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협조 (2)
형체도 없이 파괴된 손등.
드레뷔스의 오른손에는 엄지손가락만이 겨우 남아 있었고,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과 들고 있던 지팡이는 여기저기 흩어졌다.
참혹한 광경.
고통은 그다음이었다.
“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괴상한 비명을 지른 드레뷔스가 다급하게 손목을 부여잡았다.
푸화아아악! 있는 힘껏 힘을 줬음에도 피 분수는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드레뷔스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못 멈추면 죽는다……!!’
남아 있던 이성이 본능으로 치환된다.
핏발이 선 눈으로, 이를 앙다문 채 마력을 움직였다. 엉망에 가까운 마법 연산을 통해 상처 부위 전체를 얼려 버렸다.
“끄으으으윽?!”
위력을 조절하지 않은 탓에 팔뚝 아래가 큰 동상을 입었다.
신체 접합은 이미 끝장난 상태.
포션만으로는 팔이 제 기능을 회복하지 못할 수준이다. 하나 그런 걸 신경 쓸 정도로 드레뷔스는 여유가 있지 않았다.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가파르게 호흡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터벅.
발소리에 드레뷔스가 고개를 들자, 베르덴이 코앞에 서 있었다.
싸늘한 눈동자를 본 드레뷔스가 뒷걸음질 쳤다.
“자, 잠깐…….”
“다리 하나.”
다리?
───쩌억!
휘둘러진 오큘러스가 정강이를 깨부쉈다.
드레뷔스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지자, 스태프를 회전시켜 놈의 목을 강하게 짓눌렀다.
워렌스를 고문하던 흑마법사를 제압한 방식.
그때는 모종의 저주 때문에 산 채로 폭발한 탓에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지만 과연 이번엔 어떨까.
“네…… 네놈……!”
드레뷔스의 얼굴이 벌게졌다.
남은 왼손으로 스태프를 치우려고 했지만, 정상적인 마법사가 베르덴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윽고 힘을 빼자, 드레뷔스가 꺽꺽대며 호흡을 들이마셨다.
“흐음.”
베르덴이 드레뷔스의 눈을 살폈다.
당황과 경악 등 이런저런 감정이 엿보였지만…… 아직 저항이 남아 있었다.
‘마법사의 자존심이라는 건가.’
하긴 그것도 다름 아닌 궁정 마법사 소속이니.
베르덴 또한 마탑 출신이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무색할 뿐이다.
콰직!
허리춤에 차고 있던 회색 단검이 드레뷔스의 왼손에 틀어박혔다.
“아아아아아악!”
고통을 견딜 수가 없었는지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던 놈의 마력이 흩어졌다. 이걸로 완전히 무력화가 된 셈.
그러나 아직 부족했다.
‘분명 심문을 할 때는 공포심부터 심으라고 했었지.’
페르네의 조언을 떠올린 베르덴.
그가 드레뷔스의 무릎에 발을 올렸다.
꾸구구구구국.
[중량화 부츠]가 기동하며 일시적으로 무게가 증가했다. 그를 따라 힘을 싣자 베르덴의 발아래에서 살벌한 소리가 들려왔다.
드레뷔스가 멈추라며 소리를 질렀음에도 계속.
잠시 후, 베르덴이 물었다.
“이제 협조할 마음이 드나?”
“……!”
드레뷔스가 움찔 떨었다.
그 제안을 한 번 거절하자 사지가 박살 났는데, 만약 두 번 거절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아예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
격통과 함께 뇌리에 각인된 감정.
드레뷔스는 눈앞의 마법사 강도에게서 공포를 느꼈다.
저 놈은 미친놈이다. 그것도 5위계 마법을 다루는 미친 마법사.
이런 상황에 자존심을 세우는 건 멍청한 짓임이 분명할 터. 드레뷔스는 그렇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힘겹게 침을 삼킨 그가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혀, 협조…… 협조하겠다……!”
* * *
실험실 안에 있던 상급 포션으로 응급처치를 했다.
동상을 입은 오른팔이나 정강이가 박살 난 다리는 회복하지 못했지만, 고통은 일부 완화되어 이성을 유지할 정도는 되었다.
드레뷔스가 가파른 호흡을 내쉬며 무릎을 꿇었다.
유심히 성의 비밀 실험실을 살펴보던 베르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생각하던 그가 곧 질문을 시작했다.
보다 본질적인 것부터.
“며칠 전에 있던 엘프 시신. 그리고 저기 있는 금발 엘프까지. 죄다 내부 조직이 파괴되어 엉망이더군. 장시간 뭔가가 안을 헤집은 거 같은데, 대체 무슨 실험을 벌인 거지?”
