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97화 (197/366)
  • 197화 찾았다 (2)

    라이너스 볼티모그는 약 7년 전, 왕국에서 종적을 감췄다.

    페르네가 필사적으로 그 행적을 쫓고 있지만, 실마리를 잡았을 뿐 아직까지 분명한 성과는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병이든 뭐든 모종의 이유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설마 엘프의 기억에서 보게 될 줄이야.’

    물론 외팔이 사내가 라이너스라고 명확하게 밝혀진 건 아니다.

    하지만 정황을 보면 그렇다.

    레오닐은 마법과 관련된 실험을 하고 있었으며, 그 실험실에는 생소한 마법 물품이 산적하고 있었으니.

    뛰어난 마법 물품 장인인 라이너스와 접점이 있다는 건 확실했다.

    반드시 찾아야 한다.

    공간가방에 속에 잠들어 있는 마탑의 보물을 사용하기 위해서.

    이유와 근거는 충분하고도 넘친다.

    ‘그런데 어디 있느냐가 문제인데.’

    카란스의 기억에는 위치 정보가 거의 없었다.

    이송은 언제나 의식을 잃은 동안 이루어졌으니. 그러던 그때 베르덴의 뇌리에, 생소한 짠 내가 스치듯 지나갔다.

    “에드몬 님, 혹시 이 근방에 바다가 있습니까?”

    “바다? 아니, 왕국은 내륙국이라 바다와 접한 곳이 없네. 그래도 거리만 따지면 그리 멀지는 않지.”

    “그게 어디입니까?”

    “해외일세. 동부 국경을 넘어 쭉 가다 보면 해안 도시 ‘아크리엔’이 나오는데, 독립 도시로 여름에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관광지로 찾는 곳이지. 몇 번 가 봤는데 먹거리가 많기도 하고 경치도 좋은 도시일세. 특히 밤바다가 장관이지.”

    해외?

    베르덴이 곧장 동대륙 지도를 꺼냈다.

    에스리티아 왕국을 짚은 손가락을 쭉 수평으로 움직이니, 얼마 안 가 도시 아크리엔이 나왔다. 지도의 축척을 계산해 봤을 때 국경에서 약 일주일 거리다.

    물론 비행을 사용하면 더욱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테고.

    “그런데 갑자기 바다가 어디 있는지는 왜 묻는 건가?

    “아무래도 레오닐의 실험실이 해외에 있는 것 같습니다.”

    “……자세히 말해 주게.”

    베르덴은 카란스의 기억에서 봤던 걸 설명했다.

    사족은 최대한 줄이고 필요한 정보만 정확하고 간결하게 말이다. 귀를 기울이고 있던 에드몬이 진중한 얼굴로 수염을 쓸었다.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는 푸른 수정, 집채만 한 마석, 엘프, 특이 형질 마법사, 레오닐…… 게다가 외팔이 장인까지? 대체 무슨 실험인지 종잡을 수가 없군. 단순히 견식만으로 짐작할 수가 있는 게 아니야. 확실히 직접 확인하는 게 옳겠지.”

    하지만.

    “단서가 너무 부족하네. 바다 근방으로 범위를 좁힌다 해도 해안선을 따라가면 끝이 없어. 게다가 보기 좋게 드러나 있지도 않을 테고. 설령 에스퍼렌사 후작가가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찾을 가능성은 희박하네.”

    정확한 지적이다.

    무턱대고 추적을 시작하기에는 수색 반경이 너무 넓다.

    “일단 후작 각하께 보고를 한 다음, 비밀리에 인원을 차출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잘하면 지금처럼 또 다른 단서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뭐, 서둘러 움직인다고 해도 당장 어떻게 할 도리가 없지 않나.”

    “그렇긴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을지도 모릅니다.”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 * *

    레오닐의 목적은 알 수 없다.

    하나 그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푸른 수정에 정제된 마력을 채우는 것이라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실험은 실패하지 않는 한 끝이 존재하는 법.

    베르덴이 카란스의 기억을 상기했다.

    잔혹한 실험이 계속될수록 푸른 수정에서 들려오는 심장 소리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보다 안정되고 있었고.

    다시 말해.

    “실험이 곧 끝날지도 모른다는 건가?”

    “예.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저희가 찾기도 전에 실험실은 완전히 폐기될 겁니다.”

    왕국이 아닌 해외에 실험실을 지은 건 보안을 위해서일 터.

    그럴진대 용도를 다한 실험실을 그대로 내버려 둘 리는 만무하다. 자칫하면 사라진 실험실을 찾는 헛고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에드몬인 곤란한 듯 이마를 긁적였다.

