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백골의 비올라 (5)
백골에 본인의 마력을 침투시켜 조종할 수 있는, 비올라의 마도 <백색 죽음>.
처음으로 마도를 개척했을 당시에는 별 특색이 없었다.
기껏해야 뼈의 창과 칼날을 날리는 정도인 데다가 그 백골마저 다른 사체에서 뽑아내 모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세월이 흘러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 결과로 파생된 마도의 능력은 총 두 가지.
첫째, 백골 강화.
비올라의 마력이 깃든 뼈의 경도와 강도는 제련된 강철 무기를 웃돈다.
단순히 그것만으로도 손짓 한 번에 무장된 병사 수십 명은 간단히 절명시킬 수 있는 살상력과 힘을 집중시키면 성문조차 꿰뚫을 정도의 파괴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둘째, 시체 동화.
시체의 골격과 동화된 비올라는 마력 없이도 인위적으로 시체 조종이 가능하다.
인간의 시체를 조종했을 때, 생전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육체에 새겨진 말투와 버릇까지 온전히 재현이 가능하다.
기억을 읽을 수는 없지만, 그 단점은 비올라의 연기력으로 극복했다.
네비론 주교를 암살한 뒤 그 껍질을 뒤집어써서 다른 주교들을 속여 넘긴 것이 그녀의 능력을 증명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비올라의 마도는 암살이나 교란에 적합하다.
실제로 그녀가 주검의 영광에 몸담기 전에는 여러 나라를 거쳐 암살 의뢰를 행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올라가 마법전에 취약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고위 저주로 젊은 육체를 유지하고 있지만 8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다. 그동안 그녀의 손에 죽은 인간만 네 자릿수를 가뿐히 넘으며, 쌓아 온 경험과 지식은 마법사로서도 드높다.
단언컨대 비올라는 명백한 강자.
5위계 중위 마법사인 데다가 마도를 걷는 마도사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기껏 5위계 하위에 다다른 마법사를 죽이는 것쯤은 간단한 일이다.
그래, 그랬어야 했는데.
“…….”
비올라가 자신의 목을 손등으로 훑었다.
찔끔 묻어난 피가 그녀의 눈동자에 비쳤다.
마도사와 마법사의 마법전.
하물며 비올라가 자신 있어 하는, 통상의 마법사에게 취약한 근접전이다. 비올라가 압승하는 게 당연한 격차였고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상처라니.
무엇 하나 불리할 게 없고 유리한 것투성인데 호각……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비올라가 조금씩 밀리고 있다. 그것도 근접전에서 말이다.
마치 자신의 수가 하나하나 다 읽히는 듯한 기분.
‘게다가 저 위력은 또 뭐고.’
비올라의 백골과 엇비슷한 위력의 대지 마법.
저건 기존 위계에서 나올 만한 수준이 절대로 아니다.
마법서로 마법을 강화한 게 분명하다.
그것도 본인이 개방한 마법서를 갖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상대는 마법서가 아닌 스태프 하나만을 들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커넥션(Connection).
마법진을 이용해 마법서와 본인을 상시 연결하고 있다는 뜻
‘그 정도로 고난이도인 마법진을 쓸 수 있다고? 그럼 설마 입구에 있는 마법진을 파훼한 것도…….’
……말도 안 돼.
두 개의 고위 속성을 포함한 다양한 속성.
마법사라고 생각할 수 없는 감각과 반사 신경.
합성 마법을 비롯한, 마력 소모가 높은 마법들을 쏟아 냈음에도 바닥을 보이지 않는 마력량. 하물며 마법진까지.
그야말로 인간을 벗어난 재능이다.
순간 비올라의 뇌리에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주검의 영광의 ‘하인’들.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비올라를 압도했던 초월자의 존재감.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압박감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때, 베르덴이 한 발짝 다가왔다.
그 모습에 비올라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뒷걸음질 쳤다.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본 비올라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내가…… 겁먹었다고?’
그럴 리가 없다.
그럴 수는 없다.
그만한 세월의 격차를 압도하는 재능이라니.
“인정 못 해……!”
비올라가 마력을 끌어모았다.
몸 안에 내재되어 있던 뼈들이 등 뒤로 뻗어 나왔다.
<백익>
백골의 날개.
이내 장장 수 미터에 이르는 날개가 펼쳐지더니, 골격에 붙어 있는 뼈의 깃털들이 곧게 세워졌다.
쇄애애액!
수십 개의 가시가 전면을 향해 쇄도했다.
거의 무차별적인 범위는 쥐새끼 한 마리 지나갈 틈이 없었다.
‘어차피 피할 생각은 없지만.’
이미 비올라와 근접전을 벌이며 마도에 대해 분석했으니.
베르덴이 오큘러스를 비올라에게 겨냥했다.
마력이 집약되며 거센 열기가 대기를 달구었다.
<크리메이트>
붉은 광선이 일직선으로 관통했다.
