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샘웰의 주점 (1)
손상된 <유자의 로브>와 마흐바트의 가죽 장비를 칼리아의 집사에게 전달했다.
칼리아가 후작가 내에서 수리를 해 준다고 한 덕에, 따로 대장장이를 찾아갈 필요도, 돈이 나갈 이유도 없었다.
베르덴은 그녀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칼리아의 저택 마당.
가벼운 옷차림을 한 베르덴이 힘껏 내달렸다.
마법사가 육체를 단련한다 해도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부여 마법을 통한 강화가 아니라면, 기를 깨우친 자의 근력이나 속도 그리고 기민함 등을 따라잡는 건 역부족이다.
이것이 마력과 기의 차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체력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체력이란 곧 전투의 지속 능력이며, 급박한 상황에서 판단력을 유지하는 힘이니까. 아무리 마력량이 많다고 한들 호흡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지쳐 버리면 치명적이다.
“후우.”
베르덴이 속도를 줄이며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몸을 푼 그가 자리를 옮겼다. 체력 훈련을 끝냈으니 다음으로 마력을 단련할 차례였다.
‘이쯤이면 되겠군.’
정원의 구석에 있는 작은 공터.
그 중심에 선 베르덴이 마력회로를 가볍게 활성화했다. 전신에 흐르던 마력이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거기서 일전의 감각을 떠올리며 마력의 성질을 차츰 변화시켰다.
에드몬 로드리너의 방식을 모방한 새로운 마법.
화륵.
허공 위에 작은 불꽃이 생겨났다.
어제와 달리 중력 속성이 아닌, 화염 속성으로 마력 성질을 변화시킨 결과물.
베르덴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얼음, 대지, 바람, 전격 등 여러 가지의 속성을 다루며 성질 변화를 시험했다.
베르덴의 뜻대로 움직이는 원소.
위계의 틀에서 벗어난 움직임은 확실히 다채로웠다.
다만 베르덴의 표정은 미묘했다.
‘용도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직접 실전에서 활용하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군.’
에드몬은 자신의 영역 내에서 여러 가지 현상을 일으켰다.
범위 내에 있는 존재들을 바람의 칼날로 난도질할 수도 있고, 베르덴이 당했던 것처럼 바람의 밀도를 높여 상대를 구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베르덴에겐 그런 활용법은 오히려 역효과였다.
복잡할 것 없이 이유는 간단했다.
베르덴은 마도사가 아니었으니까. 아티팩트의 힘을 빌려 구현한 마도는 마력회로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이제야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과도하게 남발하면 위험하다.
그럴진대 혼돈으로 성질 변화를 한 마력을 상시 유지하는 건 제 살을 깎아 먹게 되겠지. 더군다나 그러한 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건 부담감을 더욱 가중할 테고.
무엇보다 치명적인 건 성질 변화를 유지하는 동안 다른 마법을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력 위압을 사용하고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단점을 무시할 정도로 큰 장점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베르덴이 내면을 관조했다.
간단하게 여러 속성을 변질시킨 정도로 마력회로가 뻐근해졌다.
‘이래서야 메리트가 없지. 마력 위압만큼 비효율적이야.’
물론 실력이 낮은 상대를 제압하기엔 충분하다.
하지만 일정 수준에 다다른 실력자들에겐 거의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베르덴에게 준하는, 혹은 그 이상의 상대에게는 역으로 빈틈을 드러내게 되겠지.
그럴 바에 마법 하나라도 더 날리는 것이 훨씬 유용할 것이다.
뭐, 나중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단점이 너무 크다.
즉, 전력 변화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면…….’
베르덴이 생각에 잠겼다.
마법사로서 전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은 총 세 가지.
‘첫째는 마도의 개척.’
명확하지만 가장 어려운 길이기도 하다.
마도는 곧 깨달음.
이건 마법사 개개인마다 천차만별이기에, 다른 마도사에게 조언을 구해도 쓸모가 없다. 애초에 그게 가능했더라면 세상에는 마도사가 더 많았겠지.
세상은 마법사와 마도사를 서로 구분 짓는다.
누군가는 금방 깨달음을 얻고 누군가는 평생 깨닫지 못하니까. 그리고 그 숫자는 후자가 훨씬 많았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벽은 억지로 넘는 게 불가능하다.
그러니 마도를 개척하는 건 기약할 수가 없다.
첫 번째 방법은 당장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럼 다음으로.
‘둘째는 위계 자체를 높이는 것.’
현재 베르덴의 경지는 5위계 하위.
