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02화 (202/366)
  • 202화 역겹다

    긴장감이 팽배해졌다.

    수적으로 보나, 개개인의 경지로 보나 두 명의 궁정 마법사가 불리하다는 건 명백했다. 하나 그럼에도 그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는 조소를 띠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곳을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처리하겠다고? 하,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는군. 듣도 보도 못한 자가 퇴물 마도사를 등에 업고 위세를 부리는 꼴이라니.”

    “……응? 퇴, 퇴물?”

    에드몬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 난데없이 퇴물이라니. 당황해 말을 더듬는 그의 모습에 헤리안이 코웃음 쳤다.

    “역풍의 마도사. 한때 왕국에 그런 위명이 퍼진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10년을 아득히 넘어 20년 가까이 지난 이야기가 아닌가? 그동안 당신은 후작가에 눌러앉아 무익한 세월을 보냈지. 하나 나는, 궁정 마법사는 다르다.”

    헤리안은 스스로에게 손을 얹었다.

    “우리 에스티리아 왕가의 궁정 마법사는 숱한 노력으로 발전에 발전을────”

    <어스 자벨린>

    대지의 창이 대화를 찢어발겼다.

    “……?!”

    “헤리안!”

    그 궤적이 겨냥하고 있는 건 궁정 마법사.

    화들짝 놀란 헤리안이 다급하게 두 개의 얼음벽을 세웠다.

    콰지지지직!

    단단한 암석이 벽을 관통했다.

    매직 아이템으로 강화된 얼음을 부수는 위력. 날카로운 첨단이 헤리안의 복부에 닿을 듯 말 듯한 곳에 멈춰 섰다.

    한 치만 더 들어갔다면 중상이다.

    거기서 더 깊었다면 치명상 혹은 즉사였을 테고.

    뒤늦게 그 사실을 인지하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게다가 이 마법은 에드몬의 것이 아니다.’

    헤리안의 눈동자가 앞으로 향했다.

    얼음벽의 틈새로 잿빛 머리의 마법사가 보였다.

    베르덴의 벽안이 옆으로 기울었다.

    “에드몬 님, 한가로이 대화를 나눌 시간은 없습니다.”

    “정신 차려라, 인간 마법사.”

    “아, 미, 미안하네. 퇴물이란 소리는 처음 들어 봐서 나도 모르게…….”

    에드몬이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알면 됐다.

    다시 시선을 돌리자, 격분한 헤리안이 눈을 부라렸다.

    “네놈……! 대화 도중에 이게 무슨 짓이냐! 기습이라니! 마법사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예절조차 모르는 건가!”

    인체 실험이나 하는 마법사가 예절 운운이라니.

    겉치레는 신경 쓰면서 속은 추악하게 썩어 문드러져 있는 모습. 권력과 힘에 취한 마탑의 마법사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대답할 가치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실험체가 없다는 건 분명해졌다.’

    다름 아닌 궁정 마법사가 직접 증언을 했으니.

    더 이상 놈들에게 용건은 없다.

    심문할 여유가 없기도 하나, 필요한 정보는 라이너스의 머릿속에 있을 테니까.

    해야 할 일은 정해졌다.

    더블 캐스팅.

    <단폭뢰>

    실험실을 울리는 뇌성(雷聲).

    그와 함께 번개의 창이 궁정 마법사에게 쇄도했다.

    * * *

    이곳에 궁정 마법사가 몇 명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레오닐이 없다는 건 분명하다.

    그가 이곳에 있었다면 라이너스가 일으킨 폭발은 사전에 제압되었을 테니까. 더군다나 진즉에 베르덴 일행의 존재를 눈치챘을 것이다.

    6위계 마도사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아직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건 곧 부재를 의미한다.

    그러니 추적을 끊기만 하면 된다.

    실험실에 남아 있는 놈들을 전멸시킬 필요도 없다. 그저 방해물을 지워 없애고 탈출하면 그뿐.

    베르덴에겐 익숙한 일이다.

    게다가 눈앞의 상대는 고작 둘.

    각개격파로 결정지으면 순식간이다.

    아무리 궁정 마법사라고 해도 마찬가지.

    5위계 상위 혹은 마도사에 이르지 못한 이상, 베르덴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이미 그에겐 흑마도사를 단신으로 압도한 경험과 실력이 있었으니까.

    지금 보는 것처럼.

    <섬뢰>

    직선의 궤적을 그리는 전격의 광선.

    막기엔 늦었다고 판단한 헤리안이 바닥을 굴러 가까스로 피했다.

    “크읍……!”

    로브가 먼지와 그을음으로 뒤덮였다.

    궁정 마법사란 직위에 어울리지 않는 몰골이었으나 자존심을 우선할 여유가 없었다.

    바닥에서 느껴지는 마력.

    비행을 사용하자 날카로운 가시가 치솟았다.

    스치듯 긁힌 얼굴에서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직후 하늘에서 터진 화염 폭발에 벽에 몸을 부딪혔다.

    헤리안이 숨을 토하며 바닥을 짚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이해가 따라가지 않는다.

