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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56화 (156/366)

156화 망자의 행진 (3)

에스퍼렌사 후작가에는 5위계 마법사가 원로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후작가의 차남이 4위계 마법사이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여러 마법을 접해 왔던 칼리아는 고위계의 마법에 대해 그리 생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조차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범위에 닿은 언데드들을 그대로 소멸시킨 화염 광선. 4위계 원소 마법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위력이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설마.

‘4위계 마법사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의 경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뭐가 됐든 지금의 마법은 결코 4위계 수준이 아니었다.

합성 마법이든 집중 마법이든 마찬가지다.

애초에 이런 4위계였다면 마법사란 존재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상을 지녔을 테니.

칼리아가 슬쩍 뒤로 시선을 보냈다.

4위계 중위의 화염 마법사, 백결 기사단의 하일레.

높은 파괴력으로 기사단의 화력을 담당하는 기사 중 하나. 자신의 스태프를 양손으로 꼭 쥔 그녀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크, 크, <크리메이트>라니…….”

트리플 캐스팅이 가능한 마법사만 시전할 수 있는 화염의 합성 마법.

4위계와 5위계 하위 마법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연산량은 엄청나다. 어지간한 재능을 가진 마법사조차 최소 분 단위는 집중해야 겨우 구현할 수 있는 난이도 높은 마법이다.

그런데 저걸 고작 십수 초 만에 시전하다니.

상식을 벗어난 연산력이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하일레가 겁먹은 듯 떨고 있다.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기사들은 멍하니 마법의 위력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고, 그 외의 마법사들은 당혹감이 서린 시선들을 베르덴에게 향하고 있었다.

이를 봐도 직전의 화염 마법은 결코 예사 수준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배르덴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길이 열렸습니다.”

“아, 그…… 고, 고생했다.”

칼리아가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 냈다.

그의 마법이 예상을 뛰어넘긴 했지만…… 당장 여기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다. 떠오르는 의문은 나중에 해결해도 될 일.

다시금 기세를 가다듬은 칼리아가 백색의 검을 앞으로 향했다. 술렁거리던 기사들이 곧장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갖췄다.

“돌격하라!”

칼리아의 신호에 군마가 발굽을 내디뎠다.

가속하는 속도. 잔잔했던 바람이 거칠게 다가왔다.

언데드 무리가 가까워지자 하얀 투구가 칼리아의 머리를 감쌌다. 그녀가 가진 갑옷의 효과 중 하나였다.

두두두두두!

베르덴이 만든 길을 칼리아의 기사단이 질주했다. 겨우 여파에서 비껴 나간 언데드들이 흐느적거리며 다가왔다.

서걱! 콰직!

백결 기사단이라는 이름답게 하얀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단은 강했다.

기껏 힘들게 몰려온 언데드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한 번 스쳐 지나갈 때마다 머리가 잘려 나갔고, 앞을 가로막은 언데드는 군마에 짓밟혀 곤죽이 되었다.

그때, 안개 속에서 거대한 회색 덩어리가 나타났다.

시체 골렘의 아종 ‘해골 골렘’.

부패하고 있는 시체들로 구성된 시체 골렘과 달리 수백 구의 뼛조각으로 이뤄진 언데드다. 움직일 때마다 달그락거리던 놈이 기사단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옆으로는 해골마를 탄 언데드 기수 세 마리가 맹렬하게 달려왔다.

베르덴이 마법을 날리려 하자, 칼리아가 제지했다.

“강력한 마법을 썼으니 무리하지 마라. 놈들의 처리는 우리에게 맡기도록.”

“……알겠습니다.”

베르덴은 잠시 고민한 뒤 답했다.

물론 전혀 지치지 않았지만, 집단으로 움직이는 만큼 지휘관의 통솔은 중요했다. 멋대로 움직이는 건 옳지 않기도 했지만.

‘칼리아와 기사단의 실력이 어떤지 보고 싶기도 하니.’

베르덴은 순순히 그녀의 명령을 따랐다.

칼리아가 살짝 고개를 틀었다.

