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01화 (201/366)

201화 구출 (3)

뜨거운 바람이 공간을 휩쓸었다.

그 뒤로 연쇄적인 폭발이 바짝 따라붙었다.

난데없이 발생한 위협.

베르덴과 에드몬이 즉각 마력을 일으켰다. 두 사람 모두 마법의 길을 걷는 자로서, 기준점을 넘어선 존재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선풍의 장막>

<화염장막>

화아아아악!

에드몬의 바람이 폭발의 충격을 상쇄했고, 베르덴의 화염이 열기를 차단했다.

쩌저적.

금이 간 천장에서 돌덩이가 떨어져 내린다.

그러나 둘의 장막을 뚫어 내기에는 역부족. 실험실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면 곤란하긴 했을 테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윽고 폭발 소리가 그쳤다.

동시에 장막이 걷히자 엉망이 된 복도가 나타났다.

“……확실히 뭔가 있긴 하군요.”

“크흠흠!”

에드몬이 크게 헛기침했다.

설마 말이 씨가 될 줄이야.

물론 그의 탓은 아니었지만 눈치가 보이긴 했다.

목을 가다듬은 에드몬이 화제를 돌렸다.

“그, 그나저나 갑자기 이만한 폭발이라니. 마력이 느껴지는 걸 보아 우연히 발생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실험실을 흔적도 없이 묻어 버리기 위한 것인가?”

폭발의 여파는 상당했다.

한순간에 폐허로 변해 버린 실험실의 복도. 천장과 바닥 그리고 벽면을 살피자 전체적으로 기반이 약화되어 있었다.

외부보다 내부의 피해가 깊다.

여러모로 인위적인 흔적이 짙게 느껴진다.

하지만 베르덴은 에드몬의 생각에 회의적이었다.

“실험 자체가 이미 끝난 상태라면, 실험실을 폐기하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폭발은 너무도 비효율적입니다.”

베르덴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당연하게도 천장의 하중이 집중된 곳을 중점으로 무너뜨렸을 것이다. 굳이 두 번 손쓸 필요도 없이 아주 확실하게.

‘그에 비해 눈앞의 실험실은 비교적 멀쩡하다.’

외적인 부분은 난잡하고 더럽긴 해도, 내구성은 여전히 쓸 수 있는 정도.

한 나라의 궁정 마법사가 일 처리를 이따위로 했다고는 객관적으로 믿기 어렵다. 실수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니.

“그럼 누군가가 손을 썼다는 겁니까?”

“가능성은 있겠지.”

뭐, 확신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실험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게 됐다.

탐색은 필요 불가결하다.

그리고 교전 또한 마찬가지일 터. 모든 가능성을 상정한 채로, 보다 주의 깊게 움직여야 한다. 모두가 각자의 각오를 다졌다.

그때였다.

“……?!”

벽 안쪽에서 감지되는 기척.

베르덴과 카란스가 먼저 반응했고 에드몬과 정령들이 뒤를 이었다. 전신의 마력회로를 활성화하고 있자, 이윽고 벽이 무너졌다.

그리고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기랄, 깔려서 죽는 줄…… 응?”

외수, 라이너스 볼티모그.

그의 눈이 베르덴 일행과 마주쳤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먼저 적막을 깨뜨린 건 베르덴이었다.

“라이너스?”

“X발, 또 마법사야?!”

라이너스가 묵직한 돌조각을 집어 힘껏 내던졌다.

* * *

드워프는 금속과 창작의 종족이다.

라이너스는 그런 드워프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환경에 재능 그리고 노력까지 겹치며 제작사로의 길을 걸었다.

심지어 강인한 육체를 기반으로, 전투 망치를 능숙하게 다뤄 백금 등급 모험가라는 신분까지 쟁취했다.

그건 오른팔이 없는 지금도 마찬가지.

팔의 부재는 치명적이었으나 라이너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부족한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신체를 활용했고, 끝내는 외수라고 불리는 특출난 마법 물품 장인이 되었다.

물론 전투 능력은 회복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무력함과는 거리가 멀다.

생존의 달인.

그것이 라이너스 볼티모그란 사내였다.

“제발 좀 꺼져!”

던져진 돌조각이 정확히 베르덴의 머리를 향했다.

