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70화 (170/366)
  • 170화 결착

    그림 리퍼가 실체화되어 있는 때는 한순간.

    베르덴은 그 순간을 조금이나마 더 늘리기 위해, 놈이 강력한 기술을 쓸 때까지 기다렸다. 보다 확실한 기회를 잡기 위해서.

    ‘그게 정신계 저주인지는 몰랐지만.’

    지금의 저주는 회피하는 게 불가능했다.

    하나 애초에 그건 고려하지 않았다. 언데드가 일으키는 저주 따위에 정신이 흐트러질 정도로 평온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으니까.

    이건 예견된 결말이다.

    혜성, 라레니아(Rarenia).

    성신 마법.

    그 두 번째 별이 죽음의 참격을 흔적도 없이 분쇄했다.

    [……?!]

    그림 리퍼의 몸이 움찔거렸지만 피하기엔 늦었다.

    이윽고 밤하늘의 혜성이 그림 리퍼를 집어삼키며 일직선을 관통했다.

    ────콰아아아아앙!

    의식장을 뒤흔드는 막대한 충격.

    벽에 새겨진 크레이터를 기점으로, 몇 줄기 금이 위로 뻗어 나갔다. 이내 천장까지 갈라지며 그 파편 일부가 낙하하더니 노사 앞에 떨어졌다.

    “헉!”

    깜짝 놀란 노사가 주저앉았다.

    그럼에도 그의 시선은 베르덴에게 향해 있었다.

    “무, 무엇이냐. 방금 그 마법은?”

    원소 마법도, 부여 마법도, 흑마법도 뭣도 아니다.

    8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음에도 듣도 보도 못한 마법이라니. 거기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지는 듯한 마력까지.

    “설마 마도라고……?”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저 마법사에게서 마도사 특유의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마력이 봉인당했다고 하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노사가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다잡았다.

    ‘그래, 설령 마도라고 해도 상관은 없다.’

    순간 느낀 불길함 탓에 평정심을 잃은 건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직전의 광경을 다시 떠올려 보면, 그 은하수와 같은 마법은 물리력만을 띠고 있었다.

    그림 리퍼는 물리 저항력이 매우 높다.

    <아스트랄화>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피해는 있을지언정 큰 문제는 없을 터…….

    [카아아아아아아악!]

    “윽?!”

    그림 리퍼의 비명이 고막을 찢을 듯이 긁었다.

    충격이 상당했는지 누더기 안쪽에 있는 어둠이 크게 흔들렸지만, 노사의 시선을 빼앗은 건 그게 아니었다.

    ‘은하수?’

    그림 리퍼의 육체에 어두운 별무리가 아른거리고 있다.

    아무리 낫을 휘두르며 저항을 해 봐도 떨어지긴커녕 꿈적도 하지 않았다.

    별의 잔흔.

    혜성의 격류는 흐름을 거스른다. 별무리가 남아 있는 동안 그림 리퍼는 절대로 실체를 숨기지 못한다.

    물론 노사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가 경악한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놈! 그림 리퍼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아까부터 시끄럽군.”

    <인페르노>

    화아아아악!

    초고온의 불길이 노사를 불태우고 그림 리퍼를 덮쳤다.

    실체를 숨기지 못하는 게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는지 놈이 불길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화염 폭격이 이어졌다.

    <격변>

    <용암격창>

    <화염 폭풍>

    갈라진 대지에서는 솟구친 용암이 누더기를 태웠고, 화염을 품은 대지의 창이 놈의 어둠을 꿰뚫었으며 불길의 소용돌이가 그림 리퍼의 전신을 휘감았다.

    몸부림치던 그림 리퍼가 수직으로 낫을 휘둘렀다.

    화아아아악! 그대로 갈라진 폭풍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불길을 흩뿌렸다.

    ‘이 정도로 놈에게 치명상을 입히기에는 부족한 건가.’

    그렇다면.

    <적광赤光>

    오큘러스에서 홍염의 구체가 사출되었다.

    그림 리퍼의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춘 마법. 이내 놈의 내부에서 거센 화염이 분출했다. 그렇게 누더기의 대부분이 불에 타 버리자 안에 숨겨져 있던 그림 리퍼의 정체가 드러났다.

    [카아…… 악…….]

    듬성등섬한 머리.

    피골이 상접한 몸체.

    기괴하게 자라난 팔과 다리.

    그 추레한 몰골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그림 리퍼라는 이름에 비해 꽤나 별 볼 일 없군.”

    베르덴이 비웃었다.

    그를 본 그림 리퍼가 전신을 비틀었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림 리퍼의 절규가 대기를 뒤흔들었다.

