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어??
심장에 담겨 있는 마력.
그 마력이 오가는 통로인 마력회로는 마법사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마탑주에 버금가는 지식을 쌓았다고 한들.
마력과 마력회로가 2위계의 기준점을 넘어서지 못하면 결코 2위계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마력 위압은 그 두 가지 요소만으로 구현되는 기초 마법이다.
다시 말해 마법 하나로도 마법사로서 근본적인 재능이 어떠한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경지를 쌓아 올렸는지 얼추 파악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게 가능한 건 마법사 간의 격차가 클 때의 얘기.
에드몬은 자신에게 뻗어 오는 마력을 보며 생각했다.
‘위험하다.’
느긋하게 있다간 당한다.
곧장 웃음기를 지우고 마력을 방출했다.
───!
서로 다른 마력이 상호 간에 충돌했다.
그 여파에 지면이 얕게 갈라지며 대기가 일그러졌다.
에드몬은 본능적으로 마력회로를 전력으로 활성화했다.
마력회로의 격은 확실히 에드몬이 베르덴보다 우위. 그 출력의 차이 탓에 마력이 부딪친 순간 베르덴이 밀리긴 했지만 잠깐에 불과했다.
‘내, 내가 밀린다고?’
점차 가까워지는 위압감.
에드몬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베르덴과 에드몬은 5위계에 도달해 있다.
하지만 그 격차는 확연하다.
에드몬은 마도사 이전에, 5위계 끝자락에 닿은, 자신의 한계 위계에 도달한 마법사였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마력 위압에서 밀리는 건 있을 수 없었다.
그것도 한참이나 어린 마법사에게.
‘대체 이 마력량은 뭐냔 말인가……!’
베르덴에게서 일고 있는 마력이 섬뜩할 정도로 깊고 방대하다.
그야말로 에드몬을 압도하는 수준.
그리고 그 마력량이 비상식적인 상황을 가능케 한다.
아마 태생부터 막대한 마력을 타고난 모양.
여기에 고위 속성까지 다룰 줄 안다는 건가? 상대적인 재능만 따지면 에드몬이 봐 왔던 마법사들 중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에드몬이 식은땀을 흘렸다.
‘이거…… 선수를 양보하는 게 아니었나?’
“으윽……!”
한층 더 마력이 밀리며 에드몬이 휘청거렸다.
그에 반해 베르덴은 변함없는 표정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마력을 기하급수적으로 소모하고 있음에도 여력이 있다는 뜻.
숨겨 둔 수가 한둘이 아니다.
어떻게 흑마도사를 상대로 이겼는지 이해할 만한 대목이었다.
“오오, 차, 참으로 대단한 재능이군……! 나와의 격차를 무지막지한 마력량으로 상쇄할 뿐만 아니라 넘어서기까지 하다니.”
“항복하시겠습니까?”
“항복? 허허허허! 그럴 리가!”
에드몬이 웃으며 스태프를 꽉 쥐었다.
마력 위압에서 밀릴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그에게도 한 수는 있었다.
“아무래도 진심을 다해야 할 것 같군.”
그 순간.
에드몬의 기세가 일변했다.
마도 <기해氣海>
에드몬의 마력에 바람이 스며들었다.
속성과 마력이 결합하며, 마력이 가지고 있는 기본 성질이 변화했다.
녹색으로 물든 마력.
그걸 본 베르덴이 섬뜩함을 느꼈다.
그리고.
“……?!”
베르덴이 밀리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느껴졌던 저항감이 비교도 할 수 없이 커졌다. 마력량으로 찍어 누를 수 없을 정도로.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베르덴의 턱 끝에 맺혔다.
“……마도입니까?”
“그렇네. 물론 규칙을 벗어난 마법을 사용한 건 아닐세. 내 마도로 마력을 물들여 새로운 마력을 탄생시켰을 뿐이니까. 그러니 이것 또한 마력 위압이라고도 할 수 있지.”
물론.
“자네에게는 많이 다르겠지만.”
에드몬이 녹색의 마력으로 물든 안광을 번뜩였다.
화아아아아악!