굳이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피하려고 움직일 필요도 없다. 마법사의 회한이 가진 자동 마력 방벽이 간단히 막아 줄 테니.

그때, 카란스가 앞으로 나섰다.

강철 단검을 든 엘프가 팔을 휘둘렀다.

어떤 소리도 없이, 검 면에 의해 궤도가 틀어진 투사체가 벽에 부딪혔다. 군더더기 없는, 정교하고 세밀한 움직임.

“제압하겠습니다, 형제여.”

카란스의 신형이 흐려졌다.

바닥을 박찬 그가 어느새 라이너스에게 육박했다. 근육질의 오른팔이 날아왔으나 맞기는커녕 스치지도 않았다.

빈틈을 파고든 카란스가 라이너스를 휘감았다.

“이런 씹……!”

순식간에 라이너스의 다리를 제압해 쓰러뜨렸다.

단단히 걸린 관절기.

만약 벗어나려 한다면 카란스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발목을 작살낼 것이다. 그를 직감했지만, 라이너스는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잡힌다면 진짜 끝장이다.’

기회를 엿볼 수도 없이, 이 자리에서 처분당할 테니.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그를 위해 긴 시간을 버텨 왔으니까.

다리 하나 망가지는 것 따위는 대수롭지 않다.

하지만 라이너스가 미처 벗어나기 전에, 베르덴이 다가와 오큘러스를 겨누었다.

라이너스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 이 개같은 새끼들…… 내가 순순히 죽어 줄 것 같아! 당장 이거 풀어, 그 얼굴 잡아 부숴 버리기 전에!”

“진정해라, 라이너스 볼티모그.”

“X발, 죽기 직전인데 진정은 뭔…….”

응?

문득 라이너스가 눈을 깜빡였다.

왜 죽이지 않고 굳이 제압을 한 거지?

이미 쓰임새를 다한 데다가 놈들을 함정에 빠뜨린 자신을 살려 둘 이유는 없을 텐데. 게다가 들려오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생소하다.

라이너스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회색 머리칼을 가진 마법사가 보였다.

이곳에 갇힌 지 수년이 지났는데도 전혀 본 적 없는 얼굴이다. 게다가 그 빌어먹을 궁정 마법사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그뿐만 아니라 라이너스의 다리를 제압한 자는 다름 아닌 엘프였다. 로브로 가려진 외모 사이로 특유의 긴 귀가 보였다.

‘아니, 엘프가 왜……?’

엘프는 실험체다.

그리고 지금은 전부 처분되었을 터.

뭔가 이상하다.

어쩌면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라이너스의 감정이 점차 가라앉는 걸 본 베르덴이 오큘러스를 거두었다.

“이제 말이 통하겠군.”

* * *

자세하게 풀어 설명할 여유는 없다.

베르덴은 아주 간략하게 상황을 전달했다.

라이너스가 최소한으로 이해할 정도만 말이다.

만약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을 계속한다면 기절시키고 데려갈 생각이었는데, 다행히도 그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바닥에 주저앉은 라이너스가 자신의 다리를 주물렀다.

“젠장, 구하러 온 거면 일찍 좀 말해 주지. 안 그래도 팔 한짝 없는데 하마터면 다리까지 잃을 뻔했네.”

“납득한 건가?”

“싫어도 납득해야지. 당장 날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말이야. 이봐, 좀 일어나게 손 좀 잡아 주겠나?”

라이너스가 카란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더러움과 별개로 인간의 손이다.

카란스가 진심으로 질색하며 옆으로 시선을 던졌다.

한숨을 쉰 에드몬이 라이너스를 일으켰다.

“후우, 도와줘서 고맙소. 그나저나 엘프는 인간을 혐오한다더니 정말이었구만. 드워프도 이 정도는 아닌데.”

“허허, 익숙해지면 편하네.”

“타 종족과 비교하지 마라.”

“잡담은 그만.”

베르덴이 제지하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라이너스, 묻고 싶은 게 있다.”

“응? 뭐지?”

“방금 전 폭발이 있었는데, 네가 벌인 일인가?”

“아, 그거? 맞아, 내가 한 거지.”

라이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만든 마력 집광기하고 연료가 되는 마석 사이에 미리 손을 써 뒀거든. 나중에 둘을 분리할 때 마석의 마력이 터져 나오면서 연쇄적인 폭발이 발생하도록 말이야.”