    신체를 넘어 영혼을 압박하는 사악한 기운의 파동. 낫을 대각선 아래로 내린 그림 리퍼가 푸른 불꽃의 눈을 번뜩였다.

    어느새 몸을 되찾은 노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 안 돼! 나는 허락하지 않았단 말이다!”

    노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림 리퍼는 힘을 끌어모았다.

    말릴 새도 없이 영혼 전체를 갈취당한 노사. 순식간에 몸이 바짝 마르더니, 눈앞이 아득해지며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계약자가 쓰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림 리퍼는 힘을 한곳에 집중했다.

    낫에 ‘죽음’이 담겼다.

    심상치 않은 위압감이다.

    베르덴은 이것이 그림 리퍼의 마지막 수라는 걸 직감했다.

    ‘그건 나도 바라는 바다.’

    지치기도 지쳤지만 영묘에서부터 시작된 이 싸움이 지루해질 참이었으니까.

    더블 캐스팅.

    <활염>

    불길을 조종해 주위에 만연한 화염을 허공 위로 끌어모았다.

    본래의 위력을 최대로 강화하기 위한 밑준비. 그리고 베르덴의 마안이 발동되었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화염이 수십 개의 창을 형성했다.

    “불타 죽어라.”

    초열의 비.

    <라그나크>

    허공을 가득 채운 불지옥이 떨어진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림 리퍼는 그에 지지 않고 낫을 휘둘렀다.

    <멸혼>

    영혼을 베어 버리는 참격.

    ‘존재의 격’이 낮은 생명체에게 무조건적인 죽음을 선사하는 최악의 ‘저주’로, 그에 베인 영혼은 어떤 빛에도 구원받지 못하고 영멸한다.

    그 대가는 계약자의 영혼이다.

    보이지 않는 참격이 화염을 통과했다.

    그것은 어떠한 물리력도 갖지 않는, 그저 확정된 저주일 뿐. 베르덴조차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그림 리퍼의 마지막 저주가 그에게 닿았다.

    감히 자신에게 거역한 인간을 멸한다.

    그 사실에 그림 리퍼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저주가 전해졌음에도 그는 죽지 않았다.

    영혼이 멸하기는커녕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

    의문을 느낄 찰나 그림 리퍼는 보고 말았다.

    인간의 내면 속, 푸른 심연에 도사리고 있는 미증유의 존재감을.

    저건 하등한 인간 따위가 품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림 리퍼가 가진 존재의 격을 넘어서는, 고위 언데드라고 해도 감히 쳐다볼 수조차 없는 무언가.

    그렇게 최악의 저주는 실패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실패한 저주는 본인에게 되돌아온다.

    [?!?!?!?!?!?!?!?!]

    <멸혼>이 그림 리퍼의 영혼을 찢어발겼다.

    전신의 모든 구멍에서 검은 피가 솟구쳤고,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한 그림 리퍼가 거대한 낫을 바닥에 떨구었다.

    영혼이 소멸하기 시작한 그림 리퍼가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점차 다가오는 뜨거운 열기.

    죽음을 수확하는 언데드, 그림 리퍼는 스스로의 죽음을 확신했다.

    콰과과과과과광!

    * * *

    의식장 중심이 연기와 탄내로 가득했다.

    콜록! 콜록!

    노사가 기침을 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대체 어떻게 된…… 아!”

    깜짝 놀란 노사가 서둘러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살아 있다.’

    그림 리퍼에게 영혼을 전부 갈취당했을 터인 자신이 살아 있었다.

    다만 완전히 멀쩡해진 건 아니었다. 영혼의 일부만이 돌아온 건지 바싹 마른 피부는 여전했다.

    ‘그래도 산 건 다행인데…… 어째서 영혼이 돌아온 거지?’

    노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연기가 조금 걷히며 바닥을 굴러다니는 사령의 보주가 보였다.

    그리고.

    쩌적────!

    “뭣…….”

    사령의 보주가 산산조각이 났다.

    주검의 영광의 설계도로 만든 사령의 보주는 마력과 사기가 뭉쳐지며 만들어진 것. 다시 말해 물리적으로는 파괴가 불가능하다.

    그런 보주가 손상되는 경우는 두 가지뿐이다.

    첫째, 안에 담겨 있는 기운을 기준 이하로 소모했을 때.

    둘째, 계약이 파기되었을 때다.

    완성된 사령의 보주는 반영구적인 동력을 띤다. 그러니 첫 번째의 경우를 배제한다면…….

    “그림 리퍼가 소멸했다고……?”

    노사는 당혹감에 빠졌다.

    설마 그림 리퍼가 당하다니. 믿을 수 없었지만 그 사실을 증명하듯 봉인된 마력이 돌아왔다.