거세게 휘몰아친 녹색의 마력이 베르덴의 마력을 집어삼켰다.
마도사다운 위압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정도로 베르덴의 견고한 정신을 무너뜨리기에는 부족했다. 하물며 에드몬 이상의 마력을 품고 있기도 했으니까.
항복할 이유도, 무릎이 무너질 이유도 없었다.
“잘 버티는군. 하지만 이거라면 어떨까?”
그때, 에드몬이 손아귀를 쥐었다.
녹색의 마력이 베르덴의 주위로 집중했다.
밀도가 높아지며 생겨난 압력이 전방위에서 베르덴을 압박했다.
“큭…….”
마치 폭풍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
베르덴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마력이 닿은 대기를 뜻대로 조종하는 것. 그게 내 마도일세. 뭐, 솔직히 말해 초기에는 그리 위력적인 마도는 아니었네. 용도가 다양해 편리하긴 해도, 위력만 따지면 위계에 있는 마법이 더욱 강했으니까.”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마법사는 늙을수록 강해지지. 나는 그 시간 동안 마도를 개량했네. 이건 그 결과물 중 하나일세.”
에드몬이 손가락을 튕겼다.
녹색의 마력이 파도치자 작은 바람이 일었다.
“마력으로 대기를 움직이는 게 아닌, 마력과 대기를 결합시킨 성질 변화. 즉, 내 마력이 곧 바람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것이지. 지금 이곳은 나의 ‘영역’일세. 어떤가, 많이 놀랐나?”
“……놀랐습니다.”
“솔직히 말해 내 마도를 드러낼 생각은 전혀 없었네. 설마 순수한 마력 위압으로 밀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거든. 그만큼 자네의 힘이 뛰어나다는 뜻이지. 하지만 내기가 걸려 있는데 허무하게 질 순 없지 않은가? 반칙은 아니니 이해해 주길 바라네.”
에드몬이 수염을 쓸었다.
“그나저나 많이 힘들어 보이는군. 그만 항복하는 게 어떻겠나?”
“…….”
베르덴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력을 유지한 채 전신을 옥죄는 녹색 마력에 저항했다. 그의 벽안에는 부러지지 않는 의기가 담겨 있었다.
“허허허! 요즘 시대에 보기 어려운, 참으로 훌륭한 마법사로군. 재능과 끈기. 젊은 자네는 언젠가 나를 뛰어넘을 수 있겠지. 분명 그럴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닐세.”
압력이 더욱 강해졌다.
저항을 뚫고 베르덴의 숨통을 서서히 틀어막기 시작했다.
“자네의 의지를 존중하네. 그러니 조금 고통스러워도 참게나. 금방 끝날 터이니.”
시간이 갈수록 베르덴의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집중된 마력이 흔들리며 저항력이 약해졌고, 노련한 에드몬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고통이 점점 강해지며 승패는 더욱 짙어져 갔다.
‘……마법을 쓰면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마력 위압으로 펼치는 마법전이다.
마도를 쓸 줄은 몰랐지만 에드몬은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그리고 베르덴 또한 규칙을 어길 생각은 전혀 없었다. 포기할 생각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건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베르덴은 에드몬이 펼친 성질 변화한 마력을 관찰했다.
‘마력 자체의 성질을 속성으로 변화시킨다라. 색다른 발상이군.’
에드몬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 것이다.
발상부터 떠올리기 쉽지 않지만, 저런 식으로 마도를 응용하기 위해선 자신의 마력을 완전히 지배할 정도의 조작 능력이 필요시되니까.
아무리 그와 비슷한 마도를 개척했다고 해도 따라 하기는 결코 쉽지 않겠지.
하지만.
‘보인다.’
베르덴의 머릿속에 담겨 있는, 셀 수 없는 마법 이론이 뒤엉켰다.
에드몬이 이뤄 낸 결과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원리를 꿰뚫었다. 마법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 그건 베르덴이 역천을 이루기 전에 가지고 있던 유일한 재능이었다.
‘나는 마도사가 아니지만…….’
마도를 흉내 낼 수는 있다.
삼원색의 중심.
