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72화 (172/366)

172화 후폭풍 (2)

비행정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전략 병기로 취급된다.

소규모 비행정이라고 해도 외부 충격을 막아 내는 방어용 마법진의 성능은 뛰어난 편이며, 수십 명의 기사들과 그들이 약 1개월간 먹고 마실 물자들도 어렵지 않게 수송할 수 있다.

엔진 역할을 하는 마석은 한번 완충되면 조종사의 능력 여하에 따라 3개월은 운항이 가능하다.

여기까지가 비행정의 기본 성능.

여기서 천문학적인 개조를 받거나 수송 인원에 따라 그 성능은 감히 비교할 수도 높아진다.

공격용 마법진 혹은 마법사들을 이용한 마법 폭격.

좌표를 지정해 먼 거리를 한순간에 뛰어넘는 공간 이동.

고도의 투명화를 사용해 적들의 후위를 궤멸해 버리는 기습. 그와 더해 엔진 마석을 폭주시킨 뒤, 비행정째로 들이받아 도시의 기능을 마비시킬 위력의 자폭까지.

“하나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아가씨?”

에드몬의 잔소리에, 병상에 누운 칼리아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몇 번이고 비슷한 훈계를 들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주검의 영광을 토벌하기 위해서라곤 하나 비행정을 훔친 건 훔친 거였으니까.

이건 칼리아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었다.

‘그래도 1시간 내내 잔소리를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안 그래도 부상 때문에 힘든데.

칼리아가 괴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에드몬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이런, 제 잔소리가 너무 길어졌군요. 안 그래도 몸이 아프실 텐데.”

“……개의치 마라.”

“아 그렇다고 개의한 적은 없습니다. 저는 언제나 아가씨의 선생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잔소리 좀 했다고 미안한 마음이 들 때는 한참이나 지났지요. 하물며 비행정을 훔친 분에게는요. 안 그렇습니까? 허허허!”

에드몬이 껄껄 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자하면서도 단호한 웃음소리였다.

“그나저나 아가씨와 베스파 단장을 포함해 많은 분이 다치셨더군요. 솔직히 말해 사망자가 없는 게 이상할 정도로.”

벨로스에 탑승한 백결 기사단와 교구의 성기사단 그리고 베르덴까지.

그들은 전원 에드몬이 타고 온 대규모 비행정 ‘솔리드렌’으로 거처를 옮겼다. 후작가의 병력들 수백 명의 감시하에 말이다.

……그런데 사실 말이 감시였지 실상은 구호 활동이었다.

구속을 하려 해도 죄다 환자들뿐이었으니까.

갑옷과 방패 그리고 검에는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로난데르트 주교와 성기사들 덕분이지. 그들이 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신성력을 한계까지 쏟아부어 즉사만큼은 면하게 했으니까.”

“그렇군요. 주교가 기절하고, 성기사단장은 한쪽 팔이 잘릴 정도라…… 평소의 범죄자 소탕과는 수준이 다른 전투가 벌어졌겠습니다.”

칼리아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려 하자, 에드몬이 제지했다.

“사건의 모든 전말을 가장 먼저 들어야 하는 건 에스퍼렌사 후작 각하입니다. 그러니 제게 설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몰라도 도울 거니까요.”

“그래도…….”

“뭐,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아가씨를 추적하면서 교구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어느 정도 파악했으니까요.”

피와 시체로 가득한 교구.

그 끔찍한 광경은 에드몬조차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서 듣자 하니 흑마도사에게 습격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아가씨께선 분명 그 흉수를 추적하기 위해 비행정을 훔치신 거겠죠.”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아가씨께서 최선이라 생각하셨으니 분명 그렇겠죠. 으음, 그렇긴 하지만 아가씨의 행동력은 참 무섭습니다. 작위를 물려받기 전, 그 거침없었던 후작 각하께서도 비행정에는 감히 손도 못 대셨는데.”

“글쎄, 아버지께서 나와 같은 상황이셨다면 비행정을 모조리 훔치셨을지도 모르지.”

“허허허! 그럴지도 모르지요. 한데…….”

에드몬이 정갈한 수염을 어루만졌다.

“어떻게 그 흑마도사를 토벌하실 수 있었던 겁니까? 이거 하나는 몹시 궁금하군요.”

흑마법은 마법 특성상 신성력에 취약하다.

그런데 그런 불리함 속에서 주교가 지키고 있는 교구를 반파시켰다. 칼리아가 강하다고 하나 그만한 강자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칼리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야 모르지? 내가 토벌하지 않았으니까.”

“오, 그렇다는 건 그 애셔라는 마법사가 토벌했겠군요.”

“알고 있었나?”

“그야 물론이죠. 그중에서 제가 실력을 모르는 사람은 그 마법사 하나뿐이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상처 하나 없는 것도 굉장히 눈에 띄고. 더군다나…….”

