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망자의 행진 (2)
왕국 국립묘지.
주로 시민들의 시신을 안치하는 거대한 안치소다.
특성상 언데드의 자연 발생 확률이 높은 편.
물론 시체를 화장한다면 그 확률을 대폭 낮출 수 있긴 했으나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화형이란 대역죄인, 이단자 혹은 악마에게나 할 법한 처형 방식이었으니까. 아무리 시체라고 한들 가족의 시신을 불구덩이에 집어넣는 건 정서적인 거부감이 컸다.
그리고 귀족이나 왕족과 같은 자들의 반대 또한 격렬했다.
가문의 일원, 그들의 시신은 가문에게 있어 강력한 상징성을 갖고 있으니까.
뼛가루로 만들어 유골함에 넣는 것보단, 가문의 무덤에 온전히 안치하여 안식을 바라는 것이 여러모로 마땅했다.
하물며 비용 문제까지.
땅 아래에 묻는 것보단 화장터를 만들어 이용하는 것이 당연히 비용이 클 터.
하루하루 먹고살기조차 어려운 빈곤한 사람들에겐 그조차 부담이다. 분명 누군가는 몰래 시신들을 인적이 드문 땅에 매장하겠지.
그럴 경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언데드가 발생하게 될지도 모른다. 차라리 한곳에 모아 관리하는 편이 훨씬 더 안전하고 합리적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탄생한 게 국립묘지의 존재다.
칼리아가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국립묘지라…… 확실히 주검의 영광이 숨어 있을 법하군.”
묘지에는 흑마법의 재료가 될 것이 많으니까.
사악한 흑마법사들이 은신처로 삼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오히려 너무 뻔해서 의심조차 들 정도였다.
하지만 국립묘지에는 관리자들이 있다.
국가에서 자격을 허가받은 흑마법사들. 그뿐만 아니라 이상 사태가 일어날 것을 대비해 주기적으로 주변 도시에서 병사를 파견해 꼼꼼히 순찰도 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조용하다는 건 관리자들이 이미 당했다는 뜻이다.
‘아니면 주검의 영광에 가담했거나.’
칼리아가 시선을 돌렸다.
“베스파, 국립묘지의 내부 설계도는 확보했나?”
“물론입니다.”
베스파가 낡은 설계도를 책상 위에 펼쳐 고정했다.
칼리아가 설계도를 면밀하게 바라봤다.
묘지에는 여러 건축물이 많긴 했지만, 그녀의 이목을 끈 건 단 하나뿐이었다.
묘지 중심에 세워진 거대한 영묘.
그 아래에는 총 2개 층으로 이루어진, 넓은 지하 안치소가 존재했는데, 설계도로 보아 주검의 영광이 은신처로 삼기에는 적합한 장소였다.
그리고 영묘로 들어가는 입구는 하나. 그 외 출구는 없었다.
급습하기에는 그리 좋지 않지만 달리 말하자면 놈들이 도망칠 길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각을 마친 칼리아가 말했다.
“좋아, 지금부터 계획을 하달하겠다.”
그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스스로 하나의 기사단을 이끌며 강함을 세간에 인정받은 후작가의 장녀. 귀족들조차 상대하기 꺼린다는 그녀가 과연 어떤 계획을 구상했을까.
베르덴은 내심 기대하며 칼리아의 말을 기다렸다.
이윽고 칼리아가 선언했다.
“정면 돌파로 간다.”
“…….”
칼리아는 베르덴의 예상 이상으로 저돌적이었다.
* * *
쿠웅.
백결 기사단의 기사가 책상 위에 큰 가방들을 올려 뒀다. 그 안에는 루아스교의 교회에서 빌려온 신성 장비가 가득했다.
무구에 신성 효과를 부여하는 무색의 기름.
그리고 한 번 복용하는 것으로 일정 시간 동안 언데드의 사악한 기운과 저주 마법을 완화해 주는 성수 등 흑마법사에게 효과적인 수단들이 기사단에게 갖춰졌다.
칼리아가 자신에게 할당된 기름과 성수를 조심히 챙겨 넣었다.
마지막으로는 루아스교의 상징인, 정십자가가 매달린 목걸이를 착용했다.
일명 [홀리 네클리스].
하루에 2번, 4위계 이하의 저주를 해주할 수 있으며, 상시적으로 정신을 보호해 주는 신성 장비다. 흑마법으로 인해 정신이 오염될 걸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귀한 물건인 만큼 숫자는 한정되어 있다.
