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92화 (192/366)

192화 결실

바르톨의 본업은 사채다.

은행처럼 깐깐한 절차가 없는 대신 높은 이자율을 요구하고, 기간 내에 채무가 상환되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받아 낸다.

그렇기에 악명이 상당하나 고객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은 널리고 또 널렸으니까.

하지만 특성상 수입이 불안정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사전에 경고를 해도 잠적하는 건 부지기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그

정도로 절박한 고객에겐 소액의 대출만 해 주지만, 그것도 하나둘 쌓이면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원금을 찾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바르톨에겐 부담이었다.

그러니 어쩔 수 있나.

안정적인 수입원을 마련하는 수밖에.

그렇게 만들어진 사업이 바로 사람 관리다.

밑천이 필요한 장인 및 상인들을 물색해 지원을 해 주고 총매출액에서 계약한 비율만큼의 액수를 거두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서로 간의 이익을 추구하는 거지.”

“15년 계약에다가 재료비 포함 매출에서 퍼센티지 따지는데 서로 간의 이익이요? 그건 좀 양심이 없는 것 같은데요.”

“그나마 나니까 벌어먹게 해 주는 거지, 다른 놈들이었으면 입에 풀칠도 못 해. 애초에 꼬우면 계약서 쓰지 말았어야지.”

바르톨은 대부업자다.

편의를 봐주면 당연한 줄 알고, 호의를 베풀면 권리인 줄 아는 빌어먹을 고객들은 수도 없이 봐 왔다.

계약은, 특히 돈에 관련한 약속은 칼같이 지켜야 한다. 그것이 바르톨의 모토였다.

탁.

페르네가 과일 칵테일을 완성해 바르톨 앞에 놓았다.

전에는 보지 못한 형태의 음료다. 흥미를 보이며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신 바르톨이 눈을 치켜떴다.

“이거 뭐야? 새로운 레시핀가?”

“로아프라에서 가져온 거예요. 요즘 저희 주점에서 제일 잘 나가는 상품이죠.”

“암흑가 로아프라? 뭐…… 확실히 다르긴 하군.”

바르톨은 로아프라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보다 더한 범죄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에서 자리를 잡을 수 없다고 여겼으니까.

자신의 주제를 아는 것이야말로 생존의 비결이다.

벌컥벌컥.

바르톨이 과일 칵테일을 연신 마셔 댔다.

마음에 들었는지 잠깐 사이에 절반가량을 비웠다.

일련의 대화를 듣고 있던 베르덴이 팔짱을 꼈다.

“그래서. 네가 선별한 마석 세공사가 바르톨과 계약 관계라는 건가?”

“맞아요. 세공사 몸값이 비싸서 바르톨을 거친 다음에 협상을 해야 하거든요. 시간이 좀 걸리는 사안인데 바르톨이 주문을 대행해 주겠다네요? 그래서 불렀죠.”

갑자기?

“돈을 받는 건가?”

“안 받아. 그 정도에 돈은 무슨…….”

바르톨은 입가를 손등으로 훔치며 중얼거렸다.

본래라면 베풀지 않았을 호의였지만 지금은 예외였다.

‘최대한 좋게 가야 한다.’

바르톨은 옆에 있는 마법사에게서 2억 엘크 이상의 돈을 받아 내야 한다.

갚지 않는다면 평소대로 어떻게든 쥐어짜서 받아 냈겠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협박이 통할 리가 없는 데다가, 괜히 객기 부리다 몰살당하는 건 바르톨 패거리일 테니까.

하물며 뒷배에는 에스퍼렌사 후작가가 있다.

힘의 균형추가 차원이 다르다.

‘X발, 돈을 빌려준 건 난데, 눈치를 보는 것도 나라니…….’

만에 하나라도 ‘돈? 내가 왜 갚아야지?’라는 식으로 나오면 2억 엘크가 공중분해된다. 그러니 비위 좀 맞춰 주고 편의도 봐주며 달랠 수밖에.

바르톨은 자신의 처지에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세공사가 번 수익은 내 수익이기도 하고…… 후우, 서로 초면도 아니니까 대충 서비스해 주는 걸로 치자고.”

