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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68화 (168/366)
  • 168화 그림 리퍼 (1)

    치이이익…….

    단말마의 비명이 사라진 자리에는 식지 않은 열기와 검게 탄 잿더미만이 남았다.

    백골의 비올라.

    교구에서 학살을 벌였던 흑마도사의 최후였다. 그녀의 마력이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한 베르덴이 지면으로 내려갔다.

    “후우.”

    베르덴이 작게 숨을 털었다.

    마법전의 시작과 끝.

    시종일관 베르덴이 근소하게 우위를 점했으며, 장비 파손이나 작은 찰과상 외에는 이렇다 할 피해도 입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그게 여유를 뜻하는 건 아니었다.

    베르덴이 가진 방대한 마력량.

    아직도 마력은 충분히 남아 있지만, 베르덴의 기준에서도 상당한 마력을 소모했다.

    그와 더해 수십 개의 마법을 연산한 탓에 머리가 뜨거웠다. 근접전 도중 <육체증폭>을 사용하기도 한 터라 몸에 부담이 쌓이기도 했고.

    ‘그리고 상대는 마도사였다.’

    법칙에서 일부 벗어난 마도.

    그리고 그러한 마도에서 탄생한 고유 마법은 통상의 위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베르덴은 차분히 비올라의 마도를 분석했다.

    고유 마법을 가진 마도사에게 섣불리 전력을 드러내는 건 하책이었으니까.

    비장의 수단이란 상대가 만전의 상태일 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대응할 수 없음을 확신할 때나 쓰는 거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적어도 베르덴에겐 그러했다.

    이렇듯 난생처음으로 벌인, 마도사와의 마법전.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로를 느끼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하나였다.

    ‘내가 이겼다.’

    베르덴의 마법이 마도를 무너뜨렸다.

    물론 마도는 사람마다 가지각색이기에, 같은 마도사라고 해도 천차만별이기는 하나, 뭐가 됐든 간에 비올라는 마도사였다.

    즉, 베르덴의 전력은 마법사가 아닌 마도사에 비견된다는 뜻.

    ‘만약 지금 상태에서 마도를 개척한다면 어떻게 될까.’

    가히 상상히 가지 않는다.

    어떤 마도를 개척할지도, 그 힘이 얼마나 강할지도.

    뒤늦은 승리의 고양감과 훗날의 기대감이 베르덴의 가슴속을 채웠다.

    “……?”

    그때, 베르덴의 시야에 뭔가 비쳤다.

    앞으로 걸어가자 비올라의 잿더미 안에서 검게 그을린 가방이 보였다. 베르덴이 가진 가방과 비슷한 느낌이 나는 걸 보아 공간가방의 일종일 터.

    아무래도 비올라가 방패가 되어 준 덕분에 운 좋게 재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 안에 뭔가 들어 있을까.

    당장 확인하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베르덴이 시선을 돌려 통로로 향했다.

    전부터 연이어 느껴졌던 불길한 파동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상으로 짙은 죽음의 기운이 감지된다.

    굳이 비교하자면, 빛이 들지 않는 동굴에서 맞닥뜨린 엘더 리치를 훨씬 웃도는 수준.

    비올라의 공간가방을 챙긴 베르덴.

    그가 망설임 없이 지하 아래로 향했다.

    * * *

    시체 탐식자 두 마리가 지면에 쓰러져 있다.

    글로스와 칼리아에게 중위 언데드를 토벌하는 건 약간의 시간이 들 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허억, 허억…….”

    한쪽 어깨를 축 늘어뜨린 글로스가 가파른 호흡을 내쉬었다.

    견갑이 박살 나 시퍼렇게 멍이 든 어깨가 그대로 드러났다. 뼈가 부러진 터라 치유의 기적으로는 곧장 치료가 불가능한 부상이었다.

    그런 글로스의 앞에는 칼리아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녀 또한 글로스 못지않게 처참했다.

    무지막지한 충격에 진탕된 내장. 크게 우그러진 갑옷이 복부를 억누르고 있던 탓에 고통이 신경을 억눌렀다.

    이를 단단히 깨문 칼리아가 손으로 갑옷의 틈새를 움켜잡았다.

    “흐으읍……!”

    ───콰지지직!

    부서진 갑옷 조각이 저 멀리 바닥을 굴렀다.

    조금이나마 호흡이 수월해진 칼리아가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켰다. 지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앞을 바라봤다.

    “나와 계약한 그림 리퍼를 상대로 조금이나마 버티다니.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실력이 뛰어나군.”

    짝. 짝. 짝.

    노사가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그런 그의 앞에는 거대한 사신이 둘을 응시하고 있었다.