“베스파, 해골 골렘을 처리해라.”

“예, 칼리아 님.”

명령을 내린 칼리아가 가속했다. 그리고 거대한 방패를 든 베스파와 다른 기사 하나가 뒤를 따랐다.

그게 신호였는지 하일레가 마법을 연산했다. 이윽고 그녀의 금속 지팡이에서 붉은 창이 쏘아졌다.

<파이어 자벨린>

콰과광!

화염이 폭발하며 해골 골렘이 휘청거렸다.

약점 속성인 탓에 충격이 컸는지 맞닿은 부분 말고도 몸 일부에 금이 가 있었다. 기를 끌어올린 베스파와 기사가 방패를 날카롭게 세우며 돌진했고, 골렘의 양쪽 다리를 일격에 부숴 버렸다.

이어 마법사들의 마법이 날아가 골렘을 완전히 침묵시켰다.

한편, 칼리아는 홀로 언데드 기수 세 마리와 대적했다.

그녀가 기를 끌어모으자 백색의 기운이 검에 맺혔고 언데드 기수가 낡은 창을 세웠다.

그리고 교차했다.

한 번의 번쩍임. 왼쪽에 있던 칼리아의 검이 오른쪽에 멈춰 서자, 언데드 기수 세 마리의 몸체가 반으로 갈라졌다. 심지어 해골마의 머리까지.

단번에 방해물을 제거한 칼리아 그리고 베스파 일행이 속도를 조절하며 대열에 합류했다.

‘강하군.’

칼리아가 자신할 만하다.

이런 언데드 무리로는 기사단의 진격을 조금도 늦출 수 없었다. 베르덴의 지원이 있든 없든 간에 말이다.

국립묘지에 내려앉은 자욱한 안개.

칼리아과 백결 기사단의 활약에 의해 조금의 피해도 없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언데드 무리에서 벗어나자.

중심부의 영묘가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 *

중앙 영묘에 도착했다.

오랜 기간 합을 맞춰 온 기사단에게는 별다른 신호도 필요 없었다. 건물 앞에 도착하자 각자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석벽>

기사단의 마법사가 벽을 세워 시야를 차단했다. 후에 성수를 뿌려 미약한 신성력이 깃들게 했다. 언데드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해물이었다.

척후를 맡은 기사 두 명이 재빨리 말에서 내리곤 입구에 발을 디뎠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기감을 넓혀 안쪽의 기색을 살폈다.

지하 계층으로 통하는 입구는 이곳 단 하나. 함정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었다.

‘……저기 있군.’

기사가 천장을 올려다봤다.

시각적으로 잘 보이지는 않아도 무언가 있는 게 느껴졌다.

은폐 능력을 가진 언데드 ‘헌커(Hunker)’가 분명할 터.

놈은 정해진 영역 내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지만 경계를 넘는 순간 몸속에 있는 뼈바늘을 넓게 흩뿌린다.

뼈 자체에 마비독이 깃들어 있어 함정에 걸리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두 기사가 활을 들었다.

각각 세 개의 화살을 시위에 얹고 힘껏 뒤로 당겼다.

───파악!

총합 여섯 개의 화살이 넓게 퍼져 나갔다.

정확히 두개골이 꿰뚫린 헌커들이 지면으로 떨어졌다. 낙하 충격에 놈들의 몸체가 박살 났다.

기사는 놈들의 사체를 밟고 넘어섰다.

다시금 조심스레 영묘 입구를 면밀하게 확인했다. 더 이상 함정은 없었다.

척후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섰다.

“정리됐습니다, 칼리아 님.”

고개를 끄덕인 칼리아가 손을 저었다.

베르덴과 기사단이 군마를 이끌고 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석벽>을 시전해 출입구를 완전히 막아 버렸다. 횃불이 없어 어두웠으나, 진즉에 암시 마법이 부여된 마법 물품을 착용하고 있던 기사단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마치 기계와 같이 정밀하고 체계적인 움직임.

