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13화 (213/366)
  • 213화 폭풍전야 (2)

    왕도 레티아의 교회.

    천장에서 내리쬐는 태양 빛이 여신상을 비추었다.

    빛의 신, 루아스를 위한 신앙이 휘광이 명멸한다.

    신이 보살피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측은함이 사방에 만연하다.

    “루아스시여, 부디 굽어살펴 주시길.”

    교구에서 학살당한 교인.

    언데드에게 살해당한 희생자.

    가족을 잃고 상처받은 사람들.

    진심이 가득한 애도다.

    모두를 위한 기도가 아득하게 피어올랐다.

    조용히 숨을 들이켠 조제프 대주교가 몸을 일으켰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의식의 준비를.”

    “예, 대주교님.”

    데헤른 주교.

    바이델르 주교.

    로난데르크 주교.

    왕국에 남은 세 주교가 한 사람을 데려왔다.

    주검의 영광 토벌전.

    그림 리퍼에게서 오른팔이 잘린, 교구의 성기사단장 글로스 가르시아가 대주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는 아물어 버린 절단면에는 붉은 흉터가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대, 대주교님. 감히 제가 어떻게 은총을…….”

    “조용히.”

    그 한마디에 정적이 흘렀다.

    조제프의 손이 글로스의 어깨에 닿았다.

    화아아아악.

    대주교의 신성력이 점차 고조된다.

    피부와 근육, 뼈 그리고 영혼까지 스며드는 따스함. 점차 선명해져 가는 빛이 두 사람을 감싸던 그때, 대주교가 기적을 일으켰다.

    <빛의 은혜>

    단면에서 신성이 뻗어 나온다.

    팔의 형태로 빚어진 빛이 서서히 가라앉자, 절단된 오른팔이 완전하게 재생되어 있었다.

    “아……!”

    글로스가 천천히 팔을 움직였다.

    가볍게 힘을 주자 너무도 멀쩡하게 주먹이 쥐였다.

    감각이 선명하다. 꿈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7인의 대주교에게 허락된 지고한 기적. 그를 두 눈으로 목도한 주교들이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조제프 대주교가 말했다.

    “글로스 가르시아, 그대는 한 명의 교인이자 교인들을 이끄는 자로서 의무를 다했습니다. 루아스 신의 위대한 기적을 누릴 자격이 있는 바, 받은 은혜가 스스로에게 과분하다 의심치 마십시오.”

    “며, 명심하겠습니다.”

    떨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주교가 인자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희생은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개념이다.

    크나큰 고통 속에서 신성한 의무를 수호한 자에겐 무엇이든 아끼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설령 대주교 자신의 목숨이라고 할지라도.

    하지만 그 반대는 아니다.

    조제프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교회의 창 너머 왕성이 보였다. 귀족 된 자로서, 루아스교를 신앙하는 자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인간이 그득한 장소다.

    지켜야 할 자들을 희생시킨 파렴치한 죄인들.

    어느샌가 조제프의 미소가 지워졌다.

    웃지 않았다.

    저들도 웃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성녀’께서 내리신 명이자 조제프의 바람이니.

    * * *

    에스퍼렌사 후작은 왕성으로 향했다.

    왕국의 고위 귀족으로서 대주교와 초월자를 맞이하기 위함이자, 오늘 있을 회담에 참여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멜자르드와 에드몬은 왕성을 지킬 호위로서 불려 갔다.

    저택에는 베르덴과 칼리아만이 남았다.

    “으으…….”

    터벅, 터벅, 터벅.

    칼리아가 초조해하며 거실을 돌아다녔다.

    손톱을 잘근잘근 씹는 모습은 평소의 그녀답지 않았다.

    식탁에 앉아 차를 홀짝이던 베르덴이 물었다.

    “그렇게 긴장되십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자그마치 7인의 대주교하고 다크 워튼의 마탑주다. 긴장이 되지 않을 수가 없지…….”

    멀찍이서 보는 거라면 기대가 더 컸을 것이다.

    일국의 왕조차 감히 하대할 수 없는,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들을 견식하는 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평생의 경험이 될 테니까.

    그러나 직접 만나는 건 별개의 것이다.

    대주교와의 일대일 대담.

    거기서 초월자가 추가되어 삼자대면을 해야 한다. 바로 이 저택에서.

    칼리아는 왕가가 아닌 국가에 충성한다.

    건드리기 어려운 귀족을 잡아 처벌받게 하고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악질적인 범죄자들을 처단해 왔다.

    세상이 더 깨끗해지길 바라니까.

    그것이 칼리아가 정한 정도(正道)다.

    해야만 한다면 왕가에 칼을 겨눌 수 있다.

    그만한 각오와 신념이 있기에 지금의 칼리아가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초월자라니. 어찌나 부담스러운지 속이 아플 지경이다. 칼리아의 발걸음 속도가 빨라졌다.

    “……그냥 앉아 있는 게 그나만 덜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몸이 편안하면 다른 생각이 더 들지 않나. 그보다 애셔, 너는 아무렇지 않은 건가?”

    “저도 긴장은 됩니다.”

    가슴 한편에선 기대감도 품고 있다.

