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64화 (164/366)

164화 백골의 비올라 (2)

고대 의식장의 입구를 통과하자 소리가 사라졌다.

차가운 어둠과 오래된 먼지만이 떠다니는 적막함. 분명히 언데드나 흑마법사가 이곳을 지킬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런 예상과 달리 아무도 없었다.

쥐의 울음소리라도 들려오긴커녕 그 흔한 벌레들조차 일절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난 이끼는 검게 죽어 있었다.

그래도 경계심을 낮추는 일은 없었다.

칼리아가 이끄는 백결 기사단.

글로스의 성기사단과 로난데르크 주교.

그리고 베르덴까지.

주검의 영광 토벌대는 방심하지 않고 더욱 어둠 속을 나아갔다.

그 순간.

───화아아아아악!

“……!”

미증유의 파동이 삽시간에 의식장 전체를 휩쓸었다.

불길한 감각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누군가에겐 익숙한 느낌이다. 사령의 보주를 코앞에서 목도했을 때와 같은 죽음의 기운이었다.

로난데르크 주교가 인상을 구겼다.

“우리가 정화를 시도했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한 기운이오. 어떻게 며칠 사이에 저런 변화를…… 저들이 무슨 짓을 벌일지 도저히 모르겠구려.”

“그래도 이 의식장에 사령의 보주가 있는 건 확실한 모양입니다.”

그렇다는 건 주검의 영광이 이곳에 있다는 뜻이다. 교구를 반파시킨 흑마도사 또한.

주교가 석장을 높이 들었다.

<빛의 축복>

<성의>

루아스교의 기적이 토벌대 전원에게 깃들었다.

따스한 빛은 정신을 보호해 스스로의 의지를 지켜 줄 것이며, 그들을 감싸고 사라진 빛은 사악한 기운이 침투하는 걸 차단할 것이다.

사용 가능 횟수는 하루에 한 번. 제한 시간은 약 두 시간 남짓.

하나 제약이 있는 만큼 기적의 효과는 강력하다. 칼리아를 비롯한 백결 기사단원들이 감탄하며 온기가 가득 들어찬 자신의 육체를 어루만졌다.

베르덴도 손을 쥐었다 폈다. 그러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

뭔가 이상하다.

기적은 제대로 전해졌는데 별 느낌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평소 상태와 아예 똑같았다. 과거 성직자에게서 축복을 받았을 때와 비교해 보면 오히려 효과가 약했다.

‘분명 더 강한 기적인데 이럴 수가 있나?’

그것도 주교의 기적이.

마력으로 신성력을 차단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 루아스교의 기적이 인간에게 작용하지 못했다는 건, 베르덴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

하지만 강한 의문이 들기 이전에 토벌대가 다시 출발하기 시작했다.

지금 중요한 건 주검의 영광을 토벌하는 것.

베르덴은 상념을 지우고 발걸음을 옮겼다.

* * *

그렇게 토벌대의 대열을 유지한 채 나아가자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인위적인 조형물이 가득한 장소. 느낌상 의식장의 중앙으로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니 기둥 하나는 무너져 내렸고, 남은 세 개의 기둥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금이 가 있었다.

붕괴될 위험이 있다.

하지만 그런 사실보다는 눈앞의 상황이 더욱 곤란했다.

“길이 갈라졌다라…….”

지하로 나아가는 계단이 양옆으로 두 개가 있었다.

마력감지를 사용해 통로의 구조라도 파악하려 했지만, 직전의 파동 때문인지 의식장 내부에 죽음의 기운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1위계 마력감지로는 코앞조차 판단이 불가했다.

각 통로가 어디로 나아가는지, 저 밑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으음…… 선뜻 선택하기가 어렵습니다.”

칼리아의 물음에 글로스가 턱을 쓸었다.

전력을 분산해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 통로 하나를 정해 함께 나아가야 할까.

둘 다 장점과 단점이 명확했다.

전자를 택하면 놈들을 더욱 빨리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칫하면 각개격파를 당할 수가 있었다. 교구를 반파시킨 강자가 있는데 전력을 나누는 건 여러모로 꺼려졌다.

