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성공 (2)
게울 용병단.
에스티리아 왕국의 용병단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많은 용병을 운용해 각지에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는 집단이다.
돈만 준다면 법도 윤리도 아랑곳하지 않는 인간들.
그 성향 덕분에 부패한 귀족들에게 암암리에 고용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1왕자 발르그나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기도 하니, 용병을 관리해야 할 용병 길드가 오히려 그들의 눈치를 살핀다고.
‘분명 그랬었지.’
베르덴이 게울 용병단의 정보를 떠올렸다.
그러는 동안 클란드가 중절모를 매만지며 고개를 기울였다. 무장한 용병들 사이, 비밀 사교장에서 게울을 보좌하고 있던 측근, 자롤프에게 시선을 향했다.
“누군가 했더니 자롤프가 아닌가. 분명 아리엔테성에서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여긴 어쩐 일이지?”
“너에게 볼일이 있다.”
“음, 게울 용병단이 내게 볼일이라. 표정을 보니 그리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스릉.
자롤프가 롱소드를 뽑았다.
초저녁의 빛이 서늘한 검날에 반사되었다.
“신조(信條)를 지키러 왔다.”
게울 용병단에는 하나의 신조가 있다.
[사람의 가치는 타인에 의해 정해진다.]
의뢰인을 만족시킬수록 용병의 몸값은 비싸진다.
성공에 성공을 거듭할수록 용병에게 책정된 액수의 자릿수가 달라진다.
용병 업계에서 당연하다면 당연한 사실.
용병단장 게울은 그 사실을 철저히 따랐고, 어떤 의뢰든 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완수했다. 그 결과 마침내 왕가의 눈에 들기까지 했다.
귀족도 뭣도 아닌 한낱 용병의 신분으로 말이다.
손에 피를 묻힐수록 주머니 속의 돈은 두둑해졌다.
그런데 비밀 사교장에서 추태를 보였다.
게울이 직접 선보인 막내 용병이 무참하게 짓밟혔다. 그를 믿고 돈을 걸었던 1왕자는 매우 불쾌해졌고.
게울 용병단의 신뢰도가 하락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러니 만회해야 한다.
언제나 그랬듯 피로써 말이다.
“신조라…….”
클란드가 피식 웃었다.
“1왕자 전하 앞에서 창피를 당한 걸 갚아 주러 왔다는 거군. 보복이 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손을 쓸 줄은 몰랐는데.”
“시간을 끌면 돈이 드니까.”
“게울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군. 뭐, 어쨌든 날 찾아온 이유는 알겠네. 그런데 어떻게 신조를 지킬 생각인가? 비밀 사교장의 참가자가 참가자를 죽이는 건 발르그나 전하께서 결코 용서하지 않으실 텐데.”
1왕자는 권위를 중시한다.
자신에게 잘 보이려 아랫사람들이 경쟁하는 건 매우 흡족해한다. 하나 서로를 죽고 죽이려 들며 전력이 약화되는 건 용납하지 않는다.
그건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며, 1왕자의 무능이라고 해석될 여지가 충분했으니.
“그래, 네 말이 맞다. 빈테르트가 아닌 이상에야 널 죽이는 건 제 살을 잘라 먹는 것과 같지. 하지만 네 옆에 있는 놈은 다르다.”
자롤프의 칼끝이 베르덴에게 향했다.
“단장님의 명령이다. 암상인, 그 벙어리를 넘겨라.”
클란드를 죽일 순 없다.
그러니 막내 용병을 제압한 놈이라도 죽이겠다.
실추된 용병단의 명성을 조금이나마 회복하겠다는 분풀이었다.
“하하, 게울이 어지간히 열받았나 보군. 어쩐지 뒤도 안 돌아보고 급하게 나가더라니. 혹시 묻겠는데, 제안을 거절하면 어떻게 할 작정인가?”
“달라지는 건 없다. 너는 살고, 벙어리는 죽는다.”
자롤프가 고개를 까딱였다.
뒤에 있던 스무 명의 용병 무리가 무기를 빼 들고 포위망을 형성했다. 투박하나 체계적인 움직임이었다.
주위에서 살기가 엄습했다.
“살벌하기 그지없군. 생각을 바꿔 게울에게 돌아갈 생각은 없는가?”
“단장님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아, 그렇군.”
그 뜻에 수긍한 클란드가 고개를 옆으로 향했다.
“저렇게 말하는데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방해물이 있다면 치울 뿐입니다.”
게울 용병단 이외에 목격자는 없다.
그리고 전투가 확실시된 상황. 베르덴은 더 이상 말테드를 연기하지 않았다.