각 원소 마법의 특징을 추출해 새로운 마법을 구현하는 아티팩트. 그와 더불어, 마탑주의 마법진을 파훼하기 위해 갈고닦은, 완벽에 가까운 마력 조작 능력까지.
‘실패할 이유는 없다.’
베르덴이 중력 마법의 특징을 추출했다.
그러고는 에드몬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마력과 결합시켰다.
───!
상당한 반발력이 일었다.
그러나 베르덴이 갖가지 특징을 결합시켜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 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다.
베르덴의 주위로 기묘한 기류가 흘렀다.
뭔지 모를 감각에 에드몬에게서 의문이 떠올랐다.
“자네…… 지금 뭐 하는 건가?”
“상황을 역전하려 합니다.”
“뭐?”
그때였다.
화아아아악!
베르덴이 마력이 암자색으로 변화했다. 그러자 베르덴을 둘러싼 압박감이 사라졌고, 암자색의 마력이 녹색 마력을 단번에 짓밟았다.
“……?!”
에드몬이 눈을 부릅뜨며 저항했다.
그런데 무게감이 달랐다.
바람의 마력은 밀도를 집중시켜 압력을 높일 수 있지만, 중력은 그 자체로 무게이며 힘이었으니까. 짙은 마력이 에드몬을 에워쌌다.
베르덴이 검지손가락으로 에드몬을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육중한 무게감이 에드몬에게 엄습했다. 이어 베르덴이 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중압>
쿠웅───쩌저적!
중력의 마력에 짓밟힌 대지가 일부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중심.
에드몬이 무릎을 꿇으며 손을 땅에 짚었다.
“어??”
에드몬이 멍하니 목소리를 흘렸다.
그런 그에게 베르덴이 말했다.
“내기는 제가 이겼습니다.”
* * *
에드몬이 지면을 바라봤다.
잠시 이게 꿈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끝에서 느껴지는 흙의 질감은 너무도 명확했다. 지면과 맞닿은 무릎이 욱신거리는 것도 말이다.
‘뭐가 일어난 거지?’
압력이 느껴지더니 어느샌가 바닥과 가까워졌다.
중력 자체가 강화된 듯한 착각. 마치 이건…… 에드몬이 시전했던, 마도를 이용한 마력 위압과 흡사했다. 아니, 속성만 다르지 아예 똑같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리고 중력 속성이라니.’
분명 전격 마법사라고 하지 않았었나?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전격과 중력, 두 가지 고위 속성에 적성이 있다는 건가?
갖가지 의문이 미친 듯이 솟아 나왔다.
에드몬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 생각은 하나의 결과로 귀결되었다.
“내가 졌다고……?”
에드몬이 당장 일어섰다.
퍼뜩 고개를 든 그가 베르덴에게 시선을 던졌다.
“도, 도대체 어떻게……! 애셔, 자네 마도사였나? 아니, 설마 그럴 리가. 자네에게서 마도사다운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데……! 그렇다면 아티팩트? 방금의 중력 속성은 또 뭐냐? 아니, 그것보다 내 마력 위압을 어떻게 따라 할 수 있었던 거지?!”
에드몬이 다급하게 물었다.
물론 베르덴은 그에 걸맞은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마법사가 우쭐대며 자신의 수를 드러내는 건 멍청한 짓이었으니까.
이건 에드몬도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한 수 배웠습니다, 에드몬 로드리너. 그리고 돈은 잘 쓰겠습니다.”
베르덴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 후 발걸음을 돌려 연무장 바깥으로 향했다.
“자, 잠깐만! 지금 어디 가는 겐가!”
“죄송하지만 돌아갈 시간입니다.”
이미 하늘에는 석양이 지기 시작했다.
저녁 시간까지 칼리아의 자택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지금 가도 촉박했다.
‘술은 내일 마시는 게 좋겠군.’
샘웰의 술집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릴 테니.
운좋게 금방 발견한다고 해도 간단히 술을 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애셔! 애셔! 잠깐만, 얘기를……!”
베르덴이 그대로 연무장을 떠났다.
에드몬이 그가 사라진 장소를 바라봤다.
