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구출 (2)
레오닐의 실험실.
그 가장 깊숙한 장소에 십수 명의 마법사들이 모여 있었다.
공식적으로 왕국의 궁정 마법사로 활동하는 세 명을 제외하면, 죄다 비밀리에 각지에서 차출된 마법사들.
이들의 공통점은, 마법 연구를 위해서라면 윤리와 도덕 따위는 간단히 버릴 수 있는, 광기와 집념에 가까운 탐구심이다. 그와 더불어 음습한 탐욕까지도 말이다.
“제킨스, 시킨 일은 전부 끝났나?”
“물론입니다, 브릭 님.”
전달자, 제킨스 멕도월.
연구뿐만 아니라 궁정 마법사의 명령을 다른 연구자들에게 전달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제킨스가 희미하게 충혈된 두 눈동자를 희번덕거렸다.
“아티팩트 ‘마력 소각’은 며칠 전, 레오닐 각하께서 직접 회수하셨고. 그 외 실험실 내부에 존재하는 각종 마법 물품은 분해하여 처분했습니다. 남은 건 마력 집광기뿐입니다.”
“폐기물은?”
폐기물.
실험으로 희생된 엘프와 특이 형질 마법사를 일컫는다.
“본래 1왕자의 성으로 옮겼어야 했으나,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듣고 곧장 소각했습니다. 재는 남김 없이 바다에 뿌려 완전히 흔적을 지웠습니다. 물론 실험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자료들도 전부 말이지요.”
“확인해 보니 그렇더군.”
궁정 마법사 제4석차, 브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너희들의 도움은 의미가 있었다. 나와 다른 궁정 마법사만이 아니라, 레오닐 각하께서도 그 노고를 응당 인정하고 계시지.”
“아……!”
칭찬에 감격한 마법사들이 목소리를 흘렸다.
웃음이 터질 것 같은 충동을 억제하며 모두가 허리를 굽신거렸다. 누런 치아를 드러낸 제킨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럼 약속하신 건…….”
마법사들은 레오닐의 보조를 담당했다.
실험체의 생명 연장 그리고 각종 마법 물품 개발과 관리를 맡아, 실험의 진척 속도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빚어냈다.
실험실에 갇혀, 바깥을 보지 못한 지 무려 수년.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길 법하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럼에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부귀와 영화였다.
실험에 참가하는 것으로 막대한 돈을 약속받았다.
개중 희망자는 궁정 마법사단의 일원이 되는 것까지도 말이다. 말 그대로 신분을 역전할 수 있다는 뜻.
조금만 버티면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조금만 견디면 원하는 연구를 하며 살 수 있다.
권력과 돈 그리고 힘까지 전부 손에 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마법사로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는 제안이었다.
“흠, 약속이라. 그래, 그랬었지. 그럼 묻겠다, 이 중에 궁정 마법사단에 들어가고 싶은 자가 있나?”
“꼭 들어가고 싶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브릭 님! 저도 그렇습니다!”
마법사들이 손을 들며 소리쳤다.
그 수는 십수 명.
연구에 참가한 마법사들 전부였다.
돈이나 권력도 중요하긴 하나, 궁정 마법사로서 누릴 수 있는 연구 환경이 너무도 매력적이기 때문이었다.
“호오, 설마 전부 희망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하긴 한낱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것보단, 궁정 마법사로서 왕국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한 삶이긴 하지. 안 그런가?”
“네, 물론입니다!”
“그래, 그래.”
브릭이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좋은 듯 인자한 표정이었다.
‘……?’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전혀 그럴 분위기가 아닌데 뒷목이 서늘하다. 그런 기분을 느낀 건, 가장 앞에 서 있는 제킨스가 유일했다.
그때, 브릭이 말했다.
“약속을 지키기 전에 하나 묻도록 하지. 우리 궁정 마법사와 너희들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고 있나?”
차이?
“그래, 차이. 서로가 마법의 길을 걸었는데, 어째서 우리는 왕국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었고, 너희들은 바닥을 기는 쓰레기가 되었는가 이 말이다. 왜 이토록 서 있는 위치가 다를까? 여기,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
면전에서 멸시를 받은 마법사들이 눈가를 떨었다.
직전의 감격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침묵이 내려앉자 브릭의 시선이 제킨스에게 향했다.
“제킨스, 너는 어떻지?”
“저는…….”
제킨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답을 할 수 있는 자가 없군. 그럼 특별히 내가 대신 말해 주도록 하지. 너희들과 우리의 차이가 무엇이냐. 바로 이 머리다.”
주름진 손가락이 이마를 톡톡 두들겼다.
“우리는 에스티리아 왕가와 레오닐 각하를 위해 주도적으로 살아간다. 깊고 깊은 사명이지. 그에 반해 너희들은 어떤가? 눈앞에 있는 먹잇감에 정신이 팔려, 언제나 윗사람에게 끌려다니는 수동적인 삶이지. 멀리 있는 미래를 볼 수 없고 자신이 처한 상황조차 깨닫지 못하는. 이해를 위해 예를 들자면…….”