낯선 목소리에 자롤프가 미간을 좁혔다.
“네놈…… 벙어리가 아니었나?”
“엄연히 말하자면 맞다. 너희들이 알고 있는 말테드는 말을 하지 못하지.”
“그렇다는 건…….”
“내가 말테드가 아니라는 뜻이지.”
베르덴이 기만의 얼굴의 착용을 해제했다.
말테드였던 얼굴이 흐릿해지며 그 안에 숨겨진 본모습이 나타났다.
잿빛 머리칼과 벽안.
그를 응시하던 자롤프가 이내 눈을 부릅떴다.
“애셔……?”
다시 봐도 분명하다.
왕국에서 저런 특출난 외모를 가진 자는 소문의 마법사밖에 없었다. 그 이름을 들은 용병들이 술렁였다.
“잠깐, 애셔라면 설마 그…….”
“X발, 에스퍼렌사 후작가하고 손잡은 마법사잖아!”
전격 마법사, 칼리아, 조합 등.
베르덴과 관련되어 있는 소문과 그 단어들이 용병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용병들은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표정을 일그러뜨린 자롤프가 소리쳤다.
“암상인! 왜 네가 에스퍼렌사 후작가의 끄나풀과 함께 있는 거냐! 당장 해명해라!”
“하나 정정하자면 이 친구는 끄나풀이 아닐세. 오히려 협력자에 가깝지. 자롤프, 자네가 말하는 끄나풀은 바로 나일세.”
“뭐……?”
암상인이 후작가의 일원이라니.
아니, 말이 안 된다. 십수 년을 음지에서 활동해 왔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것도 빈테르트의 눈까지 속이면서!
‘대체 언제부터지?’
자롤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클란드가 턱의 화상 자국을 어루만졌다.
“본래라면 자네를 죽일 계획은 없었네. 하지만 기회를 주었음에도 물러나지 않은 건 자네의 선택이지.”
“암상인!”
“애셔, 그럼 부탁하겠네.”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회로가 활성화되며 푸른빛이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해가 저편으로 사라지며 어둠이 내려앉았다.
섬뜩한 기류가 용병들의 뒷목을 스쳤다.
“전원, 동요하지 마라!”
자롤프가 소리치며 용병단을 통솔했다.
“아무리 고위 속성을 쓴다고 해도 4위계 마법사 한 명뿐이다! 고작 한 명!”
그에 반해 용병의 숫자는 스물.
마법사도 있었고, 전사도 있었다. 공통적으로 살인에 익숙했으며 수적 우위를 활용할 줄 아는 용병들이었다.
마법사 한 명 따위.
마법을 퍼붓고 다가가서 칼로 난도질하면 지가 뭘 어쩔 수 있겠나. 그리고 소문은 언제나 부풀려지기 마련 아닌가?
그런 생각들이 용병들의 머릿속을 파고들 때, 자롤프가 말했다.
“마법사의 목을 베고 암상인을 생포해라! 결정적인 역할을 한 두 사람에게는 각각 2천만 엘크를 하사하겠다!”
2천만 엘크!
“와아아아아아!”
동기가 부여된 용병들이 하나둘씩 달려들기 시작했다.
놈들의 눈에는 살기와 함께 저열한 탐욕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불나방 같군.’
말 위에 있는 베르덴.
그가 안광을 번뜩이며 마법을 시전했다.
트리플 캐스팅.
<연쇄번개>
그리고 지옥이 펼쳐졌다.
* * *
아리엔테성.
철저하게 외부와 분리된, 호화로운 응접실에서 발르그나와 로베르트가 마주했다.
비밀 사교장이 끝난 후에 1왕자가 로베르트를 호출한 것이다.
하나 이번엔 사교장의 참가자로서가 아닌, 1왕자로서 빈테르트의 권력자와 만남을 주선한 자리였다.
이유는 하나뿐.
바로 실험체의 공급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특이 형질 마법사가 필요하다는 건가요?”
“그래, 아바마마께서 직접 내게 말하셨지.”
탁.
1왕자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그 뭔지 모를 실험이 막바지에 다다른 모양이야. 아바마마의 표정이 아주 좋아 보이더군.”
엘프와 특이 형질 보유자를 이용한 실험.
그 실험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로베르트도, 1왕좌도, 심지어 암흑가의 왕조차도. 내막을 알고 있는 건 에스티리아 왕과 궁정 마법사단장뿐.
그렇다고 굳이 알아내려 하지 않았다.
그저 필요한 재료를 공급하기만 해도 막대한 이권과 돈이 떨어지니. 그렇기에 빈테르트의 지배자인 그론드 또한 군말 없이 조력했다.