후자를 택하면 앞의 단점을 상쇄할 수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게다가 길을 잘못 골랐다고 가정했을 때 상대가 도망칠 시간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

두 통로가 전부 한 장소로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칼리아와 글로스.

서로 수년간 기사단을 운용한 뛰어난 지휘관이나, 이래저래 고민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베르덴이 선언했다.

“오른쪽 통로는 제가 맡겠습니다.”

“……?!”

깜짝 놀란 로난데르크 주교와 글로스가 고개를 돌렸다.

“아, 아니, 혼자 가겠다니…… 그대도 교구를 그 지경으로 만든 흑마법사에 대해서 알지 않소? 그대의 능력 덕분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는 건 인정하나 그렇다 해도 오만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구려.”

“그 말이 맞습니다. 이 상황에 단신으로 움직이는 건 옳지 않습니다.”

차라리 전력을 반으로 나누겠다면 모를까 혼자라니.

이해해 보려 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무모한 판단이었다.

“…….”

그러나 그들과 달리 칼리아와 베스파 그리고 백결 기사단은 침묵했다.

이미 영묘에서 강력한 마법과 말도 안 되는 마력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저 태도가 무조건적으로 허세라고 여길 수가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칼리아가 물었다.

“괜찮겠나?”

“뭣……!”

“칼리아 영애?”

로난데르크 주교는 말문이 막혔고 글로스는 당황했다.

칼리아는 그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베르덴을 직시했다. 마력으로 빛나는 벽안에 그녀의 모습이 반사되었다.

“문제없습니다.”

“알겠다. 그럼 오른쪽 통로는 너에게 맡기겠다. 무운을 빌겠다, 애셔.”

칼리아의 허락이 떨어졌다.

작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한 베르덴이 오른쪽 통로로 발을 디뎠다.

계단 아래로 사라진 그의 뒷모습.

이내 작게 들려오던 발소리마저 아득히 멀어졌다.

* * *

“허…….”

입을 벌린 채 그 광경을 지켜본 로난데르크 주교가 고개를 저었다. 글로스도 칼리아의 판단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에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애셔는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대한 마법사니까요.”

“그래도 혼자 보내는 건 말이 안 되오. 상대에는 교구를 반파시킨, 마도에 이르렀음이 분명한 흑마법사도 있단 말이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곁을 지켜 줄 기사들을 보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둘의 생각은 타당했다.

너무 합리적이라 반박할 거리도 없었다.

하지만 칼리아의 생각으로는.

“……그랬다가 오히려 방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네? 방해라니요?”

“아닙니다. 어쨌든 애셔도 떠났으니 저희도 이만 출발하도록 하죠.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는 건 나중에 해도 될 테니.”

칼리아가 왼쪽 통로로 다가섰다.

결국 설득에 실패한 로난데르크 주교와 글로스는 그녀의 선택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터벅. 터벅.

계단을 내려가자 다시금 통로가 나타났다.

하나 위층과는 다르게 걸음을 재촉할수록 사악한 기운이 더욱 강렬해졌다.

감각을 곤두세운 토벌대에게서는 작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긴장감이 가득한 통로의 끝에 도착하자 작은 홀(Hall)이 나타났다. 그들의 반대편에는 사령의 보주의 기운이 흘러나오는 입구가 하나 있었다.

아마 저기가 주검의 영광이 숨어 있는 장소와 연결되어 있을 터. 하지만 그들은 섣불리 아래로 발을 디딜 수 없었다.

“언데드…….”

홀 전체에 무장을 갖춘 언데드 집단이 있었다.

하나같이 철제 갑옷으로 골격을 보호하고 있으며.

창, 양손검, 한손검, 활, 방패 그리고 스태프와 완드까지. 각자 자신의 무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하위 언데드를 벗어나 중위 언데드에 속한 이형종.

놈들은 마치 군대처럼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그 숫자는 대략 70마리.

그에 반해 백결 기사와 성기사의 숫자는 20명 남짓이었다.

무려 세 배 이상의 차이.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들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존재였다.

쿠웅…… 쿠웅…….

언데드 사이에서 거대한 기사가 나타났다.