    칼리아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세상에 저런 언데드가 존재하다니……!’

    그림 리퍼.

    놈이 들고 있는, 대략 3미터에 육박하는 낫에는 둘을 압도하는 힘이 담겨 있었으며 저 언데드의 근처에 다가간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가 엄습했다.

    정신을 보호해 주는 기적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통하지가 않았다.

    고작 두 번의 공방.

    그것만으로도 칼리아와 글로스가 깨닫기에는 충분했다. 저건 상위 언데드인 죽음의 기사를 넘어선 존재라는 것을.

    식은땀이 흘러내려 턱끝에 맺혔다.

    “왜 이렇게 얼굴이 굳었나? 방금 전까지 보여 줬던 기개는 어디로 가고.”

    “…….”

    “쯧쯧, 이제 와서 후회가 좀 되나 보군. 그러게 조용히 지내지 그랬나. 방해만 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이미 왕국을 떠났을 텐데. 대체 왜 끼어들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냐 이 말이야.”

    노사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비아냥에도 둘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호흡을 고르며 그림 리퍼를 토벌할 방법을 떠올리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글로스 단장.”

    칼리아가 글로스를 불렀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둘이 동시에 검을 들었다.

    누가 신호를 보낼 필요도 없이, 동시에 정면을 향해 내달렸다. 마치 타오르는 불길에 자진하는 불나방과 같은 꼴에 노사가 비웃었다.

    “죽여라.”

    그림 리퍼가 낫을 당겼다.

    질척거리는 사령의 기운이 칼날에 모였고, 이내 휘두르자 생기를 앗아 가는 죽음의 참격이 무수히 쏟아졌다.

    누군가 막아야 한다.

    칼리아가 앞장서서 참격을 튕겨 내려고 하자, 빛에 휩싸인 글로스가 칼리아의 앞을 가렸다.

    “하아아아압!”

    전력을 개방한 글로스가 참격을 베어 갈랐다.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 셋에서 넷…… 미처 막지 못한 사령의 칼날이 글로스를 베어 갈랐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내 그림 리퍼의 참격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글로스가 도약했다.

    “루아스시여!”

    화아아아악!

    가지고 있는 신성력을 모조리 긁어모아 검에 집중시켰다. 언데드를 멸하는 빛의 힘. 글로스가 신성을 빛내며 힘껏 검을 내뻗었다.

    그 순간, 그림 리퍼가 흐릿해졌다.

    “뭣?!”

    <아스트랄화>.

    글로스가 미처 알지 못한 그림 리퍼의 능력.

    비물질계로 들어선 그림 리퍼에겐 어떠한 물질적 작용도 해를 끼칠 수가 없다. 아무리 화력이 강한 마법도, 아무리 강력한 검기라고 해도 말이다.

    달리 말해 무적에 가까운 상태.

    글로스가 놈의 몸을 통과했다.

    모든 여력을 끌어낸 일격이 허무하게 무위로 돌아갔다. 바닥을 낙하한 그에게 거대한 낫이 날아왔다.

    촤아악!

    흩어지는 선혈.

    검을 든 한쪽 팔이 허공에 떠올랐고 충격을 견디지 못한 글로스가 수차례 지면을 굴렀다.

    “크으윽…….”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잘린 팔에서 피가 새어 나올수록 정신이 점차 흐릿해졌다. 글로스의 검이 피 웅덩이에 잠겼다. 반면에 그림 리퍼는 아주 멀쩡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글로스의 희생은 의미 없지 않았다.

    ‘부디…….’

    서서히 닫혀 가는 시야.

    그 안에는 그림 리퍼를 넘어 노사에게 육박하는 칼리아가 비쳤으니까.

    * * *

    백영白影.

    잔상을 남긴 칼리아가 최고 속도로 노사에게 쇄도했다.

    그림 리퍼를 상대할 수 없으면, 놈을 불러낸 자를 처리한다.

    그게 칼리아와 글로스가 생각한 유일한 해답이었다. 성기사단장 글로스가 시선을 끌어 준 덕분에 생겨난 기회.

    ‘절대로 놓칠 수 없다.’

    양손으로 검을 붙잡고 질주하는 속도 그대로 몸을 회전시켰다.

    회전력이 검로에 담기며 위력을 증폭한다. 순식간에 노사의 지척에 닿은 칼리아가 백색의 기를 방출했다.

    백일경白一景.

    칼리아가 가진 최강의 기예.

    모든 기운을 쏟아부은 마지막 일격. 그 속도는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촤아아악!