에드몬이 자신의 목 부근을 톡톡 두들겼다.

“후작가의 징표를 받은 사내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아가씨에게 인정을 받을 만한 실력자라는 건 자명하겠죠. 그래도 설마 다이나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걸 허락하실지는 몰랐습니다. 무려 25억 엘크나. 제가 분명 함부로 보증 서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보수에 대한 대가였다. 그리고 나는 아무에게나 보증을 설 정도로 멍청이가 아니야.”

“그럼 그 마법사가 아가씨의 신뢰를 받을 정도로 믿을 만한 자라는 겁니까?”

“이미 목숨을 두 번이나 빚졌다. 그만하면 믿을 만하지 않나?”

칼리아의 눈빛은 올곧았다.

목소리에서는 마법사에 대한 호의가 넘쳤다.

“오오……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욱 궁금해지는군요.”

4위계 전격 마법사라고 알려진 젊은 마법사가 어떻게 흑마도사를 토벌할 수 있었을까.

소문과의 괴리.

고위 속성을 깨우친 미지의 마법사.

에드몬에게서 마법사 특유의 호기심이 강하게 일기 시작했다.

지금 그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평소의 인자함과 거리가 멀었다. 호승심이 깃든 역전의 마법사의 그것이었다.

칼리아가 말했다.

“에드몬 할아범, 마음은 이해하지만 애셔를 시험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허허허! 아가씨의 사람이라 챙기시는 겁니까? 걱정 마시길. 절대로 다치게 하지 않을 테니…….”

“그 반대다.”

“……네?”

당황한 에드몬이 눈을 깜빡였다.

그는 5위계의 상위에 다다른 마법사이며 숱한 전장 속에서 살아남은 ‘역풍’의 마도사다.

굳이 서열을 매기자면 왕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흑마도사를 토벌했다고 한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에드몬의 상대가 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반대라니?

“진심이십니까?”

칼리아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글쎄? 나는 충고했다.”

칼리아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

부상 탓에 피곤했는지 뭐라 할 새도 없이 잠에 들었다.

에드몬이 멍하니 칼리아의 얼굴을 바라봤다.

‘오히려 내가 다칠 거라고?’

장난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진의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아픈 환자를 깨우면서까지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물어봤자 알려 줄 것 같지도 않았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칼리아 아가씨.’

애셔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 와라.

이건 다름 아닌 에스퍼렌사 후작이 직접 명령한 것이니. 호기심을 억누른다고 해도 그를 시험하는 건 확정이었다.

‘물론 각하께서 직접 주문하지 않으셔도 내가 알아봤겠지만.’

과연 언제 대면하는 게 좋을까.

당장 만나 보고 싶지만 비행정 위에서 일을 벌이는 건 위험하다. 얘기만 나눈다 해도 도중에 호승심을 참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으니까.

에드몬은 자신의 욕망이 얼마나 강한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래, 그때가 좋겠군.”

에드몬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방을 나섰다.

* * *

유일하게 상처 하나 없던 베르덴은 홀로 방 하나를 배정받았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최고급 여관에 버금가는 인테리어가 갖춰져 있었다.

‘소규모 비행정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군.’

솔리드렌이라 했던가.

도중에 보니 공국의 비행정 ‘리시드’보다는 느리긴 했지만, 그 크기만큼은 눈대중으로 비교해 봐도 리시드의 세 배를 가뿐히 넘어섰다.

그야말로 대규모 비행정이란 범주에 적합했다.

‘마음 같아선 어떤 마법진이 새겨져 있는지, 동력 구조가 어떤지 알아보고 싶지만…….’

베르덴은 현재 운신이 자유롭지 않았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 비행정을 탈취한 공범 중 하나인 건 분명했으니까.

물론 진짜 범죄자 취급을 받는 건 당연히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저기 헤집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어차피 확인할 것도 있고.’

생각을 전환한 베르덴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공간가방에서 검게 그을린 가방 하나를 꺼냈다. 백골의 비올라가 가지고 있던 공간가방이었다.

과연 이 안에 뭐가 들어 있을까.

주검의 영광과 관련된 것이 있을 수도 있고, 마도사였던 만큼 희귀한 마법 물품이 있을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기대감을 품은 채 공간가방을 개방했다.

“……!”

가장 먼저 나온 건 불길함이 느껴지는 검은 책이었다.

물질 계열 흑마법서.

‘역시 가지고 있었군.’

마법서는 마법사라면 누구나 원하는 마법 물품. 그 강화 효과는 관련 마도에까지 미친다.

물론 마탑의 마도사라고 해도 마법서를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긴 하나, 주검의 영광이라는 미지의 조직에 몸담고 있었으니 구하지 못할 건 아니었을 것이다.

듣자 하니 외견과 달리 상당히 나이도 많은 것 같았고.

‘내가 쓸 수 없는 건 아깝지만…… 주인을 찾으면 비싼 값에 팔아넘길 수 있겠지.’

