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63화 (163/366)
  • 163화 백골의 비올라 (1)

    로난데르크 주교의 노력 덕분에 교구의 생존자들은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중상을 입은 바이델르 주교 또한 마찬가지.

    그에 더해 마법진이 사라진 탓인지 워렌스의 상태가 더 악화되지도 않았다.

    아직 정신을 차린 사람은 없었지만 상황은 그나마 호전된 상태.

    글로스는 자신이 데려온 성기사를 일부 차출해 교구의 관리를 맡겼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로난데르크 주교가 대신했다.

    강력한 흑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선 주교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니까.

    스르륵.

    로난데르크 주교가 침상에서 눈을 떴다.

    며칠이나 긴장 속에서 신성력을 끌어낸 탓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로가 극에 달했었다. 그렇게 만 하루를 꼬박 잔 주교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방을 나섰다.

    낯선 복도를 지나 바깥으로 나가니, 평화로운 교구의 거리가 아닌 드넓은 상공이 펼쳐져 있었다.

    비행정 벨로스의 갑판 위.

    로난데르크 주교가 지난 일을 되돌아봤다.

    ‘루아스교의 주교인 내가 도둑질에 가담하다니.’

    사악한 흑마법사를 쫓으려면 반드시 비행정이 필요했다.

    그 외에 방법은 없었고, 루아스교를 위해…… 더 나아가 세상을 위해 이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루아스께서도 분명 용서해 주시겠지.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속이 불편했다.

    길거리에서 딱딱한 빵 하나 훔친 것도 아니고, 다름 아닌 전략 자산인 비행정을 탈취한 극악한 중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허허…… 내가 비행정 도난범이라니…….”

    로난데르크 주교는 실없이 웃으며 멍하니 풍경을 바라봤다.

    그러는 한편, 베르덴은 칼리아와 조타실에 있었다.

    능숙하게 비행정을 운용하는 그녀의 모습에 베르덴이 내심 감탄했다. 비행정 운전은 마차를 끄는 것보다 수십 배는 어렵다고 들었었는데.

    베르덴의 시선에 칼리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왜. 귀족 영애가 비행정을 운전하는 게 그리 신기한가?”

    “확실히 신기하긴 합니다.”

    “하긴 그렇겠지. 왕국의 귀족들을 통틀어, 비행정을 직접 다룰 수 있는 건 고작해야 한 손에 꼽을 테니까.”

    “비행정 운전은 가문에서 배우신 겁니까?”

    “자랑할 생각은 아니지만 우리 에스퍼렌사 가문은 총합 다섯 척의 비행정을 보유하고 있다. 테리트 영지에 소규모 비행정 세 척 그리고 라인즈 부근에 남은 두 척이 숨겨져 있지. 왕국 귀족들 중에서 가장 많은 비행정을 보유하고 있던 터라 어릴 적부터 비행정을 타 볼 기회가 많았다.”

    물론 칼리아는 얌전히 앉아 있기만 하지 않았다.

    “슬슬 비행이 익숙해지니까 나도 한번 운전해 보고 싶더군. 그래서 조타수에게 몰래 부탁해 하나씩 기능을 배워 나갔지. 아버지 몰래 운전수에게 부탁해 몇 번이나 조타를 잡아 이착륙을 해 보기도 하고. 실수로 몇 번 부딪히는 바람에 식겁하기도 했었지.”

    칼리아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며 가볍게 추억을 웃어넘겼다.

    저번에 에스퍼렌사 후작에게 근신 처분을 받은 것도 그렇고, 비행정을 훔친 것도 그렇고. 확실히 그녀의 행동력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보다 꽤 이동한 것 같은데, 거리는 얼마나 남았지?”

    베르덴이 슬쩍 블랙 아워의 나침반을 확인했다.

    자침의 방향은 여전히 같았으며 반응은 조금 더 강해졌다.

    “이 속도라면 2일 내지 3일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 그렇군.”

    칼리아가 풍경을 바라보는 척, 슬쩍 베르덴에게 시선을 향했다.

    ‘애셔…… 내 생각보다도 비밀이 많은 사내로군.’

    강력한 마법.

    흑마법사의 추적 수단.

    워렌스에게서 마법진을 제거하기까지.

    칼리아는 특유의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대체 어떻게 살면 저 나이에 저만한 능력을 갖출 수 있었을까. 확실히 압도적인 마법적 재능이긴 하나, 그저 단순히 재능만으로 치부할 건 아닌 것 같았다.