    한 줄기 백색의 검기가 노사를 수평으로 양단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왼쪽에 있던 칼리아의 검이 오른쪽에 멈춰 섰다. 칼날에는 피조차 묻지 않았다. 오로지 검기의 잔상이 남아 노사를 베었음을 증명했다.

    ‘잡았다.’

    칼리아는 확신했다.

    이어 절단된 노사의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계약자를 죽였으니 그림 리퍼 또한 영향을 끼쳤을 게 분명할 터.

    “하지만 네 생각은 틀렸다.”

    “……?!”

    바닥에 널브러진 노사의 머리가 말했다.

    당혹에 물든 칼리아가 주춤거리자 노사가 히죽 웃었다.

    “그림 리퍼의 계약자는 그림 리퍼의 일부가 된다. 애석하게도 나는 본체가 아니라는 뜻이지.”

    노사의 몸이 검은 연기로 변했다.

    그리고 그림 리퍼의 그림자에서 다시 태어났다. 상처 하나 없이.

    “본체는 그림 리퍼다. 그러니 그림 리퍼가 소멸하지 않는 이상 나는 다치지도 죽지도 않는 불사의 몸을 갖게 되는 셈이지.”

    그림 리퍼를 불러내기 전.

    칼리아는 확실하게 노사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림 리퍼가 나타난 뒤 치명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었고.

    ‘설마 그게 영구적인 것이었단 말인가……!’

    무슨 짓을 해도 죽지 않는 불사라니. 그런 건 들어 본 적조차 없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한낱 귀족의 여식이 가진 지식 따위야 보잘것없는 게 당연하니까. 그러니 겁도 없이 여길 찾아왔겠지. 그리고 내 언데드들을 지나쳐 온 걸 보면 네가 아끼는 백결 기사단과 성기사들까지 대동했을 테고.”

    백결 기사단.

    그 단어에 칼리아가 몸을 움찔거렸다.

    “너희 둘을 죽이고 나면 다음으로 네 부하들 차례다.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산 채로 난도질을 한 뒤 구울들에게 먹이면 꽤 좋은 그림이 될 테지. 안 그런가?”

    “네놈……!”

    “화가 나나?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리고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이지. 우리를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하다못해 여길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아, 기대되는군. 죽음을 앞에 둔 기사들은 대체 뭐라고 하며 널 원망할까.”

    저건 도발이다.

    뻔하고 저열한 속삭임.

    하지만 그걸 알고 있음에도 칼리아의 정신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림 리퍼가 가진 힘은 위에 있는 토벌대를 전멸시키고도 남았으니까.

    결국 칼리아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닥쳐라!”

    칼리아가 백색의 검을 번뜩였다.

    그림 리퍼에게 달려들어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으나 <아스트랄화>를 사용한 그림 리퍼에게는 무의미했다.

    이내 다시 실체를 가진 그림 리퍼.

    놈이 낫을 휘드르자 칼날이 아닌 막대 부분이 칼리아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콰앙!

    “커억?!”

    나가떨어진 칼리아가 벽에 부딪혔다.

    손에서 떨어진 검이 지면을 굴렀다. 어떻게든 다시 검을 잡으려 했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있는 게 전부일 뿐.

    “끝났군.”

    손쉽게 무력화된 칼리아와 글로스.

    이제 더 이상 변수는 없다.

    그 사실에 노사는 속이 후련했지만 한편으로는 짜증이 치솟았다.

    ‘그림 리퍼와 계약한 게 3왕자가 아니라 내가 되다니. 빌어먹을.’

    그림 리퍼는 계약자에게 강대한 힘을 쥐여 준다.

    하지만 그 힘에는 두 가지 대가가 따른다.

    첫째, 영혼 갈취.

    그림 리퍼의 힘을 빌릴수록 계약자는 영혼을 서서히 빼앗긴다.

    육체 자체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지만 그렇기에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져갔는지 느낄 수가 없었다. 언제 돌연사할지 모르는 상황.

    그리고 둘째, 봉인.

    계약이 유지되는 동안 계약자가 가지고 있는 힘은 봉인된다. 노사가 배워 온 마법도, 그가 개척한 마도까지 말이다.

    그렇다고 만들어 낸 사역된 언데드가 사라지거나 하는 건 아니었으나, 지배권을 사용할 수 없는 바람에 언데드를 뜻대로 다룰 수가 없게 되었다.

    지금 노사가 가진 힘은 불사를 제외하면 그저 일반인 수준.

    다른 건 몰라도 평생을 일궈 온 마법을 쓸 수 없다는 건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고 불쾌했다.

    “후우…….”

    노사가 한숨을 쉬며 화를 삭였다.