궁금하다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자를 수도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다른 재료야 구할 수 있어도, 갑자기 특이 형질 보유자를 어디서 구하겠나. 우리가 지난 몇 년간 왕국을 이 잡듯이 뒤져서 찾아낸 게 고작해야 4명인데. 하나 그렇다고 아바마마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자식된 도리가 아니지 않겠나?”
도리가 아니라 왕위를 위해서겠지.
생각을 마음속으로 삼킨 로베트트가 대답했다.
“사실 특이 형질 보유자로 추정되는 마법사는 이미 찾아냈어요.”
마법사 애셔.
로베르트가 그의 푸른 눈동자를 떠올렸다.
1왕자가 격하게 반응했다.
“뭐? 그게 정말인가?! 아니, 왜 진작 말하지 않고───”
“공급보다 수요가 앞서야 가격이 비싸게 매겨질 테니까요. 빈테르트를 위해서, 차기 왕위에 오를 전하를 위해서 말이죠.”
“비싸게라…… 음,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군. 그럼 지금이 손을 쓸 때인 건가?”
“본래라면 그렇겠지만 안타깝게도 당장 손을 쓰는 건 무리예요.”
“이유는?”
“언데드 사태…… 바로 교구 때문이죠.”
로베르트가 차로 목을 축이곤 말을 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모종의 습격으로 인해 교구가 반파되고 주교가 사망했죠. 그리고 남부에선 언데드 사태까지. 당연히 루아스교에서 조사단을 파견할 거예요.”
“뭐……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당연한 얘기죠. 하지만 사태가 사태이니만큼 대주교를 보낼지도 몰라요.”
대주교.
그 단어에 1왕자가 침을 삼켰다.
“……그 ‘7인의 대주교’를 말하는 건가?”
세계 종교 루아스교.
그 정점인 교황과 성녀. 그리고 추기경 다음가는 위치에 자리한 7인의 대주교. 강함의 정도를 떠나, 루아스교의 대변자로서 막강한 권력을 지닌 존재들이다.
“뭐, 피해가 크긴 하지만 이게 대주교까지 올 사안인가? 내가 보기엔 주교하고 성기사단을 파견하는 게 전부일 것 같은데.”
“물론 그럴 가능성이 높긴 하죠. 그래도 당분간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특히나 에스티리아 왕국은 루아스교와 그리 사이가 좋은 건 아니니까요. 책잡힐 것도 많고요.”
“아…… 아, 음, 그렇겠지.”
“그러니 지금은 세력을 다듬는 데만 집중하세요. 때가 되면 빈테르트에서 연락을 드릴 테니. 그럼 더 하실 말씀이 없다면 이만 가 보도록 하죠.”
목례를 한 로베르트가 응접실을 나섰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1왕자가 혀를 찼다.
“쯧, 호들갑스럽긴.”
갑자기 대주교라니.
설마 대륙 전역에 단 일곱밖에 없는 존재가 왕국까지 올 리가 있나. 그리고 감히 그딴 어조로 충고를 하다니.
“정말로 시건방지기 짝이 없어.”
시간이 지났지만 불쾌함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기분을 환기할 방법을 떠올린 1왕자가 사람 하나를 호출했다. 드레뷔스에게 실험체를 운반하는 운반자 중 하나였다.
“듣자 하니 이번에 살아 있는 엘프가 왔다지. 어디 한번 보고 싶은데.”
“하나 드레뷔스가 실험을 하느라 아무도 오지 말라고…… 아니, 알겠습니다.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1왕자의 시선에 운반자가 고개를 조아렸다.
저건 설득이 가능한 눈빛이 아니었다. 곧장 일어나서 1왕자를 비밀 실험실로 안내했다.
아리엔테성 중심부에 위치한 어두운 공간.
1왕자, 호위 기사 드로난 그리고 운반자가 그 안에 들어섰다. 마법진을 특정 순서로 배열하자 작은 흔들림이 일었다.
“지금까지 엘프 시체만 봤는데 살아 있는 엘프라. 상당히 기대가 되는군.”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운반자가 아부를 하며 앞장섰다.
그렇게 문이 열린 순간이었다.
“……어?”
실험실이 활활 불타고 있다.
피부를 따갑게 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사방에 가득했다. 이해가 따라가지 않는 광경에 세 사람이 모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안쪽에서 진동이 울렸다.
드레뷔스의 실험실에서 화염 골렘이 나타났다.
“지, 지하 감옥에 있어야 할 골렘이 왜 여기에?!”
설마 마력 차단에 오류가 일어난 건가?
