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폭풍전야 (4)
‘호오…….’
베르덴을 본 조제프의 눈동자에 놀란 기색이 비쳤다.
다수의 주교들을 패퇴시킨 흑마도사를 토벌.
그리고 성기사단장 글로스를 압도한 그림 리퍼를 단신으로 소멸시킨 마법사, 애셔. 젊은 나이에 그런 실력을 가진 것도 믿기 어려운데 외모마저 훌륭할 줄이야.
세상에는 균형이란 게 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 법. 전부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세간에서 말하는 공평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불공평한 자가 나타난다.
평범한 사람은 한평생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을, 몇 개나 손에 쥐고 태어난 축복받은 인간.
그야말로 여신 루아스의 빛이 함께하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루아스교의 성녀.
바로 그녀가 대표적인 예였다.
‘물론 성녀와 동일한 인간이 존재할 리가 없지만…… 저 애셔라는 마법사 또한 아주 특별한 인간임이 분명합니다.’
첫인상은 아주 마음에 든다.
대주교인 조제프가 이러한데 다크 워튼의 마탑주는 오죽할까.
원소 마법과 계통이 전혀 다른 흑마법이라고 해도, 결국엔 마법사는 마법사. 분명 마탑주의 반응 또한 매우 긍정적일 것이다.
“반갑습니다, 마법사 애셔. 저는 루아스교의 대주교직을 맡고 있는 조제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분은 마탑…… 어?”
고개를 돌린 조제프가 눈을 깜빡였다.
시야에 비친 마탑주의 모습이 이상했다.
감정 하나 없는 눈은 찢어질 듯이 커졌고, 평소엔 치아조차 보이지 않던 입이 떡 벌어져 있었다.
죽음의 이해자, 네크로맨서.
그가 이렇게나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는 걸 본 건 난생처음이다.
순간 잘못 봤나 싶어 눈가를 비볐다.
하나 여전했다. 탁상 위로 떨어진, 먹다 남은 과자가 현실임을 지각시켜 주었다.
당황을 추스른 조제프가 조심스레 물었다.
“마탑주님, 어딘가 편찮…….”
“무릇 생명에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접견실에 있는 모두가 강제적으로 마탑주의 말을 경청했다.
“언제나 죽음이 함께한다. 생명이 어떠한 목적으로 탄생되었건, 그것이 세상에 어떤 의미를 끼치건 간에 그 끝은 예외 없이 죽음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클립스>라는 마도를 개척한 죽음의 이해자.”
인간종, 아인종, 이형종.
종족 구분 없이 생명체라면 그 끝을 어렴풋이 때론 분명하게 엿볼 수 있다. 극히 드물게는 수많은 끝을 초래할 존재를 감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 내 마도로도 꿰뚫어 볼 수 없는 존재는 극소수다. 생명체의 틀을 벗어난 초월자이거나 그에 버금가는 존재이거나. 마도를 얻은 이후로 단 한 번도 예외는 없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믿었지…… 방금 전까지는.”
네크로맨서가 베르덴을 응시했다.
“마법사 애셔, 너는 초월자인가?”
난데없이 향해진 질문.
베르덴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냐.”
선명한 마력회로.
“대체 누구길래 그렇게나 깨끗한 마력회로를 갖고 있느냐.”
바다를 연상시키는 벽안.
“대체 누구길래 자연보다도 정순한 마력을 품고 있느냐.”
그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푸른 심연.
“대체 누구길래 나조차 가늠할 수 없는 방대한 마력을 담고 있느냐.”
어째서. 어떻게.
너는, 대체 누구길래.
“왜 죽음이 보이지 않는 것이냐.”
네크로맨서가 죽음을 논한다.
하나 역설적으로 마탑주의 음성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 * *
‘……이게 무슨 상황이지?’
베르덴의 표정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대주교와 마탑주를 대면해 상황을 설명한 뒤 보상을 받는 게 기본 골자였다. 그리고 초월자를 마주하며 지금의 자신과의 격차를 엿볼 수 있는 게 부가적인 목표.
생각했던 계획으로는 그러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구냐니.’
베르덴만이 아니라, 조제프 대주교 또한 경혹한 듯했다.
사전에 이야기가 되지 않은, 즉흥적인 상황임은 틀림없다. 베르덴은 할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머리를 굴렸다.
