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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73화 (173/366)

173화 어?

에드몬의 제안은 갑작스러웠지만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비행정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에드몬은 종종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베르덴을 몇 번이나 흘겨보곤 했으니까.

이건 그 연장선이겠지.

“용건이 무엇입니까?”

“오, 차분하군. 다른 마법사들은 내 얼굴만 봐도 긴장해서 덜덜 떠는데 말이야. 크흠, 그럼 숨기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에드몬이 스태프로 베르덴을 가리켰다.

“에스퍼렌사 후작 각하께서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라고 하셨네. 굳이 말하자면 뒷조사라고도 할 수 있지.”

뒷조사라.

“그런 건 몰래 하는 거 아닙니까?”

“본래는 그렇지만, 다른 건 차치하고 자네는 칼리아 아가씨의 은인이지 않나? 당연히 몰래 뒤를 캘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리고 자네도 알다시피 소문이란 게 실제와 딱딱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꽤 있잖나? 사람이란 건 매 순간순간마다 변화하는 존재이니까. 하물며 앞으로 정진해 나가는 마법사라면 더더욱.”

사람 좋은 미소가 베르덴을 직시했다.

“4위계로 알려진 자네가 흑마도사를 토벌한 것도 그 훌륭한 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 이렇게 직접 만나서 확인해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지 않겠나?”

그래서 직접 찾아왔다는 건가.

뭐, 솔직히 말해 몰래 뒷조사를 당하는 것보단 이편이 훨씬 낫긴 했다. 누군가 자신의 뒤를 캐는 건 몹시 불쾌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보실 생각입니까? 질문에 대답해 주면 되는 겁니까?”

“허허허허! 당연히 아니지. 그야 우리는 마법사가 아닌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는, 마법을 보는 것이 훨씬 나은 법이지.”

베르덴이 에드몬과 마주했다.

노인의 눈동자에는 평화로운 외면과는 달리 마법사로서의 탐구심과 호기심이 들끓고 있었다.

“마법을 본다라. 그렇다는 건 마법전을 벌이자는 겁니까?”

“그와 비슷하네. 물론 어디까지나 제안이니 받지 않아도 상관없네. 나는 마도사고 자네는 마법사니까. 겁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암.”

에드몬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너무도 뻔한 도발이다.

머리가 고블린 수준이 아니라면 도저히 걸려들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그와 별개로 베르덴이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에드몬 로드리너.

그는 흑마도사가 아닌, 원소 계열 마도를 개척한 마도사였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베르덴의 흥미를 자극하기엔 충분하고도 넘쳤다.

그리고 마법전과 비슷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때, 에드몬이 말을 이었다.

“뭐, 이렇게 말했다만 솔직히 거절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러니 애셔, 자네에게 동기를 하나 부여하겠네. 나와 내기를 하는 게 어떻겠나? 마법전에서 이기면 보상을 주도록 하지.”

내기?

“어떤 보상입니까?”

“음? 내기 내용이 아니라 뭘 걸지가 더 중요하다는 건가? 아니면 마법전이 무엇이든 간에 이길 수 있다는 건가? 허허허! 뭐가 됐든 훌륭한 자신감이군.”

에드몬이 수염을 쓸었다.

“나는 몇 번이나 이 내기를 해 오며 갖가지 보상을 내걸었다네. 한 번은 매직 아이템을 걸어 보기도 하고, 또 한 번은 반짝거리는 보석이나 액세서리를 걸어 본 적도 있었지. 혹시 마법사들이 뭘 가장 좋아했는지 아나?”

“돈입니까?”

에드몬이 감탄했다.

“오오, 자네는 벌써 진리를 깨닫고 있었군. 맞네, 바로 돈일세. 매직 아이템은 효과에 따라 유용해지거나 애물단지가 되어 버리고, 보석과 액세서리는 결국 가치로 귀결되니까. 그러니 그 가치를 나타내는 돈이 가장 명확하면서도 쓰기 편리한 것이지.”

에드몬이 품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고는, 염력을 이용해 앞으로 날려 보냈다.

베르덴이 수표를 잡았다.

“다이나 은행에서 쓸 수 있는 1억 엘크 수표일세. 내기에서 이기면 군말 없이 주도록 하지.”

1억 엘크.

내기치고는 상당한 액수다.

‘후작가의 마도사에게는 그리 큰돈이 아닐 테지만.’

“내기에서 지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준 1억 엘크를 돌려주기만 하면 될 뿐, 다른 건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좋네. 애초에 자네에게 불리한 조건이 아닌가?”

에드몬이 내기 내용을 정한 데다가, 마법사로서의 경지 또한 베르덴보다 높다.