미리 개방되어 있긴 하다만.

그렇다고 해도 그 가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어 베르덴이 다음 물건을 꺼냈다.

이번에도 책이었다.

그런데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제목부터 내용까지 생전 처음 보는 문자로 이루어져 있었으니까.

‘고대 언어인 건가?’

베르덴은 고대 역사에 깊은 지식은 없다.

그래도 살면서 상당한 수의 책을 읽어 온 만큼. 모르는 분야라고 해도 약간의 지식 정도는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 글자의 출처가 무엇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거기다 본 적이 없는 종이 재질이었으며, 각 페이지마다 세월의 풍파가 여실히 느껴졌다. 어쩌면 이 문자는 고대에서조차 잊혔을 정도로 오래된 것일지도 몰랐다.

‘뭐, 결국은 골동품이군.’

기대감이 하락했다.

뭔가 이대로 가도 직접 쓸 만한 건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이내 베르덴이 공간가방을 뒤집어 탈탈 털었다.

하나하나 확인하며 실망할 바에는, 크게 한번 실망하는 게 나을 테니까.

툭. 투둑.

꾸겨진 돈다발 몇 개와 굳은 피로 더렵혀진 장신구들이 떨어졌다. 당연하다는 듯이 마법 물품은 하나도 없었다.

쯧. 베르덴이 혀를 찼다.

그러던 순간 번쩍거리는 무언가가 침대 위에 떨어졌다.

“……뼈?”

그것도 황금으로 이뤄진 사람의 뼈였다.

구조나 크기로 보아 대퇴골 같은데, 아주 희미하게 마력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마법 물품의 일종인 모양.

하지만 그냥 물건은 아니었다.

‘마법진이 아닌, 사령의 기운 자체로 봉인된 황금 뼈라.’

딱히 저주나 이런 게 걸려 있는 게 아니라 손을 대도 무방했지만 느낌상 그림 리퍼에 버금가는 불길함이었다.

대체 마법 물품으로 보이는 이 황금뼈가 뭐길래 이렇게 봉인되어 있는 걸까.

마법사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엔 충분했지만 베르덴의 마법과 지식으로는 봉인을 해제하는 게 불가능했다.

‘적어도 대주교급의 신성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면 풀 수 없겠지.’

지금으로서는 봉인을 푸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그 후 비올라의 공간가방에서 더 나온 건 없었다.

결국 얻은 건.

흑마법서.

그을린 공간가방.

읽을 수 없는 고서.

봉인된 황금의 대퇴골.

그리고 수백만 엘크와 더러운 장신구 몇 개.

이게 전부였다.

‘보수가 아닌 전리품이긴 하지만…… 좀 아쉽군.’

공간가방 외에는 죄다 베르덴이 쓸 수 없는 거였으니.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흑마법서 하나 얻은 걸로 다행이라 생각해야겠지. 고서나 대퇴골을 어떻게 할지는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었고.

뭐, 일단 돌아간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겠지.

신경을 끈 베르덴은 못다 한 휴식을 취하는 데 전념했다.

그리고 그 후 며칠이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 * *

비행정은 교구가 아닌, 대도시 라인즈에 도착했다.

교구의 소식을 접한 에스퍼렌사 후작이 생존자들의 신병을 확보해 안전하게 라인즈로 이송했기 때문이었다.

끔찍한 현장이 남아 있는 교구보다는 라인즈가 더 안전하고 부상을 치료하기 쉬울 테니까.

총 네 대의 비행정이 라인즈 근처에 착륙했다.

에드몬의 지시에 따라 차례로 라인즈에 입성했다.

칼리아가 베르덴에게 말했다.

“나는 곧장 아버지를 뵙고 오겠다. 애셔, 너는 당분간 내 자택에 머물러라. 뭐, 갑갑하다면 라인즈를 떠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활동해도 좋지만 저녁 식사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돌아와 줬으면 좋겠군. ”

하긴 아직 비행점 탈취범이라는 꼬리표를 뗀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칼리아에게서 보수를 받아야 하기에 그 전까지는 라인즈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녁에 보도록 하지.”

칼리아가 베스파와 기사들과 함께 도시 중심부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던 베르덴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방향은 칼리아의 자택이 아닌 라인즈 외곽으로 향해 있었다.

‘에이든, 샤를로트, 샘웰.’

마침 라인즈에 온 김에 이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찾아볼 생각이었다.

거기다 큰 의뢰를 끝낸 지금, 샘웰이 만든 특제 칵테일이 당기기도 했고. 술집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금방 찾을 수 있겠지.

지금의 베르덴은 그 정도 여유를 부려도 별 지장은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베르덴의 앞길을 막아섰다.

“애셔, 잠깐 나와 얘기 좀 하지 않겠나?”

에드몬 로드리너.

그가 스태프를 쥔 채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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