    칼리아는 베르덴이 궁금해졌다.

    헛기침을 한 그녀가 물었다.

    “크흠, 그러고 보니 사령의 보주의 근간을 제거하는 게 전부였을 의뢰가 상당히 복잡해졌군. 영묘에 이어 언데드 사태, 거기다 교구까지…… 여기까지 따라와 준 것에 감사하지.”

    “의뢰의 연장선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사지로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도망치는 게 답이지. 목숨은 하나뿐이니까.”

    목숨은 하나뿐이다.

    그건 베르덴에게만 통용되는 게 아니었다.

    “칼리아 님은 왜 도망치지 않으신 겁니까?”

    칼리아는 베르덴처럼 실질적인 보수를 보장받지 않았다.

    오히려 베르덴을 고용하면서 금전적으로는 이득은커녕 손해만 있을 뿐이다.

    무엇이 그녀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는가.

    그에 칼리아가 답했다.

    “굳이 말하자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칼리아는 귀족이니까.

    귀족은 다스리는 자다.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영지와 영지민을, 더 넓게는 국가를 지킬 의무가 있다.

    주검의 영광은 명확히 영지와 시민을 해하고 국가를 해하는 집단. 당연히 배제할 수밖에. 그런 귀족의 의무를 내팽개치고 도망치는 것은 칼리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고 둘째는.

    “세상이 조금 더 깨끗해지길 바라니까.”

    “……세상 말입니까?”

    “뭐, 솔직히 말해 그저 거창한 목표일 뿐이다. 기껏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왕국 내의 범죄자를 척결하는 게 전부니까.”

    하지만.

    “그것이 내가 정한, 나만의 정도(正道)다. 목적지가 너무 멀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 길을 걷지 못한다는 건 결코 아니지. 단언컨대 내 행동의 결과는 무의미하지 않을 테니까. 이게 내 대답이다.”

    ……세상이라.

    칼리아의 말대로 거창한 목표다.

    왕국에서 수천 명의 범죄자를 처단하고 무고한 수만 명을 구했다고 할지언정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할 테니.

    반면 베르덴의 목표는 개인적인 복수다.

    한 명의 마법사로서 보헤미른 마탑주, 초월자 발로크 베시아스가 쌓은 모든 것을 무너뜨려 그 고고하고 오만한 무릎을 꿇게 하는 것.

    하나 그에 따른 파장은 세상을 크게 진동시킬 것이다.

    그러나 베르덴을 판단할 수 없었다.

    이상(理想)과 원한(怨恨).

    칼리아의 목표와 베르덴의 목표 중 무엇이 더 크고 작을까.

    베르덴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다만 끝내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 * *

    블랙 아워의 나침반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자침의 방향을 다시금 확인한 베르덴이 칼리아에게 말했다.

    “이 부근인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칼리아가 비행정의 고도를 점차 낮췄다.

    후우우우욱.

    드높은 상공에서 두꺼운 구름 막을 통과하자, 깊은 산 너머에 숨겨져 있던 거대하고 깊은 협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왕국에 이런 장소가 있었다니. 꿈에도 몰랐군.”

    협곡의 폭이 상당히 넓다.

    비행정 하나가 들어간다 해도 문제없을 만큼.

    칼리아가 비행정을 운전해 협곡으로 진입했다.

    비교적 방해물이 적은 곳을 찾아, 착륙장치를 가동하여 조심스레 비행정을 안착시켰다. 이내 동력원 역할을 하는 마석에서 빛이 사라졌다.

    주변에 적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난 후 모두가 비행정에서 하차했다.

    베르덴이 앞장섰다.

    “이쪽입니다.”

    나침반의 자침을 따라가며 협곡의 바닥을 탐색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벽면에서 구조물이 발견되었다.

    회색의 석재로 만들어진 문. 그 옆에는 무너진 기둥들이 남아 있었다

    세월의 풍파에 손상된 외형을 상상으로 복원해 봤을 때, 신전이라고 할 법했으나 세간에 알려진 신전의 외형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백결 기사단의 마법사, 그라넨.

    고대 역사의 지식에 일가견이 있는 그가 입구를 살폈다.

    “연식을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오래된 문입니다. 아마 고대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은데…….”

    그라넨이 문에 남아 있는 문자를 조심스레 읽었다.

    “의식장…… 의식장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무슨 의식장인지는 적혀 있지 않은 건가?”