마탑주가 한 질문들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깨끗한 마력회로.
자연보다도 정순한 마력.
초월자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마력량.
달리 착각할 것도 없이, 죄다 베르덴의 마법적 역량에 대한 것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간파했다는 건가.’
초월자에 걸맞은 통찰력이다.
베르덴의 경지가 높다고 한들 마탑주와의 격차가 큰 건 자명하다. 인정하지 못한다면 멍청한 아집이겠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예상한 결과다.
‘그런데 죽음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무슨 뜻이지?’
이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마탑주만이 인지할 수 있는 무언가를 보고 경악한 거 같긴 한데…… 명확하게 짚이는 건 없다.
그래도 굳이 연결하자면────
‘역천의 마법진인가.’
무력했던 실험체가 탄생시킨 역작.
그것이야말로 이용당하기만 했던 삶을 뒤집어 버린, 무능했던 육체를 재구성해 지금과 같은 재능을 갖게 한, 운명을 거역한 상징이다.
오직 베르덴만이 간직한 비밀이었다.
‘당연히 역천의 존재를 마탑주가 알 리는 없다.’
눈치챌 가능성 또한 없다.
그렇다면 마탑주가 질문을 한 의도는 대체 무엇일까.
“…….”
마탑주의 얼굴을 마주 바라봤다.
이채를 띤, 생기가 어린 눈동자가 있었다. 일절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눈빛이다.
적의나 부정적인 의심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베르덴에게는 익숙한 시선이다.
마법사의 근간이자 습성, 바로 호기심.
마탑 중에서도 세 손가락에 드는 마탑의 주인이 베르덴에게 흥미를 품고 있다. 그것도 아주 짙은 관심을 말이다.
말인즉슨 직전의 질문들은 순수한 의문이라는 의미일 터.
‘당황스럽군.’
아주 적잖이.
베르덴의 강함은 이례적이다.
나이에 비례하며 강해진다는, 마법사의 성장 개념에 맞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마탑주가 반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럴 줄은 전혀 몰랐다.
‘그나저나 내가 누구냐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잠깐의 고민 끝에 판단이 내려졌다.
“저는 마법사입니다.”
“그 대답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다시 묻겠다. 어떻게 너는 초월자도 아니면서 생명의 이치에서 벗어났느냐.”
“알지 못합니다.”
거짓 없는 답이었다.
내면에 잠들어 있는, 위계가 높아질수록 개방되는 마력과 같은 것은 베르덴조차 예측하지 못했던 변화였다. 마탑주가 언급한 죽음 또한 마찬가지일 게 분명하다.
본래 역천으로 이루고자 한 것은 한계 위계를 극복하는 것이었으니까.
초월자에게 하찮은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베르덴은 진실로 답했다. 마탑주가 비집고 들어올 틈을 차단했다.
“…….”
“…….”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베르덴은 묵묵히 시선을 받아 냈다.
그러던 그때, 마탑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명확한 답을 듣지 않았음에도…… 아니, 오히려 모른다는 답에 호기심이 더욱 강렬해진 것 같았다.
그와 함께 눈빛이 더 깊어질 찰나, 조제프가 나섰다.
“크흠, 저로서는 두 분 사이에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자리의 취지에 맞는 대화를 나누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탑주님, 그러니 따로 할 말이 있으시다면 추후에…….”
“대답은 들었네. 그러니 이제 자네의 역할을 다하게.”
어느샌가 마탑주의 표정이 사라졌다.
“그렇습니까? 아, 예. 알겠습니다.”
조제프가 눈을 깜빡이며 수긍했다.
뭔가 떨떠름하긴 하지만 본인이 그렇다니…… 고개를 돌려 베르덴에게 향했다.
“오래 서 있게 해서 죄송합니다, 애셔. 앞에 앉으시면 됩니다.”
“예.”
베르덴이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뒤늦은 삼자대면이 시작되었다.
* * *
베르덴의 진술은 칼리아의 것과 거의 흡사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직접적인 토벌의 주역인 만큼 보다 세부적인 설명이 가미되었다는 정도. 굳이 눈여겨볼 정보는 없었다.
조제프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설명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애셔. 아주 대단한 일을 하셨군요.”
“아닙니다.”
