. 점차 더뎌지고 있는 성장 속도를 높이려면 더한 자극이 필요하다.
탁.
마탑주가 스태프로 바닥을 짚었다.
“원한다면.”
화아아아악!
직전과는 차원이 다른 마력이 휘몰아친다.
저택의 접견실은 완전히 엉망이 되었고 강대한 존재감이 빈자리를 대신했다.
마탑주가 서서히 마력을 높였다.
과연 어디까지 버티는지 반응을 살펴 가며, 베르덴에게서 느낀 자신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함일 터.
“……!……!!”
살을 에는 것처럼 육체가 저려 온다.
애꿎은 피해자인 조제프는 벽에 기댄 채 전력으로 신성력을 발휘했다. 대주교조차 감당키 어려운 힘이다.
만약 미지의 마력이 아니었다면 베르덴은 진즉에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이게 초월자가 가진 힘.’
이제서야 제대로 실감이 난다.
초월자가 얼마나 강대한 존재인지. 그리고 복수의 대상인 보헤미른 마탑주, 발로크 베시아스와의 거리가 얼마나 멀고 험한지.
하지만.
‘……선명하다.’
막연하게 여기던 경지가 느껴진다.
그토록 바라던 지향점이 반짝이고 있다. 반드시 베르덴이 올라서야 할, 그리고 짓밟아야 할 지고한 하늘.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 만에 여기까지 왔다.
만약 여기서 같은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까. 아니, 그의 절반만 지나도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을 게 분명하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손에 넣을 수는 없는 건가?’
마법사의 힘은 세월에 비례한다.
당연한 상식이지만 되돌아보니 회의감이 든다.
한계가 없는 육체.
타고난 마법 이해력은 천재적이다.
끊이지 않는 노력과 그 인고를 견딜 수 있는 정신력도, 마탑주 못지않은 마법적 지식도, 죽음을 불사한 각오와 경험도 있다.
그런데 굳이 세월을 견뎌 내야 하는 걸까.
‘준비는 이미 되어 있는데.’
심장이 두근거린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피와 마력이 끓었다. 몸이, 마력회로가 찢어질 듯한 고통이 따랐지만 상관없다.
더 강해지고 싶다, 더 올라서고 싶다.
욕망이 강하게 일었다.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미지의 마력이 용솟음쳤다.
베르덴과 마탑주.
서로 다른 두 개의 마력 사이에서 역장(力場)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앙!
접견실이 폭발했다.
* * *
“무슨……?!”
저택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폭음이 터져 나왔다.
에스퍼렌사 후작은 감각을 곤두세워 즉각적으로 위치를 가늠했다. 진원지는 다름 아닌 접견실이었다.
대주교, 마탑주 그리고 베르덴이 있는 공간.
후작이 곧장 검을 챙겼다.
“당장 기사들을 소집해라!”
저택의 모두가 접견실로 집결했다.
칼리아, 에드몬, 멜자르드 등 모두가 전력을 갖춘 상태로. 직접 달려 나간 후작이 반쯤 무너진 접견실의 문을 당겼다.
“괜찮으십…….”
말을 멈췄다.
기묘한 현장에 후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고…….”
쑥대밭이 된 접견실.
조제프 대주교는 벽에 기대앉아 한숨을 쉬고 있었다. 상처 하나 없었지만 얼굴을 보니 상당히 피곤한 몰골이었다.
‘외부 침입은 아닌 것 같은데.’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이 시야에 비쳤다.
지친 기색으로 가파른 호흡을 내쉬고 있는 베르덴. 그를 마탑주가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마탑주가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리고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
폐허 속에서 소리가 맴돌았다.
이내 웃음을 그친 마탑주가 베르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감히 내 마력에 대항한 것조차 놀라운데, 그 경험을 계기로 삼아 성장을 이룩할 줄이야. 그런데도 마력회로가 갈기갈기 조각나기는커녕 멀쩡하게 서 있다니. 참으로 믿기 어렵군.”
“……덕분입니다, 마탑주님.”
“내 이름은 ‘라인델’이다. 라인델 넥스레온.”
두 사람이 지척에 섰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너는 누구냐.”
“마법사, 애셔입니다.”
“……그런가.”
라인델이 베르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력이 느껴짐과 동시에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번에 만났을 때 본명을 드러내길 바라지
“……!”
마력을 통해 의념을 전달하는 건 초월자의 기교.
베르덴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직후 손을 뗀 라인델이 물었다.
“부탁을 들어줬으니 이제 하나만이 남았군. 그래, 내게 제의할 거래란 것이 무엇이냐?”
“마법서입니다.”
베르덴이 공간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황금의 뼈와 마찬가지로 비올라에게서 빼앗은 흑마법서. 다크 워튼의 마탑주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물건이다.
“흠, 물질 계열에 특화된 것인가. 가격은?”
“마탑주님께 맡기겠습니다.”
선제시.
그것도 초월자한테.
……툭.
후작이 검을 떨궜다.
* * *
망가진 가구와 접견실의 수리 비용은 라인델이 전부 지불했다.
마탑의 주인에게는 티끌만도 못한 돈이다. 거절조차 무례하다. 후작은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삼자대면은 끝이 났다.
루아스교의 마차 안.
조제프와 라인델이 대각선으로 마주 앉았다.
“……피곤한 하루로군요. 갑자기 마탑주님께 도전할 뿐만 아니라 거래…… 까지 제시하다니. 참으로 보기 드문 마법사였습니다.”
“보기 드문 게 아니라, 유례가 없다는 말이 적합하겠지.”
“동의합니다. 특히나 젊은 나이에, 부족한 경지에 초월자의 마력을 감당했다는 건 들어 본 적조차 없습니다. 대체 그 애셔란 마법사는 누구일까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나 내가 장담하지.”
“예? 어떤…….”
“머지않아 탄생할 것이다, 새로운 마법의 초월자가.”
……초월자?
조제프가 화들짝 놀라며 경악했다.
“그, 그렇다는 건 설마……!”
“그러니 그 마법사를 기억하게, 조제프. 그럼 이만 실례하지.”
화아아아악.
마력이 일자, 그림자가 몰아쳤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마차 바깥으로 빠져나간 라인델이 허공에 멈춰 섰다. 노을을 등진 그가 왕도를 바라봤다.
수많은 죽음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1왕녀.
미지에 뒤덮여 있는 신비한 마법사.
라인델이 눈여겨보고, 경악했던 두 존재.
기이하게도 그들을 품고 있는 왕도는 평화롭고 고요했다.
마치 폭풍 전야처럼.
방해할 생각은 없다.
그저 멀리서 지켜보리라.
저 작은 물줄기가 훗날 세계의 흐름이 될 때.
죽음을 이해한 초월자에게도 역할이 주어질 테니까.
“정말로 기대되는구나.”
라인델이 웃었다. 그리고 감사했다.
이 급변하는 시대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