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77화 (177/366)

177화 보수 그리고 의뢰

상‧하의로 나뉜 회색 가죽 방어구.

에드몬이 방어구를 잡은 쪽을 보자, 얇고 부드러우면서 질긴 듯한 질감이 눈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중심을 기점으로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문양과 장식. 결코 화려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디자인 자체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마법 물품.

그것도 양산품 수준이 아니다.

리비안트 공왕에게 받은 <유자의 로브>와 같이 고유한 마법 물품임이 분명했다. 실험체로서 수많은 마법 물품을 감정해 온 베르덴의 눈썰미는 날카로웠다.

크흠.

목을 가다듬은 에드몬이 말했다.

“이건 ‘마법사의 회한(悔恨)’이란 이름을 가진 매직 아이템일세. 보다시피 평범한 물건은 아니지. 마법사라면 공감할 수 있는, 재미있는 내력을 가지고 있네.”

마법사는 강력한 존재다.

하나 무방비 상태에서의 대처 능력은 전사에 비해 떨어지기에, 기습에 매우 취약하다. 사실 마법사라면 응당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아주 흔하디흔한 약점이다.

그래서 각종 마법 물품으로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고.

“물론 자네도 알다시피 입맛에 맞는 성능 좋은 매직 아이템을 구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런 이유로 장인들을 찾아가 자신이 원하는 매직 아이템을 주문 제작 하는 것이고. 옛날, 어떤 부여 마법사도 그중 하나였네.”

부여 마법사는 망설이고 또 고민한 끝에 전 재산을 투입해 방어구를 주문했다, 마법사가 가진 근본적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직접 재료를 구하기도 하고, 장인의 설계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갖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 부여 마법사는 자신의 눈으로 완성품을 볼 수가 없었네. 방어구가 완성되기 전날, 암습을 당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것 쏟아부었는데, 결국 그 약점 때문에 죽었다니 말일세. 그리고 부여 마법사가 죽기 직전에 이렇게 말했다더군.”

───하루만 덜 망설였다면…….

“후회와 한탄. 마법사가 남긴 건 그게 전부였네. 그 후, 그와 제작을 함께했던 장인은 마법사의 죽음을 기리며 방어구에 그러한 이름을 붙였고, 여기저기 떠돌던 끝에 이 자리에 오게 되었지. 참으로 재미있는 내력이지 않은가?”

에드몬이 마법사의 회한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애셔,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가 남긴 유언대로 하루 일찍 결정을 내렸더라면…… 과연 살 수 있었을까?”

갑작스러운 질문.

에드몬과 후작의 시선이 베르덴에게로 향했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베르덴이 곧 대답했다.

“언제 결정을 내렸든 간에 부여 마법사는 죽었을 겁니다.”

“오? 그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어차피 범인은 같기 때문입니다.”

“범인이라면…… 장인을 말하는 것이겠군.”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어구가 완성되기 전날에 죽임을 당한 부여 마법사.

아주 공교롭긴 하지만…… 단서로는 부족하다. 어쩌면 다른 흉수가 손을 썼을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베르덴이 주목한 건 그게 아니다.

바로 마법사가 남긴 유언.

그렇게 이야기를 갖게 된 방어구의 가치는 당연하게도 더욱 높아진다. 심지어 제작 비용은 부여 마법사가 대부분 부담한 상황.

장인의 입장으로 생각해 봤을 때.

마법사를 죽일 이유는 충분하다. 그가 죽으면, 제작자인 장인에게 방어구의 소유권이 이전될 테니까.

단 한 번의 살해로, 막대한 돈을 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에스퍼렌사 후작이 물었다.

“애초에 그 장인을 선택했던 것이 잘못이었다는 건가?”

“정보가 더 있다면 모르겠으나,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납득이 가지 않은 건 아니다만…… 장인이 단순히 이득을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건 비약적이지 않나? 자칫하면 지금까지 일궈 온 모든 걸 잃을 텐데 말이야.”

“그만큼 탐이 났다는 걸 겁니다. 저는 솔직히 말해 장인이 마법사의 유언을 지어냈을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후작이 손끝으로 턱을 쓸었다.

“너는…… 인간을 믿지 않는군.”

“믿되 신뢰하지 않을 뿐입니다.”

베르덴은 단언했다.

그의 말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담겨 있었다, 마치 과거에 배신이라도 당한 듯.

정적이 내려앉았다.

