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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58화 (158/366)
  • 158화 망자의 행진 (5)

    통로 안에 있던 언데드와 시체들이 부풀어 올랐다.

    바닥에 널려 있는 언데드의 뼛조각뿐만 아니라 머리 없는 흑마법사의 몸뚱이까지 전부.

    “……!”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칼리아의 반응이 늦었다.

    아니, 즉시 감지했다고 한들 바뀌는 건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 피하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시체에서 새어 나온 붉은빛이 그녀의 눈동자에 반사됐다.

    그 순간 베르덴이 달려들더니 그녀를 감쌌다.

    직후 <대규모 시체 폭발>이 발동됐다.

    지속되는 화상, 격통의 저주가 담긴 검붉은 화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콰앙! 콰과광!

    연쇄적으로 들려오는 폭음.

    저주의 불길과 매캐한 연기가 삽시간에 시야를 가득 메웠다. 청각으로 느껴지는 그 압력은 원소 저항력이 높은 갑옷이라고 해도 견딜 수 없을 정도.

    솔직히 말해 칼리아는 죽음을 직감했다.

    ……그런데 폭발 소리가 그쳤음에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운 좋게 비껴 나가기라도 한 건가?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통로 전체를 아우르는 폭발은 사각지대가 없었으니까. 적어도 칼리아의 주변은 그러했다.

    아무리 완전 무장을 갖춘 그녀라고 해도 이런 폐쇄적인 공간에서 온전히 충격을 견디는 건 역부족이다.

    구사일생으로 즉사는 면했다고 해도, 사지 한두 개쯤은 날아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그렇다는 건 설마…….’

    칼리아가 조심스레 눈을 떴다.

    아니나 다를까 베르덴이 스태프를 뻗은 채 멀쩡히 서 있었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니 반투명한, 어두운 자줏빛의 장막이 둘을 감싸고 있었다. 그만한 폭발에도 멀쩡한 걸 보아 물리 저항력에 특화된 것이 분명할 터.

    이와 같은 특징을 지닌 속성은 칼리아가 알기로 하나밖에 없었다.

    ‘중력 마법……?’

    칼리아가 생각하던 도중 베르덴이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옆으로 보이는 베르덴의 얼굴에는 어떠한 당황조차 없었다. 여전히 무표정했다. 이 정도로는 감히 자신을 위협할 수 없다는 듯.

    칼리아가 멍하니 베르덴의 얼굴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렸다.

    “아…… 그래, 괜찮다. 다행히 어디 날아간 곳은 없는 모양이야.”

    휴우.

    칼리아가 내심 안도하곤 말을 이었다.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애셔. 이 빚은 보수와 별개로 반드시 갚겠──”

    그 순간.

    ───쿠구구궁.

    통로 저편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둘이 있는 장소를 포함해, 통로 전체에 금이 가더니 작은 돌조각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곧 무너져 내릴 거라는 징조였다.

    “……아무래도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때가 아닌 것 같군.”

    칼리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멀리서부터 통로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퇴로는 영묘의 최심부로 이어진 길 하나뿐.

    하나 통로의 기반이 무너진 지금 붕괴에는 순서가 없었다. 충격에 견디지 못한 지반이 무너지며 퇴로에 바윗덩이들이 낙하했다.

    저기에 깔리기라도 한다면 여지없이 매장당하겠지.

    칼리아는 주저 없이 검을 세웠다.

    “내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와라, 애셔.”

    발 앞꿈치에 힘을 준 그녀가 힘껏 내달렸다.

    백색의 검기를 날려 앞을 가로막는 파편들을 모조리 베어 갈랐다. 베르덴이 비행으로 따라오기 쉽도록 일직선으로 안전한 길을 만든 것이다.

    물론 베르덴은 가만히 뒤따르기만 하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돌려 무너지고 있는 통로를 바라봤다. 둘의 속도보다도 붕괴되는 과정이 빨랐다. 이대로 가다간 구덩이에 도착하기 전에 매장될지도 모른다.

    ‘<지형조작>을 사용할 순 없다.’

    마법 특성상 위력에 한계는 없지만 결국 3위계 마법이다.

    마력 소모가 심하다는 것 외에도 범위를 넓힐수록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공동이라면 모를까, 이만한 붕괴를 막기엔 역부족.

    시간이 급박한 상황에서는 해결책이 될 마법이 아니었다.

    <석벽>

    베르덴이 마안을 발동해, 반복적으로 뒤에 벽을 세워 통로를 지탱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겠지만 조금이나마 붕괴 속도를 늦출 수는 있을 터.

    콰과과과과과!

    ……해일과 같은 토사가 거의 등 뒤에 다다랐다.

    그때쯤 통로의 끝에서 구덩이가 보였다. 근처에 있던 언데드의 폭발에 의해 엉망이 되긴 했지만 다행히 무너지지는 않은 것 같다.

    콰앙!

    마지막으로 떨어진 거대한 암석을 부숴 버린 칼리아. 더 이상 방해물은 없다.

    “애셔!”

