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65화 (165/366)
  • 165화 백골의 비올라 (3)

    “침입자라고 하면 교구밖에 없을 텐데 주교는커녕 성기사도 아니고, 새파란 애 한 명이라니. 위선자들은 반대쪽으로 간 건가? 무슨 전력을 이따위로 나눠?”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살을 찌푸린 여자.

    그녀는 단순한 망토가 아니라, 몸에 적합하게 맞춰진 개량형 흑색 로브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새하얀 피부 위로 목걸이나 반지 같은, 액세서리형 마법 물품으로 추정되는 장비들을 착용하고 있었으나, 스태프나 지팡이를 들고 있지는 않다.

    외모로 추정했을 때는 베르덴과 비슷한 나이대.

    여자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여유로움과 오만함이 가득한 눈빛은, 나침반이 없었다고 한들 그녀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고 있었다.

    “네가 교구를 습격한 흑마도사군.”

    “어머, 교구에서 내 본모습을 드러낸 기억은 없는데 바로 알아차렸네. 눈치가 꽤 빠른가 봐?”

    여성, 비올라가 양팔을 활짝 폈다.

    “그래, 내가 그랬어. 나 ‘백골의 비올라’ 정도가 아니라면 교구에서 주교들을 암살하고 정보 교란까지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리고 이건 특별히 말해 주는 건데, 나도 눈치가 꽤 빠른 편이거든.”

    비올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애셔 맞지? 귀족 영애하고 손잡고, 내가 애써서 만든 조합을 망가뜨리는 데 한몫했다고 한 마법사.”

    교구를 반파시킨 흑마도사가 조합을 만든 장본인이라.

    ‘이해가 되는군.’

    남몰래 타인의 껍질을 뒤집어쓸 수 있다면 사람들을 규합하는 것쯤은 일도 아닐 테니까. 거기다 다른 누구도 아닌 주교의 감각을 속일 정도라면 더더욱.

    비올라가 베르덴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는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교구에서 의뢰를 했다고 하기엔 너무 빠른데…… 아니, 그건 그렇고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교구에 추적에 관련된 물건이 있다고는 전혀 못 들었는데. 입구에 있는 고대 마법진은 또 어떻게 부쉈고?”

    생각할수록 솟아오르는 의문.

    어느 것 하나 이해가 되지 않은 터라 비올라는 상당히 궁금한 눈치였다.

    “…….”

    당연하게도 베르덴은 답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상대가 마도사인 걸 확인했으니 대화는 필요 없다.

    정보를 캐내려고 한들 호락호락하게 말해 줄 리도 없고.

    화아아악!

    베르덴이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곧장 마력을 감지한 비올라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질문에 답해 주지 않는 건 그렇다 치는데, 설마 나랑 마법전을 벌일 생각이야? 내가 마도사인 걸 알면서도?”

    비올라는 베르덴의 소문에 대해 알고 있었다.

    4위계 전격 마법사. 그뿐만 아니라 다른 원소 마법들도 수준급으로 다룬다고 말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아무리 고위 속성 마법을 익혔다고 한들 위계의 차이는 명확하다.

    기습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전면에서 마법전을 벌인다면 승산은 당연히 위계가 높은 마법사가 높다.

    더군다나 비올라는 스스로의 마도를 개척해, 위계에 존재하지 않는 고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흑마도사.

    세간의 기준으로 베르덴의 승산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베르덴은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다.

    4위계 마법사 또한.

    “무슨 자신감인진 모르겠는데 너같이…… 응?”

    유형화된 마력이 베르덴의 전신에서 피어올랐다.

    예상했던 것 이상의 마력량에 비올라의 눈이 커졌다. 그 찰나의 순간에 베르덴의 마력이 한곳에 집약되었고 마법 연산 또한 끝마쳤다.

    오큘러스의 끝에 붉은 화염이 맺혔다.

    <프로미넌스>

    터져 나온 홍염의 불길이 비올라를 덮쳤다.

    * * *

    베르덴을 제외한 토벌대가 향한 왼쪽 통로.