베르덴은 로든마이어 백작의 로드론 기사단과 함께 자작 구출 작전을 펼치고 같이 훈련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한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백결 기사단의 전체적인 수준은 로드론 기사단보다 적어도 한 수는 앞섰다.

모두가 군마에서 내렸다.

칼리아가 지시한 대로 기사들이 일제히 움직여 분대별로 모였다.

1계층으로 통하는 입구는 총 세 개.

거기다 영묘 입구와 군마를 지킬 병력도 필요하기에 총 4분대로 기사단이 재편성되었다.

칼리아가 속한 1분대는 본인까지 더해 총 다섯.

베르덴을 포함한 마법사 두 명과 방패 기사 하나 그리고 척후 역할을 하는 기사 하나로 구성되었다.

칼리아가 자신의 분대, 정확히는 베르덴을 슬쩍 보며 물었다.

“직전의 마법으로 상당한 마력을 소비했을 텐데, 마력 포션을 복용하지 않아도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음…… 그렇군.”

칼리아는 별말 없이 수긍했다.

그야 처음 대면했을 때, 마력 위압으로 4위계 마법사를 찍어 누른 적이 있었으니까. 다른 건 정확히 몰라도 남다른 마력량을 지닌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설마 그런 마법을 쓸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돌린 칼리아가 베르덴 옆에 있는 마법사를 호명했다.

“토렌, 너는 3분대를 지원하도록.”

“예, 칼리아 님.”

토렌이 1분대를 떠났다.

결과 칼리아의 분대는 총 4명.

다른 분대보다 적은 숫자였으나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녀가 목격한 베르덴의 마법은 너무도 위력적이었고, 그에 뒷받침되는 마력량까지 품고 있었으니까.

이 와중에 다른 마법사를 데려가는 건 전력 과잉이었다.

칼리아가 가장 앞에 서서 기사단을 바라봤다.

“임무는 충분히 숙지했을 테니 더 말하진 않겠다. 하나, 이거 하나는 명심하도록.”

그녀의 한마디가 귀에 꽂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죽지 마라. 이상이다.”

기사단이 일제히 검을 세웠다.

마찬가지로 검을 세운 칼리아가 검붉은 눈동자를 빛냈다.

“그럼 이제부터 영묘를 수색한다. 입구를 지킬 4분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2계층 중심부에서 보도록 하지. 흩어져라.”

* * *

저녁노을이 내려앉은 초원의 언덕.

한가운데 선 리마넨은 눈을 감은 채 자연의 향취를 느끼고 있었다. 이제 곧 시들어 버릴 생명의 흔적을.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자 한 흑마법사가 다가왔다.

“리마넨 님, 칼리아가 기사단을 이끌고 국립묘지로 향했다고 합니다.”

“예정보다 빠르군.”

리마넨이 천천히 눈을 떴다.

백강 칼리아.

그녀는 감히 주검의 영광과 대적했다. 일개 왕국의 후작, 그것도 자식 따위가.

물론 훌륭하긴 했다.

순조롭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었던 자신들의 발걸음을 조금이나마 붙잡는 데 성공했으니. 백강이라는 이명답게 판단력과 행동력은 유능함 그 자체였다.

하나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방구석에 처박혀 잠을 자든,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저항해 본들 어차피 같은데. 죽음이라는 결과는 어차피 매한가지인데 말이다.

“정말로 덧없구나.”

한탄을 내뱉은 리마넨이 품속에서 스크롤을 꺼냈다.

끈을 풀고 스크롤을 양손으로 펼치자, 안에 있는 마법의 문자들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흑마법사가 감탄했다.

“그, 그것이 7위계의……!”

“위대한 주검을 모시는 ‘첫 번째 하인’께서 친히 만드신 것이지.”

흑마법사는 절로 몸을 떨며 허리를 숙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외감에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리마넨은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스크롤에 내재된 문자들을 읽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잉!

기류가 뒤틀리며 거센 풍압이 초원을 덮쳤다.

소름 끼치는 기운이 주위를 억압하며 노을에 비치는 초원의 풀들이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불청객이 찾아왔다.