아니, 수년간 잘 유지되어 왔던 게 갑자기 망가질 리가 없다. 심지어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아무 일도 없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의문이 떠올랐지만 느긋하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다. 위 세 사람은 명백히 화염 골렘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었으니까.
“이게 무슨 일…….”
“전하!”
드로난이 1왕자를 데리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화염 골렘이 강렬한 불길을 토해 냈다. 직격당한 운반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화염 골렘이 성에 침입했다! 당장 토벌해라!”
드로난의 목소리가 성 전체에 울렸다.
그에 반응한 기사들이 일제히 집결했고 사투 끝에, 성의 일부가 무너진 뒤에야 겨우 핵을 파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레뷔스도, 그가 남긴 실험 자료도, 살아 있는 엘프도 사라졌다. 불타 버린 실험실에는 오로지 잿더미만이 남아 있었다.
에스티리아 왕이 직접 지시한 사안이 최악의 결과로 끝나 버린 것이다.
“……이럴 수가.”
허망한 현실에 1왕자가 털썩 주저앉았다.
* * *
베르덴과 게울 용병단.
그들 사이에서 마법이 번쩍이고 비명이 들려온다.
마치 폭격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갑작스러웠고 속수무책이었다. 이미 숨이 완전히 끊어져 버린 용병들 사이에서 자롤프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 소문하고 너무 다르잖나.”
콰지지지직!
대지의 갈퀴가 자롤프를 세 동강 내었다.
한 걸음 옮기지 않고, 말 위에서 용병단을 쓸어버린 베르덴. 그 위용에 클란드가 작게 침을 삼켰다.
‘용병 스무 명이 접근하지도 못하고 전멸했다.’
삽시간에 쇄도하는 마법에 대부분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게울의 측근인 자롤프가 나름 분투했으나 결과적으로 거리를 조금도 좁힐 수 없었다.
그야말로 찰나와도 같은 마법 연산 속도.
후작가의 마도사, 역풍의 에드몬이 한 방 먹었다더니…….
‘진심으로 장난이 아니군.’
나이에 비해 너무도 이례적인 강함이다.
그때, 베르덴이 오큘러스를 꺼냈다.
“음? 전투는 끝났는데 갑자기 스태프는 왜 꺼낸 건가?”
“흔적을 지우려고 합니다.”
베르덴이 오큘러스 끝을 지면에 갖다 대었다.
<지형조작>
지면에 여러 개의 틈새가 열리더니, 이내 꿈틀거리며 지상에 있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흩뿌려진 혈흔도, 용병의 시체들도, 마법의 여파까지도.
잠시 후, 깨끗한 공터만이 시야에 남았다.
“이제 가시죠.”
“자네 정말로 무섭군.”
“……?”
“아니, 혼잣말일세. 그럼 안내를 부탁하도록 하겠네.”
두 사람이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다행히 게울 용병단과 같은 방해물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어둡긴 했으나 자연 호수로 나아가는 길은 꽤나 평온했다.
도중 한 마을에서 빈 오크통이 몇 개 담긴 수레를 구입한 그들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깁니다.”
말에서 내린 베르덴이 마법진을 해제했다.
그가 뚫어 놓았던 숨구멍이 보였다. 지형을 조작해 공동 자체를 끄집어 올리자, 마력의 사슬에 감긴 금발 엘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의 뭐 봉인을 해 놨군.”
“혹시 깨어날지도 모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주 잘했네. 그렇게 방심하지 않아야 뒤통수를 맞지 않는 법이니. 그나저나 나도 이종족을 보는 건 처음인데, 듣던 대로 엘프답게 수려한 외모로군.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 보이니 어서 옮기세.”
두 사람에 의해 엘프는 오크통 안에 담겼다.
그 광경은 굉장히 음습하기 그지없었으나 다행히 목격자는 없었다. 수레와 말이 튼튼히 연결된 걸 다시금 확인한 베르덴과 클란드가 승마했다.
“바로 라인즈로 가는 겁니까?”
“계획대로라면 그리했겠지만 눈에 띄는 엘프가 있으니, 라인즈 근처에 있는 안전 가옥으로 갈 걸세. 거기라면 들키는 일 없이 안전할 테니까. 그때까지 동행을 부탁하겠네.”
“알겠습니다.”
실험과 관련된 자료들 전부 획득.
모종의 실험체로 사용되던 살아 있는 엘프 확보. 그리고 1왕자의 성에 숨어 있는 비밀 실험실을 파괴하고 관련자를 처리하기까지.
베르덴이 행한 에스퍼렌사 후작의 의뢰는 그야말로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