    그 아래 작은 홀(Hall)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전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콰앙! 카가가가각!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고, 마법이 착탄한 곳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크윽?!”

    눈먼 얼음 구체에 직격당한 백결 기사 헤딘이 나동그라졌다.

    원소 저항력을 갖춘 갑옷이라고 해도 한기를 막아 줄 수 있을 뿐, 충격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아아아!]

    쓰러진 그의 위에서 스렐레톤 병사가 칼끝을 내뻗었다.

    투구와 갑옷 사이에 있는 연약한 살가죽을 뚫기 전, 헤딘이 가까스로 몸을 비틀었다.

    콰직!

    스치듯 땅에 꽂힌 언데드의 검.

    그 틈에 헤딘이 금속으로 덮인 팔아래로 놈의 검날을 꽉 끌어안았다. 이어 허리를 튕겨 상체를 올리더니, 머리로 언데드를 힘껏 들이받았다.

    스켈레톤 병사가 주춤거리는 사이 헤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을 다잡은 그가, 앞에서 날아오는 언데드의 검격을 흘리고는 남은 손으로 언데드의 머리를 강타했다.

    묵직한 일격에 놈의 투구가 일부 손상되었으나 두개골을 부수긴 어려웠다.

    그러자 언데드의 뒤에서 빛의 검이 나타났다.

    성기사의 일격이었다. 콰앙! 손상된 투구가 깨지고 두개골마저 단번에 꿰뚫렸다. 그대로 체중을 실어 언데드를 양단한 성기사가 헤딘과 마주했다.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고, 각자 다른 언데드를 향해 돌진했다.

    중위 언데드 집단은 강하다.

    숫자도 숫자지만, 이형종답지 않게 진형을 갖추고 있었기에 그러했다.

    그래도 시간만 충분하다면, 난전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아무도 죽지 않고 언데드를 토벌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리고 전장의 중심.

    그 안에서는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후웅───카앙!

    거대한 츠바이헨더에 칼리아가 튕겨져 나갔다.

    분명 검으로 막았음에도 충격을 거의 흘려 보낼 수 없었다. 그만큼 힘의 차이가 크다는 뜻. 바닥을 구른 칼리아가 검을 지면에 박아 제동을 걸었다.

    그러는 사이 글로스와 베스파가 죽음의 기사를 상대했다.

    “하아아아압!”

    둘의 검격이 난무했다.

    죽음의 기사의 검에 끼어들어 궤도를 비틀거나 놈의 갑주에 흠집을 새겼다. 죽음의 기사가 가진 <공포의 오라>가 엄습했으나 이들에게는 빛의 기적이 있었다.

    정신이 무너질 일은 없다. 다만 죽음의 기사는 강대했다.

    “커억!”

    죽음의 기사가 휘두른 팔에 베스파가 나가떨어졌다.

    직후 위에서 떨어진 츠바이헨더가 글로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겨우 검으로 막아 냈으나 견디기가 어려웠다.

    “끄으으으윽……!”

    카가가가각.

    칼날이 맞물리며 서로 비명을 질렀다.

    결국 힘에 밀린 글로스의 무릎이 지면에 닿았고, 날카로운 검날이 그의 얼굴에 점차 가까워졌다.

    “감히 어딜!”

    달려온 칼리아가 검면을 발로 차 떨어뜨렸다.

    뒤이어 어느새 다가온 베스파가 뛰어올라 죽음의 기사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그렇게 생긴 틈.

    동시에 움직인 칼리아와 글로스가 전력으로 죽음의 기사를 베었다. 어깨와 다리. 놈의 갑옷 위로 큰 흠집이 생겼다.

    하지만 강대한 언더데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칼리아와 글로스가 숨을 돌렸다.

    “역시 쉽지가 않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쪽에선 한 번이라도 정통으로 맞으면 중상 혹은 즉사다.

    그에 반해 죽음의 기사는 두꺼운 갑옷으로 철저하게 급소를 지키고 있다. 틈새가 너무 작은 터라 무조건적으로 노리기도 어렵다.