이내 해가 모습을 감추며 밤그늘이 내려앉았다. 말없이 서 있던 에드몬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허허…… 이런 천재를 보았나…….”
상대적인 재능만 따지면, 지금까지 봐 왔던 마법사들 중 한 손에 꼽을 정도라고?
에드몬은 곧장 베르덴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그는 자신이 봐 왔던 어느 누구보다도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재능만 믿고 날뛰지 않는다.’
그의 눈빛은 견고했으며 온종일 침착했다.
재능 못지않게 경험까지 쌓았다는 뜻이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도.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노력가, 즉 괴물.
에드몬은 베르덴을 그를 그렇게 정의했다.
그런데.
“……이걸 각하에게 어떻게 보고하지?”
베르덴이 어떤 마법사인지는 얼추 파악했다.
하지만 그 결과 밑천이 털리고, 1억 엘크까지 뜯겼다.
경악스러운 것과 별개로…… 솔직히 말해 제 입으로 말하기에는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나서 놓고 한참이나 어린 마법사에게 제대로 당한 거였으니까. 이런 일은 에드몬에게 있어 난생처음이었다.
어떻게 말해야 창피를 덜 수 있을까.
에드몬은 오랜만에 눈앞이 깜깜해지는 걸 느꼈다.
* * *
칼리아의 자택.
기다란 테이블의 상석에는 칼리아가, 그 옆에는 베르덴이 자리를 잡았다. 둘은 장비가 아닌, 간단한 의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그렇게 고급스러운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산미가 약간 높은 커피로 후식을 즐겼다.
그때, 칼리아가 개인 백지 수표 하나를 건넸다. 그 위에는 정확한 액수가 기입되어 있었다.
“먼저 약속했던 의뢰 보수다. 기본 4억에 추가 보수까지 합해 총 8억 엘크지.”
“감사합니다.”
베르덴이 수표를 품 안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 외의 보수는 아직 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솔직히 말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는 네가 이뤄 낸 결과에 어울릴 만한 게 없어서 말이야. 그래서 가문에 직접 요청할 생각이다. 한 이틀 내지 사흘 정도면 정해질 텐데 기다릴 수 있겠나?”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시간은 예상 범주였다.
“물론입니다.”
“다행이군. 그럼 그동안은 여기서 지내도록. 머무는 동안은 제집처럼 사용해도 좋다.”
“마당에서 훈련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그야 물론이지.”
식탁에 팔을 올린 칼리아가 턱을 괴었다.
“애셔, 너는 마법산데도 몸을 단련하는 걸 게을리하지 않는군. 그렇다고 마법이 부족한 것도 절대 아니고. 나도 단련하는 걸 좋아하지만 너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되겠어. 그런데 혹시 다른 취미는 없나?”
취미라…….
굳이 꼽자면 마법 연구가 있긴 하나 이것도 결국 강해지기 위함이기도 하고. 단련의 범주를 벗어나는 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딱히 취미라고 할 건 없습니다.”
“그렇다면 라인즈에 머무는 동안 계속 단련을 하며 지낼 생각인가?”
베르덴이 고개를 저었다.
“지인을 만날 생각입니다.”
칼리아가 관심을 보였다.
“지인? 이곳에 아는 사람이 있었나?”
“조금 인연이 닿았습니다. 라인즈의 외곽에서 주점을 연다고 했는데, 정확한 위치를 몰라 내일 찾아볼 생각입니다.”
“호오, 주점이라. 이름을 물어봐도 괜찮겠나?”
“샘웰의 주점이라고 합니다”
도중에 바꿨을지는 모르겠지만.
“음……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군. 그나저나 일일이 확인하며 찾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필요하다면 내가 찾아봐 줄 수도 있다.”
라인즈는 대도시다.
비행을 써 가며 확인한다면 모를까, 혼자 걸어서 가게를 찾는 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운이 좋지 않다면 도중에 지나칠 수도 있었고.
‘그래서 수소문해 가며 찾을 생각이었는데.’
칼리아가 도와준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할 필요 없다. 이 정도야 쉬운 일이니. 그래서…….”
식탁에서의 대화는 조금 더 이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아침이 밝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