    마도사인 에드몬만 주의해서 대처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퇴물이라고 얕봤을지언정, 속으로는 격차를 인정하고 있었으니까.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상관인 브릭의 도움을 기다리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에드몬은커녕 새파랗게 어린 마법사에게 당하고 있다니.’

    다양한 원소 속성.

    미친 듯한 시전 속도.

    그리고 매직 아이템으로 강화된 마법의 위력과 범위까지.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맞서 대응했다간 저 마법 폭격에 집어삼켜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마법사가 왕국에 있었다니.’

    최근 몇 년간 왕성과 실험실만을 오가던 헤리안은 믿기 어려웠다.

    그때, 단말마의 비명이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

    다른 궁정 마법사의 것이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헤리안이 눈을 부릅떴다.

    “꺼억…… 꺼억…….”

    에드몬의 바람에 난도질당한 전신.

    몸통에는 두 개의 화살이 박혀 있었고, 지면에서 솟아난 나무뿌리가 사지를 옭아맸다. 그리고 강철 단검은 정확히 궁정 마법사의 목을 꿰뚫고 있었다.

    저 상태로 살아남을 수는 없다.

    동료의 죽음이었으나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에드몬에게서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헤리안이 경악한 건 그 옆이었다.

    전투의 여파로 벗겨진 로브, 그 안에서 얼마 전에 본인이 직접 이송한 실험체의 얼굴이 보란 듯이 드러났다.

    “가디언 엘프?! 분명 너는 죽었을 텐데!”

    “입 닥쳐라, 인간.”

    우두둑!

    카란스가 궁정 마법사의 머리를 비틀었다.

    처참하게 당한 시체가 힘없이 쓰러졌다. 녹색의 안광을 직시한 헤리안이 몸을 움찔 떨었다.

    “이, 이게 무슨…….”

    1왕자의 성에 있는 실험실은 화염 골렘에 의해 전소되었다.

    실험체의 재활용을 맡은 드레뷔스는 사망했고, 가디언 엘프를 포함한 것들은 죄다 재가 되어 사라졌다.

    분명 그렇게 보고를 받았었다.

    그런데 상황은 정반대다.

    살아남은 가디언 엘프는 궁정 마법사를 살해했다.

    그리고 에스퍼렌사 후작가의 마도사가 정체 모를, 괴물 같은 마법사를 데리고 이곳에 찾아왔다. 정황상 후작가가 1왕자의 성에 관여했다는 건 분명할 터.

    ‘뭔가 어긋났다.’

    그것도 아주 크게.

    도대체 언제부터 꼬리를 밟혔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헤리안의 눈동자가 강하게 흔들렸다. 그러다 이내 생각을 다잡았다.

    ‘어떻게든 레오닐 베르타나스 각하께 이 사실을 보고해야 한다.’

    그것만이 유일한 타개책일 터다.

    그리고 레오닐에게 연락을 하려면 브릭의 존재가 절실하다. 정확히는 그가 가지고 있는 ‘공간 이동 좌표계’가.

    살기 위해선 그 수밖에 없다.

    어금니를 깨문 헤리안이 마력을 방출했다.

    “길을 비켜라!”

    <이엘로>

    <아이스 레인>

    <프로스트 노바>

    5위계로 이루어진 트리플 캐스팅.

    마력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과도한 연산에 머리가 타는 듯했다. 뒷일을 생각하지 않은 소모량이었으나 그 외엔 방도가 없었다.

    거대한 빙석은 에드몬에게.

    그리고 수많은 얼음 송곳은 베르덴에게.

    혹한의 파동은 주위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같잖은 발악이다.

    <격변>

    베르덴이 오큘러스로 지면을 강타했다.

    쩌저적. 갈라진 틈새에서 치솟은 불기둥이 한기와 맞부딪쳤다. 통로 전체에 수증기가 자욱하게 퍼지며 시야가 흐릿해졌다.

    ‘지금!’

    헤리안이 도주를 감행했다.

    이만한 소란이 일었으니 브릭 또한 이곳으로 오고 있을 터.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는 앞만을 바라봤다.

    화아아아악!

    갑작스레 거센 폭풍이 불었다.

    일순간 눈을 감았다 뜨자, 수증기가 걷히고 바람으로 이루어진 장벽이 앞길을 막아섰다.

    “설마 그 정도 마법으로 날 따돌릴 수 있을 줄 알았나? 허허, 궁정 마법사는 퇴물 마도사인 나보다도 판단력이 흐릿한 모양이군그래.”

    “로드리너……!”

    “아, 그리고 위를 조심하시게.”

    “?!”

    헤리안이 즉각 고개를 들었다.

    푸른 빛의 정령.

    블루가 시전한 <뇌격>이 헤리안의 몸을 관통했다. 마력 저항력 덕분에 중상은 입지 않았으나 전신의 근육이 마비되었다.

    뒤이어 카란스의 화살이 쏘아졌다.

    숲의 정령의 힘을 품은 화살촉이 헤리안의 다리를 관통하자, 넝쿨이 뻗어 나와 양팔을 결박했다. 어느새 다가온 카란스가 궁정 마법사를 짓밟은 채로 활시위를 겨누었다.