    다만 며칠 내내 밤잠을 설칠 정도는 아니다. 감각과 자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지는 법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베르덴은 그러했다.

    “나도 그렇게 되면 좋을 텐데…….”

    “뭐, 애초에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받아들이면 편하다.

    반박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는 정론이었다.

    “……음, 그것도 그렇지.”

    칼리아가 한 손으로 턱을 짚었다.

    그러고는 의자에 앉아 사용인을 불렀다. 베르덴과 같은 차를 마시며 신경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자, 불안감이 조금 해소되는 것 같았다.

    아, 그런데.

    “칼리아 님.”

    “응? 왜 그러지?”

    “저한테 용건이 있으셨던 거 아닙니까.”

    왕도의 저택에 왔던 당일.

    칼리아가 베르덴을 불렀다. 초월자가 온다는 소식 때문에 흐지부지되어 버리긴 했지만.

    “아, 그거…….”

    “중요한 겁니까?”

    “아니, 중요한 건 아니다. 공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사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뭐, 지금 상황에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군. 우선 눈앞에 닥친 일부터 끝내고 나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그래도 괜찮겠나?”

    약간 궁금증이 일기는 하나 상관은 없다.

    대화가 목적이면 별로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닐 테니.

    현재 베르덴의 관심사는 대주교, 흑마탑주, 라이너스가 단조하고 있을 스태프 그리고 마도왕의 무덤에 향해 있었다.

    그러던 순간.

    “……!”

    미증유의 마력이 감지된다.

    왕도 내부는 아니다. 그보다 훨씬 먼 곳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이 베르덴의 감각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마법사이기에 더욱더.

    ‘……경악스럽군.’

    과거에 느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1위계가 아닌 5위계 이상에 올랐기에 보다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가질 수가 없는 압도적인 힘을.

    등줄기로 오싹함이 느껴진다.

    이윽고 그 존재가 왕도에 닿았다.

    그제야 칼리아도 뒤늦게 이를 감지했다.

    “애, 애셔, 이건…….”

    그녀의 생각이 맞다.

    초월자가 도착했다.

    * * *

    왕도 레티아의 중심, 왕성 에스노렌(Eznoren).

    수백 명의 인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곳곳에서 고성이 들려오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들은 정문을 두고, 양옆으로 나뉘어 정확한 간격으로 도열했다.

    마법사들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경비를 담당했으며 계급이 없는 사용인들은 재빨리 왕성을 떠나 몸을 숨겼다.

    귀족들은 파벌별로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내가 대주교하고 마탑주를 보게 될 날이 오다니…….”

    “이, 이건 하늘이 내리신 기회요. 둘 중 한 명의 눈에라도 드는 데 성공한다면 가문이 막대한 힘을 갖게 될 테니!”

    “크흠! 자작이나 되는 사람이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일단 백작인 나부터 차근차근히…….”

    그야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대화다.

    고위 귀족이라는 작자들은 자신들의 권세만을 논하고 있다. 견문이 너무도 얕아, 얼마나 강대하고 위대한 존재들이 오는지 깨닫지도 못한 채.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주교 조제프 은하께서 입성하십니다!”

    쿠우우웅!

    에스노렌의 정문이 열렸다.

    조제프 대주교.

    말로만 듣한 위대한 성직자가 왕성에 입성했다.

    그런 그를 백색 금속으로 전신을 가린, 하나의 검을 허리에 찬, 두 명의 성기사가 뒤따랐다. 대주교 직속 성기사, 팔라딘(Paladin)임이 분명했다.

    쿵────쿵!

    왕국의 기사들이 검을 뽑아 서로 맞대었다.

    그 아래를 대주교와 팔라딘이 익숙한 듯 거닐었다.

    대주교라는 드높은 직책 때문인지, 아니면 대주교의 싸늘한 표정 때문인지. 엄중한 분위기가 삽시간에 군중을 장악했다.

    “……마탑주는 어디에 있는 거지?”

    “곧 오지 않겠소?”

    몇몇 귀족만이 수군거렸다.

    왕가를 대표해 나온 재상이 대주교를 맞이했다.

    “에스티리아 왕국에 방문하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조제프 대주교님. 저는 재상직을 맡고 있는 팔로란────”

    “궁금하지 않습니다.”

    “……예?”

    “그러니 1왕자에게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재상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대주교라지만 재상인 자신에게 대놓고 이런 모욕이라니. 너무도 황당해서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건 정식으로 항의해야 한다.

    그럴만한 사안이고, 재상은 그런 위치였다.

    그때, 귀족들 중 누군가가 하늘을 가리켰다.

    “저게…… 뭐지?”

    시선이 위로 집중되었다.

    왕국 저 멀리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

    찬란한 여름의 햇살마저 집어삼키는 광활한 어둠이 말이다. 이윽고 그것이 왕도의 성벽을 넘어섰다.

    “이, 이 무슨……?!”

    “어, 어?”

    털석.

    마법을 배운 귀족들이 기겁하며 주저앉았다.

    기와 마력을 깨우치지 못한 이들은 주체할 수 없는 몸의 떨림에 겁을 먹었다. 어둠이 다가온다. 피부를 스치던 불길하고도 두려운 감각이 이젠 영혼을 저미는 듯했다.