그 파괴력에 뼈의 깃털들이 튕겨 나가거나 형체도 없이 녹아 버렸다.
정면으로는 막을 수 없다.
위험을 직감한 비올라가 곧장 지면을 찼다.
콰아아아앙!
비올라가 있던 장소를 불태운 화염 광선이 벽에 부딪쳤다. 거센 폭발이 일며 의식장의 폐허가 크게 뒤흔들렸다.
하지만 그건 미끼일 뿐.
<역뢰>
“꺄아아아아악?!”
석재 바닥에서 솟아난 벼락이 비올라에게 적중했다.
기본적인 마력 저항력이 출중한 터라 남들처럼 즉사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충격이 컸다. 바닥에 손을 짚은 비올라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어, 어떻게 땅에서 번개가…….”
설마 마도인 건가? 아니면 아티팩트?
그러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락 블래스터>
거대한 암석이 날아왔다.
감전으로 인해 몸이 일부 마비된 상황.
비올라가 곧장 백익으로 자신을 감쌌다.
암석과 백골의 날개가 부딪쳤다.
굉음이 일며 뼈와 암석의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
직후 전격을 머금은 바람의 칼날이 눈앞에 비쳤다.
암석 뒤에 마법을 숨기고 있었던 모양. 비올라는 뼈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으나, 몸 밖으로 뼈를 내보내려면 약간의 딜레이가 존재한다.
짧은 시간 동안 베르덴은 정확히 그 점을 잡아냈다.
촤아아악!
허벅지에서 작열감이 느껴진다. 육체 내부에 있던 뼈 덕분에 절단되지는 않았지만 근육과 신경이 끊어지며 불타 버렸다.
고통에 신음하며 무릎을 꿇은 비올라. 그녀와 베르덴의 시선이 서로 교차했다.
푸른 심연이 담긴 눈동자.
마치 비올라의 꼴을 비웃는 듯했다.
“감히…….”
으드득.
“감히 날 그딴 눈으로 쳐다봐?!”
비올라의 마력회로가 맹렬하게 기동했다.
폐허에 널린 그녀의 뼛조각들이 허공에 떠오르더니, 날카로운 파편으로 재구성되었다. 그것들이 일제히 베르덴에게 날아갔다.
콰가가가가가가각!
수천 개의 가시가 베르덴이 있던 장소에 착탄했다. 살벌한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가득 피어올랐다.
비올라의 비장의 수단 중 하나.
이걸 맞고도 멀쩡한 인간은 이제껏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거라면 죽었을 거야.’
마력을 대거 소모한 비올라.
그녀가 숨을 가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연기가 걷히며 베르덴이 모습을 드러냈다.
완전히 난도질당해 형체조차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아주 멀쩡하게.
비올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 왜 안 죽어?”
그에 베르덴이 답했다.
“내가 더 강하니까.”
* * *
직전에 펼쳐진 비올라의 마법은 상당했다.
하지만 베르덴을 죽이기에는 부족했다.
<볼텍스>와 <선풍의 장막>의 조합.
강력한 물리력을 가진 바람의 보호막은 뼈 가시들의 궤도를 아래로 비틀었다.
워낙 격렬한 탓에 마법을 수 초간 지속하는 것도 버겁고, 마법 특성상 반복 사용 할 수 없기에 정확한 타이밍을 맞춰야 했지만.
베르덴에게 있어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 강하다고……? 네가? 나보다?”
비올라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살기가 가득 들어찼다.
“이 건방진 애새끼가!”
화아아악!
비올라가 한계까지 마력을 일으켰다.
유형화된 마력이 물리적 형상을 띠었고 그에 따라 비올라가 서 있던 대지가 일부 갈라졌다.
그녀의 손에서 솟아난 뼈의 칼날이 베르덴에게 날아갔다.
“네가 태어났을 땐 나는 이미 마도사였어!”
백골의 창.
“네 부모가 태어나기도 전에 마법의 길에 들어섰다고!”
백골의 화살.
“그런데 고작 5위계에 갓 들어선 마법사 따위가!”
백골의 가시.
“감히 누구한테!”
비올라가 격분하며 마법을 쏟아 냈다.
베르덴이 철저하게 대응하며 막아 내고 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한참이나 어린 마법사한테 이런 치욕이라니.
평생에 있어 이렇게나 극심한 모멸감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죽여야 돼.’
태어난 걸 후회할 정도로 처참하게, 잔혹하게. 사람이라는 걸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분이 풀릴 것 같지 않았으니까.
비올라가 액세서리에 깃든 저주를 발동했다.
그리고 옛날에 손에 넣은, 2세대 덱사르의 보석에 새겨 두었던 흑마법진까지.
<절규>
<망자의 아우성>
<고통의 비명>
<정신 착란>
각종 정신계 저주가 쏟아졌다.