그런 격차가 있는데 내기로 무언가를 뜯는다니. 마도사로서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에드몬은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

눈앞의 잿빛 마법사가 어떤 마법사인지 말이다.

베르덴은 길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어떠한 리스크도 없는 내기였으니까. 이참에 후작가의 마도사가 얼마나 강한지 알아볼 기회였다.

‘샘웰을 만나는 건 조금 미뤄 둘까.’

베르덴이 수표를 공간가방에 집어넣었다.

“그 내기. 수락하겠습니다.”

“오오, 잘생긴 얼굴만큼이나 시원시원한 대답이군. 좋아, 그럼 날 따라오게.”

* * *

라인즈의 중앙 광장.

그 북동쪽에 있는, 후작가 명의로 된 고층 건물로 칼리아가 발을 디뎠다. 건물 안에는 에스퍼렌사 후작가의 문장을 짊어진 기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에스퍼렌사 후작의 직속 기사, ‘붉은 신념’.

물 샐 틈 없이 건물을 지키고 있는 기사 중 하나가 칼리아에게 다가왔다.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개를 끄덕인 칼리아가 기사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응접실 앞에 다다른 그녀가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직접 문을 두들겼다.

───들어와라.

중후하고 익숙한 목소리다.

허가를 받은 칼리아가 안으로 들어섰다.

소파에 앉아 있는 한 중년의 사내가 보였다.

앞머리를 뒤로 넘긴, 검붉은 머리칼.

잘 정돈된 짧은, 붉은 수염과 옷 위로도 느껴지는 강인한 체격.

루벤 드 에스퍼렌사.

칼리아의 아버지이자 당대의 에스퍼렌사 후작이었다.

“칼리아 드 에스퍼렌사, 루벤 드 에스퍼렌사 후작 각하를…….”

“격식 차리지 말고 와서 앉아라.”

“아, 네.”

칼리아가 냉큼 소파에 앉았다.

후작의 눈동자가 칼리아를 유심히 살폈다.

겉으로 드러난 피부에는 붕대가 감기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목발을 사용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할 정도. 그야말로 성한 데가 없었다.

겉으로는 어느 정도 회복된 거처럼 보이긴 하지만…… 부상을 입었을 당시를 생각해 보면 죽음이 목전까지 다가왔을 정도로 심각했을 것이다.

조용히 칼리아를 응시하던 후작이 말했다.

“……얼마 전, 왕국 남부에서 벌어진 언데드 사태로 인해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곡창지대의 상당 부분이 언데드에게 짓밟혔고 피난민들로 인해 각 도시는 비상이 걸렸지. 현재 모험가 길드와 영주들이 공조하여 언데드를 토벌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교구는 정체 모를 흑마도사의 습격으로 인해 궤멸되었다. 생존자의 증언과 현장을 확인한바, 주교 두 명을 포함해 다수의 신자들이 사망했더군.”

하나같이 왕국 전역을 뒤흔들 정도의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와 거의 같은 시기에, 네가 백결 기사단을 이끌고 남부로 향했으며 그 후 성기사단과 함께 교구로 향했지. 그러고는 비행정을 훔치고 어딘가로 향한 뒤 이렇게 중상을 입고 내 앞으로 오기까지…….”

후작이 붉은 안광을 번뜩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라, 칼리아.”

“……네, 아버지.”

칼리아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사건의 전말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는 흑마법사 워렌스를 구출한 것부터 시작해,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이다.

설명을 듣던 후작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뭐? 3왕자가 그 주검의 영광이란 흑마법사 단체와 손을 잡았단 말이냐?”

“정황상 분명합니다.”

“……증거는?”

“물증은 없으나, 교구를 습격한 흑마도사가 조합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했다더군요.”

후작의 얼굴이 한층 더 진지해졌다.

주검의 영광.

후작으로서는 난생처음 들어 보는 흑마법사 집단이었다.

‘하지만 칼리아의 말에 따르면 감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진 건 분명하다.’

교구를 반파시킨 흑마도사.

왕국 남부에 언데드를 푼 것이 놈들 짓인 건 거의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칼리아 말대로 정황상 앞뒤가 들어맞았으니까.

‘그렇다는 건 3왕자의 지시일 가능성이 높겠군.’

곡창지대가 무너지면 왕국 전역이 휘청거리지만.

그중에서도 특히나 왕국 남부에지지 기반을 갖춘 1왕자와 2왕자의 손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해 이만한 사태를 벌이다니.

그야말로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지만, 평소 3왕자의 탐욕스러운 행실로 보면 납득이 갔다.