    “동족들의 복수다.”

    숨 막히는 살기.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죽음이 다가왔다.

    그 순간.

    저 멀리서 화염 광선이 날아왔다.

    에드몬의 바람 장벽을 부술 정도의 위력. 직격당하면 위험하다.

    곧장 활을 거둔 카란스가 기민하게 회피했다.

    그대로 거리를 벌려 적을 식별하기 위해 안광을 돋우었다.

    그에 헤리안이 상기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브, 브릭 님!”

    “헤리안,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이지?”

    제4석차 브릭 메드워.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가 헤리안에게 다가왔다.

    * * *

    다른 궁정 마법사가 나타났다.

    헤리안의 반응을 보아 상관인 것 같은데, 어쩌면 현재 이 실험실의 책임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소 5위계 중위의 강자…… 아니, 느낌상 5위계 상위로 보인다.

    ‘앞선 궁정 마법사와는 격이 다르다.’

    얕볼 상대가 아니다.

    베르덴은 신중히 상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

    브릭의 눈동자가 주변을 살폈다.

    카란스, 베르덴, 에드몬, 블루, 숲의 정령, 라이너스 순으로 스쳐 지나가는 시선. 상황을 접한 지 몇 초 되지 않았건만, 이해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연, 그렇게 됐나. 설마 에스퍼렌사 후작가가 뒤를 밟았을 줄이야. 그것도 에드몬, 당신이 직접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허허. 오랜만이군, 브릭. 왕가가 해선 안 될 짓을 하고 있다고 해서 말일세. 후작가의 일원이자, 왕국의 사람으로서 당연히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찾아왔네.”

    “해선 안 될 짓이라……. 그래, 세상의 눈으로는 확실히 그렇겠지. 나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네.”

    하지만.

    “궁정 마법사는 에스티리아 왕가와 레오닐 각하께 충성을 다한 존재. 그분들의 생각이 곧 우리의 기준이자 사명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아래에서 주도적으로 살아가지. 하찮은 삶을 살아가는 자와 사는 세계가 다르단 말이다.”

    브릭이 붉은 마석이 박힌 스태프를 손에 들었다.

    그에게서 흘러나온 화염이 넝쿨을 불태웠다. 겨우 속박에서 벗어난 헤리안이 주저앉은 채 고개를 조아렸다.

    “가, 감사합니다, 브릭 님!”

    “뒤에 있어라. 내가 지켜 줄 테니.”

    브릭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마치 드높은 충성심을 가진 자가 부하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동화 속에 나올 법한 모습이었다.

    그를 본 베르덴이 생각했다.

    ‘저렇게 역겨운 게 있다니.’

    인체 실험을 자행하는 자가 고고함이라니.

    연기라면 모를까, 놈의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야말로 악질적이다.

    내심 구역질이 날 정도로. 이렇게 부숴 버리고 싶은 건 꽤나 오랜만이었다.

    “응? 자네……?”

    화아아악!

    에드몬의 부름을 뒤로하고, 베르덴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오큘러스를 양손으로 잡은 그가 마력을 집중시켰다.

    “마법사가 돌진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군.”

    브릭이 스태프를 휘둘렀다.

    <붉은 이빨>

    화염으로 이루어진 이빨이 앞을 막았다.

    마력 방벽으로는 막을 수 없는 열기지만 상관없었다.

    마법사의 회한.

    그 안에 담긴 세 개의 부여 마법이 발동했다.

    <육체 증폭>

    <육체 경화>

    <원소의 장벽>

    신체 능력과 내구도의 강화.

    그리고 최대 2회의 충격까지 원소 저항력을 대폭 높여 주는, 부여 계열의 집중 마법까지. 하물며 장비 자체가 가진 저항력 또한 있다.

    지금 이 순간, 베르덴은 성벽과도 같다.

    붉은 이빨을 단숨에 돌파한 베르덴.

    방심한 브릭에게 그대로 오큘러스를 휘둘렀다. 모아 둔 마력이 충격파로 변환되었고, 그 위로 중력의 속성을 덧씌웠다.

    콰아아아아아앙!

    “큽?!”

    이를 악다문 브릭이 뒤로 밀려났다.

    찰나의 순간에 스태프로 막아 냈으나 충격까지는 지울 수 없었다.

    반동을 견뎌 낸 브릭이 미소를 지었다.

    “제법……?”

    브릭이 흠칫 놀랐다.

    베르덴이 빈손으로 헤리안을 겨냥했다.

    <프로미넌스>

    “브, 브릭────”

    홍염이 헤리안을 집어삼켰다.

    육신뿐만 아니라 비명 소리마저 불태워 버린 화염이 지면에 흘러내렸다.

    베르덴이 브릭을 보며 물었다.

    “누굴 지킨다고 했지?”

    “이, 이런, 건방진……!!”

    브릭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뒤에서 에드몬이 중얼거렸다.

    “……누가 나쁜 놈인지 모르겠군.”

    “그러게나 말이오.”

    라이너스가 동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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