이어 비올라가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눈과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마력회로가 찢어지는 듯한 격통이 일었으나 멈추지 않았다.
폐허의 허공을 잠식하고 있던 백골의 거미줄이 진동한다.
지면에 있던 뼛조각들이 재구성되며 예기를 띠더니 다시금 베르덴을 겨냥했다. 준비를 마친 비올라가 양팔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죽어어어어어!”
<백색 무덤>
비올라의 마지막 수단.
대부분의 마력을 소모한 그녀의 의지에 따라, 지배하에 있던 모든 백골이 베르덴에게 쏟아졌다.
쿠구구구구구!
거대한 거미줄이 떨어지며 공동이 크게 울렸다. 금이 간 천장에서 암석들이 떨어졌고, 벽면에 새겨진 수십 개의 금은 붕괴의 징조를 띠었다.
베르덴이 고개를 들었다.
시야 전체에 가득 들어찬 백골이 보였다.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분명 비올라의 마지막 발악이자 전력일 테지.
확실히 마도사에 어울리는 강력한 마법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성신 마법이 아니라면 대응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베르덴에겐 아니었다.
고된 훈련 끝에 얻어 낸 혼돈 마법, 새로운 비장의 수단.
베르덴이 전력으로 마력을 끌어모았다.
그의 오른쪽 눈동자에 역천의 마법진이 드러났다.
<뇌황>의 파동.
<라그나크>의 초열.
<중력 붕괴>의 물리력.
각각 5위계 집중 마법에 해당하는 마법.
베르덴은 삼원색의 중심으로 그 정수를 뽑아내어 하나의 마법을 창조했다.
마안을 발동해 연산을 생략하자, 베르덴의 주위로 전격과 열기가 뻗치더니 암청색의 막이 형성되었다.
어느새 지척에 다가온 백골의 무덤.
눈동자 앞까지 다가온 뼈의 가시들을 보며 마법을 시전했다.
<혼명混明>
파동이 맥동했다.
원형으로 퍼져 나가는 파괴의 확산. 베르덴을 중심으로 지면이 움푹 파이면서 사방에서 쇄도하던 비올라의 백골이 소멸하기 시작했다.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는 비올라.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암청의 빛이 폐허를 집어삼켰다.
* * *
……빛이 사라진 자리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방금까지 의식장의 폐허를 가득 울리던 소리도, 사방에 가득했던 살기도, 폐허를 하얗게 물들였던 백골의 무덤도 없었다.
허공에 떠오른 베르덴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폐허의 바닥에 작은 크레이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강력한 마법이었으나 정확히 마법 범위만을 제외하고 그 바깥으로는 어떠한 피해도 새어 나가지 않았다.
‘그러니 이 공간이 무너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베르덴이 시선을 돌렸다.
크레이터의 끝에서 비올라가 기어 다니고 있는 게 보였다.
“끄으윽……!”
비올라의 몰골은 참혹했다.
오른팔은 팔뚝 아래로 불타 버렸고, 두 다리는 무릎 아래로 사라져 있었다. 혼명의 범위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대가였다.
“내, 내가 왜 이런 꼴을……!”
비올라가 한쪽 팔로 바닥을 기었다.
타고난 재능이 있었고 스스로의 길을 깨달아 마도사가 되었다. 그녀는 삶의 대부분을 강자로 살아왔다.
그렇기에 이토록 압도적인 힘에 무참하게 짓밟혀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감히……!”
그그그.
비올라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팔다리가 대부분 날아간 데다가 마력까지 거의 다 소모한 상황. 노사의 도움이 절실했다. 비올라는 필사적으로 계단을 향해 기었다.
그 순간 기척이 느껴졌다.
비올라의 눈동자가 기울자, 하늘에 떠 있는 베르덴이 보였다.
잿빛 머리의 마법사.
비올라를 사지로 몰아넣은 괴물.
“꺼져……! 저리 꺼지라고!”
비올라가 남아 있는 뼛조각을 날려 보냈다.
하나 닿지 않았다.
마력이 충분치 않아 위력이 턱없이 모자랐다. 그럼에도 비올라는 발버둥 쳤다.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내가…… 내가 회복만 하면……!”
파지지지직!
비올라의 발악에 대답하듯, 베르덴의 손에 벼락이 맺혔다.
중력의 무게를 품은 암청색의 벼락. 지금의 비올라로서는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죽음이 다가온다.
순간 노사가 한 말이 뇌리에 스쳤다.
───그렇게 안일하게 살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거다, 비올라. 그게 세상이니.
그제서야 비올라의 눈동자에 공포가 깃들었다.
“주, 죽기 싫어…….”
중력의 벼락이 비올라를 겨냥했다.
“죽기 싫다고!”
하나 그녀의 외침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뇌명과 함께 수직으로 떨어진 벼락.
일순간 격통을 느낌과 동시에, 오랜 세월 학살자로서 살아온 비올라의 세상이 암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