    “앞에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워진 것 같습니다.”

    “그렇군. 그래서 입구를 열 수 있나?”

    고개를 저은 그라넨이 문의 중심부를 가리켰다.

    기하와 문자가 복잡하게 얽힌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입구 자체가 모종의 마법진으로 봉인 상태에 있습니다. 거기가 마법진으로 인해 입구를 구성하는 물질이 강화된 터라 어지간한 금속보다도 훨씬 단단합니다.”

    “물리적으로 부수는 건 무리라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마법진은 파훼하면 열릴 것이다.

    그러나 그건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다.

    마법진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학문.

    마법진을 파훼하는 건, 마법진에 대한 지식이 엄청나게 높아야 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경험까지 쌓아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한들, 노력이 부족하면 경지에 오르기가 불가능한 영역이다.

    ‘애셔에게 물어봐야겠군.’

    그는 워렌스의 마법진을 없앤 적이 있었으니까.

    직접 그 과정을 보지 못하긴 했으나, 밝히길 꺼리는 걸 보면 분명 아티팩트에 버금가는 마법 물품을 가진 것이 틀림없었다.

    그에게 의존하게 되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칼리아가 고개를 돌린 순간.

    쩌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그그그극. 기괴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먼지가 가득한 어둠이 시야에 비쳤다.

    고대의 마법진.

    너무 오래되어 속이 멀쩡하지 않은 봉인진이 베르덴의 파훼술을 조금이나마 견디는 건 불가능했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오큘러스를 든 베르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의식장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 모습에 칼리아가 목소리를 흘렸다.

    “……다재다능에도 정도가 있는 법 아닌가?”

    어이가 없군.

    모두가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 * *

    “……에?”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비올라가 벌떡 일어났다.

    의식을 진행하고 있던 노사.

    그의 검은 눈동자가 비올라에게 향했다.

    “무슨 일이지?”

    “어, 그러니까…… 입구에 있던 마법진이 갑자기 박살 났는데?”

    “뭐라?”

    의식장 입구의 마법진은 고대에 새겨진 것이다.

    특수한 암호를 말하지 않는다면 절대 열리지 않는 봉인진. 비올라는 그 마법진을 자신과 연동했다. 혹여 침입자가 발생했을 때 곧장 알아차리기 위해서.

    아무리 비올라가 마법진의 전문가라고 해도 상당히 귀찮은 작업이었다. 소유자와 마법서를 상시 연결하는 것만큼이나 까다롭기 그지없었으니까.

    그녀로서는 너무도 하기 싫었지만 노사가 강요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연동을 해 놓았다.

    그런데 방금 박살 났다.

    “그냥 망가진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나!”

    노사가 격분했다.

    “침입자다!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 널 추적한 걸 테지. 이걸 어떻게 책임질 거냐, 비올라!”

    “아, 소리 지르지 마! 내가 아니라 널 쫓아온 걸 수도 있잖아!”

    “…….”

    뿌드득.

    어금니를 깨문 노사의 얼굴에 핏대가 불거졌다. 그 모습에 비올라가 냉큼 물러섰다.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반드시 그래야 할 거다.”

    노사는 현재 의식의 막바지에 다다라 있다.

    막대한 집중력을 요하는 만큼, 도중에 의식을 멈추지 않는 한 직접 나설 여력이 없었다. 게다가 현재 다른 부하들은 리마넨을 따라 왕국을 벗어나는 중이다.

    침입자를 상대할 흑마법사는 비올라 하나뿐이라는 뜻이다.

    그러자 비올라가 히죽였다.

    “뭘 그리 걱정해? 나 혼자서도 충분하긴 할 테지만, 여기에는 네가 데리고 있는 언데드도 있는데.”

    쿠웅…… 쿠웅…….

    의식장의 어둠 속에서 언데드가 나타났다.

    죽음의 기사, 데스 나이트.

    그리고 그를 필두로 언데드 수호자, 데스 가더를 비롯한 중위 언데드 다수가 존재했다. 노사가 직접 사역하고 있는 강대한 언데드 집단이었다.

    비올라가 소름 끼치는 살기를 드러냈다.

    “성기사든 뭐든 간에 가볍게 쓸어버리고 선물로 시체나 가져올게. 그러니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으라고.”

    이곳 의식장으로 통하는 입구는 총 두 개.

    각기 하나씩을 맡은 언데드 집단과 비올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