    “허, 이거 참…… 애매하군. 그럼 자네는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나?”

    “서둘러 움직이는 게 최선이라고 봅니다.”

    단서가 없으면 나가서 찾는 수밖에.

    이렇게 억지로 머리를 쥐어짜 내는 건 그저 시간 낭비에 불과할 테니까.

    그때, 카란스가 베르덴의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저…… 형제는 그 더럽고, 냄새나고, 답답하며 불결한 공간을 찾으려는 겁니까?”

    ……꾸미는 말이 많다.

    그만큼 실험실에서 있었던 일이 혐오스러웠던 거겠지.

    “그래.”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저에게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베르덴과 에드몬의 시선이 카란스에게 모여들었다.

    “어떤 방법이지?”

    “바로 자연입니다.”

    자연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닌 생명의 군상.

    누군가 느끼지 못한 걸 느낄 수 있고, 듣지 못한 걸 들을 수 있으며, 보지 못한 걸 볼 수 있다. 자연은 언제나 깨어 있다.

    그리고 엘프는 자연의 주민.

    그런 엘프들 중에서 자격이 허락된, 소수의 엘프는 자연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

    카란스는 그중 하나였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령과 연결되었을 때의 이야기. 포레트와의 연결이 끊어진 지금의 저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지금의 포레트는 숲의 정령과는 다른 종류의 정령이 되어 버렸기도 하고요. ”

    정령이 반짝였다.

    “그럼 숲의 정령을 찾으면 가능하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형제여. 하지만…… 애초에 정령은 외부인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근방에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긴 대수림이 아닌 인간들의 영토니까요.”

    그래서 불확실하다고 말한 건가.

    “뭐, 그래도 실험실을 발견하는 것보단 확률이 높겠군.”

    “애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숲의 정령만 발견하면 끝.

    물론 찾는 데 수고가 들긴 하겠지만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눈을 끔뻑이던 에드몬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자, 잠깐! 자네, 설마 저 엘프를 데리고 왕국을 나갈 생각인 건가?!”

    “어쩔 수 없습니다.”

    “그건 안 되네! 너무 위험해! 그리고 이건 독단으로 결정할 게 아니라 적어도 각하께 허가를…….”

    “여기서 후작가의 본가까지 왕복으로 약 3일입니다. 그 시간 동안 실험이 끝나 모든 게 폐기 처분 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숲의 정령만 찾으면 되니 달리 수색 인원을 차출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숲의 정령이 어디 있는지를 찾아야 하는 게 먼저가 아닌가?”

    “형제여, 저는 숲의 정령의 서식지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 따위의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카란스가 해맑게 말했다.

    잠시 할 말을 잃은 에드몬이 눈가를 어루만졌다.

    한차례 숨을 들이마신 그가 말을 이었다.

    “하아, 그래. 가능한 빨리 움직이는 편이 여러모로 낫긴 하겠지. 하지만…….”

    “인간 마법사, 우리를 방해할 거면 빠져라. 네 도움은 필요 없다.”

    “도움이고 뭐고 이전의 문제일세. 자네들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지 않은가? 만약 실험실을 찾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궁정 마법사와 대적하게 될 걸세. 그리고 운이 안 좋다면 자네를 제압한 레오닐까지 만나게 될 수도 있지. 자네들은 이걸 감당할 수가 있나?”

    “…….”

    카란스가 처음으로 입을 다물었다.

    다른 건 몰라도 레오닐의 강함은 뼈저리게 알고 있었으니까. 가디언 엘프로서 전력을 다했음에도 이도 저도 못 한 압도적인 힘을 말이다.

    물론 베르덴은 아니었다.

    “감당할 수 있습니다.”

    “뭐?”

    “그럼 이제 가도 되겠습니까?”

    베르덴과 에드몬의 시선이 교차했다.

    맑은 푸른빛. 그 안쪽에는 깊은 바다를 연상케 하는 푸른 심연이 자리하고 있다. 참으로 특이한 벽안이다.

    눈동자는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만인지 자신감인지는 알 수 없다. 하나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어떻게 저게 20대 마법사란 말인가.’

    하나같이 특별하다.

    저런 마법사…… 아니, 인간은 그야말로 난생처음이다.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어떤 정신머리를 타고났길래 저럴 수가 있는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기가 찬 에드몬이 헛웃음을 지었다.

    곧 싹 웃음기를 지운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자네의 뜻은 이해했네. 가능하면 막고 싶지만…… 자네하고 저 엘프 친구가 순순히 내 말을 들어줄 리가 없으니.”

    “나는 네 친구가 아니다.”