다음 단계인 중위에 올라서려면 마력회로를 더욱 확장해야 한다. 마력량은 이미 충분하고도 넘쳤으니.
물론 당연하게도 이와 같은 성장은 하루아침에 달성할 게 아니다.
그게 가능하려면 기물(奇物)이 필요하다.
과거 3위계에 머물러 있던 베르덴을 단숨에 4위계 중위로 끌어올려 준.
블랙 아워의 창시자 중 1인인, 현인 하르칸 다제스트가 성신 마법과 함께 주었던 포션이나 마핵과 비슷한 것이 없다면 말이다.
외적인 도움이 없다면 꾸준히 마력회로를 확장해야 한다.
베르덴이 단련을 하고 생사를 다투는 전투를 벌인다 한들 단번에 경지를 껑충 뛰어오르는 건 무리다.
거기다 애초에 5위계에 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건 기약할 수는 있으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
두 번째 방법 또한 현재로서 전력 강화를 이루기엔 부족하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세 번째.
‘강력한 마법 물품이나 아티팩트를 손에 넣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주목하는 건 외수 라이너스 볼티모그와 마도왕의 무덤이다.
하나는 마탑의 보물들을 사용해 새로운 스태프를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도왕의 유물이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이건 다른 방법들에 비해 현재에 가까웠으며 실시간으로 단서를 찾고 있는 중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곧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겠지.
‘기대되는군.’
베르덴은 다시금 목적을 상기했다.
그가 이토록 정진하는 동안 보헤미른 마탑주, 발로크 베시아스는 무너진 마탑을 재건하고 블랙 아워와 전쟁을 치르느라 정체되어 있을 것이다.
마탑주 자신이 쌓아 올린 걸 전부 무너뜨리려 하는 마법사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베르덴은 너무도 궁금했다.
언젠가 마탑주가 베르덴을 다시 봤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그리고 그토록 하찮게 보던 실험체에게 짓밟히는 놈의 심정이 어떨지 말이다.
터벅. 터벅.
공터를 뒤로한 베르덴이 칼리아의 자택으로 향했다.
이것으로 오늘의 단련은 끝.
이제 로아프라에서 이주한 사람들을 만날 차례였다.
* * *
칼리아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샘웰의 주점이란 이름은 라인즈의 상회에 등록이 되어 있긴 하나, 아직 개점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기야 라인즈에 온 지 많은 시간이 흐르지는 않았으니, 그동안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겠지.
주거 문제나 음식점 임대부터 시작해, 식재료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거래처를 구하는 등 말이다.
‘이 근처일 텐데.’
라인즈의 외곽.
인적이 별로 많지 않은 거리를 거닐었다. 그러던 중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샘웰의 주점’이라는 간판이 건물 벽에 떡하니 박혀 있었다.
건물 자체는 평범한 크기다.
외관만을 봤을 때, 주점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았지만…… 아직 준비 중이니. 바깥에 야외 테이블을 마련하거나 하면 한결 나아지긴 하겠지.
베르덴이 문 앞에 다가섰다.
가볍게 문고리를 당기자 도어 벨이 울렸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나쁘지 않군.’
테이블의 숫자가 적당하면서도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되어 있었다. 카운터에는 개인이 앉기에 적합한 바(bar)가 만들어져 있었고.
넓지 않은 공간을 잘 활용했다.
‘생각해 보니 로아프라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인테리어인 것 같은데.’
베르덴이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인기척을 내 봤지만 주방으로 보이는 방에서조차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이 잠겨 있지 않을 걸 보면, 잠깐 자리를 비운 건가?
구석에 자리를 잡은 베르덴.
잠시 기다리자,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으으. 샘웰 형, 이거 장식물치고는 너무 과한 거 아니에요?
───괜찮아, 괜찮아. 내 생각대로라면 분명 손님들에게 먹힐 테니까.
───으음…… 일단 알겠어요. 이상하다 싶으면 제 방에다 걸죠, 뭐.
샘웰과 에이든.
이내 도어 벨이 울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샘웰은 유리로 감싼 마석등부터 시작해 각종 장식물이 담긴 바구니를 안고 있었고, 에이든은 한 손에 두꺼운 책을 든 채 다른 손엔 장식물이 든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양이 많은 탓에 둘은 거의 앞조차 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주점 안으로 들어오던 그때, 샘웰이 실수로 발을 헛디뎠다.
“아, 안 돼!”
샘웰에게서 벗어난 바구니들.
깨지기 쉬운 장식물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샘웰이 다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무리였다.
<염력>
에이든이 곧장 마력을 일으켜 1위계 마법, 염력을 시전했다.