칼리아는 베스파와 기사단의 마법사들에게 목걸이를 전달했다.
그녀를 대신할 지휘관이나 주요 화력을 담당하는 마법사의 존재는 무척이나 중요하니까. 특히나 마법사에게 정신 착란이 와서 아군에게 마법을 남발했다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게 분명할 테니.
물론 전격 계열 마법사인 베르덴은 당연히 포함되었다.
“애셔, 너도 착용하도록.”
“감사합니다.”
베르덴이 목걸이를 건네받았다.
솔직히 말해 베르덴에게 정신 보호는 소용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울 트리부터 시작해 4위계 정신계 마법사, 레드햇, 엘더 리치 등 정신에 간섭하는 저주나 마법은 단 한 번도 통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에게 있어 이러한 신성 장비는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거절할 순 없겠지.’
베르덴이 말한다고 한들 여기 있는 모두가 곧이곧대로 신뢰할 리가 없었다. 다수의 목숨이 걸려 있는 만큼 지속적으로 경계를 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신경을 분산할 바에 말없이 착용하는 편이 간단했다.
홀리 네클리스를 착용했다. 정십자가가 옷 위로 부딪쳤다.
그때, 칼리아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에게 의뢰만 했지, 같이 움직였던 적은 없군. 손발을 맞춰 볼 정도로 느긋한 상황은 아니지만 너에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겠지.”
미스릴 등급 파티에게 의뢰를 받아 토벌을 함께한 전적이 있으니까.
적어도 집단적인 움직임에 대한 기본을 갖추고 있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래도 혹시 궁금한 게 있다면 얼마든지 물어보도록. 이번 주검의 영광 토벌에 대한 거라면 될 수 있으면 뭐든지 답해 주지.”
궁금한 거라…….
“왜 칼리아 님께서 최전열에 서신 겁니까?”
칼리아는 이 토벌대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녀가 죽는다면 기사단이 붕괴할 수도 있는 상황. 굳이 앞에 서서 지휘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에 칼리아가 답했다.
“뭐, 여러 이유가 있다. 뒤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건 내 성격상 맞지 않고, 아군의 사기를 올리려면 지휘관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검붉은 눈동자가 베르덴과 마주했다.
“내가 기사단 중에서 제일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지휘만 하는 건 전력적인 측면에서 아까운 손실이지.”
뒤에서 지휘만 하며 지켜질 바에, 앞장서서 지휘와 전투를 동시에 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효율이 좋기도 하고.
칼리아 본인의 능력과 그 능력을 믿기에 가능한 것.
베스파를 포함한 기사단의 사람들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모양인지 별말이 없었다.
베르덴이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칼리아가 전력을 중시한다면 그도 할 말이 있었다.
“칼리아 님, 부탁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부탁?”
고개를 갸웃거리는 칼리아.
그런 그녀에게 베르덴이 말했다.
“저도 전열에 서고 싶습니다.”
* * *
도시 카베른에서 국립묘지까지는 말로 약 삼 일 거리.
칼리아를 필두로 베르덴과 백결 기사단이 목적지로 향했다.
에스퍼렌사 후작가에서 훈련된 군마는 전력으로 몇 시간을 내달릴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가지고 있다. 거기다 그 근력에서 터져 나오는 뒤차기는 인간의 두개골쯤은 쉽게 으깰 정도.
당연히 속도는 일반적인 말을 쉽게 압도한다.
군마의 발굽이 지면에 닿는 순간 주위의 풍경이 움직인다.
그렇게 최소한의 휴식만을 취하며 나아간 결과, 고작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국립묘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네비론 주교가 준 목걸이가 격렬하게 반응했다.
“다행히 그동안 위치가 바뀌지는 않은 모양이로군.”
이후 무구에 기름을 바르고 성수를 복용했다. 신성한 빛이 토벌대의 몸에 깃들었다.
모두가 준비를 끝마쳤음을 확인한 칼리아가 명령했다.
“전원, 돌입한다.”
칼리아의 계획은 정면 돌파.
굳이 뜸 들이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말에서 내릴 필요도 없었다. 겁이 없고 주인의 뜻에 복종하는 군마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무기였으니까.
그대로 묘지로 돌진하며 각자 무기를 빼 들었다.
칼리아가 신호했다.
“하일레, 그라넨! 문을 부숴라!”
“맡겨만 주세요, 칼리아 님!”
“명령대로!”
두 마법사가 마력을 끌어모았다.