    칼리아가 베르덴이 서로 손을 붙잡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구덩이 위로 향하자마자, 쏟아져 내린 토사와 암석이 그들이 지나온 통로를 가득 메워 버렸다.

    * * *

    베르덴과 칼리아가 2계층 최심부로 돌아왔다.

    구덩이에서 둘의 모습을 확인한 기사단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베스파가 칼리아의 손을 잡아 끌어 올렸다.

    “무사하셔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칼리아 님. 애셔, 너도 무사했군.”

    “하마터면 그대로 압사당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칼리아가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과 달리 완전히 엉망이 된 폐허가 자리 잡고 있었다.

    베르덴이 조용히 상황을 파악했다.

    ‘<대규모 시체 폭발>은 통로뿐만 아니라 최심부에 있는 언데드와 시체까지 대상이었던 건가.’

    시신들이 보관되어 있던 관은 멀쩡한 게 없었고, 기사단을 위협하던 엘레멘탈 가스트들마저 시체 하나 없이 사라져 있었다.

    폭발의 제물이 많았던 만큼 충격이 상당했을 터.

    “베스파, 현재 상황은 어떻지?”

    “언데드와 시체가 폭발하며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다행히도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성수 덕분에 저주의 효과를 약화할 수 있었다. 비교적 저주가 깊게 스며든 기사들은 홀리 네클리스를 사용해 멀끔히 저주를 해주했고.

    포션으로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화상을 입은 몇몇 기사가 있긴 했지만, 당장 목숨에 직결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출구가 막혔습니다.”

    영묘에 갇혀 버렸다.

    확실히 기사단이 있는 장소 외에는, 천장과 벽에서 낙하한 잔해들로 가득했다.

    “기사들이 잔해를 쳐내는 동안 팔로스가 <지형조작>과 <석벽>으로 안전지대를 만들어 준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저희 기사단은 이미 매장당했을 겁니다.”

    “팔로스가…….”

    그의 이름을 되뇐 칼리아가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쓰러진 대지 마법사 팔로스.

    그는 마력 포션으로 병나발을 불면서 어마어마한 마력을 소모했다. 과다 복용으로 중독 현상이 일어났으나 이 악물고 참아 냈다.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목숨까지 걸려 있었으니까.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칼리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고생했다, 팔로스. 덕분에 누구 하나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제, 제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팔로스의 호흡은 불규칙적이었다.

    마력을 거의 다 소모하여 마력 고갈 증상이 일어난 터라 너무도 지쳐 있었다. 여기서 한 번이라도 마법을 시전했다간 죽음에 이를 정도로.

    “잠시…… 잠시만 쉬겠습니다…….”

    “푹 쉬어라.”

    칼리아의 허락에 팔로스가 기절했다.

    “그런데 흑마법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흑마법사…….”

    칼리아가 뒤를 돌아봤다.

    “애셔, 아까 함정이라고 그랬었지. 근거를 말해 줄 수 있겠나?”

    고개를 끄덕인 베르덴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확실히 의문이 드는 요소들은 칼리아과 베스파 그리고 기사단의 마음에 의심이 싹트게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의 전제가 문제였다.

    “우리를 이곳으로 이끈 건 네비론 주교다. 필체도 본인이 분명했고 그가 보낸 교구의 증표 덕분에 신성 장비도 빌릴 수 있었지. 정황이 의심스럽긴 하지만…… 설마 주검의 영광이 교구에 침투해서 주교를 감화하거나 조종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직접 교구에 확인할 수밖에.

    “그래, 그게 유일한 해답인 것 같군.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나갈 셈이지?”

    팔로스 덕분에 사망자는 없지만 문제는 여전했다.

    여기서 오래 버틸 수는 없다. 식량과 식수에 한계가 있기도 했지만, 구출대가 오지 않을 게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실종 기간이 길어지면 후작가에서 칼리아의 흔적을 쫓아오겠지.

    그렇다 해도 잔해를 넘어 2계층 최심부까지 내려오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때가 되면 모두 굶어 죽고 없겠지.

    지금은 바깥보다는 생존을 생각해야 했다.

    그러자 베르덴이 오큘러스를 바닥에 박았다.

    “그건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뭐?”

    화아아아아악!

    베르덴이 전력으로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밀도가 높아진 순수한 마력이 물리력을 갖기 시작했다. 이내 마력의 폭풍이 거칠게 휘몰아치며 대기가 진동했다.

    마력위압이 아님에도 압박감이 들 정도의 힘.

    하일레를 포함한 마법사들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경악을 넘어 두려움에 물든 눈으로 베르덴을 직시했다.

    숨이 막힐 듯한 압력에 감히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잘게 떨리는 시선들이 한데 모였다.

    베르덴은 아랑곳하지 않고 영묘에 마력을 침투시키는 데 집중력을 다했다. 이어 마력감지를 펼쳐 폭발이 어디까지 영향을 끼쳤는지 확인했다.

    계층의 중심부를 확인하자 루아스교의 장식물들이 부서져 생긴 파편이나 여러 잔해가 있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멀쩡했다.