    “어쨌든! 자네들이 원하는 대로 해외로 가는 걸 허락하겠네. 대신…….”

    에드몬이 자신을 가리켰다.

    “나도 같이 가도록 하지.”

    “괜찮으시겠습니까?”

    “각하께 엄청나게 혼이 나겠지만 어쩔 수가 있나? 그런 악독한 실험이나 자행하는 마법사들을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고로 허락보다는 용서가 더 쉬운 법이네.”

    칼리아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허허허, 내가 아가씨에게 직접 가르쳤지. 그리고 그런 위험한 곳을 가는데 자네와 엘프만 보내는 건 어른으로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 당연히 같이 가야지.”

    “만약 정체를 들킨다면 곤란할 겁니다.”

    “아무리 궁정 마법사가 대단하다고 해도 나 또한 숱한 사선을 넘은 마도사일세. 목격자는 없애 버리면 되는 법. 삶에서 깨우친 아주 간단한 이치지. 그런데 만약 궁정 마법사단장이자 6위계 마도사인 레오닐 베르타나스를 마주하게 된다면…….”

    뜸을 들인 에드몬이 손을 내밀었다.

    “같이 한번 전력으로 죽여 보세. 그게 살길이니.”

    정체를 발각되면 후퇴는 없다.

    그것이 에드몬의 각오였다. 베르덴이 그의 손을 맞잡았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정해졌군. 나는 올라가서 각하께 편지라도 써서 부치겠네. 그동안 떠날 채비를 해 주게.”

    에드몬이 서둘러 위로 올라갔다.

    설득이 통해서 다행이다. 필사적으로 에드몬이 막아선다면 꽤나 곤란했는데.

    그때 기척을 느낀 베르덴이 고개를 돌렸다.

    카란스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뭐지?”

    “악수입니다, 형제여.”

    카란스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

    베르덴은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란스의 손을 잡았다. 그제야 카란스의 얼굴이 밝아졌다. 주위로 정령이 반짝이며 돌아다녔다.

    ‘이종족은 이해할 수 없군.’

    그렇게 잠시 후.

    베르덴과 에드몬.

    그리고 카란스와 포레트가 안전 가옥을 떠났다.

    목적지는 해안 도시, 아크리엔.

    * * *

    비린내와 짠 내가 뒤섞인 수감실.

    그 안에는 오른팔을 잃은 사내가 넝마를 두른 채 갇혀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발목과 손목에는, 벽과 연결된 수갑까지 채워져 있었다.

    일개 사형수보다도 못한 취급이었다.

    끼이이익.

    잠금쇠가 열리며 개방된 문.

    복도에서 한 마법사가 걸어 들어왔다. 밥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이리저리 뒤섞인 음식물이 담긴 그릇이 사내 앞에 놓였다.

    “식사 시간이다, 외수.”

    철컹!

    라이너스가 음식을 씹어 삼켰다.

    남은 한쪽 팔로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에 마법사가 비웃었다.

    “인간이라기보단 짐승에 가깝군. 그러고도 장인인가?”

    “…….”

    “뭐, 이해는 한다. 아사 직전까지 굶어 보기도 했으니. 살고 싶다면 어떻게든 먹어야지.”

    “…….”

    “그래도 너무 절망하지 마라. 각하께서 말하시길, 이 실험도 곧 끝날 거라고 하셨으니. 그리고 너의 덕이 매우 크다고도. 이 일이 끝나면 너에게 특별한 상을 내리라고 말씀을 남기셨으니…… 이 더러운 삶도 안녕일 거다. 그러니 기대하도록.”

    라이너스는 대답하지 않고 식사에 집중했다.

    마법사가 이죽거리다 이내 감옥을 떠났다. 끼이이익. 금속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와 함께 다시 문이 닫혔다.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라이너스가 고개를 들었다.

    “저 X새끼,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카악, 퉷.

    침이 마법사가 있던 자리에 떨어졌다.

    “그리고 기대는 무슨. 실험이 끝나면 나까지 같이 처분할 거면서. 역시 말만 번지르르한 마법사 중에 제정신인 새끼가 없다니까.”

    라이너스는 곧 자신이 죽임을 당할 걸 알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절망 따윈 없었다.

    그 대신에 환한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실험실이 폐기되는 날.

    그때가 바로 라이너스가 여기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이니. 이미 몰래 수를 써 두었다. 지금처럼 악착같이 엎드려 기다리기만 하면 그뿐.

    ‘난 절대 안 죽어.’

    라이너스는 죽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그것을 이루기 전까지는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설령 인간의 존엄성을 버린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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