“초면이 아니라 내 빚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닌가?”

베르덴은 한눈에 바르톨의 속내를 꿰뚫었다.

순간 눈가가 움찔거린 바르톨이 헛기침을 했다. 그 모습에 페르네가 피식 웃었다.

“지금 애셔 님 눈치 봐요? 혹시 돈 안 줄까 봐?”

“크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저 이웃으로서───”

그때, 베르덴이 품에서 지폐 한 장을 꺼냈다.

다이나 은행의 수표. 바르톨의 시선이 액수를 명시하는 숫자에 멈췄다.

“지금 이 자리에서 1억 엘크를 갚겠다. 그럼 남은 건?”

“이, 이자가 밀린 적은 없으니 1억 2천만 엘크…….”

“원한다면 나머지도 일시불로 주도록 하지. 물론 세공된 마석이 내 마음에 들면.”

베르덴의 수중에 있는 돈은 유물 탐사단의 고용비를 제외하고도, 10억 엘크를 훌쩍 넘는다. 바르톨에게 빚진 것쯤은 당장이라도 갚을 수 있다.

조만간 페르네를 통해 전부 상환할 생각이기도 했고.

‘그런데 눈치를 본다니 써먹을 수밖에.’

계약상 바르톨은 갑이고 세공사는 을이다.

갑이 압박한다면 을은 평소보다 더 세공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비용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결과적으로 베르덴은 더 좋은 물건을 받을 수 있으며 돈까지 굳는다.

그에 반해 바르톨은 2억 2천만 엘크라는 거금을 회수해, 혹여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없앨 수 있게 되는 거고.

물질과 심리의 거래.

바르톨은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당장 수표를 받아 품속에 단단히 챙겨 넣었다.

“내가 책임지고 처리하지. 그러니까 너도 나중에 다른 말 하지 마라.”

“그러지.”

“설계도는?”

베르덴이 공간가방을 열었다.

돌돌 말린 채 끈으로 묶인 설계도. 그것을 건네받은 바르톨이 남은 칵테일을 단번에 들이켜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료비는 필요 없나?”

“완성되면 정산서를 보내겠다. 재료비하고 세공비는 그때 받지.”

베르덴을 흘겨본 바르톨이 거리로 나갔다.

생소한 대부업자의 모습에 페르네가 눈을 떼지 못했다.

“와, 애셔 님이 되게 무섭긴 했나 봐요. 원금 갚겠다는데 저렇게 기뻐할 줄이야……. 신기한 걸 다 보네요.”

“위협한 적은 없는데.”

“저야 애셔 님이 돈을 떼먹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지만 바르톨은 아니니까요. 언제 돈을 줄까 눈치 보고, 안 준다고 위협하다가 몰살당할 테니…… 아마 바르톨이 상대해 본 고객 중에서 애셔 님이 최악의 고객이 아니었을까요?”

이자는 잘 갚았는데 최악의 고객이라.

‘그럴지도 모르겠군.’

내심 피식 웃은 베르덴이 고개를 돌렸다.

“아, 과일 칵테일 한 잔 드릴까요?”

“부탁하지.”

* * *

겔톤이 조용히 눈을 떴다.

이른 새벽임에도 저절로 눈이 떠졌다. 미지근한 물로 몸을 씻고는, 장비를 갖추고 바깥을 나섰다.

시원한 새벽 공기다.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치안이 좋지 않은 아세른의 골목에서 흉흉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그러곤 곧 사라졌다.

겔톤의 옷차림을 보고 마법사임을 직감한 것이다. 마법사 잘못 건드렸다가 목숨이 날아간다는 건 어딜 가나 통용되는 상식이었다.

저벅, 저벅.

겔톤은 쭉 아세른을 거닐었다.

아침 운동이기도 했지만 마음의 준비이기도 했다.

오늘은 드디어 그간의 결실을 보게 되는 날이었으니까.

“후우…….”

긴장하자 호흡이 가빠진다.

그래도 불안해하지 말자. 결과는 운이 아니라 노력의 산물이 될 테니까.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

겔톤은 스스로를 그렇게 다스렸다.