    ────!

    이윽고 그림자가 왕성을 뒤덮었다.

    서 있기조차 힘들게 만드는 광풍이 한차례 휘몰아쳤다. 이내 천천히 눈을 뜬 순간…… 어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고, 그 대신 낯선 노인이 서 있었다.

    설마.

    “……!”

    “……!!”

    털썩. 하나둘씩 사람들이 쓰러졌다.

    귀족, 기사, 마법사 할 것 없이 속수무책으로 전부 다. 근방에 모여 있던 사람들 중에 감히 의식을 유지하는 자는 없었다.

    초월자의 격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왕성의 정문에 고요함이 흘렀다.

    조제프 대주교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시끄러운 걸 싫어하시는 건 여전하십니다, 참고인, 다크 워튼의 마탑주님.”

    “그건 조제프,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덕분에 조용해져서 좋습니다. 그보다 설마 마탑주님께서 이렇게 직접 와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거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개인적인 일로 온 것이니 신경 쓰지 말게나.”

    침묵의 세계.

    오직 두 사람의 대화 소리만이 감돈다.

    기이하고 소름이 끼치는 광경에, 멀찍이서 보고 있는 어느 누구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대로 멈춰 선 채 바라보기만 했다.

    그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대화는 여기까지 하고 이만 들어가지.”

    마탑주가 마력을 일으켰다.

    그 찰나의 순간에, 저주로 완전히 정신이 잠식당한 재상이 홀로 기립했다. 한없이 허리를 낮추며 양손으로 왕성을 가리켰다.

    “알현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의식을 잃은 자들은 내버려 두었다.

    흑마법에 조종당해, 한층 더 공손해진 재상을 따라 왕성으로 들어섰다. 붉은 융단이 깔린 복도를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재상이 소리쳤다.

    “다크 워튼의 마탑주. 그리고 조제프 대주교께서 입장하십니다!”

    끼이이익.

    알현실의 문이 열렸다.

    * * *

    에스티리아 왕은 건강 악화로 인해 불참했다.

    그를 대신해, 회담에서 만큼은 1왕자 발르그나가 일시적으로 왕권을 대행한다. 이건 에스티리아 왕의 어명이었다.

    ‘그 뭔지 모를 레오닐의 실험을 도와준 게 이렇게 돌아와 주다니.’

    발르그나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레오닐이 왕좌의 옆을 지켰고, 2왕자 로트닐과 3왕자 에버스. 그리고 관상용으로 가져다 둔 1왕녀 실리스가 각자 자리에 착석해 있었다.

    왕좌의 아래에는 두 명의 공작 그리고 에스퍼렌사 후작을 포함한 고위 귀족들이 도열했다.

    ‘여기서 내가 왕에 적합하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동생을 지지하는 귀족들이 망설일 테니.

    이건 아주 크나큰 기회다.

    발르그나는 이 회담을 증명의 장으로 만들 작정이었다.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다크 워튼의 마탑주. 그리고 조제프 대주교께서 입장하십니다!

    기다리던 두 존재가 나타났다.

    ‘……!!’

    형용할 수 없는 존재감이다.

    레오닐이 작게 신음했고 고위 귀족들조차 당황을 금치 못했다. 별다른 행동도 취하지 않았는데 알현실 전체가 동요했다.

    ‘이것이 대주교, 이것이 초월자인가……!’

    하지만 견뎌야 한다.

    입안을 깨문 발르그나가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저는 에스티리아 폐하를 대신해, 왕권을 일임받게 된 1왕자 발르그나 베인 디 에스티리아라고 합니다. 이렇게 다크 워튼의 마탑주와 대교주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직 말은 끝나지 않았다.

    저들은 이런 허울뿐인 예절에 이골이 난 존재들이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야 한다.

    “먼저 이번 언데드 사태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루아스교에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그리고 교인들을 지키지 못해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 그 의미로써…….”

    발르그나가 손짓했다.

    피 묻은 주머니 여섯 개가 바닥에 나열되었다.

    언데드 사태에서 의무를 버리고 도망친, 혹여 책임이 윗선까지 올라올까 미리 잘라 버린 귀족들의 머리였다.

    “여기, 사태를 방관하고 제 안위만을 챙긴 귀족들을 처형했으니, 약소하게나마 저희의 진심 어린 마음이 희생자들의 위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거의 완벽했다.

    오만한 말투를 최대한 억제했고, 일국의 왕으로서 충분히 그들을 우대했다. 이만하면 회담의 시작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으리라.

    발르그나가 미소 지었다.

    그의 파벌에 속한 귀족들 또한 입가를 올렸다. 웃음으로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건 사교계에서 아주 흔한 일이었다.

    “…….”

    물끄러미 발르그나를 바라본 조제프 대주교.

    마탑주에게 향했던 미소는 사라진 지 오래.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이 사라진 듯한 표정을 지은 대주교가 나지막이 말했다.

    “발르그나 전하.”

    “예, 말씀하십시오, 조제프 대주교.”

    “지금 웃음이 나오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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