“겸손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대 덕분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구원받은 데다가, 그 사악한 자들을 처단해 미래의 살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응당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탑주님?”
마탑주가 여전히 베르덴을 주시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덴은 루아스교만이 아니라, 마탑에도 빚을 지웠다.
첫째, 주검의 영광 토벌.
다크 워튼은 흑마법사를 위해 세워졌다.
정상적인 흑마법사가 세상을 당당히 활보할 수 있도록. 그런 마탑의 주된 의무는 사악한 흑마법사의 배제다.
다시 말해 베르덴은 마탑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준 셈.
그리고 둘째가 워렌스의 생존이다.
망가진 정신을 회복하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긴 할 테지만 감수할 수 있는 비용이다.
워렌스가 3위계 하위 흑마법사이긴 하나, 잠입과 그에 따른 연기력, 어떤 고문에도 정보를 발설하지 않는 충성심과 인내력이 있었으니까.
이러한 인재는 마탑에서도 귀한 축에 속했다.
조제프가 말했다.
“그대는 마땅히 대가에 대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물론 에스퍼렌사 가문과는 별개로 진행될 겁니다. 그러니 아무런 신경 쓰지 마시고 저희 루아스교와 마탑주님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해 보시지요.”
대주교와 마탑주.
이미 두 사람이 합의한 사안이다.
“그럼…….”
베르덴은 생각에 잠긴 듯 말꼬리를 늘렸다.
물론 고민하는 척에 불과했다.
루아스교와 마탑이라면 저렇게 말할 줄 알고 있었으니까. 바라는 건 이미 정해져 있다.
잠깐의 뜸을 들인 베르덴이 나지막이 말했다.
“조제프 대주교님과 다크 워튼의 마탑주님, 두 분께 부탁이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마탑주님께는 하나의 거래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
당돌한 대답이다.
위축된 기색도 없다. 왕가와 귀족조차 고개를 조아리는 게 전부였을 두 사람을 상대로.
마탑주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기대감이 들어찬 안광이 작게 명멸했다.
“하하, 부탁과 거래라. 이런 제안은 참으로 오랜만에 듣습니다. 그래서인지 몹시 궁금증이 생기는군요. 마탑주님, 실례지만 저부터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그러게.”
순서는 정해졌다.
베르덴이 공간가방에 손을 넣었다.
사령의 기운으로 봉인된 황금의 대퇴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 안에 퍼져 나가는 불길함이 주목도를 끌어올렸다.
“이건 주검의 영광의 흑마도사에게서 빼앗은 전리품 중 하나입니다. 희미하게 마력이 느껴지는 걸로 보아 마법 물품의 일종으로 보입니다.”
“짙은 사령의 기운이 서려 있군요. 한번 봐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허락했다.
조제프의 손에서 신성력이 일었다.
따스한 빛이 황금 뼈를 감싸더니 허공으로 떠올랐다. 마치 염동력과도 같다. 대주교급이라면 신성력을 이렇게도 다룰 수 있는 건가.
“흐음, 저주는 걸려 있지 않은데…….”
신성이 비치는 안광.
조제프가 세밀하게 뼈를 훑었다. 잠시 기다리자, 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대의 부탁이 뭔지는 이해했습니다. 이 뼈의 봉인을 풀어 달라는 것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이 마법과 관련된 것이라면 <감정>에 반응할 터. 그 결과 이것이 매우 위험한 물건이라 판명이 된다면, 대주교의 권한으로 회수 조치 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상한 바다.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정화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제프가 한차례 숨을 들이마셨다
이내 신성력이 발광하며 접견실 전체를 비췄다.
시각을 마비시키는 강렬한 빛.
뼈에서 흘러나오던 불길한 기운은 단번에 소멸되었고, 그렇게 집결된 신성력이 대주교의 손끝에 맺혔다.
<빛의 축복>
고고한 신성의 기운이 뼈에 담긴다.
지독하게 얽혀 있던 사령의 기운이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서서히 잠식당하더니, 곧 정화되어 세상에서 지워졌다.
간단하다면 간단한, 놀랍다면 놀라운 능력이다.
직후 조제프가 단안경을 꺼냈다.
아티슨 마탑에서 제작한, 수많은 마법적 지식이 기록된 <감정> 전용 마법 물품. 그 가치는 수십억을 호가한다.