    그래, 어쩔 수 없었다.

    의식을 아예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인 데다가 변수에 대응하려면 이게 최선이었으니까.

    ‘여기가 그림 리퍼의 의식장만 아니었다면 아무 문제 없었을 텐데.’

    다른 고위 언데드였다면 마을 사람 하나를 잡아다 강제로 계약시켰을 것이다. 계약이 된 걸 확인한 후에 바로 죽여 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그림 리퍼의 계약자는 불사를 갖게 된다.

    그림 리퍼를 소멸시키지 않는 이상 죽지 않는다는 뜻. 만약 그 마을 사람이 그림 리퍼의 힘으로 이리저리 날뛰면 매우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참자. 마법이 영원히 봉인되는 것도 아니니까.’

    ‘세 번째 하인’의 힘을 빌리면 그림 리퍼와의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 테니. 부탁을 들어주실지 의문이기는 하다만.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겨우 작금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넘어갔다.

    어쨌든 의식장이 잘 가동되는지 확인은 마쳤다.

    맡은 임무를 전부 마쳤으니 귀환할 시간.

    노사가 마무리를 하기 위해 그림 리퍼를 움직이려던 그때였다.

    파지지지직!

    “음?!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세 개의 번개의 창.

    화들짝 놀란 노사가 주춤한 사이 전격의 폭발이 노사와 그림 리퍼를 집어삼켰다.

    ‘설마.’

    의식장 내부에서 전격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단 한 사람뿐.

    칼리아가 힘겹게 목소리를 흘렸다.

    “애…… 셔……!”

    베르덴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 *

    의식장의 최심부로 들어선 베르덴이 재빠르게 상황을 살폈다.

    한쪽 팔린 잘린 채 쓰러진 글로스와 벽에 기대어 있는 칼리아. 둘 다 부상이 심하긴 했으나 아직 생기가 느껴졌다.

    베르덴이 의식이 남아 있는 칼리아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보다…… 시피…….”

    칼리아가 힘없이 웃었다.

    그때, 그녀가 베르덴의 손목을 잡고는 작게 속삭였다.

    “애셔…… 저건 위험하다…….”

    계약자인 노사는 몸을 두 동강 내도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이며, 강대한 언데드인 그림 리퍼는 공격할 때를 제외하고 비실체화로 모든 공격을 흘려 보낸다.

    특히나 마법사에겐 어려운 난적이다.

    놈에게 다가가지 않는 이상 어떤 마법도 통하지 않을 테니까. 아무리 강력한 마법사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당장 도망쳐라.

    늦기 전에 위에 있는 토벌대들을 데리고 어서.

    칼리아의 손이 잘게 떨렸다.

    그 모습에 베르덴이 가늘게 눈을 떴다.

    그 칼리아에게 두려움을 심을 정도의 언데드라.

    아무래도 엘더 리치나 죽음의 기사와 같은 상위 언데드는 아닌 듯했다.

    “네놈은 또 뭐냐.”

    의식장의 중심.

    폭발이 가라앉으며 노사와 그림 리퍼가 모습을 드러냈다. 5위계 전격 마법을 맞았음에도 상처 하나 없었다.

    불사.

    그 단어가 뇌리에 스쳤다.

    “애셔……?”

    베르덴이 근처에 있는 글로스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최상급 포션을 뿌려 출혈을 멈추게 한 뒤, 목덜미를 잡아 칼리아 옆으로 옮겼다.

    칼리아가 멀뚱멀뚱 눈을 깜빡였다.

    “지금 뭘…….”

    “금방 처리하겠습니다.”

    베르덴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뒤에서 칼리아가 뭐라고 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내 베르덴이 의식장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그림 리퍼의 곁에 있던 노사가 헛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뭘 하는가 봤더니…… 이거 참 어이가 없군. 난데없이 나타나서 구원자 행세라니. 허세를 부리는 것도 때와 장소를 구분해야 하는 법 아닌가?”

    베르덴이 노사를 바라봤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오만함이 잔뜩 깃들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은 죽지 않는다는, 불사에 대한 믿음과 저 낫을 든 언데드 때문이겠지.

    “웃기는군.”

    글러트니의 송곳니, 루펠.

    과거에 베르덴은 불사를 가진 존재와 싸웠다. 글러트니의 위장이란 공간에서 놈은 저 노인과 비슷한 눈을 가졌었다. 불사이자 불멸이며 신이라고 스스로를 가리켰다.

    그리고 베르덴에게 죽었다.

    마지막에는 삶을 갈구하면서.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활성화된 마력회로.

    베르덴의 주위로 마력이 휘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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