“거기 두 사람!”

왕국 갑옷을 입은 병사 두 명.

정기적으로 주변을 순찰하는 병사들이었다. 그들이 언덕 아래에서 다시금 소리쳤다.

“곧 해가 집니다! 바람도 차고 곧 통금 시간이니 어서 들어가셔야 합니다!”

“필요하시다면 뒤에 태워 드릴게요!”

흑마법사가 죽이려 했지만 리마넨의 눈이 말했다. 어차피 무의미하니 상관하지 말라고.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병사 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안 들리나?”

“그런가 봐. 어후, 그나저나 갑자기 바람이 왜 이래? 뭔가 으스스하네.”

병사가 소름 돋는다는 듯 팔을 쓸었다.

경사진 언덕 위라 인상착의가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앞장서 있던 병사가 별수 없다는 듯 창을 챙기고 말에서 내렸다.

“뭐야, 올라가려고?”

“그래야지. 저대로 내버려 뒀다가 고블린이나 오크한테 죽는다고 생각하니 찜찜하잖아.”

“음…… 그렇긴 하네. 제길, 좀 낮은 언덕에 있지, 왜 높은 곳에 있어서 말을 못 타게 하냐고.”

뒤에 있던 병사도 투덜대면서 바닥에 내려갔다.

대충 말뚝을 지면에 박아 말들을 묶어 놓은 뒤, 두 병사가 언덕 위로 향했다. 흙이 미끄러워서 바닥에 손까지 짚고 나서야 겨우 올라갈 수 있었다.

“휴우.”

한숨을 쉰 병사가 고개를 앞으로 향했다.

뭔가 기이한 사람들이었다. 한 명은 수상하기 짝이 없고 다른 하나는 웬 종이를 들고 중얼거리고 있으니.

아무리 봐도 산적은 아닌 것 같은데.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 시간에 언덕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병사가 걸어가며 말했다.

“저기, 아직 늦지 않았으니 근처 마을에 데려다…….”

“아니, 늦었다.”

“……네?”

후우우욱.

해가 사라지며 밤이 찾아왔다. 붉은 노을이 가득했던 풍경이 어둠에 휩싸였고 으스스한 분위기가 한층 더 깊어졌다.

“어, 어?”

“왜 갑자기 손이…….”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몸이 떨려 왔다.

공포.

이성이 깨닫는 것보다 빠르게 본능이 죽음을 감지한 것이다.

이윽고 준비를 마친 리마넨이 마법을 발동했다.

7위계 흑마법.

<망자의 행진>

사아아아아악!

짙푸른 초원 전체가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마치 이 세상에서 색이 사라진 듯한 풍경.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고 직감한 병사 하나가 뒷걸음치다 발을 헛디뎌,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어이! 괜찮아!”

“으윽……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은데.”

그때였다.

콰득.

땅속에서 새하얀 뼈가 튀어나와 병사의 얼굴을 잡았다.

“어?”

그러곤 지면 아래로 끌어당겼다.

단말마의 비명도 없이 사라진 병사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검붉은 피 분수가 솟구쳤다.

“히, 히익!”

그 광경을 목격한 병사가 주저앉았다.

어떻게든 도망치기 위해 말이 있는 장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초원의 대지에서 솟아난 언데드들이 말들을 조각내고 있었으니까.

“죽음의 기운이 넘치는군.”

“어?”

리마넨이 다가와 병사를 밀어 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악!”

언덕 아래로 떨어진 병사를 스켈레톤들이 잡아챘고 그대로 찢어발겼다. 산 자의 피가 죽음의 대지를 적셨다.

상위종과 하위종이 어우러진, 수천의 언데드 군세.

그 압도적인 위용에 리마넨과 흑마법사는 전율했다. 그 행복감을 만끽한 리마넨이 망자들에게 명령했다.

“가거라. 생명의 대지를 죽음으로 물들여라.”

위대한 주검을 위해서.

────아아아아아아악!

사자(死者)의 외침.

왕국 남쪽에서 탄생한 무수한 언데드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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