“…….”
“대답.”
베르덴이 위협하자, 드레뷔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마력을 정제하기 위해서다.”
“더 자세히.”
“엘프는 인간과는 다른, 독자적인 형태의 마력을 지니고 있다. 보다 자연의 마력에 가까우면서도 잘 변형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의 마력과 달리 여러 속성으로 변형되지 않는 대신, 연료로 사용하기에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훌륭하지.”
수많은 마석에서 마력을 뽑아낸 다음, 그 마력을 한곳에 모아 특수한 용기로 옮기는 방식. 그사이의 매개체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엘프였다.
“강제로 마력을 주입해, 마력을 정제한다? 마력 저항력을 없애지 않는 이상 그 방법은 무리일 텐데.”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베르덴이 마탑의 동력원을 이용했듯, 마력 자체를 직접적으로 심장에 꽂아 넣으면 저항력을 뚫는 게 가능하다.
‘물론 몇 분 버티지 못하고 죽겠지만.’
그렇기에 엘프의 경우와는 맞지 않다.
가슴 부근에 별다른 흔적도 없는 데다가, 내부는 단시간이 아닌 장시간에 걸쳐 파괴되었으니.
그에 드레뷔스가 대답했다.
“왕가에는 마력 저항력을 일시적으로 상쇄하는 특수한 아티팩트가 있다. 나도 내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흔적을 보면 그 외에는 없겠지.”
“그래서. 엘프의 마력을 이용해 뭘 하려는 거지?”
“그건 나도 모른다.”
베르덴이 오큘러스를 다잡았다.
“아니, 잠깐! 나, 난 정말로 모른다! 거짓말이 아니야!”
“궁정 마법사 소속인 데다가, 실험까지 참여한 네가 목적조차 모른다고?”
“그, 그렇긴 하지만 정말이다. 겨우 연구 능력을 인정받아, 다 쓰고 버려진 실험체들을 어떻게 재활용할지 궁리하는 게 내가 맡은 일의 전부지. 그리고 1왕자 전하를 포함해 여럿이 관여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목적은 폐하와 ‘그분’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분?”
드레뷔스가 머뭇거리며 그 정체를 털어놨다.
“레, 레오닐 베르타나스. 내가 속한 궁정 마법사단의 단장이다.”
* * *
에스티리아 왕국 최강의 6위계 마도사, 레오닐 베르타나스.
왕가를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이자 단신으로 전력의 일각을 차지하는 존재. 그와 더해서 모종의 실험을 벌이고 있는 주도자이기도 했다.
“실험에서 그분을 제외한 사람은 결국 부외자다. 이 실험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디서 실험을 하고 있는지, 정말로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그분과 폐하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으니까.”
“너희는 부속품이란 얘긴가?”
“구,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 언제든 대체할 수 있으니까. 그런 자들에게 내막을 알려 줄 리가 없지 않나?”
흐음.
눈을 가늘게 뜬 베르덴이 질문을 더했다.
“레오닐 베르타나스는 어떻게 생겼지?”
“어떻게 생겼냐니…… 외모의 특징 말인가? 그러니까, 회색 수염을 가슴 언저리까지 기르고 있고 또…… 나이가 많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뿐인데.”
조잡한 설명이다.
하나 그것만으로 베르덴이 확신을 품기에는 충분했다.
‘엘프를 납치한 인물은 레오닐과 동일 인물이다.’
같은 외견. 정령과 엘프를 압도한 힘.
정황상 어느 모로 보나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베르덴이 드레뷔스를 주시했다.
반응을 보아 지금까지 한 말에 숨기고 있는 거나 거짓을 꾸민 건 없어 보이는데…… 약간의 의심을 남겨 둔 뒤 심문을 이어 나갔다.
“네 실험 대상에 엘프가 아닌 인간의 시신도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인간은 어떤 이유로 실험에 이용된 거지?”
“그, 그게…….”
“생각하지 말고 아는 것만 말해라.”
후웅.
단검이 날아와 드레뷔스의 목을 스쳤다.
정확히 목의 동맥을 스치듯 지나가는 궤도. 핏방울이 흘러내리는 걸 느낀 드레뷔스가 말했다.
“그 이, 인간은 특이 형질을 보유한 마법사다.”
특이 형질이라.
베르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이 형질은 왜지? 목적은 엘프와 같은 이유인가?”