    그때였다.

    가까이서 감지된 마력.

    노사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틀자 연기 속에서 수많은 얼음 송곳이 일제히 쏟아졌다. 그야말로 불의의 일격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악!”

    연약한 육체에 혹한이 파고들었다.

    이어 뇌격이 쇄도했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직격당한 노사가 바닥에 쓰러졌다.

    “커, 커헉……!”

    ‘제길. 몸이……!’

    마력 저항력이 높아 죽음은 면했다.

    하지만 한기와 감전에 의해 팔다리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력회로 또한 마찬가지.

    거센 바람이 불었다.

    연기가 전부 걷히자 베르덴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신으로 그림 리퍼를 소멸시킨 마법사.

    “아……!”

    끝에서야 노사는 깨닫고 말았다.

    마일드륀으로 보낸 흑마법사의 실종.

    에스퍼렌사 후작가의 조합 습격과 사령의 보주를 회수하러 간 쿤엘의 죽음. 영묘에서 죽었어야 할 칼리아의 생존과 험지에 숨어 있는 의식장의 추적.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비올라의 죽음과 그림 리퍼의 소멸까지.

    ‘생각해 보면 놈이 왕국에 나타난 시기부터 일어난 일이었다.’

    그래, 변수는 칼리아 따위가 아니었다.

    “네놈이…… 네놈이 변수였구나……!”

    “나에게 변수는 네놈들이었다.”

    덕분에 조합에서 시작된 것이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래도 딱히 나쁘지만은 않았다.

    보수뿐만 아니라 5위계에 오르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그 힘이 마도사에게 통용되는지도 확인을 할 수 있었으니까.

    ‘뭐, 당연히 본인들이 의도한 건 아니겠다만.’

    어쨌든.

    “주검의 영광, 너희들의 목적은 뭐지?”

    “네, 네놈…… 그걸 묻기 위해 날 살려 둔 건가?”

    “얼마 전까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흑마법사들의 자멸.

    왕국 남부에 풀린 언데드 군세.

    마도사와 강대한 언데드.

    그렇게나 정보를 숨기고, 그렇게나 강대한 힘을 가진 조직이 뭘 숨기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다면 마법사가 아니었다.

    노사가 피를 토하며 웃었다.

    “크크큭, 내가 말해 줄 것으로 보이나? 그렇게 가볍게 입을 놀렸을 거라면 흑마법사들에게 저주를 새기지도 않을 텐데. 그리고 그 저주는 나에게도 새겨졌다.”

    “하긴 그렇겠지.”

    “하지만…… 쿨럭, 쿨럭! 크흐…… 특별히 저주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이것 하나는 말해 주마.”

    노사가 이를 드러냈다.

    붉게 물든 치아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위대한 주검이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시는 그날, 불멸의 세상이 찾아올 것이다.”

    “불멸의 세상?”

    “오로지 죽음만이 있기에 생명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세상이다. 쿨럭, 쿨럭! 너희는 물론이거니와…… 어떤 도시도, 왕국도, 제국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루아스, 그 거짓된 신까지!”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베르덴을 직시했다.

    “이건 너희들의 미래에 내리는 저주다. 크크큭! 어디 한번 힘껏 발버둥 쳐 보거라. 어떠한 생명도 피할 수 없는 죽음에게서……!”

    이윽고 노사의 눈에서 빛이 사그라들었다.

    “우리는…… 그날이 오기를 죽음 속에서 기다리리라.”

    툭.

    노사의 손이 떨어지며 스스로의 사망을 선고했다.

    퍼엉! 다른 흑마법사들처럼 시체가 폭발하며 핏물 외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줄기처럼 흘러 내려온 피가 베르덴의 발치에 닿았다.

    피 웅덩이에 베르덴의 얼굴이 반사되었다.

    ‘불멸의 세상이라. 또 거창한 게 나왔군.’

    글러트니는 구인류의 종말을.

    주검의 영광은 불멸의 세상을.

    하나같이 세계를 뒤집는 게 목적이다.

    대체 이처럼 정신 나간 집단이 얼마나 더 있을까.

    베르덴은 세상이 넓다는 걸 새삼 느꼈다.

    ‘어쨌든 이걸로 놈들은 전부 처리했다.’

    베르덴이 할 일은 다했다.

    그대로 발걸음을 돌린 그가 칼리아에게 다가섰다.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다행히도 글로스는 아직 살아 있었고 호흡도 전보다 안정적이었다. 상태로 보아 치료를 받기 전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칼리아가 물었다.

    “애셔, 너는…… 아니, 당신은 누구입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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