천천히 움직이는 대주교의 눈동자.
마력이 서린 렌즈 너머로 뼈에 새겨진 내력이 읽힌다. 이윽고 마지막까지 감정하는 데 성공한 조제프가 피식 웃었다.
“하, 이런 물건은 꽤나 오랜만에 봅니다.”
뭐길래 그러지?
“제가 감정해 봐도 되겠습니까?”
“오, 그 나이에 감정 마법까지 습득하셨습니까? 지식 또한 고명한 마법사 못지않게 풍부하시군요. 자, 한번 보시죠.”
베르덴이 대퇴골을 건네받았다.
두 눈에 마력을 집중시키며 연산을 끝냈다.
<감정>
해석은 곧 끝났다.
그런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 읽혔다.
마법 물품이 가진 성능이 아니라 몇 개의 글귀만이 적혀 있었다.
[두개골. 갈비뼈. 대퇴골]
[세 개의 황금 유골을 모으는 자에게 황금의 길이 열리리라]
‘……?’
전혀 본 적 없는 형태의 마법 물품이다.
베르덴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조제프가 그럴 줄 알았다며 턱을 쓸었다.
“그대의 반응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납니다. 저 또한 그런 물건을 접했을 때 같은 반응을 보였지요.”
“대주교님께선 이게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조제프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고대의 유물입니다.”
* * *
예로부터 인간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했다.
누군가는 크나큰 유산을, 누군가는 거대한 무덤을, 누군가는 스스로의 업적을. 죽은 이후에도 자신의 것들이 세상을 주유하기를 바랐다.
기나긴 기억의 망각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그렇기에 수수께끼를 남겼다.
허무맹랑한 문구, 봉인, 오래된 설화 등으로 사람들의 흥미를 돋웠다. 비밀을 푼 자는 모든 걸 거머쥘 수 있다는 욕망을 자극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거짓된 전설이다.
이야기를 남기는 건 누구라도 가능하니까. 대충 석판에 애매한 글귀를 남기고, 수백 년이 지나면 있어 보이기 마련이다.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시간의 풍화를 견디고 남은 건 아주 극소수다. 아티팩트가 그 예다. 루아스교의 대주교인 조제프이기에 아주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럼 이게 가짜일 수도 있다는 겁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봉인 역할을 하고 있던 사령의 기운이라고 해도, 어떤 저주도 걸려 있지 않았으니까요. 자연적으로 그런 현상이 발생할 확률이 아주 적긴 하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적은 확률로 진짜일 경우의수 또한 존재합니다. 물론 그 안에 적힌 세 개의 뼈를 모아야 알겠지만…… 솔직히 어려운 일입니다. 만약 하나라도 어디 땅속에 묻혀 있다면 찾을 방도가 전혀 없으니.”
“다시 말하자면…….”
“예.”
조제프가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위험도 보이지 않으니 소지하셔도 좋습니다.”
“…….”
베르덴은 내심 착잡했다.
대주교의 신성력까지 빌려서 정화했건만 가짜일지도 모른다니. 진품인 걸 판명하려면 다른 두 개의 뼈도 모아야 하고. 수확이 전혀 없다.
실망스럽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고 있던 도중, 관망하고 있던 마탑주가 입을 열었다.
“조제프, 할 말은 다 했나?”
“그렇습니다, 마탑주님.”
“그럼 내 차례로군.”
중후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마법사 애셔.”
“네, 마탑주님.”
“내게 할 부탁이란 게 대체 무엇이냐.”
마탑주가 눈을 부릅떴다.
건방지다고 노려보는 게 아니었다. 호기심과 기대로 얼룩진 눈빛이었다. 눈앞의 초월자는 베르덴이란 존재 자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담스러운데.’
왠지 어쭙잖은 부탁을 해선 안 될 것 같다.
그런 기분이 들긴 했지만 마음에도 없는 객기를 부릴 생각은 없다. 그저 자신에게 필요한 그리고 원하는 것을 향해 손을 뻗을 뿐이다.
이윽고 베르덴이 선언했다.
“초월자의 마력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정점에 이른 마법사의 힘을 견식하고 싶다. 그로써 보다 넓은 세상을, 더 드높은 경지를 느끼고 싶다.
그런 뜻이 담겨 있는 맹랑한 부탁이었다.
그걸 세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도전장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