에드몬은 헛기침을 해 분위기를 환기했다.

“허허…… 망설임이 아닌, 장인을 신뢰했던 것에 대한 한탄이라. 자네는 확실히 다르구만그래. 다른 사람들은 보통 ‘나는 망설이지 말아야지.’라며 교훈을 얻는데 말일세. 아주 흥미로운 해석이었네. 그럼 이제 성능에 대해 말해 줄 차례로군. 어디 보자, 감정서가…….”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직접 감정해 봐도 되겠습니까?”

직접?

“아니, 자네 감정도 할 줄 아나? 그건 재능이 아니라 아주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 법인데…… 대체 그 나이에 무슨 삶을 살아왔던 건가?”

“스승님이 가르쳐 줬습니다.”

“오오, 스승이라. 역시 그랬나. 하기야 독학일 리가 없지. 그나저나 자네와 같은 마법사를 키우다니, 아주 고명한 분이겠군. 그리고 그 이상으로 엄하기도 할 테고. 한번 만나 보고 싶구만.”

물론 에드몬의 바람이 이뤄질 일은 없다.

스승이란 존재는 그저 애셔의 배경 설정이었을 뿐이었으니까.

“좋다. 직접 감정해 보도록.”

에스퍼렌사 후작이 허락했다.

마법사의 회한을 건네받은 베르덴이 자그마한 마력을 일으켰다.

<감정>

◇ 마법사의 회한

⦁ 물리 저항(중상).

⦁ 자동 강화 마력 방벽 활성화.

⦁ 부여 마법 등록 (0/3).

‘……!’

성능을 확인한 베르덴이 내심 감탄했다.

먼저 중상급에 달하는 물리 저항력.

현재 착용하고 있는 마흐바트의 가죽 장비를 월등히 넘어선다.

그리고 자동 강화 마력 방벽.

감정을 해 본 결과, 작년 글러트니의 송곳니에게 부서진 보호의 목걸이보다 성능이 배 이상 뛰어나다.

평상시에 마력으로 이뤄진 벽을 두르고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부여 마법 등록.

말 그대로 최대 세 가지의, 시전자를 강화하는 부여 마법을 사전에 등록해 놓고, 원하는 때에 마력을 소비해 동시에 적용하는 기능.

마법사의 부여 마법 역량이 중요하지만, 그렇다 해도 아주 보기 드문 성능이다. 어째서 장인이 탐을 냈는지 충분히 납득이 갈 만큼.

‘속성 저항이 없는 건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훌륭하다.

베르덴이 만족할 정도로 말이다.

“자네가 부여 마법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고 하기에 준비한 물건이네. 그 외의 성능 면에서, 평소 자네가 입고 다니는 가죽 방어구보다 비교도 안 되게 좋은 것이지. 마음에 드나?”

“마음에 듭니다.”

“허허허! 당연히 그래야지! 마법사라면 당연히 욕심이 나는 매직 아이템이긴 하지만, 나는 부여 마법에 그리 조예가 깊지 않아서 말이야. 나에게는 과한 물건이지. 자네가 부러운───”

“다음으로 넘어가지.”

“아, 예. 각하.”

웃음기를 지운 에드몬이 두 번째 보수를 꺼냈다.

직전과 마찬가지로, 아티슨 마탑의 보안 상자가 나왔다. 대신 그 크기는 기껏해야 사람의 머리 정도.

이내 상자가 열리자, 손바닥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마석 두 개가 나타났다.

정밀하게 세공된 마석.

그 수준은 베르덴의 눈을 사로잡을 정도였다.

하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각기 마석 위에 새겨진 두 개의 문자. 베르덴에게도 익숙한 형태의 것이었다.

‘룬 문자……?’

후작이 내놓은 두 번째 보수는 바로 룬 문자.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였다.

* * *

두 개의 룬 문자는 전체적인 외형은 흡사하면서도, 세부적인 부분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엑시드와 오큘러스.

베르덴은 두 개의 고등 룬 장비를 다루고 있지만, 룬에 대한 지식은 얕은 편이었다.

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할 수도, 어떤 기능을 하는지도 읽어 낼 수도 없는 데다가 룬을 깨우는 방법 또한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게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설마…… 룬 세트입니까?”

“알아볼 줄은 몰랐는데. 지식이 상당하군.”

후작이 대답은 곧 긍정이었다.

그 사실에 베르덴의 눈썹이 작게 떨렸다. 그건 바로 경악이었다.