하지만 연산도 느린 데다가 숙련도까지 미숙한 터라 마석등 하나를 붙잡는 게 전부였다.
곧 대참사다.
에이든과 샘웰은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런데…… 기다려 봐도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조심스레 눈을 뜨자, 샘웰이 놓쳤던 모든 것이 전부 허공에 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둥둥 떠다니던 장식물들이 바구니에 담겼다.
그리고 그 바구니들은 주점 한곳에 천천히 안착했다. 두 사람이 영문을 모른 채 멍하니 서 있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군.”
샘웰과 에이든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앞으로 향했다.
아직 개점하려면 며칠 기다려야 한다. 당연히 손님이 올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도둑이나 강도인 건가? 암흑가 로아프라에서 살아온 샘웰이 꿀꺽 침을 삼켰다.
하지만 목소리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 그 긴장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전에 봤던 장비 대신 고급 의복을 입고 있었으나.
잿빛 머리와 특유의 벽안. 그 특별한 외모와 강렬했던 마법의 인상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애, 애셔 님?”
“애셔 님이요?”
샘웰의 말에 에이든이 눈을 번쩍 떴다.
그제야 베르덴임을 알아본 에이든이 후다닥 달려왔다.
“오, 오, 오랜만이에요, 애셔 님!”
에이든의 반응은 격했다.
사실 당연하긴 했다. 로아프라에서 불법 노예가 되었던 그를 해방시켜 주고, 안전한 로아프라에 데려다줬을 뿐만 아니라 특이 형질을 숨기는 방법까지 알려 주었으니까.
그야말로 평생의 은인이었다.
“그래.”
베르덴이 답했다.
뒤이어 샘웰이 다가왔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애셔 님. 순간 강도인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언제고 찾아 주실 건 알았지만 그게 오늘일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라인즈에 올 일이 생겨서 들렀다. 그런데 개점 준비로 바빠…….”
“아이고, 아닙니다. 아직 개점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거의 막바지거든요. 인테리어만 하면 됩니다. 애셔 님 한 분 대접해 드릴 준비는 충분하고도 넘치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맙군. 그런데 샤를로트는?”
에이든이 답했다.
“누나도 곧 돌아올 거예요. 두 시간 전에 교회에 들렀다가 장을 보고 돌아온다고 했었거든요.”
에이든의 표정은 밝았다.
샤를로트의 목이 정상적으로 치료되고 있는 듯했다.
샘웰이 테이블의 의자를 당겼다.
“여기 앉으시죠. 제가 금방 대접을…… 아, 지금 음주 가능하십니까?”
베르덴이 의자에 앉으며 답했다.
“좋은 걸로 부탁하지.”
“하하, 물론입니다. 제가 숨겨 둔 레시피 중 하나를 보여 드리도록 하죠. 에이든, 잠깐 도와줘.”
“알았어요, 형!”
“아, 그런데 안주는 조금 이따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술은 제가 잘 만들지만, 요리는 저보다 샤를로트가 아주 잘해서 말입니다.”
시간은 있다.
그 정도야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어깨까지 내려앉은 갈색 머리칼.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여자, 샤를로트가 교회로 향했다.
라인즈에 이주한 뒤로부터 치료를 이어 나간 덕분에 목소리를 되찾았지만, 혹시 모를 후유증을 대비해 지속적인 검사가 필요한 터라 주에 1번은 담당 성직자를 만나야만 했다.
그런데 교회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이상했다.
분주하다고 할까, 어수선하다고 할까. 이제까지 봐 왔던 교회와 사뭇 달랐다.
샤를로트가 담당 성직자와 만났다.
“어서 오세요, 샤를로트 님.”
성직자 카를로.
그가 지친 얼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카를로 성직자님. 저,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중한 환자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밤낮 구분 없이 교대로 치료를 하느라 교회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중한 환자라니?
근처에 무슨 사고라도 터진 건가?
“혹시 언데드 사태와 교구 습격 사건에 대해서 아십니까?”
샤를로트가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두 사건은 현재 왕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날마다 신문에 상황이 게재되고 모든 도시 곳곳에 소문이 쫙 퍼졌다.
한적한 시골에서 살면 모를까, 도시에서 산다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로난데르크 주교님과 교구의 성기사단 그리고 칼리아 영애가 이끄는 백결 기사단이 주범을 처단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중상자가 많이 발생한 터라 현재 라인즈에서 치료 중에 있습니다. 다행히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아…….”