가능하면 탈출을 앞당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숨기지 않았으면 진즉에 들켰을 것이다. 다른 궁정 마법사는 몰라도 레오닐의 눈을 속이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나도 타이밍을 몰라서 어떻게든 시간을 끌긴 했는데, 아직 내 운이 다하지 않은 모양이야.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이렇게 도망칠 수 있었으니까.”

“……다른 생존자는 없나?”

“없을 거야. 있다 해도 이미 놈들에게 처분당했겠지. 마력 집광기를 분해하고 나를 죽이러 왔다는 건 이미 이곳이 필요 없어졌다는 뜻이니까. 듣자 하니, 외부에서 데려온 마법사들도 모조리 살처분했다던데.”

카란스를 통해 살아 있는 엘프가 없다는 건 인지했다.

그런데 다른 실험체인, 특이 형질 보유자도 전부 죽었을 거라니.

예상 못 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도 기분이 착잡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나 베르덴은.

“어떻게 할 건가, 애셔. 탐색을 이어 갈 텐가?”

최우선 목표의 안전은 손에 넣었다.

이대로 탈출한다면 구출은 성공적으로 끝날 터다.

그러나 베르덴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혹시나 살아 있는 실험체가 있을 지도 몰랐으니까.

게다가 라이너스의 두 눈은 삶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거짓을 말했을 경우의 수는 배제할 수 없다. 가능하면 진실이라고 믿고 싶긴 하지만.

베르덴의 고민은 잠깐이었다.

“이대로 돌아가겠습니다.”

“알겠…….”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할 게 남은 것 같습니다.”

베르덴의 시선이 복도 저편으로 향했다.

귀를 기울이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더불어 마력까지도. 곧이어 두 마법사가 베르덴 일행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찾았다, 볼티모그……!!”

강렬한 분노와 함께.

* * *

“구, 궁정 마법사!”

라이너스가 기겁하며 뒷걸음쳤다.

그의 시선에 비친 두 궁정 마법사의 모습은 결코 좋지 않았다.

마력 집광기를 분리한 궁정 마법사.

그는 지근거리에서 터진 폭발에 그대로 노출당했다. 너무도 급작스러운 터라 이렇다 할 대응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얼굴뿐만 아니라 양쪽 팔에 깊은 화상을 입은 몰골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만약 원소에 대한 저항력이 낮았다면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

그와 비교해 헤리안은 별다른 부상을 입지 않았다.

피부가 불타기 직전에 얼음으로 된 장막을 둘렀으니. 대신 그의 옷차림에는 미처 막지 못한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둘 다 한 나라의 궁정 마법사라고 하기에 볼품이라곤 없었다.

“이런 끈질긴 마법사 새끼들. 적어도 하나는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딴 수작에 우리가 당할 것 같았나? 죽는 건 네놈이다. 그런데…….”

헤리안의 시선이 베르덴에게 향했다.

“너희들은 누구지? 레오닐 각하께서 외부인이 올 거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는데.”

“실험체는 전부 처분했나?”

“실험체……?”

헤리안이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하니 여기에 침입한 자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상정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건 다른 궁정 마법사도 마찬가지.

“각하께서 명령하신 대로 며칠 전에 전부 처리했다. 이미 확인까지 끝마친 상태지.”

“단 한 명도?”

“단 한 명도 남김없이.”

헤리안이 단언했다.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지? 그나저나 너희는 대체 어디 소속…….”

“잠깐.”

화상을 입은 궁정 마법사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로브를 입은 늙은 노인.

눈가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정갈한 수염이 돋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외모. 이내 그 정체를 떠올린 그가 눈을 부릅떴다.

“에드몬……?!”

에스퍼렌사 후작가의 기둥.

역풍의 이명을 가진 5위계 상위 마도사, 에드몬 로드리너. 이곳에 있을 리 없는, 아니 있어서는 안 되는 왕국의 강자 중 하나였다.

헤리안 또한 격하게 반응했다.

“로, 로드리너!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허허,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에드몬이 로브를 벗었다.

스태프를 다잡은 그가 베르덴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정체를 들킨 것 같은데, 어떻게 하겠나?”

어떻게 하긴.

그 답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

베르덴과 카란스가 마력을 번뜩였다.

“여기서 처리하겠습니다.”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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