브릭이 히죽였다.
“지금처럼 말이야.”
“끄아아아아아악!”
뒤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일제히 고개를 돌리자 얼음에 뒤덮인 연구자 하나가 보였다.
궁정 마법사가 일으킨 <충격파>에 산산조각 난 몸뚱이.
그를 본 마법사들이 당황을 감추지 못했고, 제킨스가 곧장 마력을 일으키며 브릭과 거리를 벌렸다.
“……처음부터 우릴 죽일 생각이었나?”
“그렇다면 어쩔 텐가.”
“대체…… 대체 왜지? 우리는 충분히 쓸모를 입증했을 텐데!”
제킨스와 마법사들.
위계와 별개로 마법 지식와 연구 능력만큼은 출중했다. 도저히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브릭이 순순히 인정했다.
“네 말이 맞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아무리 하찮은 삶에 불과할지언정, 우리가 직접 주도한다면 연구진으로 삼기에는 이상할 게 없는 실력이긴 하니.”
“그런데 왜…….”
“실험실과 관련된 ‘물건’은 폐기하라, 레오닐 각하의 명령이시다.”
“네놈……!”
브릭이 왼팔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 끝에서 방출된 화염광선이 제킨스의 복부를 꿰뚫었다.
반응하기 어려운 시전 속도.
다리가 무너진 제킨스의 귓가로 싸늘한 음성이 스쳤다.
“죽여라.”
콰과과과광!
즉시 양쪽에서 마법이 날아왔다.
이곳에 모인, 브릭을 포함한 궁정 마법사 중에 마도사는 없다.
하지만 최소 5위계 이상이며, 4석차인 브릭은 5위계 상위의 마법사. 주로 2~4위계가 분포되어 있는 마법사들이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잠시 후 마법이 그쳤다.
몸의 형체도 찾아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 해 본 마법사들은 피와 살 그리고 뼈만 남기고 사라졌다. 마법의 여파에 하반신을 잃은 제킨스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너, 너희들도 끝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을 거다……! 아무리 포장한다 해도 너희 또한 한낱 하수인에 불과하니까!”
“흑마법사도 아닌데 저주인가? 우습기 짝이 없군.”
브릭이 비웃으며 손을 저었다.
거센 화염이 제킨스와 시신을 뒤덮었다.
이걸로 연구자들은 전부 지웠다.
이제 남은 건 마력 집광기와 라이너스뿐.
“나는 레오닐 각하를 맞이할 준비를 하겠다. 그러니 너희 둘은 각자 마력 집광기의 파괴와 라이너스의 처분을 맡도록.”
* * *
해안에 자리 잡은 까마득한 절벽.
그 끝자락에 선 베르덴 일행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힘찬 파도가 날카롭게 솟은 바위를 반복적으로 두들기고 있었다.
“여기가 실험실이 있는 장소라는 말인가?”
“바다는 숲의 정령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 내가 알아낼 수 있는 단서는 여기까지가 전부다.”
에드몬의 물음에 카란스가 단언했다.
베르덴은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만약 실험실이 해저에 숨어 있다면 매우 어려워진다. 이 근처를 다 수색하려면 몇 날 며칠이 걸려도 부족할 테니까.
‘그리고 가능성이 적기도 하다.’
매번 실험실에 들어갈 때마다 바닷물에 몸을 담가야 하니까.
공간 이동이 상시 사용된다면 그 찝찝함을 방지할 수 있겠으나, 만약 그랬다면 애초에 마법사들이 이곳을 지나가지도 않았을 터.
즉, 레오닐의 공간 이동에는 단점이 있다.
이동 숫자의 제한 혹은 발동하는 것 자체로 큰 부담이 생긴다든가.
그렇다면.
‘유력한 장소는 이 절벽인가.’
마력도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법적인 은폐, 환영일 가능성이 높다.
위험한 함정이 감춰져 있을 수도 있으나, 그건 자신의 임기응변에 맡길 수밖에.
결정을 내린 베르덴이 날아올랐다.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음, 나도 같이 가세.”
베르덴은 절벽 중간으로 내려갔다.
직접 손으로 짚어 가며 실체를 촉각으로 감지했다. 과거 글러트니의 계획을 분쇄하느라 했던 작업 중 하나.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약간 피로감이 느껴질 때쯤, 에드몬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그의 오른손이 절벽 안을 파고들고 있었다.
“허허…… 아무래도 내가 찾은 것 같네.”
* * *
두 궁정 마법사가 움직였다.
하나의 복도를 지나, 각자 왼쪽과 오른쪽을 향했다.
수감실로 향한 궁정 마법사, 헤리안.