    그러니 충격을 착실하게 입혀 갑옷을 깨부수는 게 답이었다.

    ‘그래도 상황 자체는 나쁘지가 않아.’

    백결 기사단과 성기사단의 합은 썩 잘 맞았으며 홀리 워리어가 언데드 집단의 일각을 맡고 있다. 거기다 부상자가 생길 때마다 로난데르크 주교가 나서서 치유의 기적을 발휘하고 있다.

    놈들의 숫자는 착실하게 줄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변수인 죽음의 기사는 칼리아, 베스파 그리고 글로스가 붙잡고 있다. 이대로만 간다면 승산은 확실했다.

    그 순간.

    ───화아아아아악!

    불길한 파동이 다시금 의식장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전보다 더 주기가 짧아졌다.’

    게다가 느껴지는 기운이 더욱 강렬해졌다.

    저 아래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

    의식장. 그래, 이 장소의 이름을 생각해 봤을 때 사령의 보주로 어떤 사악한 의식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뭔진 몰라도 칼리아로 하여금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불러일으킬 정도.

    ‘여기 있는 의식이 끝날 때까지 언데드들은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나……!’

    지금 상황에 시간제한이 생긴 셈이나 다름없었다.

    ‘애셔가 먼저 내려갔으면 좋겠다만…… 무리겠지.’

    반대쪽 통로도 언데드 집단 혹은 그 이상의 위험이 있을 게 분명하다.

    그에게 의존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어떻게든 나라도 내려가서 놈들의 계획을 차단해야 한다.’

    그런데 죽음의 기사가 철통같이 길을 막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언데드를 토벌하고 가면 늦을 게 분명할 터.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내팽개치고 갈 수도 없었다.

    죽음의 기사를 상대한다면 사상자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도 있기에.

    그때였다.

    다시금 검을 휘두르려는 죽음의 기사를 홀리 워리어가 들이받았다.

    뒤에서 로난데르크 주교가 소리쳤다.

    “칼리아 영애! 글로스 단장! 여긴 우리에게 맡기고 둘은 어서 내려가시오! 저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몰라도 반드시 사전에 막아야 하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러자 주교가 알고 있다는 듯 소리쳤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도 죽지 않게 하겠소! 그리고 그대 둘이 아니라면 안심하고 맡길 수가 없소!”

    의식장은 텅 비어 있지 않을 거다.

    분명 지키는 언데드가 따로 있겠지. 그러한 경우를 따져 봤을 때 적합한 건 칼리아와 글로스가 직접 나서는 게 확실했다.

    개개인의 무력으로 따졌을 때, 둘이 여기서 가장 강하니까.

    가능하면 인원을 더 보내고 싶지만 죽음의 기사 때문에 여기도 벅차다.

    게다가 단장급 실력자가 아니라면 오히려 도중에 발목을 붙잡을 가능성이 높았으니.

    콰직!

    각자 언데드를 부순 베스파와 성기사 겔시아가 말했다.

    “죽음의 기사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다녀오시길.”

    이들의 각오에 결국 둘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로난데르크 주교가 신성력을 방출했다.

    석장과 그의 두 눈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노란빛.

    주교가 석장을 높이 들어 올렸다.

    “루아스시여, 저들에게 신성한 빛을!”

    번쩍!

    주교에게서 막대한 빛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에게는 눈부심조차 일게 하지 않는 따스한 빛. 그에 닿은 언데드과 괴로워하며 주춤거렸다. 그건 죽음의 기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순간 언데드를 혼란에 빠뜨린 때가 적기였다.

    “가시오!”

    그 신호에 칼리아와 글로스가 뛰쳐나갔다.

    [아아아아아아!]

    “어딜!”

    죽음의 기사가 방해하려 검을 휘둘렀으나 닿기 전에 홀리 워리어, 겔시아 그리고 베스파가 막아 냈다. 다른 언데드가 모이는 건 기사단과 성기사단이 철저하게 막아 주었다.