등이 굽어 있음에도 무려 3미터에 달하는 거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두른 단단한 판금 갑옷. 놈의 한 손에는 사람 키를 아득히 넘는 기괴한 츠바이헨더가 들려 있었다.

로난데르크 주교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마도사에 이어서 저런 괴물까지 사역하고 있을 줄이야.”

보는 이는 하여금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산 자로 하여금 죽음을 흩뿌리는 상위 언데드. 죽음의 기사(Death Knight).

투구 사이에서 두 개의 푸른 불꽃이 명멸했다.

백결 기사단장 베스파가 검을 다잡았다.

“제 살아생전에 죽음의 기사를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그렇다.”

애초에 자연 발생 되는 언데드는 드물다.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양지를 주거 환경으로 삼는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언데드를 목격하지 않을 때도 많았다.

하위 언데드는 물론이고 중위 언데드 또한 마찬가지.

그럴진대 위험도가 미스릴 등급에 달하는 엘더 리치, 죽음의 기사와 같은 상위 언데드는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설령 만났다고 해도 대부분 살아남지 못하겠지만. 그만큼 죽음의 기사는 위협적인 이형종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기사만 있는 게 아니다.

어둠의 천적, 빛의 대리인을 자처한 자들이 이곳에 있다.

“빛의 전사여! 우리의 앞에 도사린 어둠을 물리쳐 주소서!”

로난데르크 주교가 가진 석장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홀리 워리어>

어둠을 밝히는 빛.

그 안에서 황금 갑옷을 입은 빛의 전사가 나타났다. 홀리 워리어가 치켜든 황금의 검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자, 전열에 있던 언데드가 주춤거렸다.

“고귀한 광명으로.”

기도를 한 글로스와 성기사들이 앞장섰다.

신성력으로 신체와 정신을 무장한 그들에게는 두려움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화아아악!

그 순간, 앞서 느꼈던 불길한 파동이 다시금 의식장 전체를 휩쓸었다.

그러자 죽음의 기사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양손으로 츠바이헨더를 쥐었다.

쿵! 쿵! 쿵! 쿵!

죽음의 기사가 맹렬한 사기를 내뿜으며 돌진했다. 그 뒤로는 언데드 집단이 따라붙었다.

“언데드를 멸하라!”

함성을 지른 성기사단도 달리기 시작했다.

하늘로 도약한 빛의 전사가 언데드 무리에 낙하했고, 성기사단을 따라 백결 기사단도 전의를 한껏 불태웠다.

전력으로 신체 강화를 한 칼리아.

어느새 글로스의 옆에 서게 된 그녀가 뛰어올라 백색의 검을 쳐들었다. 동시에 그 밑에서는 글로스가 검을 아래에서 위로 힘껏 휘둘렀다.

콰아아앙!

죽음의 기사의 대검과 강하게 부딪친 두 개의 검.

그것이 토벌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 * *

베르덴이 홀로 어둠 속을 거닐었다.

무너진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자 불길한 기운은 더욱 거세졌다.

사령의 보주는 이 밑에 있다.

베르덴은 확신했다.

이윽고 통로를 빠져나오자 광활한 공간이 나타났다.

어둠이 만연한 폐허.

벽에는 다리밖에 없는 조각상의 잔해가 남아 있었고, 곳곳에 녹이 슬어 깨져 버린 철창들이 널려 있었다.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명확한 건 하나다. 폐허의 끝에 있는, 지하로 나아가는 통로. 저 아래에서 사령의 보주가 가진 기운이 느껴지는 걸 보아, 베르덴이 택한 오른쪽 통로가 정답인 모양이었다.

‘아니면 두 통로 전부 다 같은 장소로 향해 있거나.’

어쨌든 저 계단을 내려가면 사령의 보주가 있는 장소가 나오겠지.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베르덴이 다른 누구도 없이 혼자 이곳에 온 이유.

시선을 돌려 조용히 블랙 아워의 나침반을 확인했다.

이전보다도 더욱 자침이 맹렬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정확히 홀 중심을 향해. 이윽고 천장에서 그림자 하나가 떨어졌다.

소리 없이 홀에 착지한 인형(人形).

어두운 회색의 단발 머리칼을 한 여인이 베르덴을 직시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너 혼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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