“이 버러지 같은 왕가가……!”

후작의 분노에 칼리아가 움찔했다.

이마에 도드라진 핏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겨우 화를 삭인 후작이 칼리아에게서 설명을 이어 들었다.

그렇게 왕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끝났는지 알 수 있었다.

후작이 생각에 잠겼다.

응접실에 걸린 시계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만이 감돌았다. 칼리아가 힐끗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던 중, 에스퍼렌사 후작이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알겠다. 고생했다, 칼리아. 너는 이만 자택으로 돌아가 쉬거라.”

“어…… 네?”

칼리아가 눈을 깜빡였다.

평소였다면 비행정을 훔치는 대형 사고라 역정을 내시든 중징계를 내리시든 하셨을 텐데 말이다. 그녀가 당황하고 있자, 후작이 말을 이었다.

“네가 유례없는 대형 사고를 치긴 했지만…… 이번만은 예외로 치겠다.”

언데드 사태와 교구에서 일어났던 일이 너무도 급작스럽게 벌어졌다.

칼리아가 진즉에 주검의 영광에 대해 보고했더라고 해도 대처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보고를 하지 않았더라도,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잘 해결하기도 했으니.

그리고 지금 칼리아는 중상자다.

아무리 후작이라고 하더라도 아픈 딸에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보아하니 한 달쯤은 정양해야 할 것 같구나. 그러니 자택으로 돌아가서 회복하는 데 전념하거라.”

“……네, 아버지.”

인사를 한 칼리아가 목발을 짚고 밖으로 나섰다.

징계를 받지 않은 사실이 너무나 의외였고 기뻤는지, 발소리가 한결 가벼워진 게 들릴 정도였다.

‘언제 철이 들는지.’

후작이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가에 선 그가 칼리아과 백결 기사단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애셔라.’

주검의 영광 토벌. 그 대다수의 지분을 차지한 잿빛 머리의 마법사.

교구에서 놈들을 추적하는 것도, 영묘에서 칼리아 일행의 목숨을 구해 준 것도, 왕국의 금지에서 사령의 보주를 가져온 것도 그 사내였다.

‘대체 그 마법사는 누구인가.’

젊은 나이에 5위계.

그에 그치지 않고 교구를 궤멸시킨 흑마도사와 칼리아를 손쉽게 압도한 언데드마저 단신으로 토벌할 실력을 갖추고 있다니.

대단한 걸 넘어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에드몬에게 말했다.

그 마법사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 오라고.

‘지금쯤이면 또 그 마법전을 벌이고 있겠군.’

에드몬은 호기심 가득한 마법사였으니까.

분명 비행정에서 내리자마자 직접 대면했을 것이다. 평소대로 내기도 했을 거고.

‘어쨌든 곧 결과를 가져오겠지.’

에스퍼렌사 후작은 라인즈의 거리를 바라보며 에드몬을 기다렸다.

* * *

에드몬이 안내한 장소는 모험가 길드의 연무장이었다.

베르덴이 칼리아와 처음 만난 장소이기도 했다. 에드몬이 아무도 없는 빈 연무장 중심에 섰다.

베르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법전의 무대로는 협소하지 않습니까?”

3위계 마법사에게라면 적합하겠지만, 4위계를 넘어 두 5위계에 다다른 마법사가 힘을 쓰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조금만 엇나가도 마법이 연무장을 부술 것이며 그 바깥에 있는 거리에 큰 피해를 입힐 테니까.

“그래서 말하지 않았나. 마법전과 비슷한 걸 하자고 말이야. 바로 마력 위압으로 말이지.”

마력 위압.

물론 이것만으로는 전체적인 수준을 알아내긴 부족했지만, 마법사로서 어느 정도의 기본을 갖추고 있는지는 얼추 파악할 수 있었다.

‘확실히. 그거라면 여기라도 상관없겠군.’

마력만으로 연무장이 무너질 일은 없을 테니까.

“이해했습니다.”

“오,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걸 보면 자신이 있나 보군. 좋아, 그럼 승패 조건은 두 가지일세. 하나는 상대방의 무릎이나 손이 바닥에 닿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상대방의 입에서 포기 선언이 나오는 것일세. 동의하겠나?”

“동의하겠습니다.”

“그럼 선수는 양보하겠네.”

베르덴이 마력회로를 전력으로 활성화했다.

상대는 역전의 마도사다. 힘 조절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베르덴의 주위로 마력이 휘몰아쳤다. 농밀하게 집중된 마력이 강한 물리력을 띠기 시작했다.

마력의 파도가 삽시간의 에드몬을 덮쳤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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