샤를로트는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만한 사태를 일으킨 자들을 처단한 강함. 그리고 죽음을 무릅쓴 용기. 남동생 하나 지키지 못한 그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노예에서 벗어난 샤를로트는 언제나 품속에 작은 단검을 지니고 있다.
혹여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무력하게 당할 바에 조금이라도 저항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시골에서 살아온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많지가 않았다.
상념에서 깨어난 샤를로트가 다급하게 일어섰다.
“아, 바쁘실 텐데 제가 실례를 끼쳤네요. 검사는 다음에…….”
“아닙니다.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제 신성력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금방 봐드리겠습니다.”
카를로의 손끝에 노란빛이 흘렀다.
이어 샤를로트의 목을 살며시 누르며 그 내부를 찬찬히 확인했다.
카를로가 미소 지었다.
“거의 완치에 가깝군요. 이제 한두 번만 더 보면 더 찾아오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성직자님 덕분이에요.”
‘그리고…….’
샤를로트는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을 떠올렸다.
애셔와 갈리아크.
다친 목을 치료할 수 있는 헌금은 그 둘이 코스타의 재산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마련할 수 있었으니까. 속으로나마 다시금 감사를 전했다.
“하하하, 그렇게 말해 주시니 보람이 있군요.”
그 순간, 카를로의 배가 울렸다.
고된 치료 활동으로 식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괜찮으시다면 저희 주점에 오셔서 식사라도 같이 하지 않으실래요?”
“아, 크흠흠, 염치없치만…… 신세 좀 지겠습니다.”
카를로는 전에도 샤를로트에게 몇 번 대접받은 적이 있었다.
그녀의 요리 실력은 웬만한 음식점에 비해서도 월등했다. 특히나 야채볶음은 채식을 선호하는 카를로에게 있어서 별미였다.
샤를로트와 카를로가 활기찬 대로를 걸었다.
그녀가 간단히 장을 보는 동안, 배고픈 성직자는 대도시의 정경을 바라봤다.
‘처음이야 갑작스러웠지만…… 확실히 살기 좋은 도시야.’
카를로는 마을에서 라인즈로 강제 이송을 당했다.
그리고 라인즈의 교회에서 나름대로 실력을 인정받아 정식으로 라인즈에 파견되었고, 그가 있던 마을에는 다른 성직자가 가 빈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건 아쉽다.
그래도 이것 또한 루아스 신의 뜻이리라. 카를로는 빛의 신에게 기도했다.
그렇게 장 보기를 마친 두 사람이 샘웰의 주점에 도착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선 순간.
“어…….”
툭.
샤를로트가 장바구니를 떨어뜨렸다.
왜냐하면 샘웰과 에이든 옆에, 그렇게나 무서웠던 코스타를 단번에 처리한 마법사가 있었으니까.
“애셔 님……!”
목소리를 되찾고 만나는 건 처음이다.
이미 감사는 글귀를 적어 전했지만, 그럼에도 직접 목소리를 내어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샤를로트가 당장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베르덴을 알아본 사람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저, 저, 저 사람은……!’
성직자 카를로는 과거를 떠올렸다.
라인즈에 오기 전, 그 추운 날.
마을의 교회에서 웬 마스크를 쓴 사내에게 납치를 당했고.
그렇게 타게 된 마차에서 중상을 입고 저주에 걸린 한 사내를 치료했으며.
그 옆에서 시도 때도 없이 기절한 사람을 구타하는 한 마법사를 봤던 그때를.
당시 베르덴은 치료에 방해가 될까 봐 흑랑 토렐드를 기절시키고 있었다.
라인즈에 도착한 이후에 그 오해를 풀긴 했지만…… 다른 사람을 때려 본 적조차 없는 카를로는 잊을 수가 없었다.
스태프로 사람 머리를 후려갈기는, 그 무감정한 얼굴을. 붉은 피를 보고도 변하지 않던 그 차가운 눈빛을.
이윽고 카를로가 베르덴과 마주쳤다.
순간 목을 움찔거린 그가 성직자다운 미소를 지었다.
“하하, 설마 샤를로트 님이 저분과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혹시 카를로 님도 애셔 님과 아는 사이셨나요?”
“전에 조금 인연이 있었습니다.”
무슨 인연일까.
궁금해진 샤를로트가 물어볼 찰나, 카를로가 한 발짝 뒷걸음질 쳤다.
‘저 무서운 사람과 함께 밥 먹다간 체할라.’
정확히 주점 바깥으로 나간 성직자가 말했다.
“아, 저는 갑자기 바쁜 일이 떠올라서 이만.”
“네? 무슨…….”
“그럼 루아스 신의 빛 아래, 좋은 식사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카를로는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