붉은 화염이 휩싸인 지팡이를 앞으로 내뻗었다.
<화염구>
<암석강타>
콰아아아앙!
암석이 철문을 크게 손상하고 이어진 폭발이 입구를 통째로 날려 버렸다. 그렇게 기사단에 묘지 안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자 스산한 안개가 그들을 맞이했다.
묘지 아니랄까 봐 섬뜩한 풍경이 시야를 가득 메웠고 꺼림칙한 기운이 사방에 만연했다.
잠시 멈춰 선 칼리아와 기사단.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살기를 드러냈다.
“……역시 선객이 있었군.”
───그어어어어……!
안개 속에서 언데드가 대량으로 나타났다.
좀비, 스켈레톤 등 종류가 다양했다. 수십 구의 시체로 이뤄진 시체 더미 그리고 활과 검 심지어 마법을 다루는 스켈레톤 메이지까지 발생한 상황.
그 숫자에 모두가 확신했다.
이곳 국립묘지에 주검의 영광이 숨어 있는 게 분명하다고.
이제 해야 될 건 토벌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데드 하나하나 전부 없애는 건 비효율적이다. 말을 탄 상태에서 난전을 벌이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기도 했고.
가장 중요한 목표는 사령의 보주의 근간을 부수는 것.
그 외의 나머지는 차순위다. 그러니 당장 저 언데드 무리를 뚫고 영묘의 입구를 확보하는 게 먼저였다.
“애셔, 부탁하지.”
베르덴이 앞으로 나섰다.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후열에서 화력을 담당하는 것이 상식이다. 비교적 육체와 감각이 단련되어 있지 않기에, 눈먼 화살이나 칼에 맞아 죽거나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었으니까.
근접전이나 방어에 능숙한 사람을 앞세워 몸을 지키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전열에 서고 싶다니.’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하물며 그는 다이나 은행에서 무려 25억 엘크를 현금으로 대출하면서 암흑가의 경매에 참가하기까지 했다.
예의상 뭘 낙찰받았는지는 묻지 않았으나, 분명 마법적으로 도움이 되는 장비들을 구한 게 틀림없겠지.
칼리아가 본 베르덴은 귀족들처럼 쓸모없고 사치스러운 것에 거액의 돈을 낭비할 사내가 아니었으니까.
‘과연 어떤 마법을 보여 줄까.’
칼리아는 내심 기대했다.
베르덴의 실력이 어떨지 너무도 궁금했으니까.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베르덴을 흘긋거렸다.
“…….”
그런 부담스러운 시선들을 한 몸에 받으며 베르덴이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충만한 마력이 몸속에 들어차며, 그의 손에 들린 오큘러스에 마력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언데드 무리에 피해를 줘 빈틈을 만드는 것이 베르덴이 맡은 역할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끝낼 생각은 없다.’
저 언데드 무리를 뚫고 단번에 영묘로 갈 수 있는 길을 만든다. 지금의 베르덴에겐 그럴 만한 능력이 충분하고도 넘쳐흘렀다.
4위계 마법 <플레어>.
그 화염 광선을 5위계 마법 <프로미넌스>로 한층 더 위력을 강화하고 <활염>을 통한 화염 조작으로 그 범위를 강제적으로 넓혔다.
오큘러스를 휘감은 다섯 줄기의 불길이 서로 뒤엉키며 강하게 명멸했다.
“……!”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열기와 감각을 자극하는 위압감에 베르덴을 제외한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저 멀리서 스켈레톤 하나가 화살을 쏘아 보냈지만 미처 닿기도 전에 불타 사라졌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마법의 연산이 끝이 났다.
파괴의 열선.
<크리메이트>
뒤엉킨 불길이 폭발하며 거대한 화염 광선이 언데드 무리를 관통했다.
범위 내에 있던 언데드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멀리서 다가오던 무덤파수꾼조차 저항할 새도 없이 일순간에 집어삼켜졌다.
망자의 묘비는 휩쓸려 사라지거나 여파에 녹아내려 무덤 위로 흘러내렸다.
파괴의 마법이 지나간 자리, 그 위에 멀쩡히 서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기사단이 지나갈 수 있는 길만이 남아 있을 뿐. 단 한 번의 마법에 언데드 무리는 궤멸적인 피해를 입고 와해되어 흩어졌다.
정적이 내려앉은 국립묘지.
백결 기사단의 화염 마법사 하일레가 멍하니 목소리를 흘렸다.
“헐.”
그녀의 한마디가 모두의 반응을 대신했다.