방향을 바꿔 성문으로 향했다.

정확히 성문이 열리는 시각에 아세른을 벗어났다. 도시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그가 <비행>을 시전한 뒤 슬론 숲 입구에 도착했다.

잠시 기다렸다.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

겔톤의 비행과는 격이 다른 속도.

굳이 묻지 않아도 5위계 기초 마법 중 하나인 <비행주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2위계 중위에 올랐을 나이에 5위계라니.’

대단하다.

저게 바로 천재 마법사라는 거겠지. 겔톤과 같은 한낱 수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차원이 다른 재능이다.

그런데 질투심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타고난 재능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가르침을 받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해 왔던 노력 또한 천재의 영역이라는 걸.

‘그렇기에 기쁘다.’

저만한 마법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베르덴이 지면에 착지했다.

벽안을 마주한 겔톤이 작게 침을 삼켰다.

“따라오시죠.”

거침없이 숲속으로 들어가는 베르덴.

겔톤은 말없이 그의 뒤를 쫓았다.

* * *

슬론 숲의 공터에 은폐 마법진이 깔렸다.

손끝에 마력을 집중해 몇 번 휘저은 것으로 완성되는 마법진. 이미 몇 번이고 봐 왔지만 겔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법진을 실전에서 사용하는 마법사는 극소수였으니까.

“이걸로 도중에 방해가 생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예, 감사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겔톤이 마법진 한가운데 섰다.

계속해서 마음을 진정시켰고, 스스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때가 되니 몸이 덜덜 떨려 왔다.

실패하면 어떡하지?

노력했는데 무의미했다면?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눈 딱 감고 마력을 움직이려 했지만 주저하게 된다. 머뭇거리던 겔톤이 경직된 목소리로 물었다.

“제, 제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제대로 가르침을 받은 지 고작 2주도 채 안 됐는데 조금 더 준비하는 게…….”

겔톤이 횡설수설했다.

덜컥 겁이 난 터라 본인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생각과는, 마음과는 다른 뜻이 제멋대로 뛰쳐나왔다.

그때, 베르덴이 말했다.

“겔톤 로드니.”

겔톤을 멈춘 건 한마디였다.

“제게 배운 건 고작해야 몇 주지만, 당신이 배워 온 건 수십 년입니다.”

“……!”

지금까지 쌓아 올린 탑은 무너졌다.

하지만 모든 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게 아니다.

탑을 쌓아 올렸던 경험이 있고 무너뜨린 경험이 남아 있다. 탑의 기반은 여전히 굳건하며, 그 위로 새로운 탑을 쌓아 올리는 중이다.

보다 빠르고 단단하게.

그의 마법사로서의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

겔톤이 심호흡을 했다.

방금까지 요동치던 마음이 어느새 가라앉아 있었다. 준비를 마친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전신에 마력이 가득 들어차며 바깥으로 마력이 흘러 나갔다.

현재의 상태를 잠시 유지했다.

마력이 빠른 속도로 소모되고 있다. 비지땀을 흘리던 겔톤이 이내 손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하나의 마법을 연산했다.

<화염>

───화륵.

자그마한 불꽃이 손끝에 맺혔다.

자연이 아닌 마력으로 일어난 현상이다. 그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고 가진 마력량에 비해 마법이 터무니없이 약했다.

겔톤이 내부를 관조했다.

마력회로가 욱신거렸으나 과부화되지 않았다. 당연히 불구가 되지도 않았다.

그는 멀쩡했다.

1위계 마법이었고 그마저도 위력은 비정상적으로 낮았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그는 재능이 아닌 노력으로 물과 얼음의 대척점인 화염 속성을 터득했다.

성공.

“아…….”

성취감과 기쁨을 아득히 넘어선 감정이다.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기분을 느껴 본 게 대체 얼마 만인가.

겔톤은 깨달았다.

도저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는 마법이 좋았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베르덴이 물었다.

그에 겔톤이 미소를 지었다.

“……따뜻합니다.”

겔톤의 눈시울이 붉어진 건 손끝에 핀 불꽃 때문이었을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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