“아니, 아마 다를 거다. 얼핏 듣기로 마력회로를 따로 추출해 쓴다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자세한 건 모른다. 내가 아는 건 공급책밖에 없는데…….”
공급책?
“1왕자 전하와 빈테르트를 말하는 거다. 둘은 오래전부터 특이 형질 보유자를 납치해 폐하께 보내 왔지. 그럴 때마다 폐하께서는 상을 내리셨고…… 뭘 받았는지는 나야 모르지만.”
‘빈테르트까지 나왔나…….’
에스티리아 왕가.
암흑가 로아프라의 지배자.
왕국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 둘이 만나 행하는 실험이라.
뭔지는 몰라도 예삿일이 아닐 것이다. 다름 아닌 국가가 움직인다는 건,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투입된다는 뜻이니까.
거기다 6위계 마도사가 그를 주도하기까지.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군.’
일개 조직도 아니고 한 나라의 왕가가 직접 꾸미는 음모라니.
어쩌면 베르덴은 글러트니 때 이상으로, 거대한 사건에 발을 디딘 걸지도 몰랐다.
베르덴이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슬쩍 눈치를 보던 드레뷔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질문은 다 한 건가?”
베르덴이 시선이 드레뷔스에게 향했다.
그래, 지금은 여기서의 일을 처리하는 게 급선무일 터.
“아니, 아직 남았다. 지금까지 네가 기록했던 연구 일지는 어디에 있지?”
“뭐? 그, 그걸 어떻게……?!”
모를 리가 있나.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자신의 연구를 기록하는 건 마법사든 연구자든 당연한 건데.
베르덴이 무언으로 추궁했다.
끝내 드레뷔스가 천천히 왼손을 들어 서랍 하나를 가리켰다.
“……저곳에 있다”
<마력감지>
베르덴의 마력이 서랍 안쪽을 살폈다.
두툼하게 쌓여 있는 종이와 그 위에 새겨진 필체. 엘프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 걸 보아, 확실히 연구 일지가 맞았다.
이제 마지막 질문만이 남았다.
“나선 계단 아래에 있는 지하 감옥에 화염 골렘이 돌아다니더군. 시체 소각용으로 둔 것 같은데, 핵은 어디에다 숨겼지?”
“핵은…… 감옥 중심부에 있는 벽 안에 숨겨 놨다. 마력을 차단해 골렘이 감지하지 못하게 만들었지. 그런데 그건 왜……?”
베르덴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드레뷔스에게서 캐낼 정보는 대충 다 얻은 셈이니. 더 심문을 지속한다면 세세한 정보마저 얻을 수 있겠으나 시간은 여유롭지 않다.
그러니 대화는 여기서 끝이다.
베르덴의 손에 마력이 집결했다.
싸늘한 기류를 느낀 드레뷔스가 눈을 부릅떴다.
“기, 기, 기다려! 네 말대로 협조했는데 왜……!”
“내가 살려 둘 거라고 생각했나?”
“그건……! 잠깐, 내 말을 들어 봐. 날 죽이면 전하께서 네 뒤를 추적하실 거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왕가를 이길 순 없잖아? 그러니 내가 도와주마. 내가 전하께 잘 얼버무릴 테니까……!”
드레뷔스가 목숨을 구걸했지만 베르덴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야 당연했다.
베르덴의 외견을 그대로 들킨 데다가, 드레뷔스는 입도 무거운 편이 아니었으니. 그리고 결정적으로 놈은 인체 실험을 자행한 마법사.
다른 이유가 없다고 한들, 극도로 혐오하는 존재를 베르덴이 살려 둘 이유는 없었다.
순식간에 연산을 마친 마법.
드레뷔스의 죽음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
등 뒤에서 강한 살기가 느껴졌다.
마법을 취소한 베르덴이 미끄러지듯 바닥을 움직였다. 허리를 숙인 채 회전하는 몸. 그 위로 수술용 칼이 허공을 관통했다.
이윽고───퍼억!
드레뷔스의 미간을 관통한 칼.
“아…… 아…….”
전혀 반응하지 못한 드레뷔스가 몸을 덜덜 떨었다. 이내 피가 흘러내림과 동시에 눈이 위로 뒤집히며 풀썩 쓰러졌다.
누가 봐도 즉사였다.
이곳 실험실에서 베르덴을 제외하면, 드레뷔스를 죽일 만한 사람…… 아니, 생명체는 단 하나뿐.
베르덴이 고개를 돌렸다.
예상했던 대로 금발 엘프가 서 있었다.
“깨어났나.”
“인…… 간……!”
짙은 증오심이 담긴 눈동자가 베르덴을 직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