    1계층으로 향하는 통로는 멀쩡하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는 건 <대규모 시체 폭발>의 범위는 통로, 최심부와 그 부근에 한정되었단 건가.’

    물론 이것만으로도 넓은 범위이긴 하다.

    안전지대를 만들었던 팔로스 혼자서 탈출구를 만드는 건 불가능했겠지.

    하지만 베르덴에겐 아니었다.

    최심부와 그 부근을 마력으로 장악한 그가 머릿속으로 설계도를 구상했다.

    지금 필요한 건 중심부로 이어지는 통로.

    더욱 마력을 쏟아부어 억지로 길을 열 수는 있으나 지금 상황에 바람직하지는 않았다.

    저 멀리 장악되지 않는 돌과 흙의 무게를 밀어내야 하기에 섬세하게 조작할 수 없다. 더군다나 지반이 약해진 터라 자칫 중심부마저 무너질 수도 있으니.

    이내 생각을 마친 베르덴이 벽안을 번뜩였다.

    <지형조작>

    쿠구구구구구……!

    잔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천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잔해로 기둥들을 만들어 무게를 떠받쳤다.

    그리고 잔해 사이의 빈 공간을 최대한 없애서 통로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공간을 확보했다.

    폐허가 된 공간이 한 마법사의 뜻대로 재구성되는 광경.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일련의 과정에 모두는 의식을 빼앗겼다.

    쿠웅!

    이윽고 2계층 중심부로 향하는 통로가 만들어졌다.

    동시에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작은 크기였으나 튼튼하기에 무너질 일은 없었다.

    “후우.”

    베르덴이 숨을 털어 냈다.

    지금까지 해 온 <지형조작> 중에서도 마력 소모가 극심했을 뿐만 아니라 연산량도 방대했다. 지치는 건 당연했다.

    하나 그뿐이다.

    손등으로 가볍게 땀을 훔친 베르덴이 오큘러스를 들었다.

    “가시죠.”

    * * *

    아무도 상정하지 못한 베르덴의 마법.

    그 덕분에 모두가 무사히 2계층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

    뒤에서 하일레라는 마법사가 베르덴을 흘끔거렸다.

    거슬리긴 했지만 그녀만이 아니라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지상으로 향하는 동안 누구도 섣불리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렇게 1계층의 계단을 지나 드디어 영묘 입구에 도착했다.

    교전이 일어나지는 않았는지, 입구를 지키고 있는 4분대의 기사들의 갑옷에는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그들이 부상당한 기사들을 받아 상처를 살폈다.

    이렇듯 탈출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임무를 완수하지는 못했다.

    사령의 보주의 근간을 없애지 못했으니까.

    ‘아니, 애초에 그런 게 있었는지조차 의문이지만.’

    베스파의 지휘 아래 기사단이 재정비를 하는 사이, 베르덴이 칼리아에게 물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겁니까?”

    “네 말대로 네비론 주교가 원흉이라면…… 교구에 직접 가서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겠지.”

    정보가 부족한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었다.

    자칫하면 백결 기사단이 모조리 몰살될 뻔했음에 칼리아는 상당히 분노한 듯 보였다. 이내 심호흡을 하며 잠시 화를 삭인 그녀가 말했다.

    “애셔, 너에겐 큰 빚을 졌다. 나뿐만 아니라 기사단의 목숨마저 구해 주었으니.”

    “의뢰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도다. 주검의 영광에 대한 문제가 끝나면 반드시 보상을 주마. 뭘 줄지는 나도 모르겠다만…… 혹시라도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도록. 내 힘이 닿는 한에서 뭐든지 줄 용의가 있으니까.”

    칼리아가 베르덴의 벽안을 마주했다.

    전격 계열뿐만 아니라 중력 계열 마법까지 습득한, 고위 속성 두 개를 보유한 마법사.

    거기다 다른 원소 마법에도 능통하며 그 모든 마법을 아우르는, 가늠할 수 없는 마력량까지 지니고 있다. 심지어 머리도 좋고 외모까지 뛰어나다.

    그야말로 재능으로 가득한 천재 마법사.

    다른 기사들은 그에게서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칼리아에게는 긍정적인 감정이 앞서 느껴졌다.

    ‘나중에 페르네한테 따로 선물이라도 보내야겠군.’

    그와 인연을 맺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미소를 지은 칼리아가 자신의 군마에 올라탔다.

    “그럼 돌아간다.”

    일행은 칼리아를 필두로 대형을 이루었다.

    언데드가 묘지를 서성거리긴 했으나 숫자는 많지 않았다. 부상당한 기사들을 도시에 놔두면서 모험가 길드와 교회에게 말해 토벌하면 될 터.

    평소라면 칼리아 본인이 처리하겠지만 당장 해결해야 할 급한 일이 있었다.

    스산한 안개를 통과하여 국립묘지를 빠져나갔다. 망가진 철문은 석벽으로 대신했다.

    아직 어두운 새벽.

    초원에 도착한 뒤 가장 가까운 도시 카베른으로 말 머리를 돌리려던 순간.

    “저건…….”

    작은 마을 하나가 화재에 뒤덮여 있었다.

    시시각각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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