퀴퀴한 냄새가 점차 가까워지자 표정을 찌푸렸다. 이윽고 복도 끝에 있는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쇠사슬에 묶여 있는 라이너스가 고개를 들었다.
“꽤나 소란스럽던데, 실험은 이제 끝난 건가?”
“그렇다.”
“그럼…… 이제 날 죽일 차례로군.”
“너는 그 마법사들보단 눈치가 빠르군.”
헤리안의 손끝에 서리가 맺혔다.
피부를 스치는 차가움에 라이너스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얼려 죽인다라. 그렇게나 협조했는데 이게 최선이야?”
“특별히 고통은 느끼지 않게 해 주마.”
“X발, 그딴 특별 취급은 필요 없는데……. 뭐, 그나저나 날 죽이러 왔다는 건, 마력 집광기도 처분하러 갔다는 뜻이겠지? 이런, 그거 잘못 건드리면 안 되는데.”
의미심장한 목소리.
헤리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안 된다는 거지?”
“그러니까…….”
라이너스가 마력 집광기의 구조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집광기의 설계자. 각종 마력 메커니즘에 대해 논했는데, 너무도 전문적인 영역이라 헤리안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
듣다 못한 그가 마력을 번뜩였다.
“잡소리 하지 말고, 본론을 얘기해라.”
“다, 다시 말해! 마석과 집광기를 분리할 때 무지막지한 연쇄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폭발이라고? 그런 건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아니, 그야…….”
그때, 실험실 전체의 기류가 달라졌다.
기다리고 있던 징조임을 확신한 라이너스가 입가를 비틀었다.
“니네 X돼 보라고 내가 숨겼으니까,”
“뭐?”
────콰아아아아아앙!
멀리서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그리고 실험실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강력하게. 비틀거리며 벽을 짚은 헤리안이 신음했다.
“큭, 이게 갑자기 무슨! 장인, 대체 뭘 어떻…… 게……?”
헤리안이 눈을 깜빡였다.
방금까지 있었던 라이너스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주인을 잃은 구속구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얼음지대>
쇠창살을 얼리곤, 스태프로 후려쳐 부숴 버렸다.
곧장 안으로 들어선 헤리안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시야에 들어온 침낭을 염동력으로 걷어 내자, 사람 하나가 지나갈 만한 통로가 나타났다.
“대, 대체 언제…….”
언제 이런 통로를 만들어 낸 거지?
심지어 통로 입구에는 마력 감지를 방해하는 마법 물품까지 설치되어 있다. 당황을 감추지 못한 헤리안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설마 이런 실수를 하게 되다니.
마법사 일생 처음으로 느껴 보는 치욕이었다.
‘반드시 찾아야 한다.’
만약 놈이 도망친다면 끝장이다.
크나큰 실책을 저지른 자신을 용서할 리가 없을 테니까. 헤리안은 마력을 일으키며 다급하게 바깥으로 나갔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앙!
마력 집광기로부터 시작된 폭발이 수감실을 덮쳤다.
* * *
절벽의 입구를 지났다.
비스듬하게 아래로 기울어진 통로를 지나자, 카란스의 기억에서 봤던 실험실이 나타났다.
“허, 이거 자연 동굴에 지은 게 아니라 전부 수작업이군. 누군지 몰라도 고생깨나 했겠어.”
쯧. 에드몬이 혀를 찼다.
그러면서 두 사람과 한 엘프는 목적을 상기했다.
최우선 목표는 라이너스 구출.
레오닐의 실험에 직접 가담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를 확보한다면 내막을 알 수 있을 터.
그리고 다음 우선 목표는 생존자의 구출이다.
아직 실험체로 사용되지 않은, 특이 형질 보유자가 살아남았을지도 몰랐으니까. 그뿐만 아니라 엘프까지도…….
“형제여…… 이곳에 살아남은 엘프는 없습니다.”
“확실한 건가?”
“지금의 저에게는 느껴집니다.”
카란스는 숲의 정령과 계약을 하면서 본래의 힘을 되찾았다.
그중에는 동족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어둡고 칙칙한 실험실에서는 어떠한 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그저 싸늘했다.
“그러니 다른 목표를 우선하시길.”
“……그러지.”
베르덴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실험실의 복도를 지나던 중, 길이 양 갈래로 갈라졌다.
지금 여기서 인원을 나누는 건 잘못된 판단일 터.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정해야 했다. 수염을 쓸고 있던 에드몬이 왼쪽을 가리켰다.
“이쪽부터 가세.”
“달리 이유가 있습니까?”
“아니, 왠지 뭔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일세.”
어차피 단서도 없다.
감에 의존하는 것 외에 딱히 대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에드몬이 앞장섰고, 베르덴과 카란스가 그 뒤를. 그리고 블루와 숲의 정령이 후미를 맡은 그때였다.
“응?”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 소리.
저 앞에서 빛이 번쩍이며, 거센 마력과 화염이 해일처럼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