    그렇게 칼리아와 글로스는 무사히 통로를 지나 의식장 깊은 곳으로 모습을 감췄다.

    * * *

    콰아앙! 콰아아아앙!

    강력한 마법들이 오가며 폐허를 뒤흔들었다.

    다리만 남아 있던 조각상은 폭발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녹슨 철창은 얼어붙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폐허의 허공 위, 두 마법사가 고속으로 비행하며 서로를 겨냥했다.

    벼락의 창과 부정 광선이 충돌했다.

    허공을 집어삼킨 뒤엉킨 폭발. 시야가 가려진 사이 베르덴이 마력을 비틀었다.

    <볼텍스>

    중력 소용돌이에 비올라가 휩쓸렸다.

    아래로 곤두박질친 그녀가 마력을 조작하더니 이내 능숙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하늘에 떠 있는 베르덴과 지면에 착지한 비올라의 시선이 교차했다.

    “이거…… 놀랍네.”

    비올라는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4위계 마법사라고 들었는데 5위계 마법사였다니. 게다가 전격 계열을 포함한 원소 마법뿐만 아니라 중력 계열까지 5위계 수준으로 다룰 줄이야.”

    그녀가 자신의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체취나 골격으로 보았을 때, 나이가 서른을 넘지 않은 건 분명한데…… 혼자 독학했을 리는 당연히 없을 테고. 재능은 차치하고 대체 스승이 누구야? 무슨 마탑주라도 되니?”

    비올라는 진심으로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강함이었으니까. 설마 자신의 4분의 1조차 살아오지 않은 마법사와 호각의 마법전을 벌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

    베르덴은 비올라의 질문을 무시했다.

    대신 속으로 방금의 마법전으로 확인한 비올라의 힘을 가늠했다.

    ‘5위계 수준의 흑마법과 빙결 마법 보유. 그리고 상당한 전투 경험까지.’

    마탑을 나온 이후, 마도사를 마주한 적은 이번이 두 번째다.

    공국의 주석 궁정 마법사 페르드가 마도사였다. 그렇다는 건 마도사는 건국되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국가나 소국에서는 최고위 귀족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으며 군림할 수 있다는 뜻.

    백골의 비올라라고 했던가.

    그녀는 베르덴이 역천을 이룬 이래로 적대했던 마법사들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마법전은 시작되지 않았다.

    베르덴이 가진 전력을 전부 드러내지 않았듯.

    비올라 또한 자신의 마도를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언제쯤 마도를 보여 줄 생각이지?”

    “글쎄? 내가 그럴 생각이 들면?”

    그럴 생각이 들면이라.

    베르덴이 마력을 번뜩였다.

    오큘러스에 벼락이 맺혔다.

    구현된 번개의 창에 화염이 깃들자 맹렬한 열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10초도 안 되는 시간에 5위계 합성 마법을 완성한 베르덴이 차갑게 속삭였다.

    “살고 싶다면 전력을 다하는 게 좋을 거다.”

    비올라가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웃기 시작했다. 아주 소름 끼치는 소리로.

    “아하하하하! 나한테 협박이라니…… 대체 이게 몇십 년 만에 들어 보는 건지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는 비올라의 시선은 베르덴을 훑고 있었다.

    화염과 전격의 합성 마법.

    그리고 저 비정상적인 연산 속도는 확실히 마법사로서 위험한 재능이다. 더군다나 마법전에 있어서는.

    “건방지긴.”

    뚝.

    웃음을 그친 비올라에게서 섬뜩한 마력이 감돌았다.

    “좋아. 그렇게까지 부탁하는데 널 죽이기 전에 내 마도를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뚜둑. 뚜두두둑.

    비올라의 골격이 크게 뒤틀렸다.

    이내 그녀의 발밑에서 날카로운, 거대한 뼈의 기둥 다섯 개가 솟아올라 왔다. 그와 동시에 베일 듯한 죽음의 기운과 살기가 폐허를 잠식했다.

    마도 <백색 죽음>.

    “말해 봐. 너는 어떻게 죽여 줄까?”

    비올라가 베르덴을 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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