룬은 보통 단일로서 성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가 두 가지 존재한다.

룬 장인이 서로 다른 룬 문자를 연결해 성능을 합성시키는 것.

그리고 룬 문자 자체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그 자체로 성능을 발휘하는 것. 위 두 가지다.

“지금 네 앞에 있는 건 다름 아닌, ‘고등’으로 분류된 룬 문자 세트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집중’과 ‘방출’의 성능을 지니고 있지. 조사 결과, 자신이 가진 기, 마력 혹은 신성력을 집중시킨 뒤 방출하여 강력한 파괴력을 낸다고 하더군. 대신 그만큼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지.”

룬 문자는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반드시 그에 걸맞은 밑바탕, 즉 장비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룬 문자 세트는 단일로서는 무용지물.

성능을 발휘하려면 한 장비에 순서와 간격을 정확히 지켜 이식해야 하는데, 당연하게도 그걸 해낼 수 있는 룬 장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시대에 룬 장비를 제작할 수 있는 자는 거의 없다.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을 찾아야 되겠지.”

“드워프 말입니까?”

“그래. 대륙의 서남쪽에서 부족을 이루며 살고 있다고 하는데, 왕국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접하기가 쉽지 않지. 설령 만난다고 해도 타 종족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으니 응해 줄지도 의문이고.”

거기다 룬 문자 세트의 힘을 견딜 만한 장비가 필요하다.

적어도 최상위 금속이 태반 이상 함유되어 있지 않는다면 부서질 가능성이 높다. 설령 버틴다고 해도 내구도가 급격하게 닳을 것이고.

자칫하면 룬 문자 세트와 장비를 둘 다 잃어버리게 되는 대참사가 날 수도 있다.

“한마디로 무기화하기에는 리스크가 매우 크다. 그러니 룬 문자 세트는 후작가에 있어서 아주 값비싼 애물단지나 다름없는 셈이지.”

그래서 보수로 내놓았다는 건가.

하지만.

“제게 주는 것보단 판매를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왜. 보수로서 너무 과하기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마법사의 회한.

그리고 룬 문자 세트.

베르덴은 둘 중 하나만 줬어도 납득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자 후작이 코웃음을 쳤다.

“사람마다 가치를 매기는 기준은 다른 법이지. 특히나 내게 있어서 칼리아의 목숨값은 결코 적지 않다. 저 갑옷과 룬 문자 따위보다도. 이제 이해가 되겠나?”

진중한 음성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베르덴은 어렴풋이 에스퍼렌사 후작이 어떤 인물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베르덴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허허허, 예의도 바르군. 그럼 이제 마지막 보수만이 남았…….”

“잠깐.”

후작이 에드몬을 제지하고는, 톡톡 손가락으로 식탁을 두들겼다.

무언가를 깊게 고민하는 모습.

곧 판단을 내렸는지 손을 멈추고는 입을 열었다.

“에드몬, 마지막 보수를 변경한다.”

“네? 각하, 그 뜻은…….”

한차례 고개를 끄덕인 후작.

그가 정확히 베르덴의 눈을 응시했다.

“사족은 떼어 내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애셔, 네가 해 줬으면 하는 의뢰가 하나 있다.”

……갑자기 의뢰라.

상황이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으나, 베르덴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무슨 의뢰인지 들어 볼 수 있습니까?”

“한번 들으면 돌이킬 수 없는 사안이다.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네가 칼리아에게서 받았던 의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물론 거절을 한다고 해도 원래 정해져 있던 세 번째 보수는 당장 주도록 하겠다. 또한 그 외 어떠한 간섭도 없을 거라고 약속하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베르덴은 신중히 생각했다.

후작의 의뢰를 받을지 말지.

판단은 곧 내려졌다.

“듣겠습니다.”

안 그래도 너무도 과한 보수를 받은 상황.

상대가 먼저 호의를 보여 준 이상, 베르덴도 그에 맞춰서 대할 뿐이다.

물론 의뢰 내용을 납득할 수 없다면, 설령 협박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거절할 생각이지만……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

‘상대는 칼리아의 아버지인, 에스퍼렌사 후작이니까.’

“시원스러운 대답이군. 나쁘지 않아. 칼리아가 왜 너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 이해가 가.”

하지만 그 전에.

“일단 식사부터 하도록 하지. 왕가와 관련된 사안이라 얘기가 꽤나 길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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